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천사화 계획
1.
우주를 하나의 시장터에 비유할 때 지구의 가치는 싸구려 품목에 속했다. 지구는 신성을 상징하는 천체에 속하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인간은 다른 괴물들과 함께 지구에 살게 된 존재로 여겨졌다. 다른 괴물들과 마찬가지로 신성에서 멀리 떨어진 존재인 인간에게 천상은 신을 숭배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외계에서 지구는 어떻게 보일까? 이러한 질문은 중세 유명론자(nominalist)들에 의해 던져졌다. 아직 항성과 행성의 명확한 구분이 불가능했던 시절, 만약 외계에서 바라본 지구가 빛을 발하며 주기적 원운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지구 또한 천문학의 탐구 대상이 되어야 한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지구를 천문학의 탐구 대상으로 만든 사건이었다. 지구 또한 항성들과 함께 신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천체에 속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 물음에 대한 16세기의 세 반응은 다음과 같다.
• 회의론: 대다수 인본주의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을 실용적 측면에서만 평가했다. 자연의 역사보다는 인간의 역사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여긴 인본주의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이 천체의 실제 구조를 반영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 진보론: 천체는 더 이상 신을 숭배하는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탐구 영역에 속한다. 자연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자연 또한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만 한다. 우주라는 시장에서 지구의 값어치는 상승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인간도 천상을 바라보며 신을 숭배해야만 하는 지위에서 격상될 필요가 있다.
• 종말론: 신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괴물로 가득 찬 곳으로 여겨졌던 지구가 천체의 일원이라면, 인간사에 해당하는 종말 또한 천체 전체에 걸쳐 해당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구가 천체의 일원인 한, 천체는 신에 의해 탄생된 이후 점점 쇠퇴하고 있다. 교황은 악마 루시퍼의 화신이며, 교황청의 부패는 전우주적 종말을 예고한다. 이러한 관점은 루터를 비롯한 개신교 세력에 의해 주장되었다.
진보론을 옹호하는 코페르니쿠스와 베이컨의 후예들은 종교 개혁기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전략을 택했을까? 바로 ‘인간의 천사화’ 계획이다. 인간은 더 이상 천체를 바라보며 신을 찬양하는 지상의 괴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자연과 도덕뿐만 아니라 인간 역사에 대한 확실한 지식 체계는 인류의 목표가 되어야 했다. 우주가 신 자신 아닌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간 중심 사상은 ‘인간의 천사화’ 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조건과 같다. 천사화된 인간이 추구하는 확실한 지식 체계는 그 어떤 상황의 맥락과도 무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인간의 합리적 능력은 상황에 합당함을 추구하는 일상적 합리성을 초월한 어떤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어떤 것으로서 충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성’, 그리고 보편적 원리들에 근거한 여러 ‘인간 본성론’이 가정되었다.
2.
인간의 천사화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철학적 입장들이 나타났다. 어떤 이는 경험을 초월한 상태에서만 자연에 대한 확실한 지식 체계가 건설 가능하다고 여겼으며, 또 다른 이는 경험을 주어진 자료로만 여기되 이성 없이는 ‘경험 이전의 자연’ 혹은 ‘자연의 객관적 측면’을 가정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이러한 합리론과 경험론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경험을 가능케 하는 구성 원리를 찾고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그 원리의 보편성을 구제하려는 이도 있었다. 인간 본성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어떤 이는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힘, 곧 자유 의지를 보편적 원리로 삼았으며, 또 다른 이는 고통을 피하려는 성향이나 선택의 자유 및 사회 계약의 필요성을 보편적 원리로 삼아 행위의 정당화 체계를 건설하려고 했다. 이러한 여러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천사화 계획은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 인간 중심 사상: 신은 인간을 위해 자연을 창조했기 때문에, 자연은 인간에게 탐구 대상이자 이용 대상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연 속에 담긴 신의 설계도를 읽어낼 수 있으며,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기계를 만들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 모든 상황을 초월한 지식 체계만이 학문적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다. 확실한 지식 체계는 불변의 원리에 근거한 예측성을 함축할 수 있어야 한다.
• 자율적 인간상: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 속에서 인간 중심 사상은 ‘자율적 인간상’을 창출해낼 수밖에 없었다. 신이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 한, 인간은 태초부터 스스로 선택하고 주변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는 존재로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구원은 신이 인간사에 개입한다는 증표와 같은 기적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는다. 구원은 단지 신의 뜻에 따른 삶이 사후에 받게 될 보상에 국한된다.
‘선민사상의 계몽주의적 탈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 위해 먼저 지적할 것이 있다. 인간의 천사화 계획에 의해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에 대한 회의론은 극복될 수 있었지만, 종말론은 극복되지 않았다. 인간의 천사화 계획은 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했고, 이에 의해 탄생한 것이 17세기 이신론(deism)이다. 이신론은 종말론과 양립하기 힘들다. 이신론에 따르면, 신은 인간을 위해 우주를 창조한 후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우주는 안정적이어야 한다. 신은 사후의 심판자로 등장하되 인간을 위해 안정된 우주를 설계한 존재이며, 오로지 인간만이 그 설계 방식을 읽어낼 수 있다. 신의 설계도, 곧 보편적인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우주 개념은 종말을 향해 쇠퇴 중인 종말론의 우주 개념과 양립하기 힘들다.
