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잡세상 잡글

아인슈타인의 두뇌

착한왕 이상하 2010. 4. 9. 23:53

아인슈타인의 두뇌 연구는 일종의 시간 낭비이다. 이를 받아들여도, 아인슈타인이 과학적 연구를 위해 두뇌를 기증한 동기가 ‘우생학의 관점’에 기인한 것이라는 ‘두뇌 연구가’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두뇌 연구가가 거론한 증거들은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그 증거들은 ‘두뇌 연구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미약한 것이 아니라 부적합한 것이다. 다음 ‘두뇌 연구가’의 글을 읽고 왜 그런지 따져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합당한 주장’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의 두뇌

 

 

두뇌 연구가: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두뇌를 과학적 연구에 사용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어떤 이들은 이 사실을 가지고 과학에 대한 그의 열정을 찬미한다. 그런데 두뇌를 과학적 연구를 위해 기증한 아인슈타인의 진의는 다른 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은 정말 자신의 두뇌가 매우 특별하다고 여겼고, 그 특별함을 확인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재성’을 담고 있는 ‘특별한 두뇌’라는 것은 없다.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그야말로 ‘시간 낭비’에 해당한다. 그 논란이 가져온 것은 기껏해야 ‘천재 두뇌’에 대한 부질없는 대중의 환상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의 두뇌는 기증된 후 곧바로 연구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의 두뇌는 프린스턴 병원의 병리학자 하비(T.S. Harvey)의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수십 년 동안 미국 전역을 떠돌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955년 4월 18일 오전 8시 하비는 한구의 시신 받았다. 아인슈타인의 시신이었다. 하비는 톱으로 정수리를 열고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꺼냈다. 하비는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파라포름알데히드에 적신 후 보관을 위해 자당(蔗糖)을 주입했다. 240개의 조각으로 잘려진 아인슈타인의 두뇌 일부는 파라핀으로 처리되었다. 아주 얇게 잘려진 두뇌 층은 현미경 관찰을 위해 슬라이드(slide)에, 그리고 나머지는 포름알데히드 용기에 보관되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둘러싼 소유권 분쟁이 일어났고, 하비는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가지고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하비가 종적을 감춘 진짜 이유는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둘러싼 소유권 분쟁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솔리니의 두뇌를 해부했던 헤이메이커(W. Haymaker)는 하비의 연구 자질을 문제 삼았다. 하비는 병리학자였지 두뇌 연구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비는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들고 사라졌다. 그랬던 그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1980년부터 아인슈타인의 두뇌 조각을 세계 각지에 흩어진 연구자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하비는 이후 나머지 조각들을 프린스턴 대학에 기증해버렸다.

 

아인슈타인의 두뇌 연구 중 많이 거론되는 것은 캐나다 과학자 산드라 위텔슨(S. Witelson)의 주장이다. 두뇌 피질 전면부 영역에서 발견되는 주름의 양은 안인슈타인의 경우 보통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이 때문에, 다른 영역들이 발달했다는 것이 위텔슨의 주장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그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인슈타인의 두뇌 연구는 일종의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죽은 사람의 두뇌에 대한 해부학적 조사는 어떤 기능 이상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두뇌의 실제 기능 방식에 대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사람의 두뇌는 각각 다르다. 인간의 모든 두뇌는 그 해부학적 구조에서는 유사하다. 하지만 그 활동 방식에서는 판이한 차이를 보인다. 더욱이 천재적 능력이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대물림된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두뇌는 발생 시기부터 성장 과정을 거쳐 상당 기간 동한 지속적으로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발달 과정은 그 근거가 모호한 천재적 능력을 담은 특정 유전자의 발현 과정이 아니다. 개인의 천재적 능력이라는 것은 단지 그의 업적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천재적 업적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기에서 시작하고, 그러한 동기는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정보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제 해결의 모든 과정은 두뇌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근거한다.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해부하여 매우 특별한 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마치 그의 두뇌 속에서 ‘E=mc2’이라는 방정식을 찾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그야말로 시간 낭비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두뇌가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가 우생학을 믿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과거에는 각 종족에 해당하는 형질은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직접 유전된다는 관점이 유럽에 널리 퍼져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제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라고 할지라도, 그 또한 그러한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아인슈타인과 그의 첫 번째 부인인 밀레바(M. Maric) 사이에는 세 명의 자식이 있었다. 결혼 전에 낳은 첫 번째 딸의 생사는 아무도 모른다. 안인슈타인 연구가 중 일부는 병약한 그 딸이 2살 때 누군가에게 입양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없다. 장남인 한스는 성장해 도시공학과 교수가 되었지만, 차남인 에두아드는 정신착란증을 앓다가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이혼을 당한 후, 밀레바는 생활고 속에 에두아드를 뒷바라지하는 데 평생을 받쳤다. 아인슈타인은 에두아드의 정신착란증이 밀레바로부터 유전된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신체적 형태뿐만 아니라 기질과 능력마저도 유전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어떤 질병에 대해 유전적 요인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자식이 부모를 어느 정도 닮게 된다는 것도 명백하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팔과 다리, 얼굴 모양과 같은 신체적 형태와 특징은 여러 유전적 요인들에 의해 강하게 제한되어 있다. 반면에 개인의 기질과 능력이 유전적 요인들에 의해 제한된 정도는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개인의 기질과 능력은 발생 및 성장 환경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정신착란증의 ‘원형’과 같은 것이 있고, 그것이 대물림된다고 믿었다. 터무니없게도 그는 정신병이 오로지 모계 쪽에서 유래한다고 확신했다. 장남인 한스가 아인슈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상의 여인과 결혼했을 때 아인타인은 신부의 족보부터 뒤졌다. 신부의 할머니가 정신병을 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인슈타인은 한스에게 자식을 낳지 말라고 강요했다.

 

아인슈타인은 우생학의 관점을 갖고 있었다. 나쁜 형질을 가진 사람은 사회에서 도태되어야 하며, 또 우수한 혈통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관점이 우생학의 관점이다. 에두아두는 아버지의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정신병원에서 죽었고, 한스는 자식을 낳지 말라는 아버지의 강요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사실은 아인슈타인이 우생학의 관점을 가진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주장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과학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두뇌를 기증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를 걸지 않겠다. 하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그의 동기는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정말 자신의 두뇌가 매우 특별하다고 여긴 것 같다. 아인슈타인이 나쁜 기질이나 정신병이 모계에서 유래한다고 믿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가 ‘천재 혈통’이라는 것도 믿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인슈타인이 두뇌를 기증한 동기를 추적해보면, 그가 인종차별주의적인 우생학의 관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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