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

착한왕 이상하 2011. 1. 19. 15:08

(6)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고전적 이원론의 관점에 따르면, 지상은 공간적으로 천상에 대비된 곳이 아니다. 천상계는 신성(神聖)이 구현된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천상계에 대비된 지상계는 신의 속성이 충분히 구현되지 않은 곳이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간은 천사와 달리 천상계에 살 자격을 갖지 못한다. 인간은 지상의 괴물들과 함께 천상을 우러러 보며 신을 찬양해야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고전적 이원론의 관점에 따른 ‘지상계’는 ‘선을 결여한 영역’을, 그리고 ‘인간’은 ‘선을 결여한 존재’로 규정된다.

 

신유학 전통의 세계 이해 방식에 따르면, 천(天)과 지(地)는 양(陽)과 음(陰)을 상징하며, 천지조화(天地調和)는 기(氣)의 활동성이 이(理)에 따른 혹은 이(李)에 의해 제한된 방식을 뜻한다. 천과 지는 선 대 악, 완전함과 불완전함 혹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대립 관계로 여겨질 수 없다. ‘천지’는 양과 음의 상보적 관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은 이(理)에 의해 제한된 기의 활동성의 결과, 즉 기의 끊임없는 분화 과정의 결과로 여겨진다. 모든 것이 하나에서 분화된 결과라면, 각 대상 자체에 고유한 본성 혹은 본질과 같은 것은 가정될 수 없다. 모든 것은 전체의 분화 과정 속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에, 각각의 본성도 항상 ‘전체와 부분의 관계(mereological relation)’와 맞물려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동시 창조설, 즉 초월적인 신이 모든 것을 동시에 창조했다는 방식의 관점은 신유학 전통의 세계 이해와는 어울릴 수 없다.

 

신유학 전통의 세계 이해 방식에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할 때, 이것은 인간을 우연적 과정의 결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양(陽)을 상징하는 천(天)과 음(陰)을 상징하는 지(地)를 매개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따라서 인간 존재 없는 우주는 천지조화에 내재된 이(理)라는 원리를 반영할 수 없다. 이(理)의 원리가 천지조화에 내재되어 있는 한, 인간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간 중심 사상에서 ‘인간’은 다음을 뜻한다.

 

• 인간은 천지조화의 중심에 위치한 존재이다. ‘천지조화’가 ‘이(理)에 의해 제한된 기(氣)의 활동성 자체이거나 그 결과’를 뜻하는 까닭에, 인간은 다른 모든 것에 의존적이며, 또한 다른 모든 것은 인간에 의존적이다. 신유학 전통의 세계 이해 방식에서 인간은 ‘관계의 중심’으로 이해된다. 모든 것은 기의 활동에 따른 전체의 분화 과정 속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하나의 관계망을 형성한다. ‘관계 중심의 인간’은 ‘천지를 매개하는 인간이 다른 모든 것에 의존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때 ‘인간’은 ‘개별적인 대상으로서의 인간’, 즉 ‘개인’이 아니라, 이(理)가 반영된 ‘인간 본성’에 가깝다. 인의예지(仁義禮智)란 이(理)가 인간에게 반영된 것을 뜻한다.

 

위에서 살펴본 인간에 대한 관점을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이라고 하자. 서양의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 볼만한 동양의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을 구성하는 핵심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이다.

 

지(地)는 악 혹은 불완전함, 그리고 천(天)은 선 혹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과 같은 고전적 이원론의 관점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과 양립하기 힘들다.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은 근대 이후 ‘인간의 천사화 계획’으로 묘사된 서양의 인간 중심 사상과도 어울리기 힘들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인간의 천사화 계획’은 지동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을 붕괴시킨 ‘지적 반응’을 뜻한다. 지동설을 받아들이면, 지구도 천문학적 탐구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신성이 깃든 곳으로 여겨진 천체에 지구가 속하게 되자, 원죄를 짓고 지상계로 추방당한 인간의 가치도 승격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바탕을 둔 ‘인간의 천사화 계획’은 합리적 능력만으로도 자연과 도덕의 보편적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관점을 낳았다. 서양의 인간 중심 사상은 그러한 관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 근거한 동양의 인간 중심 사상과는 다른 측면을 갖는다.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서 ‘인간’은 천지를 매개하는 ‘도덕적 존재’를 뜻한다. 이때 ‘인간’은 ‘개인’을 뜻하지 않는다. 따라서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서 인간 중심 사상을 엿볼 수 있어도, 서양의 ‘합리적 개인’과 같은 개념을 발견할 수는 없다. 또한 사회는 합리적 개인들의 약속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입장도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을 관계의 중심으로 파악하는 관점을 받아들이면, 각 개인은 관계에 의존적인 존재라고 해야 한다. 그러한 개인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상황과 무관한 계산 능력 혹은 합리적 능력이 아니라 상황에 합당한 문제 해결 능력이다. 따라서 자연 현상에 담긴 법칙을 파악하고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사고방식은 신유학의 인간 중심 사상과 어울릴 수 없다. 물론 그러한 ‘합리적 개인’은 실제 개인을 이상화시킨 것으로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와 함께 형성된 개념이었다.

