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K 비판적 사고/GCTC 청소년 교육

아이들의 서평 1: 곰브리치 세계사

착한왕 이상하 2011. 10. 11. 23:24

* 다음은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고 쓴 서평들이다.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고

신승민 (민백 초등학교)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역사와 관련된 책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역사책과 사료로 나눌 수 있다. 역사책과 사료에는 몇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공통점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역사책과 사료 모두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역사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이 두 가지 모두를 참고해야 한다. 그런데 역사책과 사료 간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점이 있다. 사료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자료인 반면에, 역사책은 역사가가 어떤 관점에 따라 역사적인 사건을 해석하여 서술한 책을 말한다. 사료의 예로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들 수 있다. 역사책의 예로는 <곰브리치 세계사>나, <삼국사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서평에서 살펴볼 책은 <곰브리치 세계사>이다. 곰브리치 세계사는 곰브리치라가 쓴 책이다. 먼저 곰브리치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1909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곰브리치는 유대인 가문 출신의 예술사 학자이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각각 법관과 대학 교수를 할 정도로 사회에서 성공한신 분들이었다. 이를 통해 곰브리치의 부모님은 가정교육에 신경을 썼다고 추측할 수 있다. 곰브리치는 엄격한 유대인식 교육으로 고전을 바탕으로 한 말하기, 듣기, 쓰기교육을 받았다. 그 후, 곰브리치는 오스트리아의 명문 기숙학교인 테레시움 김나지움과 비엔나대학에서 공부했다. 당시 비엔나대학은 각 분야에서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곳이었다. 곰브리치는 비엔나대학 시절 다양한 전공과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등 교수 및 학생들과 지적인 교류를 하였다. 이러한 교육 풍토 속에 성장했기 때문에, 곰브리치는 청소년들을 위한 역사책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한 곰브리치는 르네상스시대의 예술과 건축을 연구하는 바르부르크연구소에서 평생 동안 일했다. <곰브리치 세계사>외에 다른 대표작으로는 예술사 전문서인 <예술과 환영>이라는 책이 있다.

 

그러나 <곰브리치 세계사>는 원래 처음부토 나올 계획이 없었던 책이다. 다시 말해, 곰브리치는 아동 및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책을 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곰브리치 세계사>는 곰브리치의 친구 노이라트의 부탁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 부탁은 바로 영어로 써진 어떤 역사책에 대해 평가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곰브리치는 그 친구에게 “어쩌면 내가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라고 말했다. 그래서 노이라트는 곰브리치에게 책의 한 꼭지를 써보라고 권했다. 이렇게 해서 <곰브리치 세계사>의 기사 부분이 탄생하였다. 곰브리치가 쓴 꼭지를 보고, 친구는 곰브리치에게 책을 쓰는 것을 맡겼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그 조건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려고 한 책시리즈와 맞추어 출판하기 위해 6주 만에 원고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곰브리치는 이 책을 주어진 시간 안에 쓰기 위해 규칙적이고, 계획적으로 작업하였다.

 

곰브리치는 오전에는 부모님의 서재에서 자료를 선별하고, 오후에는 도서실에 가서 자료의 정확성을 검토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글을 썼다. 하지만 일요일은 여자 친구 일제와의 데이트를 위해 남겨놓았다. 일제는 훗날 곰브리치와 결혼하여 평생을 함께 했다. 이렇게 일정이 빡빡한데도 데이트 일정을 남겨 놓은 것을 보니 아마 여자 친구를 진심으로 좋아했나 보다. 계획에 따른 철저한 작업 덕에 6주 만에 고전이 된 역사책을 썼다는 점도 우리가 <곰브리치 세계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곰브리치는 6주 만에 어린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을 썼다. 책을 쓸 때, 그는 몇 가지 원칙을 따랐다.

