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봇의 ‘플랫랜드’를 읽고
정다은
Abbot, E.A.(1991), Flatland: A Romance of Many Dimensions, Princeton University.
‘플랫랜드’라는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19세기 말 영국의 성직자 애봇이 쓴 ‘플랫랜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애봇은 이 책에서 2차원적 평면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단순히 2차원 세계를 상상하고 묘사한 일종의 ‘판타지 소설’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애봇은 당시 영국 사회상을 풍자할 목적으로 이 소설을 썼다.
‘플랫랜드’에서 남성들은 다양한 형태의 다각형의 모습을, 여성은 선분 형태의 모습을 띠고 있다. 각 다각형 형태는 당시 남성들의 사회적 역할을 상징한다. 선분의 양 끝인 점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들로부터 스스로를 숨기거나 드러낼 수 있다. 심지어 선분의 양 끝으로 남성을 죽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평면 세계의 집에는 남성을 위한 출입구와 여성을 위한 출입구가 분리되어 있다. 여성을 선분으로 나타낸 애봇의 동기는 무엇일까? 당시 여성들이 시회에 진출하려면 남성을 이용해야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2차원 평면 세계에서 지적으로 가장 뛰어난 존재는 원이다. 원은 3차원 세계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 한다. 원은 3차원 세계의 구가 2차원 평면 세계에 투영되면 원의 그림자가 생김을 알아낸다. 또 그 크기는 구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낸다. 원은 다른 다각형들에게 3차원 세계의 존재를 알리려고 했으나, 이로 인해 오히려 감옥에 갇히고 만다.
이제 이 소설의 내용을 19세기 말 영국 사회에 접목시켜 보자. 다양한 형태의 다각형들은 당시 여러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던 남성들을, 그리고 원은 성직자를 나타낸다. 3차원 세계는 신이 존재한다고 여겨진 초월적 세계를 상징한다. 이 소설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세속화’라는 개념이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단일 종교는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지배할 수 없다.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세속화 과정이 진행 중이었고, 이와 더불어 신 존재에 대해 의심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성직자로서 애봇은 이렇게 변화하는 영국 사회에 대해 우려했다. ‘플랫랜드’에서 원은 3차원 세계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다가 감옥에 갇힌다. 이는 당시 많은 영국 사람들이 신 존재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성직자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세속화되어 가는 영국 사회에 대한 애봇의 불안감을 현재 우리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누구나 종교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으며, 하나의 단일 종교가 사회를 지배해야 사회가 안정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속화된 사회 상태는 종교가 사장된 사회 상태가 아니라, 종교의 지배력이 약화된 사회 상태를 뜻할 뿐이다. 따라서 세속화된 사회는 가치 체계가 다원화된 사회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는 가치 체계가 다원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애봇의 소설 속에 반영된 사회 구조는 현재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적용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애봇의 소설은 당시 영국 사회상을 잘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지난다. 또한 우리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가에 대해 고민할 때 참고할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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