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의 ‘관용’
1.
“마음의 어두운 면에 불을 밝혀라.” 이러한 칸트의 명제로 묘사되는 계몽주의는 근거 없는 모든 권위에 저항할 것을 개인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집단적 속성에 좌우되지 않는 ‘개인의 자율성’이 가정되었다. ‘개인의 자율성’의 강조는 현실세계에는 없는 ‘개인 대 집단의 이분법’을 산출시켰다. 그러한 이분법의 핵심은 합리적 능력을 ‘개인주의 관점’에 가두는 것이었고, 신앙은 합리적 정당화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환경과 전통 그리고 심리적인 것은 개인의 합리적 능력과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18세기 계몽주의 정신이 정교 분리 원칙을 직접적으로 함축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이 점은 계몽주의 시대를 마련한 17세기의 두 인물인 존 로크(J. Locke)와 피에르 벨(P. Bayle)을 비교할 때 잘 드러난다.
2.
계몽주의 시대를 마련한 17세기 중엽 이후는 종교 개혁이 끝나고 각 나라마다 교파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던 시대이다. 기독교는 왕의 종교이자 국가의 통치 이념이었다. 어느 교파를 채택할 것인가는 지역의 문화적 전통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또한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어떻게 교파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해소할 것인가? 이 물음을 둘러싼 고민은 17세기 사상가들의 글 속 곳곳에 스며있다.
교파 간 갈등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식은 ‘관용의 정치’였다. 특정 교파를 국교로 정하되, 타교파의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자는 것이었다. 치료의학(iatromedicine)에서 정치로 관심을 옮긴 로크의 이러한 입장에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될 수 없다는 관점이 깔려있다. 그는 기독교 교리 속에서 그 두 분야를 통합해주는 도덕적 근거를 찾았다.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를 통합할 수 있는 정치적 이념은 ‘이성과 신앙의 상보적 관계’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의 문제는 신앙의 영역에 속하지만, 신의 속성은 합리적 판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로크는 신의 속성으로부터 보편적 권리 개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까닭에, 로크에 기원을 둔 자유주의 정치 이념은 처음부터 도덕적이면서 종교적이었다. 자유주의 이념이 로크에 근거할 때 그것은 정치, 법, 종교가 통합된 ‘도덕적 합의’인 것이기도 하다.
교파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17세기 사상가들의 또 다른 방식은 기독교의 여러 교파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허용하자는 것이었다. 로크는 무신론자와 유대인의 정치 참정권을 부정한 인물이었다. 반면에 볼테르가 ‘무신론의 대부’로 칭송한 벨은 무신론자와 유대인뿐만 아니라 회교도에게도 참정권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벨이 정말 무신론자였는지는 알 수 없다. 풍자 문학의 근대 시조로도 불리는 벨의 진의가 무엇이든, 교회 세력에 대한 그의 냉소적인 풍자를 반기독교적인 것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오히려 로크와 벨 모두에게 공통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로크와 벨 모두 맹목적인 광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정교 분리 원칙의 옹호자는 아니었다. 어떤 이는 벨이 로크보다 다양한 종교에 개방적이었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이 때문에 벨이 결국 ‘도덕에 대한 상대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후자의 평가 방식에는 ‘권리의 보편적 객관성을 위협하는 것은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관점이 깔려 있다. 그 관점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로크는 영웅이다. 로크야말로 도덕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다양한 종교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한 선구자로 그들에게 비춰지기 때문이다.
3.
개인의 권리가 시행착오의 인류 역사 속에서 정착한 미덕 혹은 권고 사항과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보편적 객관성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가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만드는 상황적 제약이 아니라 권리 자체에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로크는 그 객관성을 신에게서 찾았다. 로크와는 다른 측면에서 권리의 보편적 객관성을 옹호하려는 사람은 ‘신의 대체물’을 찾아야 한다. 로크가 자유의 원천을 신에서 찾았다면, 그러한 사람은 자연에서 그 대체물을 찾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경우에나, 그 속에 담긴 논리는 너무나 단순하다. 자유가 어떠한 방식이든 이미 ‘인간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때 역사는 단지 그 주어진 것을 찾아내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참고문헌
Auty, S.G.(1975), The Comic Spirit of Eighteenth Century Novels, Associated Faculty Pr Inc.
Foster, G.(2005), John Locke's Politics of Moral Consensus, Cambridge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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