과학과 철학 에세이/비판적 사고

개념이란

착한왕 이상하 2016. 9. 6. 02:08

1.1. 개념이란

머리말에서 강조했듯이, 이 사고 훈련은 쉬운 놀이들을 거쳐 연속체 문제(continuum problem)’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될 것입니다. 특히 이 원 놀이부분은 이해하기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아주 어려운 물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개념(concept)이란 무엇인가?

 

개념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누구나 개념 없이는 사고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개념이 사고 활동의 일부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부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대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정답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개념을 심적 이미지(mental image)’ 혹은 심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과 같은 것으로 규정합니다. 다른 이들은 추상적인 어떤 것으로 규정합니다. 개라는 개념은 모든 개를 하나로 묶어 부를 수 있게 해주는 개 그 자체와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참 거짓 판단 가능한 내용, 즉 명제(proposition)를 구성하는 것이 개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개다라는 우리말 진술과 ‘This is a dog’이라는 영어의 진술이 서로 번역 가능한 이유는 두 진술에 공통된 내용이 있다는 것이며, 개라는 개념은 그 내용의 구성단위라는 것입니다.

 

개념이 심적 이미지 혹은 심적 표상과 같은 것이라면, 어떻게 두 사람이 동일한 개념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개념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추상적인 어떤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그런 것을 인식할 수 있을까? 우리말의 어떤 진술과 영어의 어떤 진술은 공통된 내용으로서의 명제와 같은 것이 있어서 서로 번역 가능한 것일까? 개념을 둘러싼 이러한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여러 입장들을 자세히 다루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개념을 수학과 연관시켜 다루는 경우, 그러한 여러 입장들을 놓고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분명해 질 것인데, 우선 개념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보다는 다음 물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개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 성립하는가?

 

위 물음과 관련해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i) 개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여러 종류의 개들에 대해 일반 명사 ’, ‘dog’, ‘Hund’ 및 특정 수화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개라는 개념에는 특정 일반 명사 및 수화 등 기호(signs)가 대응되며, ‘개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런 기호들을 사용하여 개들을 지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ii) 개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개들의 공통 특징들, 실례로 형태,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동물, 사람에게 쉽게 길들여지는 성격, 잡식성 등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공통 특징들에 대한 믿음들은 우리의 삶과 의사소통의 토대라는 점에서 지식으로 분류 가능합니다. 또 그러한 믿음들은 개들을 정의할 때 필요합니다.

 

(iii) 개들의 공통 특징들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개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다. 수의사가 개들을 바라보는 방식, 100년 전 개들을 가축으로 여긴 사람이 개들을 바라보는 방식, 유기견을 관리하는 사람이 개들을 바라보는 방식은 동일할 수 없습니다. ‘개들을 바라보는 방식개들에 대한 관점이라고 할 때, 관점은 개념보다 항상 그 폭이 넓습니다. 왜냐하면 개들에 대한 관점과 관련된 믿음들은 개들의 공통 특징들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i)~(iii)에 따른다면, 개념을 다음과 같이 규정해도 무방합니다.

 

개라는 개념은 개라는 대상들의 범위를 정의 가능하도록 해 주는 기호이다.

 

개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위 규정 방식에 따른 어떤 기호가 체화되어 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때 개념적 능력이란 특정 기호를 적절히 사용하는 능력이며, 개념화란 개념에 대응될 대상들의 공통 특징들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iii)은 동일한 개념에 대해 여러 관점들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말 ‘dog’은 분명히 다른 표현들인데 어떻게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요? 두 표현 모두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정의 가능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정의는 개들의 범위를 설정해 줍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이든 영국인이든 모두 개들의 공통 특징들을 알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개라는 개념에 대한 위 규정 방식을 일반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념이라는 것은 특정 대상들의 범위를 정의 가능하도록 해 주는 기호이다.

