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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제 간 연구 정신

착한왕 이상하 2012. 9. 6. 23:11

* 다음은 과거에 만들어 놓은 연구 계획을 다시 수정한 것이다. 지금 다시 이런 계획을 한다면, 그 내용이 많이 바뀔 것이다. 아마도 분자 생물학 형성 과정에 이어서 시스템 바이올로지 형성 과장 등도 다룰 것이다. 올린 글은 과거 계획의 내용을 크게 바꾸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다 올리는 이유는 이 연구 계획이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린 내용 중 '학제 간 연구에서의 다재다능함의 네 가지 유형' 등에는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국외 연구서나 연구 논문에서 발견의 그러한 심리적 도구를 가지고 과학의 발달 역사를 다룬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학제 간 연구 정신'에 대해서는 누군가는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다루어야 한다. 물론 지금 신문 방송에서 통합, 통섭 등을 떠드는 작자들은 연구 능력 결격자들이다.

 

 

 

학제 간 연구 정신

 

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수소 폭탄으로 대표되는 열핵 폭탄(thermonuclear bombs) 개발 과정을 주도한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 연구소가 현대 복잡계 이론(theory of complexity)의 선두 연구소로 바뀌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그 드라마는 원자 시대(atomic age)에서 컴퓨터 시대(computer age)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여러 종류의 과학 분과와 정치 및 사회의 온갖 현상이 혼합된 합성의 역사가 원자 시대에서 컴퓨터 시대로의 전환 과정이다. 그 전환 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한 폴란드 출신의 수학자 울람(S.M. Ulam)은 그의 전기 <한 수학자의 모험(Adventures of a Mathematician)>에서 다음과 같이 은유적으로 말한다.

 

“상호작용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적합성의 측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 짧은 언급 속에는 과학의 분과가 서로 얽혀서 역사적으로 공진화(co-evolution)를 한다는 울람의 관점이 함축되어 있다. 사실 현장 과학에 경험을 가진 대부분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관점이다. 이점은 여러 과학자의 전기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분명해 진다.

 

하나의 과학 분과의 위대한 많은 발견은 다른 분과나 분야와 무관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실례로 헬름홀츠(H. von Helmholtz)의 에너지 일원론은 개체 발생론(ontogeny)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또한 개체 발생 과정에 대한 수학적 서술 방식을 찾는 연구는 자동제어 이론 및 오늘날 컴퓨터 출현에 기여를 했다. 컴퓨터를 마음에 유비하는 사유 방식은 인지 과학에 혁명을 가져왔다. 19세기 말엽 오스트리아 비엔나(Vienna)의 의학 개념 중 하나인 ‘치료 허무주의(therapeutic nihilism)’는 예술계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다. 또한 프로이드에 대해 논하는 경우에도, 그가 추앙한 선생이 생리학자 브뤽케(E. Bruecke)라는 사실을 알고 정신 분석학을 논하는 것과 모르고 논하는 것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처럼 19세기 에너지 보존법칙, 곧 에너지가 다양한 형태의 변환 속에서 보존된다는 법칙의 역사적 발견 과정과 맞물린 개체 발생학은 컴퓨터의 출현뿐만 아니라 심리학사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과학사는 과학의 많은 위대한 발견이 개인 및 집단 차원의 학제 간 연구 정신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리 수학을 배울 때 학생들이 받는 인상은 물리학에 필요한 수학을 배운다는 것 혹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학의 응용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리 수학과 달리, 수리 물리학은 물리학의 수학적 기초론(mathematical foundation for physics)을 다루는 것을 중시하며, 이점은 바일(H. Weyl)의 양자역학의 군론(group theory of quantum mechanics)과 폰노이만(J. von Neumann)의 양자역학 형식주의 기초론 등에 반영되고 있다. 수리 물리학의 전통은 멀리는 다양한 물리계를 대수적으로 통합하는 해석적 방법론의 선구자인 해밀턴(W. Hamilton)에게까지 이른다. 물리 수학과 수리 물리학도 넓은 의미의 ‘응용 수학’에 속한다고 하는 경우, 응용 수학은 순수 수학의 단순한 응용이 아님이 분명해 진다. 공학 수학 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응용 수학은 학제 간 연구의 결과이다. 가상의 혹은 실제 패턴들을 분석하고 추상적으로 다루는 분과로 정의할 때, 응용 수학은 넓은 의미에서의 수학과 과학의 학제 간 연구 정신의 산물인 것이다. 학제 간 연구 정신은 과학의 다양한 분과들의 탄생과 진행 과정을 다룰 때 반드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이에 대해 무지하다. 이 나라 과학 교육 현실에는 과학의 학제 간 연구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배어 있지 않다. 따라서 과학의 학제 간 연구 정신에 대한 연구는 과학 교육에서도 중요하다.

