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재구성의 변형 과정과 세속화 (수정)

착한왕 이상하 2010. 6. 18. 09:20

재구성의 변형 과정과 세속화

 

 

전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전통을 붕괴시키려고 한 사람들의 글에서조차 과거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전통에 종속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개념의 변형 과정을 중심으로 역사를 평가해 보는 것은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가 19세기 세속화 운동으로 이어진 과정은 어떠한 과정인가? 그 과정을 과거 전통과의 단절로 볼 수 없더라도, 즉 과거를 암흑기로 규정하기 위한 ‘규범적 독자성’을 그 과정에 부여할 수 없더라도, 그 과정은 과거, 특히 중세와는 구분되는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가 세속화 운동으로 이어진 과정은 과거 전통과의 단절도 아니며, 과거 전통의 단순한 수용 과정도 아니다. 즉, 그 과정은 미래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기준으로 과거를 진단하는 ‘규범적 독자성’을 갖지는 않지만, 과거와 구분되는 특징들을 갖고 있다. 서양 맥락의 세속화 과정은 바로 그러한 특징들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이는 세속화 과정을 ‘재구성의 변형 과정’으로 파악할 때 잘 드러난다. ‘재구성의 변형 과정은’ 다음 단계로 구성된다.

 

• 주제 생성

• 과거 전통의 재구성으로서의 문제 해결 과정

• 새로운 세계 이해 및 관점의 생성

• 새로운 주제 생성

 

재구성의 변형 과정을 음악에 유비할 때, 그것은 주제 생성, 과거 전통의 재구성으로서의 문제 해결 과정, 새로운 세계 이해 및 관점의 생성, 새로운 주제 생성이라는 템포(tempo)를 갖는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그러한 템포들을 갖는 재구성의 변형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발생했다. 그러한 변형 과정은 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지적 반응과도 맞물려 있다. 따라서 ‘재구성의 변형 과정’은 과거 전통에 대한 반응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적극적 반응 없이는 불가능한 과정이기도 하다.

 

‘재구성의 변형 과정’을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된 과정을 통해 간략히 알아보자.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은 지동설의 출현으로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되었다. 중세 시절, 그 관점에 바탕을 둔 자연철학이 신학과 양립 가능하다는 입장은 기독교가 이교도와 공존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으로 작동했다. 그러한 자연철학을 대표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이교도의 사상이었다. 지동설의 출현은 이교도의 자연철학과 신학의 양립 가능성을 위협한 사건이었다. 지동설의 출현은 신학과 양립 가능한 새로운 자연철학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과업을 산출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중세 시절,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주제는 이교도의 자연철학과 신학의 긴장 관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담론 주제로 떠오르지 못했다. 지동설의 출현, 도구의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발견들에 대한 설명의 필요성은 그 주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기계론은 그러한 관심의 산물이었다.

 

과학적 설명을 사건 발생의 선후 관계에만 한정시키고, 물리적 현상을 운동 변화만으로 설명하려는 기계론은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과거 입장들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개념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자연의 탐구가 기계론을 전제하는 경우, 그 탐구 영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대상들의 관계를 다루는 반응, 생물 현상이 보여주는 기능 등은 탐구 영역에서 배제되거나 사변적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크기, 속도, 충돌 등을 양화하고 법칙을 적용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론이 탄생할 수 있었다. 도구의 발전으로 인해 반응과 생물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이와 함께 ‘부분들의 관계에 의해 부분들의 속성으로 환원 불가능한 속성이 있다’는 유기체론, ‘부분은 전체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전일론, ‘부분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자연의 계층화가 가능하다’는 상호작용론 등의 세계 이해가 탄생했다. 이러한 세계 이해들의 탄생 과정에서 신 개념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과학이 전제해야 하는 단 하나의 세계 이해가 있다는 신념이 과학 공동체를 지배했다.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이 여러 과학 분과에 의해 영역별로 분화되는 과정에서, 그러한 믿음은 약화된다. 그 대신 확실성 추구의 관점애서 모든 과학에 공통된 방법론이나 과학에만 통용되는 설명 및 인지 체계가 있다는 ‘과학주의(scientism)’가 나타났다.

