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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폴리틱스(Biopolitics)를 왜곡한 책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착한왕 이상하 2016. 12. 23. 03:30



최근 나온 <생명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지는 않았다. 요새 나오는 책들 상당수가 논문 몇개 내용을 가독력을 높여 늘린 것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 람케의 논문 몇편 대충 훑어본사람이라면 출판사 서평만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정통 바이오폴리틱스(Biopolitics) 발달 과정을 왜곡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이 책의 출판사 소개를 보자.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 푸코에서 생명자본까지 현대 정치의 수수께끼를 밝힌다. (토마스 람케, 심성보 역, 프리즘총서 21)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8914757



우선 '바이오폴리틱스'를 '생명정치'로 번역한 것이 못마땅하다. 차라리 '생물-정치학'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는데, 바이오폴리틱스의 형성 및 발달 과정에 무지한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마치 푸코를 바이오폴리틱스의 원조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이오폴리틱스 형성 과정에 푸코가 영향을 받은 것은 맞지만, 푸코가 실제 하드코어 정치학 분야로서 바이오폴리틱스 형성에 기여한 것없다. 다만, 바이오폴리틱스가 주목을 받으면서 후기구조주의 진영의 철학자들, 비판이론 진영의 사회학자들이 대거 '바이오'라는 수식어를 사용했다. 독일 저자 람케도 그런 진영의 학자이다. 문제는 이 진영 학자들이 실제 바이오폴리틱스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학의 바이오폴리틱스는 이런 진영 담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바이오폴리틱스는 생물학의 여러 분과들과 정치학의 학제간 연구 분야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만약 바이오폴리틱스의 형성 과정에 무지한 독자가 이 책을 본다면, 그는 푸코, 데리다, 아감벤 등이 마치 바이오폴리틱스를 정착시킨 원조로 착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직관적으로 생명에 대비된 현상에 대해 함부로 '바이오'라는 수식어를 사용해 비판하려 들 것이다.  


'바이오폴리틱스'라는 용어는 기껏해야 196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바이오폴리틱스를 탄생시킨 인물들은 생물학과 정치학 영역 사방에 흝어져 있다. 이들의 기본 정신은 자연과 문화를 이분하는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한 이분법에 대비된 자연 개념을 거부하기 때문에, '새로운 자연주의(new naturalism)'이라는 상표가 바이오폴리틱스에 따라 다닌다. 이 새로운 자연주의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제 바이로폴리틱스 발달 과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실험 정치학'이라는 큰 틀 속에서 바이오폴리틱스는 진화생물학, 실험심리학, 생리학, 생태학, 동물행동학, 환경학 등이 다루는 요인들이 실제 정치 현상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관점에 기대고 있다. 각 생물학 분과들이 지향하는 존재론들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자연주의라는 것도 하나의 모습을 띨 수 없다. 다만, 생물학의 여러 분과들은 과거 실증주의적 존재론이나 환원론적 존재론에 포섭될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오폴리틱스의 새로운 자연주의는 실증주의적이거나 환원론적 존재론을 강하게 거부한다. 그렇다고 그 새로운 자연주의가 명확하게 정의될 성격을 갖지는 않는다. 바이오폴리틱스에 개입된 분과 다양성 때문이다. 아무튼 새로운 자연주의라는 관점틀 속에서 바이오폴리틱스는 가급적 정치 현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회피한다. 대신에 성적 관계, 젠더 관계의 역동성, 환경 문제, 정치문화의 지역적 차이 등 실제 정치적 문제들을 공유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 개발이 실전 바이오폴리틱스의 핵심 연구 주제가 된다.


누가 바이오폴리틱스의 기원자인가?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다. 하지만 한 명만 거론한다면, H.D. Laswell(1902-1978)을 들 수 있다. 왜냐하면 다음의 그의 작업들에서 현대적 바이오폴리틱스의 정신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국내에서 라스웰은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로 알려져 있다).


Lasswell, Harold

(1925) 'The Study of the 111 as a Method of Research into Political

Personalitie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23: 996-1001.

(1956) 'The Political System of Scienc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December): 975-85.

(1968) 'The Future of the Comparative Method', Comparative Politics 1(1): 3-18.

(1970) [1947] The Analysis of Political Behavior: An Empirical Approach, Hamden, CT:

Archon Books.


특히 1968의 논문과 1947의 책은 바이오폴리틱스 형성 과정을 논할 때 빼먹을 수 없는 작업이다. 바이오폴리틱스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책들이 번역 소개되고 있다. 문제는 실험 정치학의 정통 바이오폴리틱스가 아니라 철학자들과 비판이론 사회학 진영의 것이 무분별하게 출판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실제 바이오폴리틱스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바이오' 혹은 '생명'이라는 수식어를 복잡한 정치 현상에 붙여 진단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21세기 한국, 참 어설프다. 미국 유학 출신들은 넘쳐나는데, 실제 바이오폴리틱스 전문가는 없는 듯하다.


실험 정치학의 분야로서 바이오폴리틱스를 다룬 책을 국내에 소개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이렇다.


방법 1. 바이오폴리틱스 형성 과정에서 빼먹을 수 없는 Laswell 일대기를 번역하고, '바이오폴리틱스'라는 용어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다룬 '체계적 주해'를 다는 것이다. Laswell 일대기 중 짧은 것은 다음에서 다룬로드받아 볼 수 있다.


