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단절 개념과 종교 시장 논리의 맹점 (수정)

착한왕 이상하 2010. 6. 7. 00:14

(3) 단절 개념과 종교 시장 논리의 맹점

세속화 과정을 부정하거나 사소한 사건으로 간주하는 종교 시장 논리는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된 과정을 전통과의 단절로 보는 관점의 허구>와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의 허구>라는 두 논증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된 과정을 전통과의 단절로 보는 관점의 허구>와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의 허구>를 받아들여도, 종교 시장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두 논증은 역사 읽기에서 ‘세속화 과정의 잘못된 규정 방식’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잘못된 규정 방식은 근대 및 현대를 과거 전통과 단절된 것으로 보는 관점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종교 시장 논리가 성립하려면, 근대 및 현대가 ‘과거 전통의 매우 특별한 변형’이어야 한다. 그 변형은 ‘기독교 사상의 변형’ 혹은 ‘기독교 종말 사상의 세속화’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종류의 변형이 역사적 근거를 결여한 것이라면, 종교 시장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이를 알기 위해 다음 물음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

 

• 근대 및 현대가 과거 전통과 단절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위 물음은 얼핏 보기에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역사는 시간 개념을 전제한 까닭에, 과거 전통 없이는 현재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물음이 의미있으려면, ‘단절’을 ‘과거와의 시간적 단절’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위 물음에서 말하는 ‘단절’은 근대 및 현대적인 것으로 불릴 수 있는 특징들에 ‘규범적 독자성’을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규범적 독자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러한 특징들을 과거 전통과 연관시켜 긍정적인 것으로 규정할 수 없음을 뜻한다. 즉, 어떤 유토피아적 세계를 기준으로 과거를 암흑기로 평가함으로써,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 근대 및 현대를 과거 전통과 단절된 것으로 파악할 때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을 긍정적으로 규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어떤 유토피아적 세계를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세계가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에 대비된 과거, 실례로 중세적인 것의 특징들이 완전히 제거된 세계로 여겨지는 경우, 중세는 암흑기로 규정된다. 이때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은 과거의 특정 시기를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규범성을 획득한다.

 