 

과학의 학제 간 연구는 단순히 특정 분과들의 방법론들을 다양성을 인정하거나 통합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념들의 거래 및 합성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한 역사를 논하지 않고 물리 화학, 생화학, 사회 생물학, 분자 생물학 및 양자 전자기학 등의 역사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하지만 물리 화학, 생화학, 사회 생물학, 분자 생물학 및 양자 전자기학 등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개념들의 거래 및 합성의 역사가 갖는 중요성은 과학 교육의 수면에 떠오르지 못한 상태이며, 국외 국가도 이에 대핸 예외가 될 수 없다. 과학 정책들을 살펴보면, 한 과학 분과의 중요 개념이 그 분과에 갇혀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과학자의 발견은 다른 발견의 모방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다. 선대 학자의 많은 발견은 개인 및 집단 차원의 다재다능함(versatility)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발견을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하는 개념이 다른 분과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러한 지침서 개념을 얻은 과학자의 관심사는 여러 분과를 돌아다니게 된다. 제자들은 선생을 모방하는 가운데 암묵적으로 학제 간 연구 정신을 습득한다. 학제 간 연구 정신의 가장 큰 미덕은 새로운 탐구 대상을 만들어냄으로써 학풍을 산출하는 데 있다. 여기서 학풍이란 특정 관점 및 방법론 아래 문제를 풀어가는 학적 공동체의 지속력을 뜻한다. 학제 간 연구 정신이 여러 학풍을 산출한 사례는 19세기에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19세기 중엽 이후 20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과학의 발달은 자연에 대한 이해 방식을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실례로 진화론과 양자역학 등을 들 수 있다. 소위 ‘확률 혁명(probabilistic revolution)’으로 대표되는 세계관은 과거 결정론(determinism)이 갖는 한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과학의 분과 다양성을 산출시킨 원동력 중 하나였다. 컴퓨터 및 공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현대 과학은 분과들 사이의 거래 및 융합을 그 어느 때보다 촉진시켰고, 학제 간 연구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은 사회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19세기 학제 간 연구 정신이 20세기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직접 해당하지 않는다. 과학의 뿌리는 서양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타의에 의해 분단된 우리의 경우, 구한말 다양한 사상조차 현대에 자연스럽게 계승되지 못했다. 19세기 조선 학자들의 사상이 재조명받는 분위기도 최근에 들어서야 정착했다. 과학의 학제 간 연구 정신이 사회 개선을 위해 필요한 근거를 우리 역사 속에서 찾아내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왜 학제 간 연구 정신이 필요하며, 어떻게 학제 간 연구를 촉진시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통해 답해보아야 한다. 이때 중요한 물음은 다음과 같다.

 

가. 학제 간 연구의 미덕은 무엇인가?

나.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개인 및 집단 차원의 ‘심리적 도구’는 무엇인가?

다. 학제 간 연구를 여타 다른 학문 방법론과 구별시켜 주는 특성은 무엇인가?

라.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개인 및 집단 차원의 심리적 도구를 활용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마. 학제 간 연구 정신을 촉진하기 위해 그러한 조건들 중 무엇이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과학 교육 학제 및 정책은 과학의 학제 간 연구 정신을 촉진시킬 기반을 갖고 있는가?

 

위의 5개의 물음 중 가, 나, 다는 학제 간 연구 정신의 의미 및 규정 방식과 연관되며, 나머지 2개의 물음은 학제 간 연구 정신을 현실 세계에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과 연관된다.

