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신학과 자연 철학 (13~16세기 short version 수정)

착한왕 이상하 2010. 7. 28. 08:47

(2) 신학과 자연 철학

아우구스티누스는 한때 영지주의(gnosism)에 심취한 인물이었다. 그는 플로티누스(Plotinus)의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를 받아들이면서 영지주의를 부정했다. 영지주의와 신플라톤주의는 서로 양립하기 힘든 측면을 갖고 있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이 세상은 ‘악(惡)의 신’이 지배하는 곳이다. 육체에 갇힌 영혼의 원천은 ‘선(善)의 신’이 창조한 초월적 세계이다. 반면에 신플라톤주의에 따르면, 모든 것은 불변적이고 무한한 ‘하나(One)’에서 파생된 것이다. 모든 것은 그 절대적 ‘하나’에 대비된 완벽함의 정도를 갖는다. 그 하나를 유일한 창조주로 가정하는 경우, ‘악의 신’은 부정되어야 한다. 이때 ‘악함의 정도’는 ‘본래적인 악’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신의 속성인 ‘절대 선의 결여 정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원죄설과 결합시켜 사후 구원론을 옹호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이교도의 철학과 융합된 신학’을 정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 신, 자연, 마음 등의 개념에 근거해 ‘존재(being)’를 다루는 형이상학의 역할은 이교도 철학의 핵심 또한 기독교적임을 밝히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와 신학이 통합 가능하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은 로마 제국의 붕괴 후 11, 12 세기 교부 시대의 전통으로 이어진다. 그 시대의 형이상학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교리에 공통된 전제들을 찾고, 그러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기독교 신 개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안셀무스(Anselmus)와 룰(R. Lull)로 대표되는 신 존재 증명 논증에서 엿볼 수 있다. 만약 모든 종교에 공통된 전제들을 바탕으로 기독교 신 개념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모든 종교는 기독교로 통합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는 기독교로 이교도들을 융합시켜 보려는 동기가 깔려 있다.

 

그러나 교부 시대의 기독교 문명은 이슬람 문명에 비해 보잘 것이 없었다. 당시 유럽 서남부를 지배한 이슬람 문명은 고대 그리스 사상을 단순히 수용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지식 체계로 발달시켰다. 그리고 기술의 측면에서 유럽보다 앞서 있었다. 이슬람 학자들이 교부 철학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슬람 학자들이 보기에 유럽인들은 자연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에, 당시 국가들을 특징별로 분류한 안달루시(S. al-Andalusī)는 유럽 국가들을 다루지 않았다.

 

안달루시는 자연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갖고 있는 지역들과 그렇지 않은 지역들을 나누고, 각 지역의 문화적 특징들을 국가별로 분류했다. 그는 로마를 그리스, 이집트, 아랍에 비해 떨어진 과학적 지식 체계를 갖고 있었지만 기술적으로 발달한 제국으로 묘사했다. 반면에 로마 제국이 붕괴된 이후의 유럽은 오로지 초자연적인 것에만 매달린 미개한 족속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그는 유럽 국가들을 다루지 않았던 것이다.

 

이슬람 학자들은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한 관심은 이슬람 학제를 모방한 유럽의 대학들에 스며들게 된다. 13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목을 받게 된 이유에는 ‘모방에 근거한 문명 교류’의 측면도 있다.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이슬람 학자들의 논쟁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논쟁은 신플라톤주의에 흡수되기 힘든 측면을 갖고 있다. 신플라톤주의에 따르면, 자연적인 모든 것은 보편적인 ‘하나’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자연에 대한 지식 체계, 즉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식 체계의 독자성이나 필요성은 약화된다.

 

자연적인 모든 것은 일정하게 계속 변화하거나, 아니면 우연적으로 변화한다. 전자의 변화는 천상계의 특징으로, 그리고 후자의 변화는 지상계의 변화로 여겨졌다. 자연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 실례로 기적과 같은 것의 원인은 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모든 것의 원인은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초자연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초자연적인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며, 불변적이다. 즉, 그것은 신이다. 신은 감각 경험이 아니라 계시(啓示)를 통해 알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른다면,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관계 논쟁은 자연과 신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기도 하다.

