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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는 상업용 로켓?

착한왕 이상하 2010. 6. 7. 17:43

나로호는 상업용 로켓?

 

 

강대국이 비행기 기술을 다른 나라에 이전할 때 가급적 은폐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허드’라 불리는 비행기 머리 부분이다. 그 부분에는 유도 및 제어와 관련된 각종 첨단 기술이 담겨 있다. 로켓 개발과 발사 실험을 통해서도 그러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나로호 개발 및 발사가 거액의 투자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다고 하자.

 

나로호 1차 실험 발사 실패에 대해서 다수의 시민들은 너그러운 태도로 반응했다. 복잡한 인공물을 개발하고 실험하는 것은 항상 실패할 가능성이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로호 1차 실험 발사 실패와 관련하여 반드시 집고 넘어 가야 하는 것이 있다.

 

• 나로호는 실험용 로켓인가? 아니면 상업용 로켓인가?

 

나로호는 당연히 실험용 로켓이다. 그렇다면 인공위성을 싣고 발사시키는 도박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 로켓 발사 실험은 실패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 인공위성을 로켓을 사용해 올리는 것은 단순 발사보다 어렵다.

• 로켓을 사용해 인공위성을 올리고 특정 궤도에 진입시키는 것은 상당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반복적인 실험 발사 및 장치의 성능 테스트 기간이 필요하다.

• 그러한 준비 과정 없이 실험용 로켓에 인공위성을 장착시켜 로켓을 발사하는 경우, 실패는 로켓 손실로 그치지 않는다. 인공위성 손실은 부가적인 혈세 낭비에 해당한다.

• 도박성 실험 실패가 반복된다면, 엄청난 자본이 소모되는 우주 항공 산업은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 따라서 인공위성을 장착시켜 실험용 로켓을 발사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마도 다수의 연구 개발자들은 위 논증의 결론에 동의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나로호 1차 실험 발사는 다수의 연구 개발자들의 의견에 반한 것이다. 왜냐하면 실험용 로켓인 나로호는 인공위성을 싣고 발사되었기 때문이다. 나로호 1차 실험 발사에는 다음과 같은 정치 논리가 반영되어 있다.

 

• 실험용 로켓인 나로호 발사 실험은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 발사 실험이 성공하면, ‘1차 실험 발사에서 인공위성을 올린 인류 최초의 국가’가 된다.

• 발사 실험이 실패하면, 당분간 사회가 시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실패는 곧 잊혀질 것이다.

• 더욱이 검증된 러시아 우주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실험 발사인 까닭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                                                                                             

• 따라서 인공위성을 장착시켜 나로호를 발사시키는 것이 이득이다. 또한 발사 실험이 성공하면, 이것은 국가에게도 이득이다.

 

결국 도박성 정치 논리에 따라 나로호는 위성을 실은 채 발사되었고, 위성과 함께 사라졌다.

 

곧 있으면, 나로호 2차 실험 발사가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실험 발사에서도 인공위성을 싣고 발사된다. 아마도 2차 실험 발사에서 로켓으로 위성을 올린 사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2차 실험 발사가 성공하면, ‘2차 실험 발사에서 로켓과 인공위성을 동시에 올린 인류 최초의 국가’라는 선동 문구가 신문방송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나로호 실험 발사 사례는 ‘과학과 기술의 민주화’가 이 땅에서 정책적으로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음을 반영한다. 과학과 기술의 민주화는 과학기술 공동체, 정치권, 시민 사이의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과학과 기술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정착된 곳이라면, 과학과 기술을 평가하는 독립적인 심의 기관이나 TA(Technical Assessment) 기관이 있게 마련이다. 이 땅에는 그런 기관이 단 한 개도 없다. 물론 과학기술 정책이 정치적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기관이 있는 국가의 정책과 없는 나라의 정책은 질적인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지난 정권에서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 정책은 여전히 소수 자문 위원회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전근대적 방법이 성공적이려면, 정치 세력과 소수 자문 위원회 모두 현명하거나, 아니면 소수 자문 위원회 소속 과학자 혹은 정책가가 정치권을 속여 가며 ‘합당한 정책 실현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과학과 기술은 공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또한 소수 자문 위원회를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 정책은 언젠가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수 자문 위원회를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 정책은 공익을 실현하려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의 정책’이란 공익 차원에서만 평가되는 개념은 아니다. 그것은 정권 유지 혹은 특정 집단의 세력 유지와 같은 차원에서도 고려될 수 있다.

 

• 인공위성을 장착시켜 실험용 로켓인 나로호를 발사하는 것은 '발사 결정권을 가진 집단'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전략일까?

 

위 물음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든, 그 대답은 그러한 집단의 행동 방식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바른 물음은 다음이다.

 

• 왜 정치권, 그리고 정치권과 결탁한 세력은 표면적으로는 공익을 외치면서도 ‘과학과 기술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정책’을 고수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러한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그 첫 걸음은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는가?

 

이번 나로호 실험 발사를 계기로 이 땅의 과학기술 정책에 관심을 가져 보려는 사람은 위 물음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