 

첫 번째, 곰브리치는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은 기억하기 쉬운 사건들과 중요한 인물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곰브리치는 프랑스 역사 일부를 프랑스 혁명이나 나폴레옹을 중심으로 연관된 사건들을 다루는 가운데 소개하고 있다. 이런 사건이나 인물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것들이다. 익숙한 사건이나 인물 중심으로 구성하는 방식의 장점은 독자들이 흥미롭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두 번째, 곰브리치는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은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쉬운 문체로 써야 어린 독자들이 이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곰브리치는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은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우리’라 함은 곰브리치가 살았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어린이와 청소년, 즉 곰브리치가 이 책의 독자라고 생각했던 이들을 말한다.

 

곰브리치는 위와 같은 원칙에 따라 <곰브리치 세계사>를 구성하였다. 이번에는 곰브리치가 세계사를 서술한 방식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곰브리치가 세계사를 서술한 방식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유럽 지역들의 흥망성쇠 과정 속에서 세계사를 다루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선사 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상징하는 대사건이나 인물 아래 여러 연관된 사실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서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방식의 예를 곰브리치 세계사의 26장 ‘새로운 시대’를 통해 살펴보자.

 

1400년 이후,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는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는 자유로운 시민과 상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신을 섬기는 것보다는 지식과 능력을 갖춘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이들은 고대 문물을 통해 자신들이 새롭게 태어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런 사람들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들 수 있다. 이런 시대가 탄생하게 된 계기에는 발명품들도 한 몫을 했다. 그것들은 인쇄술과 중국의 화약이었다.

 

곰브리치는 이 장에서 ‘르네상스’라는 대사건아래 이와 연관되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결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곰브리치는 르네상스 시대의 발명품으로 인해 중세 기사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고 연관짓고 있다. 그리고 곰브리치가 이 장에서 언급한 다빈치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또한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르네상스를 다루는 것은 유럽지역의 내용을 다룬 것이 된다. 하지만 이런 <곰브리치 세계사>에도 오류가 있다. 그 오류에 대해 알아보자.

 

역사책은 저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가끔씩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오류는 크게 나누어 볼 때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부정확한 고증에 의한 오류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인 사건들의 인과 관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오류이다.

 

첫 번째로 부정확한 고증에 의한 오류에 대해 살펴보자. 곰브리치는 올림픽에서 우승자가 승리해서 받는 것은 생애 최대의 명예와 올리브 나뭇가지 하나에 불과하다고 책에 썼다. 그러나 다른 기록을 보면, 올림픽에는 거액의 상금이 걸려있다고 나와 있다. 이처럼 올림픽 우승자에 관한 얘기를 잘못 서술한 오류를 부정확한 고증에 의한 오류라고 한다.

 

두 번째로 역사적인 사건들의 인과 관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오류에 대해 살펴보자. 곰브리치는 몽고족의 서유럽 침략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곰브리치의 서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당시 에스파냐 지역은 이슬람의 세력 하에 있었다. 몽고족의 침입을 받은 것은 서유럽만이 아니었다. 몽고족과 대치하면서 세력을 잃은 이슬람은 에스파냐 지역을 유럽인들에게 내주게 된다. 그 결과 유럽의 대항해 시대가 열렸고, 유럽인들은 해외로 진출하여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처럼 몽고족의 침략은 유럽이 부흥하게 되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곰브리치는 몽고족의 침략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것은 곰브리치가 역사적인 사건 간의 인과 관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범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곰브리치 세계사>에 오류가 있다고 해도, 곰브리치는 좋은 역사책을 썼다. 이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다보면 곰브리치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바로 그 고민 때문에, <곰브리치 세계사>를 고전이라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그 고민에 대해 말해보겠다.