 

 

2. 연구의 내용, 방법, 범위

 

 

첫째, 과학사의 구체적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학제 간 연구의 미덕이 새로운 탐구 대상을 만들어내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사례로 분자 생물학의 형성 과정, 열핵 폭탄 개발을 지휘한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가 복잡계 이론 연구소로 전환하는 과정 그리고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수십 명의 대가 과학자와 수학자를 산출한 오스트리아 비엔나 학풍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개인 및 집단 차원의 심리적 도구로서 다재다능함의 네 가지 유형을 밝힌다. 그 유형은 ‘가져오기’, ‘건너가기’, ‘수동적 상호작용’ 그리고 ‘능동적 상호작용’의 다재다능함이다.

 

셋째, 학제 간 연구 정신의 특성은 연속성, 창조성 그리고 다양성이다. 학제 간 연구 정신의 세 가지 특성은 과학 발달 자체가 유기적 분화 및 통합 과정임을 보여준다.

 

넷째,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개인 및 집단 차원의 다재다능함을 촉진하기 위한 조건과 사회적 기반에 대해 논한다. 연구 및 인적 자원의 확보에 있어서의 ‘자율성’, ‘지식의 공유’, ‘질적 관리’에 필요한 조건들을 논한다. 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기반이 학제 간 연구를 위한 필연적 토대는 아니다. 이점은 과학의 분과 다양성이 마련된 19세기 학제 간 연구 정신 속에서 반영된다. 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기반이 양적 관리에만 치중한다면, 이는 학제 간 연구를 가로 막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 양적 효율성에 근거한 중앙 집권적 관리 체제가 학제 간 연구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2차 대전 로스 알라모스 핵폭탄 개발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보인다.

 

다섯째,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조건들의 순위 매김을 해 본다. 이러한 순위 매김을 하는 데 보편적 기준은 없다. 우리의 현재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여 그러한 순위 매김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다섯 가지 논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연구 방법은 ‘과학적 발견 역사의 심리학적 탐구론(psychological exploration history of scientific discovery)’이다. 학제 간 연구 틀 내에서 과학적 발견을 다룬 기존의 방법은 주로 미시 사회학(micro-sociology) 혹은 거시 사회학(macro-sociology)의 관점에서 과학자 집단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방법은 서양 문화와 역사 속에서 학제 간 연구 정신의 의미를 분명하게 해주지만, 약점도 가지고 있다. 그 약점은 ‘서양 과학 발달 속의 학제 간 연구 정신’을 우리에게까지 일반화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과학 발견 역사의 심리학적 탐구론’은 두 가지 뼈대로 구성된다.

 

• 과학 발견의 역사를 개인 및 집단 차원에서 ‘개념의 주고받기와 합성 과정’ 속에서 분석한다.

•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개인 및 집단 차원에 부여될 수 있는 심리적 도구를 그러한 분석을 통해 찾아낸다.

 

과학 발견 역사의 심리적 탐구론은 특정 시대의 문화 속에서 과학적 발견과 학제 간 연구 정신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명히 해준다. 이를 보이기 위해 세 가지 사례를 분석할 것이다.

 

• 사회 경제적인 요인 등 과학적 발견 과정의 외적 요인들보다는 과학자의 관심이 이동하는 방식에 대한 분석에 근거해 분자 생물학의 형성 과정을 살펴본다.

• 정부 주도 아래 이루어진 학제 간 연구의 대표적 사례로서 로스 알라모스 열핵 폭탄 개발 과정을 살펴본다. 컴퓨터가 과학자의 도구가 된 이후,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가 복잡계 이론 연구소로 전환되는 예상치 못한 과정을 분석한다.

•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의 위대한 과학자와 수학자를 배출한 비엔나 학풍을 분석한다.

 

 

가. 20세기 분자 생물학의 형성 과정과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심리적 도구들

다재다능함은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 가능하다. 분자 생물학의 형성 과정은 많이 다루어졌다. 하지만 개념의 주고받기와 합성의 관점에서 그 형성 과정을 다룬 작업은 거의 없다. 분자 생물학의 형성 과정을 아래와 같이 해부한다.

 

(1)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열역학의 통계적 방법과 원자 개념이 멘델의 입자 유전 개념에 영향을 미친 것과 양자역학의 옹호자들이 돌연변이의 단위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사성을 밝힌다. 양자역학에서 보어의 대응원리(correspondence principle)를 비판한 포커(A.D. Fokker)의 역 대응원리가 분자 생물학의 토대를 닦은 델브뤽(M. Delbruek)에 영향을 끼친 과정을 개념적으로 분석한다.