 

과학주의에는 실제 발견 과정이 아니라 발견의 파편들, 즉 일부 결과만 가지고 과학 전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오류가 배어 있다. 과학의 모든 예측은 결코 보편 법칙을 현상에 적용해 확실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과학의 발전은 통합의 과정을 걸어온 것이 아니다. 과학의 발전은 분과 다양성이 축적되는 과정에 가깝다. 각 분과의 이론은 특정 조건들 아래에서 그 고유한 설명 영역을 확보하며, 분과들의 거래 관계 속에서 새로운 분과들이 탄생했다. 문제 해결의 측면에서 과학에만 고유한 추리 등의 인지 체계가 있다는 주장은 경험적 증거를 결여한 것이다.

 

과학적 발견은 다양한 세계 이해에 대해 열려 있다. 과학의 자연주의는 특정 측정량과의 연결성 추구에 의해 제한된 ‘과학적 생활양식’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까닭에, 과학의 자연주의는 검증 또는 반증 불가능한 것을 가설에 섞지 않겠다는 태도로 귀결되는 것이다. 가설 생성 과정에 특정 세계 이해가 개입된 경우에도, 그 세계 이해는 과학적 증명 대상이 아니다. 동일한 가설이 다른 세계 이해를 배경으로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측정량과 가설의 연결성 추구에 의해 제한된 실천 방식, 즉 ‘과학적 생활양식’은 다양한 세계 이해에 대해 열려 있으며, 과학의 각 분과는 다루는 문제 및 문제 해결 방법에 의해 그 고유성을 확보한다. ‘과학의 세속화’의 이러한 성격은 실제 과학의 기능 속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현대인들에게 충분히 인식되지 않은 상태이다.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을 이분하는 관점이 붕괴되는 과정과 그 여파를 살펴보자.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자연의 다른 부분과는 구분되는 특별함을 갖고 있다. 그 특별함을 규정하는 주제는 다양한 세계 이해를 산출했다. 그 주제는 자연의 질서, 즉 코스모스보다는 인간의 구원에 관심이 집중된 중세에는 담론 표면으로 떠오를 수 없었다. 신학과 양립 가능한 새로운 자연철학을 재구성하는 것이 시대적 과업이 된 후, 그 주제는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자연은 운동 변화와 관련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인간은 그러한 법칙에 근거해 자연을 이용할 수 있는 존재이다. 기계론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이러한 세계 이해를 생성시켰다. 자연을 탐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을 규정하는 방식은 서구에서 ‘자율적 인간’ 개념을 탄생시킨 밑거름이 되었다. ‘자기 보존(self-preservation)’을 위한 권리 행사와 연관된 자율성 개념은 ‘스스로 삶의 목적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는 존재’ 개념으로 확대된다. 자율적인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다른 동물과는 구분되는 특별함을 갖고 있다. 그러한 특별함으로 이성이 가정되었다. 즉, 이성은 감정이나 열정과는 구분되는 인지 활동, 즉 추리 및 추상화 능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마음의 속성으로 가정되었다. 합리적 판단을 이성에 따른 판단으로 규정하는 경우, 합리적인 것은 물질적 자극에 기인한 감정이나 열정과 대립 관계를 맺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율적 인간 개념이 반드시 이성 및 기계론적 세계 이해에 근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을 가정하지 않고서도, 누구나 감정이나 열정에 대비된 추리 및 추상화 능력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것’을 규정할 수 있다. 그러한 능력이 경험적 연구 대상이 된 지금, 이성에 따른 합리적 판단은 단지 그러한 능력에 근거한 그럴듯한 판단을 뜻할 뿐이다. 즉, 합리적인 것은 감정이나 열정에 대립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또한 자율적 인간 개념이 자기 보존 차원을 넘어 확대되기 위해서는 인간을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존재로 이해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 혹은 삶 자체의 의미를 묻고 스스로 결정하는 인간의 특징은 ‘사회 속의 선택 상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전통이라는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행위 속에서 그러한 특징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서양의 맥락에서 자율적 인간 개념을 탄생시킨 계기로 기계론적 세계 이해를 거론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것만으로 자율적 인간 개념의 확대가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기계론적 세계 이해를 받아들이면, 인간관계에 근거한 사회 상태의 다양성을 설명하기 힘들어진다. 마음의 속성으로 여겨진 이성 및 자유의지를 가지고 우연성이 개입된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운동 변화의 보편 법칙을 인정하더라도, 모든 인과 관계가 그러한 법칙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해 마음이 자연의 산물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각 개인이 삶에 적극적일 수 있는 사회의 그림을 그려보는 시도들이 있었다. 아니면 자유, 평등, 정의가 인간의 실천 역사 속에서 사회 형태의 발달 과정을 겪게 된다는 관점도 있었다. 반면에 세계의 발달 과정을 신의 섭리가 구현되는 과정으로 간주하고, 자율적 개인을 보장하는 사회 상태를 그러한 발달 과정의 정점으로 묘사하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관점 및 시도들은 종교의 권위가 약화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즉,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의 붕괴가 필연적으로 신분제의 붕괴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결합에 의한 산업의 발달, 직업군의 다양화, 계층 분화, 공교육 및 중산층의 확대 등은 신분제를 약화시킨 원인으로 거론된다. 신분제의 약화 과정과 함께 일어난 것이 19세기 세속화 운동이었다.

