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종합설(Modern Evolutionary Synthesis)
다윈에 의하면, 개체군에서 발생하는 변이(variations) 중 환경 적응성이 높은 것들만이 유전되며, 이 과정은 자연선택에 의거한다. 그러나 어떻게 종이 생기고 고정되는지에 대해 다윈은 명확한 대답을 제공할 수 없었다. 특히 당시 과학 수준으로는 변이의 원천뿐만 아니라 선택된 변이의 유전 과정을 해명할 수 없었다. 또한 종을 ‘생식 장벽(reproduction barriers)’에 근거해 정의할 때, 곧 서로 다른 종에 속한 개체들은 생식 불가능하다고 정의할 때 과연 자연선택에 의해서만이 그러한 생식장벽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다윈의 제자인 로마네스(G.J. Romanes 1887)는 생식 장벽이 자연선택 이전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다윈을 반박했다. 『종의 기원?에 따르면, 생식 장벽 또한 자연선택의 결과이어야 한다.
다윈의 죽음 이후 20여 년의 논쟁은 진화의 종합설(modern evolutionary synthesis)이 탄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아니 그 논쟁의 성격은 현대 생물학사에서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공평하다.(D.R. Forsdyke 1999) 생식 장벽에 의한 종 간 격리에 대한 로마네스의 탁월한 연구 업적과 무관하게 그 자신은 용불용성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용불용설을 주장한 라마르크는 자연선택만으로는 진화를 설명할 수 없다고 여겼다. 라마르크는 ‘부드러운 유전 물질(soft inheritance matter)’을 가정했다. 사용에 의해 복잡해진 기관의 형태는 그러한 유전 물질에 의해 대물림된다는 것이 라마르크 용불용설의 핵심이다. 따라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자연선택 가설과 가변성 유전 개념을 결합시킨 가설이다.
가변성 유전 개념에 근거한 용불용설은 바이스만(A. Weismann 1886)의 공격 목표였다. 그는 체세포의 형질 변화가 생식 세포로 전이될 수 없음을 보임으로써 가변성 유전 개념을 사장시켰다. 이 때문에, 바이스만이 신다윈주의(neo-darwinsm)의 창시자로 거론되는 것이다.
진화의 종합설은 신다윈주의자들이 집단 유전학과 다윈의 진화론을 결합시킨 결과로 탄생했다. 진화의 종합설을 탄생시킨 인물들의 공로는 진화를 ‘개체군에 형질 분포 변화를 유전자의 빈도(frequency) 변화’로 측정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현대적 진화 생물학의 과학적 기초를 마련한 인물들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진화의 종합설을 과학의 분과로 정초시킨 인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피셔(R.A. Fisher 1930)는 진화가 전적으로 자연선택에 의거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라이트(S. Wright 1932)는 분자 차원에서 일어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중시했고, 헐데인(J.B.S. Haldane 1949)은 종 차원의 선택 단위도 진화의 설명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진화의 종합설의 개척자들로 불리는 피셔, 라이트, 헐데인 모두 ‘점진주의자’들이었다. 즉, 그들 모두는 오랜 기간 축적된 변이의 선택과 대물림이 진화의 주요 기제라는 입장을 지지했다. 이는 그들의 연구 방법론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의 실험은 집단 유전학의 통계적 방법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사도 세대 간 형질 대물림에 국한된 미시 진화(micro-evolution)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거시 진화(macro-evolution)에 관심을 가진 인물들은 고생물학자들이었다. 고생물학자들은 새로운 종뿐만 아니라 포유류 및 조류와 같은 상위류의 갑작스러운 출현 과정, 그리고 상위류에서 나타나는 형태적 유사성에 관심을 가졌다.
고생물학(palaeontology)을 종합의 진화설에 도입한 이는 심슨(G.G. Simpson 1944, 1953)이었다. 심슨은 거시 진화에서 ‘방향성을 가진 돌연변이(directed mutation)’ 개념을 제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심슨 이후 거시 진화론을 대표한 인물로는 굴드(S.J. Gould 1977)와 엘드레지(N. Eldredge 1993)를 들 수 있다. 굴드와 엘드레지는 단속평형설(punctuationism)에 근거해 급진적 진화 가능성을 옹호했다. 거시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을 진화의 유일한 메카니즘으로 보지 않는다. 이미 라모네스가 예언했듯이, 생식 장벽을 수반하는 종분화(speciation)가 자연선택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라면, 캄브리아기 이후 갑작스러운 다양한 종들의 출현 및 그들 사이의 형태적 유사성은 설명하기 힘든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동물들의 유형(type)을 보존하는 별도의 유전자, 곧 형태적으로 유사한 종들에 공통된 유전자가 가정되기도 한다.(J.M.W. Slack, P.W.H. Holland, and C.F. Graham 1993) 그렇지만 그러한 유전자의 실험적 발견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태이다.
현대 진화 생물학이 탄생하는 데 진화의 종합설이 미친 영향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현대 진화 생물학이 진화의 종합설에 대한 다른 명칭에 불과하다거나, 진화의 종합성을 확대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진화는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 가능하다. 미시 차원, 거시 차원, 분자 차원, 생태적 차원 중 어느 차원에서 진화를 접근하는가에 따라 진화의 설명 방식도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이것이 진화 생물학의 본모습이다.
N. Eldredge: "Punctuated Equilibrium Comes of Age", Nature 366, 1993, 223-7.
R.A. Fisher: The Genetical Theory of Natural Selection, Oxford 1930.
D.R. Forsdyke: “The Origin of Species, Revisited: A Victorian who Anticipated Modern Developments in Darwin's Theory”, Queen's Quarterly 106, 1999, 112-133.
S.J. Gould: Ontogeny and Phylogeny, Harvard University 1977.
J.B.S. Haldane: La ricercha scientifica 19, 1949, 68-76.
G.J. Romanes: "Physiological Selection", Nineteenth Century 21, 1887, 59-80.
G.G. Simpson: Tempo and Mode of Evolution, Columbia University 1949.
G.G. Simpson: Principles of Animal Taxanomy, Columbia University 1953.
J.M.W. Slack, P.W.H. Holland, and C.F. Graham: "The Zootype and the Phylotypic Stage", Nature 361, 1993, 490-2.
A. Weismann: Die Bedeuting der sexuellen Fortpflanzung für die Selektionstheorie, Jena: G. Fisher 1886.
S. Wright: "The Roles of Mutation, Inbreeding, Crossbreeding, and Selection in Evolution", Proc. of the VI International Congress of Genetics, I,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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