 

(2) 진화론에서 유전학으로: 진화 유전학의 탄생

물리학의 기본 입자 개념은 생물학의 원자, 곧 유전자에 유비된다. 돌연변이의 단위로 취급되었던 유전자의 규명 과정은 멘델 유전학과 다윈 진화론 사이의 대립 관계를 붕괴시켰다. 이러한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한 진화론자 중 한 명은 도브잔스키(T. Dobzhansky)였다. 멘델주의자인 모르간(H. Morgan)과 뮬러(H. Mueller)의 초파리 실험은 도브잔스키 등에 의해 통계적으로 재해석되었고, 다윈의 자연선택 개념이 현대적으로 재조명받게 될 수 있었다.

 

(3) 생물학의 원자인 유전자를 찾으려는 공감대의 형성

진화유전학에 의해 멘델주의와 다윈 진화론 사이의 대립관계가 상쇄되자, 여러 분과의 과학자들 사이에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를 찾는 것은 분자적 수준에서 가능하다는 공감대였다. 통계학자, 생물학자, 화학자 그리고 물리학자들이 유전자를 찾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였다. 아베리(O. Avery)는 1943년 박테리아의 유전이 핵산구조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박테리아 파제의 핵산구조는 DNA로 명명되었다.

 

(4) 분자 생물학의 정착

박테리아의 유전과 DNA 사이의 관계는 불분명했다. 델브뤽과 루리아(Luria)의 새로운 통계적 방법은 박테리아 유전학을 급속도로 발달시켰으며, 1952년 DNA가 유전물질로 공식 인정되었다. 급기야 1953년 왓슨과 크리크에 의해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규명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분자 생물학의 개념이 과학자의 마음에 정착했고, 분자 생물학 자체가 과학자들에게 풀어야할 과제들을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전공학의 발달은 생명 공학의 발달로 이어졌고, 유전 문제는 훨씬 복잡해졌다.

 

분자 생물학의 형성 과정을 개념들의 거래와 합성 과정 속에서 바라 볼 때, 과학에 대한 국내 인문학자들의 잘못이 발견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과학 발달 과정이 수반하는 세계관의 변화에 무지하다. 인문학자들은 특정 세계관에 특정 과학을 가두기를 좋아하고, 급기야 과학에 대한 잘못된 그림을 대중에게 퍼뜨렸고, 자신들의 철학 속에서 과학을 비판했다. 실례로 19세기 혹은 20세기 초 과학자들이 강조한 환원적 방법론은 철학자들에 의해 ‘철학적 환원주의’로 확대 해석되었다. 생물학의 분자, 곧 유전자를 찾는 과정에서 탄생한 분자 생물학 자체는 다양한 세계관에 대해 열려 있다. 분자 생물학이나 화학이 인문학자들이 말하는 환원주의를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분자 생물학의 형성 과정을 인지 심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하나의 중요한 물음을 얻는다. 과연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개인 혹은 집단 차원의 심리적 도구는 무엇인가? 개념의 주고받기, 전환 그리고 합성을 위한 다재다능함이다. ‘단수 두뇌(single brain)’와 ‘복수 두뇌(multiple brains)’의 관점 속에서 개인 및 집단 차원의 다재다능함을 인지 심리학적으로 분석한다. 분자 생물학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그 형성 과정의 단계 (1)-(4)에 각각 해당하는 다재다능함의 네 가지 유형이 발견된다.

 

(1) 건너가기 유형(taking away type)

한 개인 혹은 집단이 자기 분과의 아이디어를 특정 관심사에 따라 다른 분과에 전이시키는 다재다능함의 유형이다. 멘델과 델브뤽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2) 가져오기 유형(bringing type)

한 개인 혹은 집단이 다른 분과의 아이디어를 특정 관심사에 따라 자기 분과로 가져오는 다재다능함의 유형이다. 진화 유전학의 탄생에서 도브잔스키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3) 능동적 상호 작용의 유형(active interactive type)

다양한 분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제의식에 의해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집단과 개인 사이의 상호 작용이 일어난다. 그러한 상호 작용에 의해 공감대를 형성한 문제 풀기의 여러 방법론이 개발된다. 능동적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새로운 분과의 정확한 규정 방식과 연구 제도가 정착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전 단위를 찾기 위해 델부뤽이 루리아와 함께 새로운 통계 함수를 개발해 나간 과정이 이에 대한 대표적 실례가 된다.

