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Academic Info.

베르그송-들뢰즈-가타리에 숨겨진 신비 종교 전통

착한왕 이상하 2017. 1. 10. 02:23

국내 인문학 번역 책들을 보면 지나칠 정도로 중복과 편향이 심한데, 그 사례 중 하나는 포스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 해체주의 계열 책들이다. 포스트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 해체주의 등은 주로 프랑스 철학자들과 연관되어 있는데 사실은 미국에서 가공된 것들이다. 아무튼 이 계통에서는 근대의 계획을 개인 중심으로 설정하고 실패작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간주하는 것은 제 1차,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한때 유행한 것이다. 현실 초월성을 배제한 개인주의는 잘못되었다는 야스퍼스의 입장부터, 개인보다 관계 및 과정을 중시하는 입장 등 여러 입장이 근대를 대체할 것처럼 난립했다.

 

사회적 결속력이 세속화 과정과 함께 약해진 상황을 빌미로 '방황하는 자아', '흔들리는 자아', '타자를 전제한 주관성', '주관성과 객관성의 이분법 해체', '상호주관적 주관성' 등의 요상한 개념을 유행시킨 장본인들로 레비나스, 하이데거, 이리가레, 가타리, 들뢰즈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철학이 과연 이 땅의 현실 문제 진단에 얼마나 유의미할까? 나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들의 요상한 개념에 함축된 핵심, 즉 관계 의존적인 개인이라는 것은 그들의 철학과 무관하게 일상경험만으로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들의 철학은 이 땅에서도 일군의 광신도를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이 땅의 상당수 다수는 이들의 입장과 달리 개인주의라는 것에 여전히 매료되어 있다.

 

 레비나스, 하이데거, 이리가레, 가타리, 들뢰즈 등의 철학은 근대의 계획을 실패로 간주하고 사회적 결속력 붕괴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하는 서양 특유의 지적 분위기를 이어받은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을 지배한 그 분위기 말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상호주관적 주관성'과 같은 요상한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관계에 의존적인 개인이라 해도 무방한 것을 '상호주관적 주관성'이라니? 아무튼 서양의 그러한 지적 분위기와 달리, 이 땅은 과거 신분제와 맞물린 사회적 결속력이 약화될 조짐만 보였을 뿐 유연해 지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한 기능 방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개인주의'라는 용어에 호감을 갖는다. 그것이 무엇으로 어떻게 규정되든 상관없이 말이다. 동서의 이러한 지적 분위기의 차이는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세속화 '저기'와 '여기': 무종교인의 관점> 제 9장~12장, 제 18장에도 약간은 반영되어 있다. 

 

아무튼 레비나스, 하이데거, 이리가레, 가타리, 들뢰즈 등의 글에서 느껴지는 사고방식은 지나치게 종교적이다. 레비나스의 글에서는 고대 유대교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하이데거의 경우, 그의 요상한 인공적 용어들 다수가 신학적 해석 전통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리가레는 <To be Two>에서 상호주관적 주관성이나 근본적 젠더 관계 개념 등을 힌두교와 관련시킨다. 인간의 육체를 신비체(subltle body), 즉 오감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여러 의식-기관들의 유기적 결합체로 여기는 관점도 이들 글 속에 도사리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경우, 아예 물리적 형태에서 해방된 주관성이라는 것도 설명해 내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나스, 하이데거, 이리가레와 달리 들뢰즈 가타리의 철학은 종교성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여기는 것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기대고 있는 베르그송의 사고방식만 추적해 보아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베르그송의 철학 상당 부분은 고대 신비종교, 신비교(occultism), 신지학(theosophy) 전통의 철학적 각색 성격을 갖고 있다. 이를 알기 위해 시간과 존재에 대한 베르그송의 사변을 굳이 알 필요는 없다. 개체보다는 관계 및 과정 존재론이 그의 사변에 깔려 있다는 정도만 알면 된다.