 

감각 경험을 통해 신 존재를 알 수 있을까?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통합해주는 형이상학은 가능한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거나 부정적으로 답하는가에 따라, 신학과 자연 철학의 관계를 파악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아퀴나스의 영향 아래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감각 경험을 통해 신 존재를 알 수 없다면, 자연 철학은 본질적으로 신학과는 별개의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즉, 자연에 대한 체계적 지식은 초월적인 신 존재 증명에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다. 이때 신학과 자연 철학에 공통된 전제들을 찾고, 그 전제들을 바탕으로 양자를 통합하는 시도는 무의미해진다. 자연 철학과 신학은 서로 독립적인 영역, 즉 자연적인 영역과 초자연적인 영역을 다루는 분야들이다. 이를 받아들이면, 신학과 자연 철학을 중재할 수 있는 별도의 방법을 찾거나, 아니면 그 둘의 중재 가능성을 포기해야 한다. 이 경우, 생각해 볼 수 있는 첫 번째 입장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신학과 자연 철학은 서로 독립적인 설명 영역을 갖는다. 하지만 신학과 자연 철학 각각에도 고유한 형이상학적 요소들이 배어 있다. 실례로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초자연적인 것’을 신으로 가정하거나, ‘우주의 내적 통합 원리’를 신으로 가정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두 신 개념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에 근거해 ‘제 1 원인으로서의 신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신학과 자연 철학을 중재하는 형이상학은 두 분야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에 근거해 신 존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신학과 자연 철학을 중재하는 형이상학이 있다면, 사후 구원의 가능성도 그 형이상학을 근거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유기체의 형태 유지와 기능을 주관하는 것으로 가정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 개념은 자연 철학의 탐구 대상인 동시에 신학적 탐구 대상이기도 하다. 인간은 추상적인 개념을 형성하고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자연 철학을 신학과 독립된 분야로 여긴 이슬람 학자 아베로에스(Averroes)는 추리와 추상화라는 사고 활동을 개인의 마음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마음’과 연관시켰다. 이때 그러한 사고 활동은 개인의 영혼에 내적인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에 기인한 것이 되며, 개인의 사후 구원 개념은 무의미해진다. 아퀴나스는 자연 철학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도 영혼에 관한 아베로에스의 입장을 수정했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추리와 추상화라는 사고 활동은 감각적인 것 혹은 육체적인 것이 아닌 영혼의 순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모든 지식은 감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경험에 개입하는 사고 과정은 본질적으로 감각 경험과는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감각적인 것만이 육체적인 것에 기인한 것이라면, 인간의 영혼은 ‘비육체적인 것’ 혹은 ‘육체와 무관한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인간의 영혼은 사후에 육체와 분리 가능한 불멸의 존재이다. 이러한 영혼 불멸설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르네상스 말기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부정해서는 안 되는 기독교의 절대적 교리로 작동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든 플라톤이든, 그들의 저술들은 13세기에는 라틴어로 완전히 번역되지 않았다. 그들의 저술들이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철학이 가진 실제 의미가 무엇인지를 따질 수밖에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영혼이 물질에 내재하는 비질료적 원리로 가정되었다. 이 때문에, 인간 영혼이 육체와 분리 불가능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더욱이 추리와 추상화라는 사고 활동은 심적 표상이나 이미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내재된 이러한 개념적 혼선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두 입장이 나타났다.

 

• 둘째,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우주 통합의 내적 원리로 가정된 까닭에, 여러 우주를 가정할 수 없다. 반면에 여러 개, 심지어 무한개의 우주가 존재할 가능성은 신의 무한성이라는 속성과 양립 가능하다. 우주가 여러 개, 심지어 무한개라면, 인간 존재의 특별함을 주장하기 힘들어진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과 창조 행위를 동일시해야 한다.

