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가상의 역사를 통해 본 여기의 실 꼬임: 도입부

착한왕 이상하 2011. 6. 20. 17:10

가상의 역사를 통해 본 ‘여기’의 실 꼬임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면, 그것은 최소한 다음 두 물음에 대해 긍정해야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볼 만한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는가?

 

•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볼 만한 것이 이 땅의 역사에서 붕괴되거나 약화되는 역사적 성향은 강하게 나타났었는가?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볼 만한 것은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 그것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 ‘우열 구분의 관점’,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으로 구성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고전적 이원론과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은 내용적 측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그 둘은 기능적 측면에서 한때 특정 지역의 세계 이해 방식을 지배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되거나 약화된 과정은 서양 세속화 과정의 핵심이다. 따라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붕괴되거나 약화된 과정이 이 땅의 역사에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면,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고 주장하기 힘들다.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긍정할 수 있다. 두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긍정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 땅은 서양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속화된 곳이다. 종교가 사회의 지배적 통합 원리로 기능할 수 없는 사회 상태를 ‘세속화된 사회 상태’로 규정하는 경우, 현재 우리 사회는 세속화된 상태의 사회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세속화된 상태에 도달한 역사에는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은 없었다. 따라서 서양의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을 거쳐야지만 세속화된 사회 상태가 가능한 것은 아니며, 또한 세속화된 사회 상태도 다양한 양상을 띤다. 이러한 사실을 이 땅의 역사와 직접적으로 연관시켜 드러내 보이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 땅의 역사에 대해 무지할뿐더러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약화되는 조짐을 이 땅의 역사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조짐을 ‘세속화 과정’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를 보이기 위해 ‘일상적 의미에서의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 in the ordinary sense)’을 사용할 것이다.

 

일상적 의미에서의 귀류법은 어떤 주장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기 힘들거나, 그 주장에 대한 보기나 사례를 예시하기 힘든 경우에 사용되는 논증 방식이다. 먼저 증명하려는 주장을 부정해 보자. 이로부터 모순적이거나 터무니없거나, 혹은 현실에 비추어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이 나온다고 해 보자. 이를 바탕으로 그 주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일상적 의미에서의 귀류법’이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이 땅에서 약화된 조짐을 ‘세속화 과정’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을 일상적 의미에서의 귀류법에 근거해 옹호하려고 한다. 이때 먼저 다음과 같이 가정해야 한다.

 

•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고 해 보자.

 

위처럼 가정하는 경우, 유교에 함축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붕괴되거나 약화되는 정도는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되거나 약화되는 정도와 엇비슥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은 서양의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볼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처럼 가정하고 추측해 본 과거의 역사가 ‘가상의 역사’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