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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왜 생물학에는 10대 천재가 없었는가? 젖은 과학(Wet Science)

착한왕 이상하 2019. 8. 30. 14:53

 

 

공부의 신?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이 사람이 좃국의 딸 병리학 논문 제 1저자 허위 기재 사건을 놓고 그를 옹호하려고 폰노이만을 거론했다는군요. 서울대 교수 우종학만큼이나 과학의 분과 다양성을 모르는 친구입니다. 한 번 이런 질문을 각자 스스로에게 해보세요.

 

수학사를 보면 10대 때 천재성을 발휘한 인물들이 있다. 그런데 다른 분야는 아니다. 특히 화학과 생물학이 그렇다. 대중의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린 화학은 이번 사건과 직접적 연관성을 갖고 있지 않으니, 화학은 고려하지 않는다. 생리학, 병리학, 진화론. 분자생물학 등의 역사를 살펴보면, 10대 때 해당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인물이 아예 없다. 왜 그럴까?

 

과학이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월러스나 다윈을 보세요. 진화론이라는 게 순간 번쩍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건설 가능한 이론인지? 다른 얘기 다 접고, 이번 논란의 중심이 된 좃국 딸 병리학회지 논문 초록을 보면, '유전형분석(genotyping)'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알 필요도 없고, 또 분자생물학자가 아닌 제가 정확히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냥 염색체, 유전자 집단, 뭐 이런 것 조사를 통해 개체나 병원체의 유전적 특성을 밝히는 작업 정도로 이해합시다. 그 작업이 뭐 방정식 풀듯이 이루어집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주 극명하게 상징하려고, 그 작업을 일종의 '노가다 작업'에 비교합시다. '노가다'를 나쁜 의미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 명심하십시요. 여기서는 그냥 육체 노동을 필요로 하며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작업을 뜻합니다. 그러한 작업이 진행되는 실험실은 컴퓨터만 만지작 거리는 실험실과 환경 및 분위기 측면에서 동일할까요? 다를까요?

 

당연히 다릅니다. 유전형분석처럼 각종 실험 도구를 이용해 샘플 채취하고 조작하는 실험 기반의 과학을 통상 '젖은 과학(wet science)'라고 합니다. 반면에 컴퓨터 기반의 과학, 실례로 컴퓨테이셔널 사이언스를 '마른 과학(dry science)'라고 합니다. 분자생물학의 경우, 데이터 분석에 근거해 가설을 테스트하는 작업이 마른 과학을 대표합니다. 분자생물학의 논문을 쓰려면, 젖은 과학을 담당하는 진영과 마른 과학을 담당하는 진영의 협동이 필요합니다. 양 진영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특출난 인물도 있어요. 이렇다 보니, 분자생물학 연구에서 젖은 과학 진영과 마른 과학 진영 사이의 갈등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각자 담당하는 영역의 특성이 달라서 그래요. 젖은 과학과 마른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의 과학교육 논문을 참조하세요.

 

How do you like your science, wet or dry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5459257/

 

위 논문을 굳이 읽고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습니다.

 

이번 사건 관련 병리학 논문 초록을 보면, 해당 연구는 주로 젖은 과학에 의존하고 있다.

 

젖은 과학에서는 10대 천재가 나오기 힘듭니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분자생물학의 여러 개념들을 익히는 과정은 수학이나 이론물리학의 그것과 다릅니다. 실험을 하면서 개념을 익히는 것이 이상적인데, 생물학은 수학이나 물리학보다 (그냥 쉽게 단순화시키면) 각종 실험적 기예 혹은 기법과 관련된 개념들이 많습니다. 더욱이 그런 기예 혹은 기법을 익히는 것은 실험실 내에서 동료, 선생 등과의 관계에 의존적이고, 실험실만의 노하우도 무시할 수 없어요. '아, 젖은 과학은 그냥 머리 좋다고 잘 하는 게 아니구나!'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번 사건 논문 초록에 등장하는 개념들 익히는 데만 상당한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그냥 책을 통해 습득할 수 없는 개념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천재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인슈타인도 단기간에 그런 개념들 습득할 수 없습니다.

 

젖은 과학에서 10대 천재가 나오기 힘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현행 과학교육의 행태입니다. 통합 과학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거창한 우주론부터 시작해 상대성 블라블라로 이어지는 현행 교과서 중심의 우리나라 과학교육은 개판 중의 개판입니다. 차라리 이렇게 해야죠. '동식물분류->세포관찰->현미경의 구조->광학->렌즈 ...', 이런 식의 흐름말이죠. 더욱이 중고등학교 실험실은 사실상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과학을 둘러싼 대중 문화, 특히 출판문화가 개판이다 보니, 사람들은 과학하면 수학을 우선적으로 머리에 떠올립니다. 수학 중심의 과학사로 가야, 책 팔아먹기 쉽습니다. 천재들 중심의 (엉터리) 과학사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쉽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는 어떠냐? 미국, 영국, 독일 과학교육, 우리보다 낫기는 하지만 제 눈에는 개차반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럴 수는 있어요. 저에게 10살 먹은 아들 한 명이 있다고합시다. GK2라고 합시다. GK2는 생물학에 관심이 많고, 제 눈에도 자질이 보여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학교에 다니지 않고 별도의 선생들 밑에서 분자생물학 트레이닝을 받게 됩니다. 다행히 제가 100억대 부자라고 합시다(그러면 얼마나 좋겠느냐 말이지, 100억이면 난 이 나라 바꿀 수 있다). 제가 약 2억 투자해서 아들놈 위해 분자생물학 실험실도 별도로 만들어주었어요. 과연 GK2는 17세 때 네이쳐에 논문을 낼 수 있을까? 어렵습니다. 분자생물학에서 마른 과학보다는 젖은 과학 작업을 하는 분들은 그 이유를 잘 아실 겁니다.

 

좃국 딸에게는 미안합니다. 멍청한 아버지로 인해 심적 고통이 클 겁니다. 하지만 고통은 사회적 담론에서 특정 누구 혹은 집단 중심으로 평가될 수 없음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제 생물학자분들 중에서 누군가는 나서서 신문 등에 기고를 해야 합니다. 이 글은 누군가 나서서 그런 기고를 하라는 독려의 차원에서 휘갈겨 남기는 겁니다. 대중이 과학의 분과 다양성을 모르다보니, 여야 정치사기꾼들의 술수, 진보를 가장한 사이비들의 말에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