 

베르그송을 대표하는 개념 중 하나는 엘랑 비탈, 즉 생기이다. 대중서를 보면 그의 생기 개념을 드리쉬 등의 생물학자들이 한때 차용한 생기 개념과 연관시킨다. 하지만 베르그송의 생기 개념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Andre Lalande의 사상이다. 그의 사상에는 고대 유대교 신비주의나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주의가 배어 있다. 베르그송은 당시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으로 관계 중심의 존재론이 인도의 힌두교에도 강하게 나타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 신플라톤주의와 대비시켜 힌두교의 세계 이해 방식을 그저 운명론으로 간주하고 낡은 것이라고 선언했다. 기독교 신비주의를 더 우월한 것으로 여기고 싶은 베르그송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베르그송의 여동생 미나는 영국 오컬트 집단의 리더와 결혼했다. 베르그송 자신은 그 집단과 거리를 두었지만, 그 집단의 신지학 사상은 은연중에 베르그송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런 영향 때문에 베르그송은 도덕적 기원을 '신화적 요소를 생성할 수 있는 종교성'에서 찾는다. 이 점은 그의 <Two Sources of Morality and Religion>에서 엿볼 수 있다. 베르그송의 생기 개념을 라마르크와 연관시키는 논문은 지금도 나오고 있지만, 그 둘을 관계를 그렇게 단순하게 여길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세속화 '저기'와 '여기': 무종교인의 관점> 제 6장을 보라.

 

들뢰즈, 가타리는 베르그송의 사고방식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베르그송의 철학에 숨겨진 신비 종교 전통도 그들에게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들어 이를 보여 주는 논문들이 나오고 있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정리되지 않는 잡설 중 일부를 뒷받침해 줄 문헌들은 많다.

 

베르그송의 철학, 그의 철학에 숨겨진 종교성, 당시 그의 철학에 대한 지적 반응을 알려면 반드시 다음 책을 보아야 한다.

 

Grogin, R.C.(1988), The Bergsonian Controversy in France 1900–1914University of Calgary.

 

베르그송의 주장과 달리,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 신플라톤주의 신비주의는 힌두교에도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이를 보여 주는 연구서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Faivre, A.(1994), Access to Western Esotericism,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신지학 전통의 신학자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사고방식을 들여다 보면, 가타리나 들뢰즈 사고방식과 비슷한 것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신지학은 직간접적으로 베르그송에게 영향을 미쳤고, 베르그송은 가타리와 들뢰즈에게 영향을 미쳤다.

 

Hessayon, A. & Apetrei, S.(2013), An Introduction to Jacob Boehme: Four Centuries of Thought and Reception, Routledge.

 

베르그송, 가타리. 들뢰즈를 공부하고 떠드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 숨겨진 사고방식, 그리고 그 사고방식을 생성시킨 지적 배경은 알고 서로 논했으면 한다. '에소테락', '오컬트', 이런 표현은 근대 이후 신비 종교 전통을 낡은 것으로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서양 지성사에서 신비 종교 전통의 영향력은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영향력을 베르그송, 가타리, 들뢰즈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더욱이 그들의 입장이 이 땅의 현실 문제 진단에 아무것도 시사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도대체 그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개인적으로 알 수 없다. 그들의 서사 구조에 빠져 추종하는 집단은 있지만 말이다. 다만 그 구조에 숨겨진 그들의 사고방식, 그리고 그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 지적 배경 등은 알고 추종했으면 한다.

 

하이데거, 레비나스, 가타리, 이리가레, 들뢰즈, 데리다 등과 관련해 최근 이런 책도 나왔다.

 

Johnston, J.(2014), Angels of Desire: Esoteric Bodies, Aesthetics and Ethics, Routledge.

 

위 책은 언급한 인물들의 철학, 기독교 신비주의, 힌두교 모두 신비체(subtle body) 개념에 기대어 상호 평가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신비체라 ... 그래서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