그러나 종말론은 교황의 권력에서 해방을 원하는 각 지역 군주에게는 매우 유혹적인 선동 장치였다. 종말론을 객관적으로 정당화해보려는 루터의 의도와 무관하게, 종말론만큼이나 교황에 대항하여 집단을 규합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도 없었다. 종교 개혁기의 개신교 세력은 교황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교회 체제에 대항했다는 점에서는 진보적이었을지 몰라도, 그들의 종말론까지도 진보적인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천사화 계획과 함께 구체화된 이신론은 종말론과 어울릴 수 없었고, 결국 그 둘의 갈등은 정치적 화해 대상이 되었다. ‘이성과 신앙의 분리’는 그러한 갈등을 해소해주는 하나의 시대적 방편이었다.
자연의 질서에 대한 탐구는 이성의 영역에, 그리고 자연의 질서에 담긴 목적과 사후 구원은 신앙의 영역에 속한다는 ‘이성과 신앙의 분리’ 관점 속에서 과학과 종교는 정치적으로 공존할 수 있었다. 이신론을 대표한 로크가 천부 인권설에 근거해 개인의 권리를 옹호했던 17세기, 과학은 여전히 종교의 제어 대상이었다. 과학은 종교적 권위를 넘어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천사화 계획에 담긴 ‘자율적 인간상’이 극대화되면서, 모든 권위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신앙이 이성에 근거해 정당화될 수는 없을지라도, 은유로 꽉 찬 성서는 여타의 공인된 학문과 양립할 수 있게끔 재해석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시대적 분위기는 19세기 유럽의 세속화 여정의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무신론을 둘러싼 논쟁은 18세기 말의 계몽주의와 19세기의 세속화 여정을 연결해주는 징검다리와 같으며, 그 논쟁은 절대 권력에 대항한 시민 계급의 항쟁사와 맞물려 있다.
3.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 근거한 선택을 짓누를 수 있는 그 어떤 권위도 용납될 수 없다. 이러한 상투적인 문구는 계몽주의가 마치 다양한 문화를 가로질러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한 착각은 그 어떤 시대정신도 당시의 시대적 조류에 중립적일 수 없다는 점을 망각할 때 발생한다. 유럽이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 역사의 중심축으로 등장한 시기는 18세기 중엽 이후이며, 계몽주의는 유럽 중심 사관과 그 행보를 같이 했던 시대정신이었다. ‘계몽된 인간’은 당시 유럽의 지성인들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모든 유럽인들은 잠재적으로 계몽될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유럽에 대비된 타자들은 그저 관용의 대상이거나 유럽인들에 의해 계몽되어야 될 대상으로 여겨졌다. 유럽이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의 중심축으로 등장하면서, 계몽주의는 유럽 중심 사관을 근거로 인종주의와 결합되었던 것이다. 도덕 불과오설과 도덕 간섭주의로 구성된 콜럼부스 시절의 도덕 제국주의는 이러한 계몽주의의 확대와 함께 인종에 따른 문명권의 위계질서를 함축한 ‘백색 도덕 제국주의’로 변모했다.
• 인종주의: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지만, 인종 유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백인, 황인, 니그로, 곧 흑인이라는 인종 유형에 해당하는 씨앗이 있었다. 환경에 의해 각 씨앗에 담긴 인종 유형의 본성은 왜곡될지라도, ‘백인의 문명’라는 것은 유럽 지역을 관통한다.
• 유럽 중심 사관: 백인의 문명에 속하는 지성인이야 말로 계몽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어떤 권위에도 대항하여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한다. 백인은 잠재적으로 그러한 이들이 될 수 있지만, 황인이나 니그로는 아니다. 보편적 인권이 전 인류에게 해당할지라도, 인권에 근거한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발견한 문명은 오로지 백인의 문명이다.
• 간섭주의: 황인과 니그로는 유럽인에게 관용의 대상이거나 선도의 대상이다. 문명 비교의 기준이 ‘백인’인 만큼, 백인은 백인의 문명에 속하지 않은 집단의 역사에 개입할 수 있다.
무신론자 진영도 인종주의, 유럽중심사관, 간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정도로 백색 도덕 제국주의는 18세기 말 이후 유럽의 시대적 분위기를 대표한다. 우주의 생산성에 관심을 가졌던 낭만주의 계보의 지성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우주의 생산성을 조각상의 생동감에 유비시킴으로써 이성의 반대편으로 여겨졌던 심미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들의 신 개념은 우주에 내재한 생산성의 힘, 곧 생성력의 원천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이신론과는 다르다. 하지만 낭만주의 계보의 지성인들 역시 유럽 중심 사관과 인종 유형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의 조각상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힘줄과 같은 것에서 우주의 생성력을 엿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단순미를 갖춘 아프리카의 조각상이나, 풍자적이며 추상적인 형태를 띤 중국의 조각상은 그리스의 것에 비해 열등한 것이었다.
4.
선민사상의 계몽주의적 탈색으로서 백색 도덕 제국주의가 두 번째 유럽을 상징한다는 주장에 못마땅해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보편적 인권에 근거한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기독교의 생산물로만 여기는 개신교의 목사가 그러한 이들 중 하나라면, 이것은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이들이 그저 철학자의 몇몇 문구를 근거로 백색 도덕 제국주의가 18세기 말 이후 유럽을 지배한 시대적 분위기였다는 주장에 못마땅해 한다면, 그는 그러한 문구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백색 도덕 제국주의가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있지 않았다면, 계몽주의의 흐름이 식민지 팽창주의로 연결된 과정은 그저 우연에 불과해야만 한다. 또 ‘백색’이라는 것이 이 땅에서 사고와 행위의 규범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특정 철학자에 대한 동경심 속에 묻혀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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