 

종교 교리가 사회 통합의 유일한 원리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종교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정치 체제는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담론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정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 즉 ‘정치에 대한 신념(faith in politics)’이 서양 지성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등은 이론적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운동의 구심점으로 작동했다.

 

정치에 대한 신념의 시대에 나타난 정치 이론들은 서로 배타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 어떤 정치 이론도 실천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계를 보이게 마련이다. 각 정치 이론은 그 핵심 이념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이론의 장점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복지 지향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등의 용어는 이를 반영한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치에 대한 신념은 서양에서는 약화된다. 이러한 약화는 정치에 대한 시민의 무관심 혹은 정치적 행위의 약화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 또한 사회의 기능 단위라는 인식의 확대를 뜻한다. 반면에 서양으로부터 정치 체제를 수입한 국가들의 경우, 정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이러한 양상은 세속화 과정이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나타난 것이다. 물론 그러한 확대는 식민지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전쟁에 의한 식민지주의의 붕괴로 일어난 결과였다.

 

재구성의 변형 과정에 따른 결과는 과거 전통의 완전한 제거가 아니라 약화이다. 즉, 여러 세계 이해 및 관점이 가능하다는 인식으로 인해 종교가 사회 통합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 약화된 것이지, 결코 종교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인식은 과학이 특정 세계 이해를 전제하지 않고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며, 또한 인간을 ‘문화적 존재(cultural being)’로 이해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을 전제하는 경우, 다른 것 혹은 다른 집단에 대한 진정한 이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관용이라는 위선만이 가능할 뿐이다. 다른 것 혹은 다른 집단을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여기는 관점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인식할 때 가능하다. 그러한 인식 아래에서만 특정 세계 이해 방식과 관련시켜 인간을 파악하는, 즉 문화적 존재로 파악하는 관점이 가능해진다.

 

과학이 특정 세계 이해를 전제하지 않고 기능할 수 있다는 관점, 그리고 인간을 문화적 존재로 여기는 관점은 과거 전통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따라서 근대 및 현대를 ‘재구성의 변형 과정’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근대 및 현대가 과거와 구분되는 성격, 즉 그것의 독자성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