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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과 개혁 세력의 딜레마

착한왕 이상하 2010. 5. 31. 19:06

순응과 개혁 세력의 딜레마

 

 

솔로몬 애쉬(Solomon Ash)1950년대 순응(conformity)’에 관한 일련의 사회 심리학적 실험(social-psychological experiment)’을 수행했다. 각 그룹의 실험 참가자들은 주어진 선분의 길이와 일치하는 선분을 보기에서 골라야 한다. 그들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는 일부러 잘못된 선분을 고르라는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를 모르는 한 명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룹별로 실험을 반복한 결과, 사전 지시를 모르는 사람들 중 약 1/3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대세, 즉 다수의 판단에 순응한 사람들이다. 대세에 순응한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까닭에 다수의 선택을 모방한 사람들이다. 두 번째 부류는 다수의 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만 다수의 행동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람은 제한된 정보 속에서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동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순응을 접근하는 경우, 순응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 순응은 일종의 모방 학습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간접 민주제의 관점에서 순응을 접근하는 경우, 순응은 민주주의 진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투표 행위에 근거한 선거라는 간접 민주제의 제의인 것이다.


각 유권자가 자유롭게, 그리고 공평하게 투표하는 것이 법적으로 보장된 나라라면 형식적으로 민주화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형식적인 민주화가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대세에 순응하는 개인의 행동 방식이 형식적 민주화에 의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중산층 확대와 높은 평균 교육 수준을 드는 정치학자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 학자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분명히 하자.


대세에 순응하는 행동 방식은 유권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가들에게도 나타난다. 두 정권이 비슷한 지지율을 확보한 경우, 집권을 위해 정책적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게 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계층이나 반대 세력 지지자들의 표를 갉아 먹어야 집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각 정당의 정책이 진정으로 다수를 위한 것이라면, 반복적인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의 진화는 가능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개혁을 이끌 세력 없이는 민주주의의 진화는 힘들어진다. 여기서 개혁 세력이 겪을 수 있는 여러 딜레마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은 그 중 가장 심각한 딜레마 하나를 살펴보기 위한 사례이다.

 

북쪽은 전체주의 세력이 장악하고, 남쪽은 형식적으로 민주화된 민족이 있다. 남쪽의 기득권을 대표하는 정당 A가 현재 정권을 잡고 있다고 하자. 정당 A는 약 30%의 골수팬을 거느리고 있다. , 그들은 A 정당 정책의 실현 가능성, 긍정적, 부정적 측면과 상관없이 무조건 A에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정당 B는 약 20%의 골수팬을 거느리고 있다. 개혁 세력인 소수 정당인 C10% 미만의 골수팬을 거느리고 있다.

 

AB보다 더 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이러한 경우, A는 민중에게 위기의식을 발생시키거나, 현실을 불확실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 그 결과, 지지 세력의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으며, 또한 A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지만 선거에서 A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BC는 이러한 A의 전략을 반민주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A의 지지자들을 비합리적인 동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간접 민주제는 유권자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투표권에 근거한 정치 체제이다. A의 전략은 반민주적일지라도 정권 유지라는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인 것도, 비합법적인 것도 아니다. 심지어 A는 영리하기까지 하다. A‘B가 개혁 혹은 진보 세력이 아니라 자신들과 정치적 노선에서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 정당이라면서, 오히려 C가 그러한 세력이라고 C를 띄워준다. 이에 맞서 B는 지역 선거에서조차 정권 심판론을 선거 목적으로 부상시킨다. 그러한 정권 심판론에 다수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B는 부동표(浮動票)를 끌어올 수 없다. BC에게 자신들의 정권 심판론에 동조하라고 압박을 가한다.

 

C에게 현명한 선택은 무엇인가?

 

C가 정권 심판론에 동조하더라도, A의 선동을 무마시키는 동시에 B와의 차이를 보여 주는 비전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더욱이 그러한 대안은 교육, 경제 등에 걸쳐 구체적인 정책안과 맞물려 있어야 한다. 각 정책안은 거시적 차원, 지역적 차원, 그리고 연령층에 따라 체계화되어야 한다. 실례로 의원을 배출한 스웨덴 해적당의 정책안도 당수나 몇몇 정치인들의 머리가 아니라 집단적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며, 그 과정에는 두뇌 집단의 역할이 컸다. 각 분야의 정책안은 최소 100여 쪽에 이른다. 최근 급부상한 독일 좌파당(Die Linke)의 경우, 그 정책안은 구체적이며 광범위하다. 물론 일반 대중이 그러한 정책안을 세세히 읽으며 분석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개혁 세력이 정책 짜기에서 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혁 세력의 이념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하지만 정책안이 구체적이지 못한 경우, 그들은 다수에 순응하게 마련이다. 이를 두고 그들의 행동 방식이 비합리적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 원인은 결국 개혁 세력에게 있기 때문이다. 개혁 세력이 더 많은 지지자들을 포섭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정책 짜기의 전문성이외에도 정치가의 뚝심도 요구된다. 만약 B의 압박에 C가 순응한다면, C의 색깔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지지율 10%10년 안에 30%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역사적 사례는 많다. 하지만 개혁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것이 소수 정당의 운명이다.


개혁 세력은 이제 왜 자신들이 필요하며, 다수당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어떻게 다수당이 될 수 있는가에 고민해야 한다. 물론 내가 고민할 것은 아니다.

 

 

덧글:

이 글을 가지고 나를 비판하는 진보 세력 옹호자가 있을 것이다. “말은 쉽지, 너나 진보 이념에 부합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정책을 제시해 보세요. 그런 정책을 제시할 수 없는 자가 왜 말이 많은가?” 이러한 비판에 대해 할 말은 딱 하나다. 그러한 정책 짜기는 나의 몫이 아니다. 정당이 정책가를 찾는 것이지, 정책가가 정당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분명히 하자. 스타 정치가는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스타성만으로 개혁 혹은 진보 세력이 득세한 역사적 사례는 없다.

     

* 2010년 5월 31일 작성한 글을 수정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