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역사의 단편들

얼굴 없는 어느 물리학자의 초상화

착한왕 이상하 2025. 6. 7. 22:06

‘얼굴 없는 어느 물리학자의 초상화’, 얼핏 보기에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표현이다. 물리학자도 사람인데, 얼굴 없는 물리학자가 어디에 있나? 얼굴을 담지 않은 초상화라는 것은 없다. 얼굴 없는 사람의 초상화라는 게 있을 수 있나? 그러나 ‘얼굴 없는 어느 물리학자’가 지칭하는 것을 실제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의 이미지까지 확장한다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표현을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다.

사진, 조형물 등 인공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림자와 같은 자연 이미지 모두 그것들이 암시하는 실제 대상에서 분리되었다는 공통 특징을 갖고 있다. 나의 그림자는 항상 나를 따라다녀도, 그것이 나에 속한 것은 아니다. 자연 이미지와 다르게 인공 이미지의 경우, 그것이 암시하는 대상의 제약 없이 우리가 임의로 일정 부분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다. 인공 이미지가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인공 이미지의 임의적 변형 및 조작 가능성은 대중문화 분석의 출발점이자 종결점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어느 특정 물리학자의 사진에서 그의 얼굴을 잘라낼 수 있다. 그렇게 변형한 사진이 여전히 그를 암시하도록 여러 부가 장치를 사진에 집어넣을 수 있다.

인공 이미지든 자연 이미지든, 이미지는 지칭의 측면에서 특정 대상을 암시한다. 하지만 분석과 해석의 측면에서 특정 이미지의 분석과 해석은 여러 관계를 포함한다. 인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그림자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불가능하다. 변형한 특정 이미지의 분석은 인과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요인을 포함한 관계까지 요구한다. 이러한 사실은 대중 문화학과 관련하여 중요한 점을 알려 준다. 옳고 그름의 문제와 무관하게 인공 이미지의 분류법과 분석 및 해석 틀 자체를 다루는 것이 대중 문화학의 방법론적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방법론적 토대를 다루는 분야를 ‘이미지 문화학의 체계’라고 할 때, 이미지의 특성들, 인공 이미지와 자연 이미지의 차이, 다양한 인공 이미지의 분류 그리고 분석과 해석에서 각 종류에 대한 필수 관계들의 범주를 규정하는 것이 핵심 주제들이다. 대중 문화학에서 이미지 문화학의 체계라는 분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도, 그 분야가 정착했다고 할 수 없다. ‘21세기 이미지 문화학의 체계’라는 분야의 실질적 창시자 또는 대부로 불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도전해 볼 만한 것이 이미지 문화학의 체계이다. 물론 인고와 시간을 요구하는 도전이 될 것이다. 이미지들의 특성들, 인공 이미지와 자연 이미지의 차이에만 시각을 국한해도, 그런 것을 구체화하는 것은 한 문제에 오래 집착할 수 있는 끈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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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어느 물리학자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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