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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단식 투쟁의 역사

착한왕 이상하 2016. 10. 1. 01:56



이재명 성남 시장에 이어 이정현 국회의원이 단식에 들어가 화제의 인물인지 비웃음의 대상인지로 떠올랐다. 두 사람의 단식 투쟁은 정말 '정치적 단식 투쟁'으로 불릴 만한가? 이러한 문제는 논외로 한다. 단지 이 글을 읽는 사람 스스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도록 허려고, 현대적 의미의 정치적 단식 투쟁의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님을 언급할 것이다.


고대에서부터 단식은 다이어트 및 종교적 제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왔다. 단식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육체적 유혹을 극복하고 블라블라 ... . 단식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주로 종교적이었다. 물론 모든 종교에서 단식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것은 아니었다. 실례로 정신적 측면 못지 않게 육체적 측면을 중요시 여긴 정통 조로아스터교에서 단식은 금기시되었다.


개인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단식을 수단으로 삼은 경우는 사방도처에서 나타났으며, 나타나고 있다. 인도의 경우 그러한 사례가 빈번하여 1861년 단식 금지법이 내려지기도 했다. 단식의 목적이 항상 다수에게 정의롭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실례로 세종대왕 때 일본 사신들이 와서 고려대장경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조선은 불교를 버리고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택했으니, 고려대장경은 조선에게는 더 이상 쓸모 없다는 것이 그들의 근거였다. 일본 왕은 산스크리티어를 모르니 한자로 새겨진 고려대장경을 달라는 것이었다. 세종은 고려대장경이 하나밖에 없어 줄 수 없다고 했다. (속으론 이걸 내 주면 또 와서 뭘 요구할 것 아니니 하면서 말이다.) 불교를 국가 경영에 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하더라도, 고려대장경은 조선 고유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없게 되자 일본 사신들은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그러한 단식 투쟁을 현대적 의미에서의 정치적 단식 투쟁이라고 할 수 없다.


현대사에서 정치적 단식 투쟁은 단순히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행위'로 규정될 수 없다. 그러한 규정은 과거에도 빈번히 발생한 단식 투쟁에 해당한다. 적군과 아군을 나누고, 적군에 마지막으로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단식 투쟁! 단식 투쟁의 이러한 규정 방식에서 '정치적 행위'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하며 끝난다. 정치 신학자 칼 슈미트가 옹호하려 했던 이러한 방식의 정치적 행위 규정은 적어도 '공화주의적 이념을 지향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하다. 즉, 그런 규정 방식에 따른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인 민주주의의 실험 역사 속에서 정치적 단식 투쟁을 규정하려 할 때, 단식은 '비종속적 자유가 깨어진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한 투쟁'이다. 다시 말해, 억압자에 맞선 피억압자의 항의 수단인 것이다. 최소한의 비종속적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이분되는 지배 구조를 평등하게 만들려 한다'는 점에서 정의로운 것이다. 이러한 현대적 의미의 정치적 단식 투쟁의 예로 일제강점기 때 옥사한 이한빈의 단식 투쟁을 들 수 있다. 그의 단식 투쟁에 대해서는 아래에 링크한 박준성의 글로 대신한다.


식민지시대 105일 단식투쟁 끝에 옥사한 ‘이한빈’ http://www.laboredu.org/node/34815


현대적 의미에서의 정치적 단식 투쟁을 논할 때, 빼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여성 참정권을 요구한 여성들, 즉 페미니즘 1세대 여성들이다. 영국의 경우, 1909년 마리온 던롭(Marion Dunlop)이 감옥에서 단식 투쟁을 벌였다. 미국의 경우, 1917년 앨리스 폴(Alice Paul)이 단식 투쟁을 벌였다. 이들의 공통된 목적은 국가의 약 50%를 차지하는 여성들도 시민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이들은 비종속적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여성들, 즉 여성들이 피억압자가 되는 세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단식 투쟁을 벌인 것이었다.


던롭과 폴의 단식 투쟁 후 약 3년이 지나 영국과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었다. 그들의 실제 단식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그 만큼 그들이 겪하게 단식 투쟁을 했기 때문이다. 정말 죽기로 각오한 단식 투쟁의 경우, 즉 물과 소금도 거부한 단식 투쟁의 경유, 투쟁자의 몰골은 단식 후 1주일만 지나도 흉칙할 정도로 변한다. 대부분 6~7주를 놋 넘기고 사망한다. 물에 각종 비타민 및 영양제를 타서 마시면서 단식을 하는 정치가들도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조금은 진보하면서 '누구나 최소한의 비종속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갖고 있음'은 법적으로 혹은 형식적으로 보장되었다. 영국과 아일랜드처럼 국가 간 관계가 지배 구조를 형성하지 않는 경우라면, 절차적으로 민주화된 국가 내에서 정치인들이 단식 투쟁을 벌이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독재 시절에는 정치적 권력이 독재자를 중심으로 특정 집단에 편중되어 있었다. 다수 피억압자를 대변하기 위한 정치가들의 단식 투쟁도 자주 발생했다. 절차적으로 민주화된 이후, 정치인들의 단식 투쟁 빈도수는 줄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치가들의 단식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누구를 대변한 단식인가? 수가 적어 의사결정이 제대로 안 된다구요? 규모 차에 의한 정당 간 갈등 및 파워게임으로 인한 단식은 현대적 의미의 정치적 단식으로 규정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적군과 아군의 구분 논리에 따른 과거의 유산일 뿐이다.


선거로 소수 직업 정치가들에게 권력이 양도되는 간접 민주주의의 경우, 직업 정치가들이 민주주의의 이상에 다가가는 데 방해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적군과 아군의 구분 논리에 기생하는 정치가들은 '정치꾼'이라 할 수 있다. 정치가를 보기 힘든 상황, 정치꾼들만 득실대는 상황, 이것은 전 세계적 추세이다. 세계화가 경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무튼 <단식 투쟁의 역사: 정치 인류학적 고찰> 이런 책도 필요한 시점이다. 구글 검색해 봤더니 국외에도 쓸만 한 것이 전무한 상태다. 학풍을 일으킨다는 것은 별개 아니다. 그것은 중요하지만 간과된 문제를 담론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안타까운 것은 '개한민국 출판 문화'이다. 페미니즘은 인류 보편성(?)을 다루지 않으니 저급하다는 인간의 세치혀와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이 땅에서는 <단식 투쟁의 역사: 정치 인류학적 고찰>과 같은 책도 자생적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국외에서 나와 소문이 나면, 번역은 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