 

물론 모든 개념들이 위 규정 방식을 만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종류의 개념을 고려하는 것은 논외로 합니다. 여기서는 위 규정 방식을 만족하는 개념들이 많다는 점에만 만족합시다. 그러한 개념들로 ’, ‘’, ‘돼지’, ‘사람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들을 범주 개념(categorical concept)’들이라고 합니다.

 

수학에도 많은 범주 개념들이 있습니다. 실례로 자연수’, ‘전체수’, ‘유리수’, ‘실수등을 들 수 있습니다. 각 종류 수들의 범위에 대한 명확한 정의 방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라는 대상들은 개나 소 및 돼지와는 아주 다릅니다. 개는 쓰다듬고 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 경험 가능한 대상입니다. 수는 직접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수라는 대상이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머릿속에서 구성된 것인지를 따지는 논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수라는 대상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은 시간적 지속성 및 공간적 크기가 없는 어떤 것들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는 수들을 나타낼 뿐, 숫자가 수는 아닙니다. 수들과 달리, 개나 소처럼 직접 경험 가능한 것들은 시간적 지속성 및 공간적 크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지속성 및 공간적 크기를 갖고 있지 않는 어떤 것이 정말 있다면, 그것은 추상적 존재로 불립니다.

 

수들이 정말 있다면, 그것들은 추상적 존재들입니다. 추상적 존재로서 수는 정말 존재하는가? 이 물음은 어쩌면 영원히 풀지 못할 난제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1’, ‘2’, ‘3’ 등 숫자들을 셈 활동 등에서 사용하는 한, 수라는 대상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개념 자연수가 정의 가능하다고 할 때, 그 정의 방식은 의 정의 방식과 동일할 수 없습니다. 모든 자연수에 공통된 특징들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연수들은 공통적으로 셈 활동에 사용되지만, 그런 셈 활동 혹은 기능이 자연수들 자체가 갖고 있는 공통 특징은 아닙니다. 또 모든 자연수에 대해 각 자연수에는 그것보다 큰 자연수가 있지만, 이러한 사실이 각 자연수가 갖는 '자연수들의 공통 특징은 아닙니다. 실례로 3보다 큰 수가 있다는 사실이 3 자체의 특징은 아닙니다. 반면에 '꼬리를 갖고 있는 것'이 개들에게서 공통 특징이라고 할 때, 각 개는 실제 꼬리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들의 공통 특징들에 근거해 를 정의하는 방식으로 자연수를 정의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의 물음에 대해 고민해 보도록 만듭니다.

 

자연수라는 개념이 범주 개념이라면, 자연수들의 범위를 명확히 정의해 주는 방식이 있다. 그런데 그 정의 방식은 개나 소 등에 대한 정의 방식과는 다르다. 그 정의 방식은 어떠한 방식인가? 또 자연수들의 범위를 정의해 주는 방식이 개나 소 등에 대한 정의 방식과 다르다면, 자연수라는 개념의 형성 과정은 개나 소라는 개념의 형성 과정과는 다를 것이다. 자연수라는 개념은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 것일까?

 

여러 놀이와 수학적 표현의 구성법 및 논쟁거리들을 다룬 후, 이 작업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 물음에 대한 부분적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한 부분적 대답만으로도 소위 개념 수학’, ‘스토리텔링 수학교육이 수학에 대한 아동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해질 것입니다. 심지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존 듀이의 실험실 학교 교육 모형이 수학에 있어서만큼은 성공적일 수 없었던 이유도 밝혀질 것입니다. 더불어 일상 언어와는 다른 수학적 언어의 특수성을 부분적으로나마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수학이 자연 과학의 모든 분야에 공통된 언어라는 주장의 허구성도 밝혀질 것입니다.

 

이제 범주 개념이 갖는 두 측면, 외연(extension)’내연(intension)’에 대해 알아 볼 차례입니다. ‘외연내연이라는 서먹한 용어에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원이라는 표상을 사용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외연과 내연을 다루고, 그 둘의 특수한 관계에 대해 알아봅시다.

 

* 이어지는 원 놀이는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