고전적 이원론, 즉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이분법,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들은 단순히 중세에는 대세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것을 대표하지 않는다.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들에 ‘규범적 독자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고전적 이원론이 지배한 시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시대를 종교성이 지배한 시대로 파악하는 경우,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의 완전한 실현은 ‘종교성의 사장’을 뜻하게 된다. 이때 유토피아적 세계는 종교가 사라진 세계이며,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만이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근대 및 현대를 과거 전통과 단절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들, 실례로 ‘자연을 과학적 탐구 대상으로 여기는 것’, ‘이성을 강조하는 것’,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 등과 이에 대비된 과거 전통의 특징들은 대조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대립적인 관계를 맺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은 과거 전통의 특징들이 제거되는 과정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점은 통용될 수 없다. 따라서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을 과거 전통과 단절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을 받아들이는 경우,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은 ‘종교가 사라진 사회 상태의 도래’에 대한 필요조건으로 간주된다. 그 붕괴 과정이 종교가 사회 통합의 원리로 기능할 수 없는 상태로 이어지려면, 교리에 근거한 신분 제도도 붕괴되어야 한다. 그러한 신분 제도는 무종교인 집단을 포함한 계층 분화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을 받아들이는 경우, 교리에 근거한 신분 제도의 붕괴는 적어도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이 붕괴된 과정의 연장선에 서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신분 제도가 붕괴되는 과정은 계층 분화를 촉진 시킨 여러 조건들, 특히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물론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은 그러한 발전이 근대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 그리고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을 이분하는 관점의 붕괴 과정에서,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자연을 조작할 수 있다는 관점이 나타났음을 강조할 것이다. 과연 자연을 조작 대상으로 보는 관점 때문에, 과학과 기술이 발전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 관점을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연관시키는 것은 유럽 역사의 맥락을 따를 때 정당한 것이다. 하지만 유럽 역사의 맥락을 따르는 경우에도, 자연을 조작 대상으로 보는 관점으로 인해 과학과 기술이 발전했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렇게 단언하는 것은 ‘어떤 관점’과 ‘그 관점과 연관된 조건들의 관계’를 마치 ‘사건 발생의 선후 관계’처럼 여기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 유럽’이라는 이념 아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도 지역 간 경쟁과 교류가 원활해진 상황, 즉 종교 개혁기 이후의 상황이 없었더라면, 과학과 기술의 결합에 의한 발전은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반론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매개로 계층 분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이라는 ‘역사적 성향’을 가능하게 한 조건들을 무시하고, 마치 그러한 성향이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필연적 조건이라고 과대 포장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종교가 사라진 사회 상태는 세속화 과정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단지 가능한 혹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만약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이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라면, 이에 반하는 증거로 종교 시장이 형성된 현실을 들 수 있다. 이때 그러한 세속화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은 현실을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즉, 종교가 사회를 지배할 수 없게 된 현실은 ‘아직 완전히 세속화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세속화 개념을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들 뿐이다. 더욱이 ‘종교가 지배할 수 없게 된 현실을 세속화된 사회 상태로 보는 소박한 관점’마저도 위협을 받게 된다. 세속화된 상태에 대한 그러한 소박한 관점이 위협에 빠지면,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은 그 근거를 잃어버리게 된다.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된 과정을 과거 전통과 단절된 것으로 보는 관점, 그리고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은 역사적 근거를 결여한 것이다. 그러한 두 관점을 부정하는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된 과정을 전통과의 단절로 보는 관점의 허구>와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의 허구> 논증은 정당하다. 하지만 이로부터 종교 시장 논리가 성립한다는 결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근대 및 현대를 과거 전통과 단절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은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에 ‘규범적 독자성’을 부여하는 것에 근거한다. 그 관점을 부정한다고 하여,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에 ‘규범적 독자성’을 부여하는 것이 부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과의 단절로서의 고전적 이원론 붕괴 관점의 허구>와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의 허구> 논증을 받아들여도,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을 부정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길 수 없다. 그러한 특징들을 세속화 과정과 연관시키는 경우, 다음의 논증이 성립한다.

 

• 세속화 과정을 부정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간주하는 종교 시장 논리는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된 과정을 전통과의 단절로 보는 관점의 허구>와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의 허구> 논증에 근거한다.

•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을 전통과의 단절로 볼 수 없는 까닭에, 또한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만이 올바른 것은 아닌 까닭에,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된 과정을 전통과의 단절로 보는 관점의 허구>와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의 허구> 논증은 타당하다.

• 그러나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된 과정을 전통과의 단절로 보는 관점의 허구>와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세속화 관점의 허구> 논증이 타당하다고 해서,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마저 부정되거나 사소해지는 것은 아니다.                                     

• 따라서 종교 시장 논리는 세속화 과정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반박하는 논거를 가지고 그 과정 자체를 부정하는 오류를 함축하고 있다.

 

종교 시장 논리 옹호자가 위의 오류를 피하려면 세속화 과정의 허구성 혹은 무의미성을 보여주는 근거를 찾아야한다. 이때 그와 그의 반대자 모두에게 중요한 물음은 다음이다.

 

• 근대 및 현대가 과거 전통과 단절되었다는, 혹은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에 ‘규범적 독자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관점을 부정하는 경우, 그 관점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그 대안으로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을 과거 전통의 변형으로 보는 관점을 들 수 있다. 특히 그러한 특징들을 기독교 전통과 연관시키는 관점은 종교 시장 논리 옹호자들에게 매혹적일 것이다. 하지만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을 과거 전통의 변형으로 보는 관점을 받아들여도, 그러한 특징들을 ‘기독교 전통의 단순한 변형’이거나 ‘기독교 전통의 세속화’로 보는 관점은 근거를 결여한 것이다. 이를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