 

세계사에는 전쟁 얘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 왜냐하면 전쟁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쟁은 여러 문명이 서로 교류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명을 동방으로 퍼뜨렸다. 곰브리치는 전쟁이 불러오는 참담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게 만드는 인간의 배타성에 대해서도 경계하였다. 곰브리치는 그러한 배타성으로 발생하는 전쟁과 문명 교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 결과, 곰브리치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공존 상태에서 문명의 교류는 불가능한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전쟁 없이 문명 교류는 불가능한가? 내 생각에, 이 문제는 세대와 국적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한 번 정도는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아직까지도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은 책을 우리는 고전이라 부른다. 결국 평화로운 문명 교류에 대한 고민을 담은 곰브리치 세계사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고

 

이호정 (민백초등학교)

 

 

곰브리치는 누구일까? 대부분 처음 듣는 사람의 이름일 것이다. 나도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기 전에는 곰브리치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럼, 이제 곰브리치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곰브리치는 190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법관이었고 어머니는 대학 교수였다. 곰브리치는 유대 민족 특유의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았다. 그는 테레지움 김나지움을 다녔는데, 그 김나지움은 오스트리아의 명문 사립 기숙학교였다. 그리고 그는 유명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비엔나 대학에 다녔다. 곰브리치는 비엔나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의 친구들과 토론을 하며 친분을 쌓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곰브리츠는 예술사학자로 활동했다. 예술사학자란 간단히 말하면 예술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바르부르크 연구소에서 거의 평생 동안 일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청소년을 위해 쓴 <곰브리치 세계사>와 전문 연구서인 <예술과 환영>이 있다.

 

이제 곰브리치가 누구인지 알아보았으니 곰브리치가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 <곰브리치 세계사>를 쓴 계기에 대해 알아보자. 왜 곰브리치는 이 책을 썼을까? 세계사 공부를 하려고 썼을까? 원래 곰브리치는 이 책을 쓸 의도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곰브리치의 친구 노이라트가 곰브리치에게 어떤 영어 역사책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였다. 영어 역사책을 본 곰브리치는 자신이 그 책보다 더 잘 쓸 수 있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노이라트는 한 챕터를 써보라고 하였고, 그렇게 생겨난 챕터가 ‘중세의 기사’편이다. 그 챕터를 보고 마음에 든 노이라트는 곰브리치에게 책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단, 기한은 6주뿐이었다. 이렇게 하여 단 6주 만에 탄생한 책이 <곰브리치 세계사>이다.

 

이제 곰브리치가 6주 만에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책을 쓴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자. 곰브리치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에는 부모님의 서재에서 자료를 선별하고 앞으로 쓸 것에 대해 구상하였다. 오후에는 도서실에 가서 오전에 선별한 자료의 정확성을 검토하였다. 역사책에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오전에 선별하고 점심에 검토한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 일요일은 일제와의 데이트를 위해 남겨두었다. 그리고 삽화는 당시 승마 교사에게 부탁하였다. 그렇게 해서 곰브리치는 책을 6주 만에 완성하였다.

 

이제 <곰브리치 세계사>의 구성 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곰브리치는 이 책을 쓸 때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우선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책이기 때문에 곰브리치는 기억하기 쉬운 사건들을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기억하기 어려운 사건들로 역사책을 구성하면 청소년들은 읽은 내용을 쉽게 기억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는 청소년들이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잘못된 역사책을 쓸 수도 있다. 두 번째, 곰브리치는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써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어린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체로 된 책을 보면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곰브리치가 <곰브리치 세계사>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그러한 방식의 첫 번째 특징으로는 우리가 기억하기 쉬운 사건이나 인물 아래 여러 연관된 사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유럽 지역들의 흥망성쇠 과정 속에서 세계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예로 들어 이러한 특징들을 설명해 보자. 당시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해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그러자 마케도니아의 필로포스왕이 그리스를 침략하였다. 그리스는 더더욱 쇠약해졌다. 그리스를 이긴 필로포스왕은 페르시아를 침략하려고 했으나, 그 전에 암살당하고 말았다. 필로포스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로스가 왕이 되었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그리스 군을 이끌고 소아시아로 갔고, 결과는 알렉산더의 승리로 끝났다. 그 뒤로 알렉산더는 세계 전체를 얻기를 원했고, 실제로 세계의 거의 전체를 얻었다. 이처럼 곰브리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알렉산드로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흥망성쇠를 서술하고 있다.