 

서구의 ‘합리적 개인’ 개념이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와 함께 형성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고전적 이원론이 지배했던 시기의 전통에 대한 극단적 반발이었다. 만약 신유학 전통의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 대한 극단적 반발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더라면, 서구에 대비된 ‘동양적 개인주의’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한 개인주의는 그 어떤 관계와도 무관한 인간 관점이나, 누구나 관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관점과 같은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두 관점을 비교 평가할 때 주의할 것이 있다. 고전적 이원론에 대한 극단적 반발로 여겨질 수 있는 서구의 개인주의가 기독교 교리에 완전히 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서구의 개인주의는 기독교 교리를 완전히 부정하기 보다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적합하도록 재구성하는 가운데 탄생한 것이다. 합리적 개인 개념이 고전적 이원론에 함축된 원죄설에 반한다는 사실을 가지고 ‘반기독교적’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따라서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 대한 반발로 ‘동양적 개인주의’가 생겨났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반유교적’이라기보다는 ‘과거 전통을 변형시킨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그럴듯하다. 이때 동양적 개인주의는 ‘그 어떤 관계와도 무관한 관점’보다는 ‘누구나 관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 근거할 것이다.

 

‘누구나 관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 근거한 ‘동양적 개인주의’는 어떤 것일까?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이 없지만 중요한 이 물음은 이어질 절에서 다룰 것이다. 여기서는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 대한 반동의 물결이 이 땅의 역사라는 바다에 크게 일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과 누구나 관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 반드시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유학 전통의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는 누구나 관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수용하기 힘들도록 만드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우열 구분의 관점’이다.

 

• 양(陽)과 음(陰)이 서로 상보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또한 모든 것이 그러한 상보적 관계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양을 상징하는 것은 음을 상징하는 것보다 우월한 것으로 간주된다. 인간을 천지(天地)를 매개하는 도덕적 존재로 규정할 때, 인간은 양을 상징하는 천의 명(命)에 따라 음을 상징하는 지를 다스려야 한다. 따라서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그리고 천지를 우주의 주변으로 파악할 때, 인간은 주변을 구성하는 관계들의 위계질서를 따르는 경우에만 우주의 중심이 된다. 그러한 위계질서는 양과 음의 질적 차이에 따라 형성된 것이고, 그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행위는 천지조화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즉, 그러한 행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신유학 전통의 세계 이해 방식에서 ‘우열 구분의 관점’은 우주와 인간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족과 사회 및 국가 간 관계마저도 그러한 관점에 근거해 해석되기 때문이다. 군주만이 천명(天命)을 받는 자이자, 사회의 우두머리로 여겨졌다. 사대부는 군주의 명을 받아 아래를 다스리는 자들이다. 가족의 관계에서 남편은 천에, 그리고 부인은 지에 비유된다. 자식은 부모를 매개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인간을 관계의 중심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 속에 배어 있는 이러한 우열 구분의 관점은 자연과 사회의 조화로운 상태를 규정하는 토대가 된다. 신유학 전통의 세계 이해 방식에서 그러한 상태는 자연과 사회를 이분하는 방식으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양(陽)과 음(陰)의 차이에 따른 자연의 위계질서가 반영된 사회 상태만이 조화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군주, 사대부, 평민으로 구분되는 신분제(身分制)가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 인간은 천지를 매개하는 존재이다. 우주 전체에 해당하는 천, 지, 인의 이러한 관계는 사회에도 반영되어 있다. 천명을 받드는 군주를 제외한 사람에게는 각각이 받들어야 하는 윗사람이 있다. 사물과 동물을 다루는 천민을 제외한 사람에게는 각각이 다스려야 하는 아랫사람이 있다. 군주는 주변에 백성이 모이도록 아래를 보살펴야 하는 까닭에 항상 아랫사람이 처한 상황을 헤아려야 한다. 사대부는 군주가 군주다울 수 있도록, 즉 만인이 강요 없이 군주를 따르도록 군주에게 간언하고 군주를 도와야 한다. 또한 사대부는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백성도 진심으로 사대부를 따른다. 가족 내에서 부모는 위가 되고, 자식은 아래가 된다. 누구에게나 받들어야 하는 위가 있고, 다스려야 하는 아래가 있다. 이는 작게는 가족, 그리고 크게는 사회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다. 각 개인은 ‘천지를 매개하는 존재’, 즉 ‘인간’에 속하지만, 군주만이 천명을 받아 사회 전체를 조화롭게 통합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각자가 속한 신분에 따라 행동할 때, 위와 아래의 관계들은 군주를 중심으로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신분의 엄격한 구분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덕(德)은 각 신분에 요구되는 도리를 자발적으로 행하는 심성과 같은 것이다.

 

세속화 과정은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그러한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볼 만한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면, 그것은 한 시기를 지배했지만 나중에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된 것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볼 만한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는가’라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볼 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야 하는 것이다.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 ‘우열 구분의 관점’, 그리고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으로 구성된 맥락을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라 하자.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은 신유학 전통의 세계 이해 방식을 분석하여 얻어낸 것이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볼 만한 것이라고 할 때 그 둘은 내용적 측면에서 다르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근거한 신유학 전통의 세계 이해 방식은 고전적 이원론이 근거한 중세 기독교의 세계 이해 방식과 내용적 측면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두 세계 이해 방식은 특정 지역의 과거를 지배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또한 지금에 와서 수정 없이는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든 것으로 여겨진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따라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은 이러한 역사적 공통점에 근거해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볼 만한 것이다.

 

유럽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 볼만한 과정이 이 땅에 있었다면, 그 과정은 다음 두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 첫째,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 볼만한 것을 이 땅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 둘째,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할만한 것이 붕괴되거나 약화되는 역사적 성향이 이 땅에 나타났어야 한다.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 볼만한 것은 이 땅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 ‘우열 구분의 관점’, ‘엄격한 신분의 구분’이라는 세 관점으로 구성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다. 이를 받아들이면,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붕괴되거나 약화되는 역사적 성향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성향은 어느 정도 강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약화되는 조짐을 이 땅의 역사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조짐을 ‘세속화 과정’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