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과 시오니즘
* 다음 역사의 글을 읽고 아인슈타인에 대한 역사가의 평가를 반박해 보자. 이를 위해서는 그 평가가 무엇에 관한 것이고, 또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가: 아인슈타인은 정말 코즈모폴리턴이거나 평화주의자였을까? 만약 그가 코즈모폴리턴이었다면 시오니즘 운동에 동조하지 말았어야 했다. 만약 그가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면 역시 시오니즘 운동에 동조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 그런지 살펴보기 위해 1920년 독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때는 1920년 8월 24일이었다. 헝가리 태생의 물리학자 레나르트(P. Lenard)와 독일 자연철학자 연구회 소장으로 자청한 베이란트(P. Weyland)는 아인슈타인을 성토하기 위한 모임을 열었다. 많은 관중이 그들의 강연을 듣기 위해 베를린의 콘서트홀로 모여들었다. 베이란트는 상대성 이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단지 집단 환각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리고 레나르트는 아인슈타인이 제 1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하제놀(F. Hasenohl)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레나르트는 뢴트겐과 함께 제1회 노벨물리학상 후보자로 거론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노벨협회는 제 1회 노벨상만큼은 단 한 명에게 수여되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 결과 제1회 노벨 물리학상의 영광은 뢴트겐에게만 돌아갔다. 뢴트겐 역시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유태인 혈통의 물리학자였다. 레나르트는 1905년 음극선관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뢴트겐에 대한 그의 반감은 이미 유대인 전체로 확대된 상태였다. 레나르트는 반유대주의와 결합된 독일 민족주의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가 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유대교 신봉자도, 독일 민족주의 신봉자도 아님을 강조했다. 그가 만약 유대인이 아니거나, 설령 유대인일지라도 독일 민족주의를 지지했었다면, 독일인 그 누구도 그를 비판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국경을 초월한 세계시민, 곧 코즈모폴리턴으로 자처한 것이다.
민족주의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반유대주의와 결합된 당시 독일 민족주의는 인종차별주의 노선을 띠고 있었다. 그러한 독일 민족주의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 후, 아인슈타인은 독일 국적을 버리고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독일에서 반유대주의 물결이 더욱 거세지자, 아인슈타인은 시오니즘 운동을 돕기 시작했다.
시오니즘이란 무엇인가? 시오니즘은 나라를 잃은 유대 민족의 팔레스티나 귀환을 표방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선민사상(選民思想), 곧 유대인들만 신에 의해 선택된 민족이라는 사상이 깔려 있었다. 선민사상은 코즈모폴리턴으로 자처하는 이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아인슈타인 스스로 시오니즘에 동조할 의사가 없다고 스스로 천명한 바 있었다. 그랬던 그가 적극적으로 시오니즘 운동을 돕고 나선 것이다. 물론 히틀러의 악행으로부터 동족을 구해내고자 하는 아인슈타인의 동기는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국경 없는 세계 정부를 꿈꾸는 코즈모폴리턴의 이념은 선민사상이 깔려 있는 시오니즘 운동과는 양립 불가능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평화주의자로 자처했다. 평화주의자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시오니즘 운동에 동참으로써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반감은 극에 달하게 된다. 그 결과, 독일의 많은 유대인들이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면, 그는 조심해서 행동했어야 마땅하다.
수천 년간 나라를 잃고 배회했지만 여전히 선민사상을 간직한 유대 민족이 강대국의 도움으로 팔레스티나 지역 일부를 차지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유대인들과 팔레스티나 거주자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짐작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아인슈타인은 코즈모폴리턴도 평화주의자도 아니었다. 그가 스스로 코즈모폴리턴이자 평화주의자로 자처한 것은 허울 좋은 선언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정말 코즈모폴리턴이거나 평화주의자였다면 시오니즘 운동에 동참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시오니즘 운동에 동참함으로써 그 자신이 모순된 인간임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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