 

곰브리치 세계사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첫 번째 오류는 올림픽 제의에 대한 오류이다. 곰브리치는 고대 올림픽에는 상금이 없다고 술했지만 사실은 어마어마한 상금이 걸려 있었다. 이러한 오류를 부적합한 고증에 의한 오류라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오류는 몽골의 침략에 대한 오류이다. 곰브리치는 몽골의 침략이 서유럽에 악영향만 끼쳤다고 하였지만, 몽골의 침략이 서유럽에 악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당시 남부 유럽은 이슬람의 세력권 하에 있었다. 서유럽의 입장에서 보면 남부 유럽을 통한 진출의 통로가 막힌 셈이었다. 몽골의 침략 대상은 서유럽만이 아니었다. 몽골과 전쟁을 벌이면서 세력이 약해진 이슬람은 남부유럽을 더 이상 장악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곧 서유럽에게는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했다. 서유럽은 남부 유럽을 통해 해외로 진출하면서 다른 문명과 교류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흥할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 이처럼 몽골의 침략은 서유럽의 부흥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곰브리치는 몽골의 침략과 서유럽의 흥망성쇠와의 인과관계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 결과 몽골의 침략은 파괴적인 전쟁이라는 인상만 주게 된다.

 

그러나 몇 가지 오류에도 불구하고 <곰브리치 세계사>는 고전에 속한다. 이 책이 고전에 속하는 이유는 이 책에 담겨있는 곰브리치의 문제의식과 관련이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으로 인해 문명의 교류가 활발해진 측면이 있다. 그 예로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을 들 수 있다. 곰브리치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전쟁이 정말 문명의 교류에 필요한가라는 물음을 놓고 고민했다. 곰브리치는 전쟁을 통하지 않은 문명의 교류 가능성에 대해 고민했다. 이 책에는 곰브리치의 이러한 고민이 깔려있다. 이러한 고민은 시기나 공간에 상관없이 누구나 고민할 만한 내용이다. 누구나 고민할 만한 문제의식을 던지는 책을 우리는 고전이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곰브리치 세계사>는 고전에 속한다.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저자의 문제의식을 이끌어 내면서 읽어야 한다.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고

 

범계초 6학년 최 민석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술사가 곰브리치는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 보았을 책 <곰브리치 세계사>의 저자이다. 어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위해서는 그 책의 저자를 알아야 한다.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고 내가 생각한 것을 쓰려고 한다.

 

곰브리치는 오스트리아 출생의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이 박해를 받던 시대에 유대인으로 사는 것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곰브리치의 부모님은 카를 곰브리치, 레오니아 곰브리치였다. 둘 다 유대인이고 직업은 법관과 교수였다. 직업으로 미루어보아 곰브리치는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읽기, 쓰기, 말하기를 중시하는 유대인식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곰브리치는 명문 사립 기숙학교인 테레시움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비엔나 대학에서 미술사 등을 공부했다. 특히 비엔나 대학에서는 다양한 전공을 하는 학생들과 토론, 교류를 통하여 세계적인 석학이 될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예술사학자로서 바르부르크 연구소에서 일했다. 그의 대표작은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곰브리치 세계사>와 연구서인 <예술과 환영>이 있다.

 

곰브리치가 누구인지 알아 보았다. 이제 곰브리치가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 보자. 우리는 관찰한 것을 기록할 때에도 어떤 동기를 가지고 기록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곰브리치가 <곰브리치 세계사>를 쓴 이유는 있었다.

