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과 의사라고 해 보자. 어느 날 한 환자가 방문했는데, 당신에게 처방전을 녹음하고 싶다고 말한다. 의사는 속으로 정신나간 인간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오죽 의사를 못믿겠으면 그랬을까라고 생각하는 제3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환자는 건망증이 심해 처방 이유를 까먹지 않으려고 녹음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 나라 의사 집단은 의료 문제가 사회 표면에 떠오를 때마다 지나치게 자기방어적 입장을 취해왔다. 의료 소비자들과의 신뢰 관계가 점점 붕괴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상황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처방도 녹음하게 해달라는 의료 소비자 요구가 논쟁 거리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지금 논쟁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게 논쟁 거리가 되게 되는 과정에 의사 집단의 기여는 없다. 수년 동안 가족 시신을 안치소에 보관하면서 의료 분쟁을 이어온 사람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수술실 내 CCTV 논쟁은 없었을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현재, 의료 분쟁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닌 누구나의 얘기가 될 수 있으며, 그 누구는 의사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당해보면 현행 의료법이 얼마나 개판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개판이다보니, 수술실 내 CCTV 설치 요구가 다른 나라보다 강한 것이다.
수술실 통제권과 환자 육체 소유권의 관계
- 수술실 내 CCTV 설치 논쟁 -
최근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수술실 내 CCTV(closed-circuit TV) 설치 입법안을 놓고 찬성론과 반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술실 내 CCTV 설치 논쟁은 의료 사고 분쟁 시 환자 측 가족에게 일방적인 입증 확인을 요구하는, 그리고 보상금을 병원 및 관련 의료진이 전담해야 하는 현행 제도가 불러일으킨 측면이 강하다. 의료 소비자와 의사 집단 사이의 신뢰 구축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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