 

• 셋째, 추리와 추상화라는 사고 활동은 심적 표상이나 이미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면, 인간 영혼을 ‘비육체적인 것’으로 여길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심적 표상이나 이미지는 육체적인 것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과 분리될 수 없는 사고 활동을 ‘비육체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인간 영혼이 ‘육체적인 것’이라면, 사후 구원은 불가능하다. ‘육체적인 것’은 소멸이라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이 신학과 양립 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이때 그러한 양립 가능성을 전제한 ‘신학과 자연 철학의 중재 가능성’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창조주와 창조 행위를 동일시하는 두 번째 입장은 브루노의 무한 우주론에서 엿볼 수 있다. 브루노의 무한 우주론을 받아들이면,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경계 구분은 애매모호해진다. 더욱이 신은 우주에 내재하는 것으로 여겨져야 하기 때문에, 사후 구원론을 정당화하기 힘들어진다. 범심론으로 분류 가능한 브루노의 무한 우주론은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브루노는 화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사후 구원론에 전제된 ‘영혼 불멸설’은 유대교뿐만 아니라 고대 기독교에서도 그 개념적 뿌리를 찾기 힘든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문화와 다른 문화의 교류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입장은 폼포나찌(P. Pomponazzi)에게서 엿볼 수 있다. 폼포나찌는 영혼 불멸설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에 근거해 정당화할 수 없음을 논증했다. 이러한 논증에는 신학과 중재 가능한 자연 철학을 찾아보려는 시도 자체를 부정하려는 동기가 깔려 있다. 그렇다고 폼포나찌가 영혼 불멸설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연 철학의 한계를 지적함으로써 자연 철학에 대한 신학의 우위성을 강조하려고 했다. 물론 그의 논증에 깔린 진정한 동기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에 영혼 불멸설을 부정하는 것은 목숨을 건 행위였기 때문이다. 인간들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살만한 공동체를 꾸려가든, 아니면 스스로 파멸의 자초하든, 그 어떤 경우나 인간들의 몫이라는 관점은 당시의 신 개념과는 어울릴 수 없는 것이었다.

 

영혼 불멸설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 넷째, 인간 본성은 신을 동경하는 영혼의 속성에 기인한 것이다. 신은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를, 그리고 인간 영혼을 중심으로 모든 생명체를 창조했다. 모든 것은 ‘하나’로서의 신에서 파생한 것이며, 인간은 신성을 부여받은 소우주와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신을 동경하는 삶만이 인간적인 삶이며, 이 점은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고대 종교에 공통된 것이다.

 

네 번째 입장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이끈 피치노(M. Ficino)에게서 엿볼 수 있다. 네 번째 입장은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안셀무스에 이르기까지의 교부 시대의 신념, 즉 기독교를 중심으로 모든 종교를 통합할 수 있다는 신념을 계승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르네상스 인본주의는 ‘종교적 인본주의’로 규정된다.

 

그러나 네 번째 입장은 13, 14세기를 지배한 ‘신학과 자연 철학의 중재 가능성’에 대한 논쟁을 불식시킬 수 없었다.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받아들인다면, 자연에 대한 체계적 지식은 영성(靈聖)을 추구하는 것에 비해 사소한 것이 되어버린다. 15, 16세기는 관찰에 근거한 동물학이나 식물학뿐만 아니라 천문학이 발달한 시기였다. 자연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입장은 결코 대세가 될 수는 없었다. 또한 연금술과 기계 제작술의 발달로 인해, 물질을 변환하고 물질 변환을 위한 측정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신학과 기존 철학을 통합하거나, 신학과 중재 가능한 자연 철학을 찾는 것만으로는 정당화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싹텄다. 더욱이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철학 모두에 공통된 것이었다. 지동설의 정착과 함께 신학과 철학 혹은 신학과 자연 철학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논쟁은 이어질 수 없게 된다. 그 대신 자연 철학을 매개로 과학과 신학을 중재할 수 있는가라는 담론 주제가 주목을 받게 된다.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친 신학과 철학 혹은 신학과 자연 철학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그러한 주제를 생성시킨 밑거름과 같다.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입장은 그러한 논쟁 역사에서 탄생한 다양한 입장들 중 일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