G.A. Almond의 Laswell 일대기(NAS) ->

http://www.nasonline.org/publications/biographical-memoirs/memoir-pdfs/lasswell-harold.pdf


방법 2. 20세기 초에 접어들어, 자연과 사회를 이분하는 관점을 비판한 선구자들이 사방도처에서 나타났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그들 중 상당수는 잊혀지고 말았다. 그들은 생물학을 정치학과 연결시켜 보려는 시도한 개척자들이었다. 60년대 바이오폴리틱스의 형성 과정을 서술하고, 역으로 바이오폴리틱스의 정신을 그런 인물들 속에서 엿볼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방법 3. 아예 바이오폴리틱스라는 분야가 형성되고 발전한 과정을 다룬 연구서를 번역하는 것이다. 덧붙여 현재 진행 중인 연구 방법론의 다양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책이면 더 좋다. 내가 아는 한, 그러한 책으로 다음을 들 수 있다.


Blank, R.H. & Hines Jr., S.M.(2001), Biology and Political Science, Routledge.

책 전체 훑어보기 -> https://www.scribd.com/document/243711457/Robert-Blank-Samuel-M-Hines-Jr-Biology-and-Po


위 책을 보면, 푸코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푸코는 바이오폴리틱스 형성 과정에 영향을 받았지, 그 형성 과정에 실제 기여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바이오폴리틱스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위 책 1장 Biology and Politics와 2장 Biopolitical Theory만 보아도 족하다.


개인적으로 강광일 등이 번역한 <분자생물학: 실험과 사유의 역사>를 높게 평가한다. 책 내용 때문이 아니다. 번역에서 가치를 논하는 것은 책 내용에 국한되지 않는다. 편향된 번역문화를 조정할 수 있는 책은 일단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강광일 등이 번역한 이 책이 나오기 전, 국내 생물학 번역서는 죄다 진화생물학 위주였다. 그것도 진화생물학의 정통 역사를 다루기보다는 진화론을 이념화시킨 도킨스류의 책들이 전부였다. 그런 책들을 본 독자들은 마치 진화생물학이 생물학의 통합 이념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더 나아가 진화론이 무신론을 증명했다 여겨 종교에 대해 함부로 진단하는 집단도 생겨났다. 당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 진화론과 차이를 보이면서도 생물학 발전에 기여가 큰 분자생물학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이 나온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이 번역된 것에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분명한 것은 이렇다. '진화론 위주의 생물학 역사 대중서에 세뇌당한 두뇌'를 독자들은 세척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바이오폴리틱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푸코를 신격화시킨 후기구조주의 및 비판 이론 진영의 책들이 과다할 정도로 너무 많이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방법 1~3 중 무엇을 택하든, 실험 정치학의 한 분과로서 바이오폴리틱스를 소개하는 책이 나와야 하는 시점이다. 자칫하면 바이오폴리틱스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채, '바이오폴리틱스는 푸코, 아감벤' 이런 소리가 사회에 떠돌아 다니게 되는 분위기가 형성될까 심히 걱정스럽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그 분위기를 비판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기현상이 발생할까 걱정된다. 마치 통섭류의 사회생물학이 한참 지나 지금 가장 중요한 담론인 것처럼 국내에서 과대포장되어 소개된 후, 나중에 이 현상을 비판한 책들이 화제가 된 경우처럼 말이다. 이러한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것은 조잡한 한국 출판 문화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리즘 총서 21이든 어느 곳이든 방법 1~3 중 하나에 따른 바이오폴리틱스 소개서를 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출판사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내 요구는 간단하다.


● 아무리 철학과 비판 이론 진영에서 푸코 등을 중심으로 한 생물-정치 담론 밥상이 지금 차려져 있더라도,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바이오폴리틱는 이미 실험 정치학의 분과로 정착했고, 그 정착 과정의 분위기에 푸코 등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이오폴리틱스의 형성 과정 역사는 길게 잡으면 20세기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바이오폴리틱스와 관련해 예상해 볼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실험정치학의 분과로서 바이오폴리틱스가 아니라 푸코를 신격화시키는 후기구조주의 및 비판 이론 진영 교수가 대선 캠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경우, 환경 및 생태 문제는 '생명'이라는 화두에 휩싸여 해결될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다. 


* 통섭류의 사회생물학이 단명한 이유

생물학과 사회학을 연관시켜 보려는 시도는 이미 19세기 말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런데 생물학에는 온갖 분과들이 있다. 그 분과들은 연구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이며, 분과들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존재론들도 서로 다르다. 이 때문에 특정 분과를 중심으로 다른 분과들을 통합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바이오폴리틱스의 새로운 자연주의 역시 그러한 발상을 강하게 거부한다. 통섭류의 사회생물학은 두 가지 오류를 갖고 있었다. 첫 번째는 진화생물학으로 생물 현상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는 오류, 두 번째는 사회현상마저도 진화생물학으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는 오류이다. 여기에 대해 통섭류의 사회생물학이 마치 사회 현상의 자연적 제약 조건을 찾는 최초 혹은 새로운 시도처럼 과대포장되었다. 또한 그 사회생물학에서 말하는 통섭 개념도 윌슨이 주장하는 것처럼 휴월의 것이 아니다. 윌슨 자신의 짜맞추기 식 정체불명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통섭류의 사회생물학 열풍 덕에 생물학과 사회학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정통 사회생물학은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때 통섭이 대유행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웃긴 것은 이렇다. 통섭류의 사회생물학의 불꽃이 미국에서 식을 무렵, 출판계와 학계의 특정 인물이 그것을 국내에 가져다 대유행시켰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내에서도 그 불꽃은 이미 꺼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