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경제와 윤리 (윤곽)

착한왕 이상하 2017. 2. 4. 04:31

 

* 다음은 <경제와 윤리> 기획이다. 이 기획을 실행에 옮겨 <경제와 윤리>라는 책을 쓸 생각은 없다. 다만 다음 기획안을 15장 정도로 확장시킨 것은 다른 원고의 부록으로 사용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비판의 도마에 오르면서 경제와 윤리의 관계가 주목받게 되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신고전주의 경제학(1870~1914)의 출현 이후, 경제 이론을 엄밀한 기술적 의미의 예측 가능성을 갖춘 지식체계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알프레드 마셜(A. Marshall)을 논외로 한다면,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탄생시킨 인물들은 리카르도(D. Ricardo)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경제학에서 벗어났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학을 예측성을 갖춘 학문으로 정초시키려는 입장은 리카르도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을 관통하는 것이다. 다만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한계 효용(marginal utility)을 다룰 수 있는 변수들을 함축한 수학적 모형들을 만들어 낼 만큼 확장적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한 수학적 모형들은 무조건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조건들 아래에서만 성립한다. 과학에서 그러한 모형들은 반복적인 관찰 및 실험을 통해 검증 혹은 반증 가능하지만, 경제학의 모형들은 그렇지 않다. 경제학의 그러한 모형들은 정책 및 제도를 통해서만 적용되며, 또 그 적용에서 암묵적인 사회적 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 발라(L. Walras)의 균형 이론을 계승한 파레토(V. Pareto)파레토 개선 가능성일 것이다. 파레토 개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실현된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는 분명히 더 낫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이 때문에 그가 현대적 후생 윤리학(welfare economics)’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것이다. 물론 파레토 효율 가능성은 빈부 차이, 개인의 복지 등과 관련된 사회의 다면적 질서를 다루기에는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와 무관하게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엄격한 기술적 의미에서 강한 예측성을 지향하는 경제 이론도 제도 및 정책을 통해서만 적용 가능하며, 그러한 적용 가능성은 집단적 측면에서의 윤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과 상호작용하는 윤리는 개인 차원의 윤리가 아니다. , 개인의 특정 선택 및 행위가 선한지를 따지는 윤리가 아니다. 경제학과 상호작용하는 윤리는 집단 차원에서 삶의 질, 가치 체계들의 분포 방식, 효과적인 제도 및 정책 개발 등을 다루는 윤리이다. 경제학과 윤리의 상호작용을 잘 보여주는 것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 역사이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미묘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크게 세 가지 핵심 전제에 기대고 있다. 첫 번째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낙관적 관점이다. 그 관점에 따르면, 합리적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은 자연스럽게 복지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제적 합리성을 오로지 자기 이익 극대화에 국한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개인의 복지를 선호 충족(preference satisfaction)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 전제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이상화된 수학적 모형을 만들어 낼 정도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제도 및 정책을 통한 적용 과정에서 그러한 모형의 한계를 드러내도록 만드는 요인들이기도 하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첫 번째 핵심 전제는 정치·경제학자들의 줄기찬 비판 대상이 되었다. 사회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케인즈(J.M. Keynes)가 비판에 동참했다. 여기에는 산업혁명 이후 자유주의가 고전적 방식에서 벗어나 확대되는 과정도 한몫을 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는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고전주의 경제학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밀(J.S. Mill)의 입장일 것이다. 밀은 종종 전형적인 고전적 자유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실상은 다르다. 그는 자유주의 틀 내에서 자유와 평등이 공조 가능하다고 여겨 사회주의 사상 일부도 흡수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핵심 전제는 합리성을 좀 더 실제 인간의 선택 및 행동과 연관시켜 연구한 인물들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실례로 카네만(D. Kahneman), 애로우(K. Arrow), (A. Sen), 마골리스(H. Margolis)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합리성의 맥락 의존성과 다측면, 그리고 개인과 집단 사이에 나타나는 간극 등에 주목했다. 죄수의 딜레마, 외부성과 관련된 인센티브의 문제, 새뮤얼슨의 드러난 선호 방식의 분석적 한계, 선호 방식의 무모순성과 일관성 문제 등은 이들의 작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또 한편 사이먼(H. Simon), 사전트(T.S. Sargent) 등의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은 현실 세계 속의 합리성의 실제적 양상을 보여 주는 동시에 집단 차원의 규범 및 규약이 직관처럼 개인의 행동 패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열어 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핵심 전제는 개인의 능력 발휘를 삶의 질과 연관시켜 보려는 현대적 복지 이론 및 행복 경제학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어떤 사회적, 환경적 제약으로 AB보다 선호하고, 이러한 선호 방식이 만족된 상태를 무조건 행복과 일치시킬 수는 없다. , 선호 방식의 생성과 무관하게 선호 방식의 충족만 가지고 행복을 논할 수는 없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비판 역사는 경제학에 실험이라는 날개 하나를 달아준 셈이다. 그 역사를 가지고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비록 이상적인 특정 조건들 아래에서만 성립하지만 예측 및 분석 도구로 활용 가능한 수학적 모형 개발은 경제학에서 필수적이다. 다만 그러한 조건들을 무시한 무분별한 제도 및 정책이 문제인 것이다. 모형의 다양성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는 경우 결코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망각할 때, 경제와 윤리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규정 방식에 유혹당하게 된다. 일부 철학자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러한 규정 방식에 따르면, 윤리학은 당위적 가치들을 설정하며 경제학은 그런 가치 실현을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경제가 윤리와 관계를 맺을 때, 그 윤리는 개인 차원의 선함과 행위의 당위성을 다루는 것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제한 속에서만 그 둘은 관계를 맺고, 이로부터 개인 차원의 윤리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윤리는 경제와 윤리의 관계를 다룰 때 핵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집단 차원에서 윤리는 단 하나의 가치 체계가 아니라 다수의 가치 체계와 연관된다. 동일 항목의 가치들에 대해서도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식도 동질화될 수 없다. 또한 경제적 기반의 변화는 역으로 가치 체계의 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미덕 중 하나는 합리성을 도덕보다는 심리적 차원에 귀속시킨 것이며, 이로 인해 다양한 심리적 요인들을 함수적으로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삶의 질, 능력 등도 변수로 취급하여 양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현대 경제학의 일반적 흐름에 속한다. 경제학이 함수적으로 다루는 가치가 오로지 비용 대 이득의 효용 계산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생각은 현대 경제학의 발달 과정에서 벗어난 것이다. 경제와 윤리의 관계는 결코 윤리경제의 일방향성일 수 없다. 그것은 쌍방향성의 상호작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가치 체계들의 역동성 속에서 더 이상 수용될 수 없는 것은 문제로 설정되어야 하며, 여기에 윤리적 담론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집단의 가치문제는 오로지 윤리학의 영역에 속하며, 경제학은 오로지 가치 실현의 수단만을 다룬다는 사고방식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또 통용되어서도 안 된다.

