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 (수정)

착한왕 이상하 2010. 4. 21. 13:29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

 

고전적 이원론은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이 흔들리면서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 관점을 뒤흔든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지동설의 출현이다. 이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고전적 이원론에 타격을 가한 첫 번째 사건으로 거론되는 것이다.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이 지배했던 시절, 지구는 천문학의 탐구 대상이 아니었다. 천문학의 탐구 대상은 신성(神聖)이 구현된 천상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주를 거대한 시장(market)에 비유할 때 지구가 천문학의 탐구 대상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우주 시장(cosmic market)’에서 지구의 가치가 높아짐을 뜻한다.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 천상을 바라보며 신을 숭배하는 존재로 여겨진 인간의 지위도 격상되어야 한다.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이후, 천문학은 항해 등에 사용되는 실용적 지식 체계가 아니라 우주의 객관적 구조를 다루는 학문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운동의 변화에 대한 법칙만으로 모든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관점이 17세기에 나타났다. 상황을 초월한 확실한 지식 체계만이 그 자체의 고유성을 확보한 것으로, 즉, 학문적 자율성을 확보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확실한 지식 체계는 보편적이며 미래 사건에 대한 강한 예측성을 함축한 것으로 규정된 까닭에, 인간의 합리적 능력은 상황과 무관한 자연 법칙과 도덕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성(reason)’은 ‘확실한 지식 체계를 가능하도록 해주는 능력’으로 가정된 것이다. 또한 ‘이성’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주는 기준으로 여겨졌다. 경험론자들은 이성을 ‘확실한 지식 체계를 얻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보았다면, 합리론자들은 ‘필요충분조건’으로 보았다. 경험론자와 합리론자들 모두에게 ‘합리적 판단’은 ‘이성에 따른 판단’이며, 충동이나 감정에 대비된 ‘지성적(intellectual)인 것’이었다.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이 붕괴되면서, 신은 자신을 위해 자연을 창조했다는 과거의 관점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신은 인간을 위해 자연을 창조했기 때문에, 자연은 인간에게 탐구 대상이자 이용 대상이다. 이러한 인간 중심 사상을 받아들인다면, 신은 인간을 ‘스스로 선택하고 주변 환경을 삶에 적합하도록 개선시킬 수 있는 존재’로 창조했다고 말해야 한다. 오로지 인간만이 이성을 갖고 있는 한, 인간의 마음은 천사와 대등하다. 인간은 더 이상 지상에서 천상에 깃든 신성을 찬양하는 존재로 여겨질 수 없다.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의 간극은 ‘이성’을 가정할 때 좁혀질 수밖에 없다.

 

현대 심리학과 철학에서 합리적 판단은 감정과는 구분되는 인지 활동, 실례로 추리에 근거한 판단으로 여겨진다. ‘이성’이라는 개념은 그러한 인지 활동을 경험적으로 연구할 수 없었던 시대의 산물이다. 신이 마음이라는 실체에 각인시켜 놓은 것으로 여겨진 ‘이성’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었고,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간극’을 좁히는 이론적 토대였다.

 

계몽주의를 논하지 않고서는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이 붕괴되는 과정을 논할 수 없다. 종교적 권위를 포함한 모든 권위에 대항하여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한 18세기 계몽주의의 정신은 17세기 사상가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구원은 개인적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신의 속성은 합리적 판단의 대상이어야 한다. 17세기의 천부인권설은 이러한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천부인권설에 따르면, 인권은 발견의 대상이다. 인권은 신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그리고 인권에 근거한 개인의 권리는 누구나 추구해야만 하는 보편적 가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천부인권설을 받아들이면,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고 말해야 한다. 이때 다음의 문제가 발생한다.

 

•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이 붕괴되는 과정, 그리고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의 이분법이 약화되는 과정은 시기적으로 서로 중첩되어 있다. 보편적인 인권 개념이 17세기에 논의되었기 때문에,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이 붕괴되는 과정도 다른 이분법들이 붕괴되거나 약화되는 과정과 중첩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은 17세기가 아니라 18세기 중엽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의 이분법이 약화되는 과정은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이 붕괴되는 과정보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을 이분하는 관점의 약화가 ‘개인의 권리를 보편적 가치로 인식하는 관점’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지동설의 발견 이후에도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민중들의 교육 환경이 개선되어야 했다. 교육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개인의 권리를 보편적 가치로 인식하는 관점’이 민중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중을 위한 교육 환경의 개선은 군주가 반드시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군주의 절대 권력을 위협하는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군주의 절대 권력이 약화되어야 한다. 군주의 절대 권력이 약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사회에 확대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이 붕괴되는 과정은 종교 개혁기가 완성되는 과정이었다. 교황의 권력에 대항한 군주들에게 종말론은 지역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었다. 당시의 종말론은 인간사에 해당하는 종말 개념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근거해 우주 전체로 확대 해석한 입장이다. 교황은 악마 루시퍼의 화신이며, 교황청의 부패는 전우주적 종말을 예고한다. 개신교 세력의 이러한 종말론은 지역의 독립을 원하는 각 지역의 군주들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을 이분하는 관점이 약화되는 과정은 각 지역의 군주들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상인 계층의 확대, 민중을 위한 교육 환경의 개선과 함께 개인의 권리를 보편적 가치로 여기는 관점이 유럽 지성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18세기의 계몽주의는 이러한 세태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입장으로 평가되어도 무방하다.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을 이분하는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의 붕괴’가 ‘일반인과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의 붕괴’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세속화 과정은 그 둘의 붕괴 과정 사이를 매개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종교가 사회에 군림할 수 없다는 인식이 싹트지 않고서는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이 붕괴되는 과정’이 ‘일반인과 성직자의 이분법이 붕괴되는 과정’으로 바로 연결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속화된 사회 상태’를 소박하게 ‘종교가 사회를 지배할 수 없게 된 사회 상태’로 규정한다면, 근대를 ‘현대적인 것’의 기원으로 여기는 것은 합당하다. 그러나 이에 근거해 이 땅의 역사를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땅은 19세기 유럽의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을 겪지 않고 ‘세속화된 사회’이다. 다시 말해, 무종교인의 수가 사회의 실질적 다수가 된 이 땅의 과정은 서구와는 다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더욱이 이 땅을 지배한 유교(儒敎)에는 고전적 이원론을 형성하는 세 가지 이분법에 대응하는 것이 없다. 이는 사회가 세속화되는 과정이 문화적 맥락에 의존적임을 보여준다.

 

사회가 세속화되는 과정이 문화적 맥락에 의존적임을 알기 위해 먼저 대답해야 할 물음들이 있다. 왜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는 ‘종교의 종말’이 아니라 ‘종교 시장’의 형성으로 끝을 맺게 되었을까? 종교 시장의 팽창은 세속화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일까? 이어지는 절에서 이 두 물음에 대해 차례대로 답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