 

처음에 곰브리치가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을 쓴 이유는 돈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였다. 책을 쓸 당시에 곰브리치는 청년 실업자 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은 빗나갔다. 곰브리치는 노이라트라는 사람의 제안으로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를 쓰게 되었다. 노이라트가 어떤 영어 역사책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였고, 곰브리치는 그 책을 다본 후 노이라트에게 “어쩌면 내가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노이라트는 책의 한 꼭지를 써보라고 곰브리치에게 제안했다. 이렇게 하여 <곰브리치 세계사>의 ‘기사’에 관한 장이 만들어졌다. 그 장의 내용이 마음에 든 노이라트는 곰브리치에게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를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노이라트가 곰브리치에게 책을 부탁할 때 준 시간은 얼마 정도였을까? 1년, 20주, 10개월! 놀랍게도 아니다. 책을 완성시키는 데 곰브리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6주였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책을 완성할 할 수 있었던 곰브리치의 작업 일정에 대해 살펴보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에는 부모님의 서재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어떤 글을 쓸지 구상하였다. 서재에 책이 정말 많았나 보다. 오후에는 도서실에서 자료의 정확성을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저녁에는 글을 썼다.

 

역사책은 원칙 없는 낙서장과 같은 것이 아니다. <곰브리치 세계사>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책을 쓰기 위해 곰브리치가 지킨 원칙들은 무엇이었을까?

 

곰브리치가 지켰던 원칙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기억하기 쉬운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책을 구성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가 잘 알지 못하는 사건을 다루면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써야한다는 것이다. 문체가 너무 어려우면 아무리 읽어도 애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자신의 관점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관점이 들어가야 다른 이의 생각을 자극할 수 있는 풍성한 글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곰브리치가 책을 쓰기 위해 지킨 원칙에 대해 알아 보았다. 이제 <곰브리치 세계사>의 구성 방식에 대해 알아 보자.

 

곰브리치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나 대사건을 아래 여러 관련된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구성 방식으로 책을 썼다. 그러한 구성 방식을 바탕으로 유럽 지역의 흥망성쇠 과정을 다루었다. 이러한 구성 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로 13장 ‘새로운 전사들의 싸움’을 살펴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계 제국을 건설하는 동안 동쪽에서는 로마인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로마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가장 먼저 만난 위협적인 상대는 카르타고였다. 첫 번째 싸움에서는 로마가 패배하였지만 배를 만드는 방법을 배운 로마인들은 다음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쳐들어 왔다. 처음에는 로마가 불리하였으나 스키피오의 활약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한니발은 자살했다. 이 전쟁은 ‘포에니 전쟁’으로 불린다. 이러한 전쟁으로 로마는 흥하고 카르타고는 쇠했다. 위에서 보듯이 곰브리치는 포에니 전쟁이라는 익숙한 사건 아래 여러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이러한 결합 방식 속에서 로마와 카르타고의 흥망성쇠를 설명했다.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대사건이나 인물 중심으로 유럽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과정 속에서 세계사를 서술하는 것은 장점이 있는 반면에 단점도 있다. 그러한 서술 방식은 독자가 이해하기는 쉽지만 자칫하면 유럽 중심의 세계관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브리치 세계사>는 고전에 속한다. ‘고전에 속하는 책은 철학이나 사상을 다루는 것들만이 아니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곰브리치 세계사를 고전이라고 부르려면, 먼저 고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고전은 여러 시대를 걸쳐 살아남아 지금도 읽히는 책이다. 즉, 고전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곰브리치 세계사>에는 곰브리치 자신의 생각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그 문제의식은 시대나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생각해 볼만한 것이다. 이 때문에, 곰브리치 세계사는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곰브리치 세계사가 고전에 속하는 이유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렇다면 이 책에 깔려있는 곰브리치의 문제의식은 무엇일까? 곰브리치가 책을 서술할 때 가장 고민했던 문제는 바로 ‘전쟁과 인간’에 대한 것이다. 자세히 말하면 ‘전쟁 없이 문화의 교류는 불가능한 것인가?’라는 물음이었다. 이 물음은 누구나 한번은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다. 곰브리치는 문화의 교류는 긍정적으로 보았지만 전쟁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다. 곰브리치는 세계 2차 대전에 휘말린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에 ‘전쟁과 인간’에 대한 고민을 담았던 것은 아닐까? <곰브리치 세계사>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이러한 물음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