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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시민의회 구성? 촛불을 깃발로 만들려는 기회주의적 발상

착한왕 이상하 2016. 12. 10. 16:41

정치적 권력과 시민 계층을 매개하겠다는 발상은 '정치 영역과 시민 계층'의 이분법을 전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의 민주제와 직접 민주제를 섞는 방안 중 하나인 시민의회와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온라인 시민의회 구성? 촛불을 깃발로 만들려는 기회주의적 발상


"방송인 김제동, 소설가 김훈·황석영,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등 각계각층 인사 128명이 7일 촛불민심을 대변할 온라인시민의회 대표단을 시민 직접추천에 의해 공개선출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이 왜 어이 없는지를 논하기 전에 해당 기사를 보자.


 http://v.media.daum.net/v/20161207151833451


이들은 직업 정치가들에 의해 가로막힌 민의를 정책에 수용하도록 하겠다는 선의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제안을 대의 민주제에 직접 민주제 요소를 섞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게 말이 되지 않는다. 호주, 스코틀랜드, 네델란드, 캐나다 등 여러 국가에서 시민 의회제를 부분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상당한 연구 기간이 걸렸다. 아무 준비 없이 유명인들 모아 사진과 이름 걸어 놓고 온라인 투표로 시민 의회를 구성하겠단다. 이러한 식으로 시민 의회를 구성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이러한 식으로 시민 의회를 구성한다면, 그 의회에서 '시민'이라는 수식어를 떼야 마땅하다. 유명인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름을 일단 걸고, 누구누구를 추천받을 테니 온라인 투표로 시민 대표로 뽑아 달란다. 이러한 발상은 시민을 개 돼지로 보는 박근혜 정권에 부합하는 것이다. 시민 의회를 구성하고 싶다면, 먼저 철저한 준비와 연구부터 하라고 권하고 싶다.


법적으로 명시된 삼권분립만 가지고는 '시민의 사회 설계 참여 자유'를 확대시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삼권분립의 법적 명시화는 시민의 사회 설계 참여 자유 확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 아직 마차가 중요 운송 도구로 기능하던 시절의 산물이다. 더욱이 삼권분립의 명시화가 삼권분립의 실질적 실현을 보증해 주지 않는다. 선거로 직업 정치가들에게 정치적 권력을 양도하고, 직업 정치가들의 권력 행사에 법적 권위를 실어 주는 방식의 대의 민주제 한계는 사방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정교유착, 정경유착 등을 통한 정치 영역의 기득권화를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여러 나라가 시민 의회제를 부분적으로 부활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 대의 민주제 틀 속에 시민 의회제를 포섭하는 작업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대의 민주제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것은 '삶의 집단적 방향성을 정하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며, 그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한 논의가 '프로페셔널한 정책'으로 거듭나야 한다. 유명인들이 모여 사이트를 만들고, 시민들에게 대표 청원과 함께 온라인 투표를 해 달란다. 더욱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추천을 받아, 마치 그가 지금 이 터무니 없는 발상에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러한 아마추어적 발상에는 자신들이 시민들을 이끌어야 가야 한다는 케케묶은 '한국형 선민주의 발상'이 도사리고 있다. 나를 따르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복이 있나니! 이런 발상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목적이 제아무리 선해도 수단에서 악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시민을 개 돼지로 본다는 점에서 현 기득권과 다르지 않다. 또한 다수가 맞물린 문제를 해결하고 다수 삶의 방향성을 정하려는 시도는 철저하게 '프로페셔널'해야 그나마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다. 지금 이 자들이 벌이고 있는 시도는 너무나 유치해서 결코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 이 자들이 '시민의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바람에 시민 의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될 까 두렵다.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황당한 시도를 하는가? 현재 대수가 개헌에 반대한다고 할 때 무조건 개헌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현 정권을 해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금의 촛불 시민 운동과 과거 이명박 정권 때 광우병 촛불 집회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광우병 촛불 집회는 실패로 끝났다. 출발은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 성격을 가졌으나, 곧 사방에서 '깃발'들이 난무했다. 그 깃발들의 내용도 지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광우병 촛불 집회 당시에는 '장수풍뎅이 연구회', '으어', '페미니즘 동우회' 이런 깃발이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 촛불 시민 운동은 현 정권 해체를 외치는 가운데 그 동안 억눌렸던 의견들이 분출되는 성격을 갖고 있다. 현 정권 해체라는 대목적 아래 소수 집단들의 의견을 내세우는 '분산적 움직임'이 평화롭게 '하나'로 규합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이것이 지금의 촛불 시민 운동의 성격이다.


95%의 여론 속에 다양한 움직임! 여러 시민단체, 정치세력이 개입되어 있지만, 이들의 역할은 법원에 집회 발의 등에 국한되어 있다. 나머지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자신들의 의견을 담은 플랭카드를 흔들면서 현 정권 해체를 외치는 것이다. 그래서 현 정권도 딱히 '어느 불순 세력에 의한 집회'라는 딱지를 이번 촛불 시민 운동에 붙일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사법부, 행정부, 직업 정치가들도 촛불 여론에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권력으로 가상의 적을 만들어 모임을 억압해 제압시킬 수 있는 '주세력'이 이 번 시민 운동에는 없었고, 이 점이 국회 탄핵 가결이라는 성과를 이끌어 낸 것이다. 사실 탄핵 가결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마도 헌재에서 탄핵은 수용될 것이다. 사냥개는 힘 없는 주인을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후사가 두려워서도 함부로 탄핵에 부결이라는 도장을 찍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지속시키려면,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 탄핵이 헌재에서 수용되더라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이러한 시점에서 온라인 시민의회 구성안을 제안하는 발상 자체가 불순하다.


다음 정권 때 개헌 논의는 필수적이다. 정말 제대로 된 시민의회 구성을 바란다면, 즉 직업 정치가들로 구성된 정부의 권한을 시민이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정치 영역에 시민의 참여를 확대시킬 수 있는 방안이 제도화되기를 바란다면, 그러한 방안이 개헌 과정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직업 정치가들로 구성된 권력과 시민들 사이를 매개하는 별도의 단체 구성이 직접 민주제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단체 구성 발상은 '정치 권력과 시민계층의 이분법'을 전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 시민의 대표가 되겠다니, 이 얼마나 어이 없는 발상인가! 차라리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면, 이해할 만하다. 이번 온라인 시민의회 구성을 제안한 자들은 다 되어 가는 밥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들 때문에, 현 상황 돌파에 불필요한 잡음이 일까 걱정된다. 이 사회가 좀 더 나아지려면, 여전히 시민을 계몽 대상으로 여기는 이러한 자들이 나댈 수 없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다시 안타까워지는 심정이다. 그러한 환경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대중매체가 없기 때문이다. JTBC? 천만에 말씀. 개인적 이유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밝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