 

현대 간접 민주제를 채택한 사회에서 경제와 윤리의 상호작용은 주로 정부와 시장의 관계 논쟁에 귀속되어 있다. 정부와 시장의 균형 관계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와 윤리의 상호작용이 오로지 정부와 시장의 관계 논쟁에 귀속되는 경우, 경제학의 모형들은 현 방식의 제도 및 정책 과정에서 누락되기 십상이다. 자칫하면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여부 논쟁 속에서 경제와 윤리의 상호작용은 드러날 수 없게 된다. 경제와 윤리의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문제들을 선별하고, 그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공론장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 여부를 둘러싼 찬반론만 계속 진행될 여지가 크다. 사회의 질적 개선은 그러한 찬반론으로만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소위 효과적 정책이란 그저 정부의 규모 크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정치가들이 현대 경제학 이론들의 세밀한 부분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사회의 복잡한 문제는 전문 영역의 상호 거래 관계망에 근거해 해결 가능한데, ‘정부와 시장의 이원적 구도로는 그러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계를 보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경제와 윤리의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공론장 기능을 할 수 있는 별도의 독립적인 경제윤리평가기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한 기관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 역시 경제와 윤리의 관계를 다룰 때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가상의 목차.

 

1. 경제학과 자연과학

- 기술성과 규범성

- 경제학 이론과 자연과학 이론의 유사성과 차이성

- 기술성과 규범성의 이원화 구도에 종속되지 않는 사용 맥락

 

2. 고전주의 경제학의 형성

- 행위 반경: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구분

- 아담 스미스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 공리주의의 정확한 이해

- 고전주의 경제학 형성 과정과 당시 시대적 환경 변화 추세 진단

 

3. 신고전주의 경제학과 그 세 가지 핵심 전제들

- 신고전주의 경제학 형성에 기여한 인물들

- 일반 특징들

- 세 가지 핵심 전제들

 

4. 고전적 자유주의 비판

-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관적 입장과 비관적 입장

- 자유 개념의 다측면

-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정치적 실험들

- 사회주의 및 마르크스주의

- 케인즈 경제학

 

5. 합리성 비판

- 합리성의 맥락 의존성

- 개인과 집단

- 무임승차의 딜레마, 외부성과 인센티브를 둘러싼 논쟁

- 애로우의 ()가능성 정리

- 제한적 합리성과 경제학

 

6. 선호 방식 충족과 복지를 일치시키는 관점 비판

- 행복의 역설을 둘러싼 논쟁

- 욕구 충족 이론

- 능력과 행복

- 복지 측정 방법

 

7. 경제와 윤리의 상호작용

- 문제들

- 일방향성 규정 방식의 오류

- 정부와 시장

- 공론장으로서의 정치 영역 활성화

- 경제윤리평가기관의 필요성

- 더 나은 사회를 위해

 

 

 

* 덧글

한 번 '경제윤리'로 검색하여 국내에 어떤 책들이 나왔는지 살펴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좀 못마땅하다. 몇몇 일본 사람들의 책들이 번역되어 시중에 팔리고 있다. 그 목차나 구성방식을 살펴보면, 경제와 윤리에 대한 아마트야 센의 관점마저도 수용하지 않은 내용의 책들이었다. 심지어 나눔경제가 경제와 윤리를 대표하는 것처럼 고장된 책들도 있더라. 국외 도서 중에는 잘 나아가다, 깊은 의미의 deep ethics를 강조하는 교재도 있었다. 이러한 책들은 경제와 윤리의 상호작용 역사를 무시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의 책이지만, 경제와 윤리 교재로는 차라리 다음의 책이 낫다.

Dutt, A., Wilber, C.(2010), Economics and Ethics: An Introduction, Palgrave Macmillan.

 

합리성을 다룬 책으로는 다음 마골리스의 것을 강추한다.

 

Margolis, H.(1982), Selfishness, Altruism, and Rationality, University of Chic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