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착한왕의 개념 사전

천사(Angel)

착한왕 이상하 2010. 1. 5. 04:09

 

중세의 ‘존재 사슬(great chain of beings)’은 신과 우주의 관계를 묘사한 도식이다. 광물과 같은 죽은 물질의 세계가 존재 사슬의 제일 아래 부분을 차지한다. 존재 사슬의 그 다음 부분은 식물의 세계가, 식물의 세계 다음 부분은 동물의 세계가 차지한다. 인간은 동물의 세계에서 제일 위 지점을 차지한다. 신(神)은 이렇게 계층화된 존재 사슬의 정점(頂點)에 위치한다. 인간과 신 사이에는 어떤 존재가 위치하는 것일까? 바로 천사(angel)와 악마(demon)이다.

 

중세의 존재 사슬 도식은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존재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우주의 질료(質料)인 물질을 창조한 존재도 아니며, 또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힘이나 에너지와 같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주에 내적인 질서와 통합의 원리 혹은 마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반면, 기독교의 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절대적인 존재로 가정된다. 이러한 신 개념의 차이는 천사의 존재론적 지위를 둘러싼 중세 논쟁에서 잘 드러난다.

 

모든 개별적 대상은 질료와 형상(形狀)의 합성이다. 하나의 사과는 ‘그 무엇’으로, 즉 ‘사과에 속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이때 실재하는 개별적인 대상으로서의 사과는 ‘이것’ 혹은 ‘저것’으로 불릴 수 있는 사과이다. 신이 생각한 사과의 이상적인 형태 혹은 특징, 곧 사과의 형상 없이는 하나의 사과를 사과라고 부를 수 없다. 이러한 까닭에, 개별적인 대상으로서의 사과는 형상이 물질로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과의 형태는 사과의 형상에 가까울 뿐 사과의 형상을 완전히 구현한 것은 아니다. 사과의 형상에 대비된 모든 실제 사과는 이러한 점에서 불완전하며, 잠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원소(四元素)로 구성된 지구에서 달에 이르기까지의 지상계를 불완전한 영역으로 여겼다. 오로지 에테르라는 제 5 원소로 구성된 천상계만이 신성이 구현된 완벽한 영역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천사의 질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제 5 원소라고 답할 것이다.

 

천사가 제 5 원소로 구성된 존재라면, 이것은 천사를 완전한 영적 존재, 곧 질료 없는 정신과 같은 것으로 가정하는 기독교 전통에 위배된다. 하지만 천사를 그런 존재로 가정하는 것은 전통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능(全能)한 창조주로 가정된 신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논쟁사의 결과이기도 하다. 중세의 아퀴나스(St. Th. Aquinas)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지상계를 불완전한 영역으로 간주했다. 이때 질료 없는 존재인 천사를 가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천사 또한 질료와 형상의 합성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지상의 인간이 존재 사슬의 정점에 위치한 신과 연결될 논리적 가능성이 배제된다. 즉, 인간과 신 사이에 틈새가 생기는 것이다. 이 경우, 구원(救援)은 의미를 읽게 된다. 결국 아퀴나스는 개별적인 대상의 형성과 존재 방식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확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도 물질과 형상의 합성으로 존재하는 까닭에, 그 영혼(soul)도 물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또 영혼이 사후 구원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그런데 기독교 전통에서는 인간의 영혼은 그러한 구원의 대상이며, 이를 위해 인간의 영혼은 파괴되지 않는 것으로 전제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과 달리 전능한 신이 인간의 영혼도 창조했다고 가정하면, 인간의 영혼은 물질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배제되지는 않는다. 천사는 그러한 가능성이 실재로 구현된 존재에 비유된다. 하지만 오로지 신만이 완벽한 존재인 까닭에, 천사가 존재 사슬에서 신과 대등한 위치를 점유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자체로 악(惡)한 것이 아니라 선(善)을 결여한, 혹은 선에서 벗어난 영적인 존재인 악마도 가정할 수 있게 된다. 르네상스 말기를 거쳐 인간을 천사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신 개념도 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인식으로 탄생한 실체적 이원론(substance dualism), 즉 인간을 물질과 마음이라는 두 실체의 합성으로 본 관점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퀴나스 등 중세의 지성인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