 

(4) 수동적 상호 작용의 유형(passive interactive type)

다양한 분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제가 풀리면서 새로운 분과의 정확한 규정 방식, 연구 방법론 및 제도가 정착된다. 과학자들의 상호 작용은 새로운 분과가 제공하는 문제와 방법론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수동적 상호 작용이 새로운 분과를 닫힌 체계로 만들지는 않는다. 어느 한계에 이르면 새로운 분과는 다른 분과의 탄생에 밑거름이 된다. 유전 기제의 물질로 DNA가 밝혀진 이후, 분자 차원에서 생물학의 원자를 찾으려는 문제의식은 분자 생물학의 규정 방식에 대한 요구를 낳았고, 분자 생물학은 현대 생명 공학이 탄생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현대 과학 철학의 경우 학제 간 연구에 의한 과학 발달 과정을 다루는 것은 도외시하였다. 네 가지 유형의 심리적 도구에 의한 학제 간 연구에 대한 분석은 과학 철학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현재 과학 철학의 경향과 달리, 학제 간 연구에 근거한 과학 발달에 대한 분석은 철학자들보다는 현장 과학자, 과학사가 그리고 심리학자에게 흥미 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 핵 시대에서 컴퓨터 시대로의 전환

새로운 사유와 탐구의 대상을 산출하는 학제 간 연구 정신의 세 특성은 연속성, 창조성 그리고 다양성이다. 이를 20세기 가장 다재다능한 수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울람의 사상적 발달 단계를 통해 보인다. 그 발달 단계는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핵 시대에서 컴퓨터 시대로의 전환 과정’을 보여준다. 핵 시대에서 컴퓨터 시대로의 전환은 두 가지 점에서 분자 생물학의 형성 과정과 다르다. 첫째, 과학자의 자발적 관심보다는 전쟁과 정치가 맞물린 시대적 상황이 학제 간 연구를 촉진했다. 하지만 전쟁에 의해 과학이 발달한다는 생각은 그릇된 것임을 보일 것이다. 둘째, 심리적 도구들뿐만 아니라 컴퓨터라는 기계적 도구가 다양한 방법론을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핵 시대에서 컴퓨터 시대로의 전환을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네 가지 심리적 도구들에 맞추어 재구성한다.

 

(1) 가져오기 유형의 사례로서 <스코티쉬 북(The Scottish Book)>의 출현

20세기 수학에서 적은 인구수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공헌을 한 곳으로 폴란드를 빼놓을 수 없다. 폴란드 학파의 수학은 물리학과 생물학 등 다른 분과에 기여했다. 현대 수학에서 타르스키(A. Tarski) 등으로 대표되는 바르샤바의 논리학파보다는 소도시 르뵈브(Lwów)를 중심으로 한 학파의 비중이 더 크다. 울람을 비롯해 바나흐(S. Banch), 쿠라토브스키(K. Kuratowski), 마쭈어(S. Mazur), 야니스쩨브스키(Z. Janiszewski), 칵쯔마르쯔(S. Kaczmarz) 등의 수학자들이 2차 대전 전까지 재정난에 허덕인 소도시 르뵈브에서 활약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2차 대전 중 살해당하거나 죽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20세기 수학사를 새로 썼어야 했을 것이다. 르뵈브 학풍의 특징은 탈권위주의로 대표된다. 교수와 신입생이 관심만 맞으면 단골 카페를 정해놓고 토론을 벌렸다. 이 와중에서 탄생한 책이 <스코티쉬 북>이다. 르뵈브 수학자들은 증명의 형식적 절차보다는 발견 과정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이 연구 모형으로 삼았던 수학자는 포앙카레나 그와 동시대를 산 폴란드 논리학파 이전의 바르샤바 수학자들이 아니었다. 그런 수학자들보다 이 전 시기를 살았던 시에르핀스키(W. Sierpinski)였다. 르뵈브 수학자들의 관심사는 심리학, 종교 그리고 특히 언어적 차이와 사고 및 문화적 차이의 연관성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다양한 관심사는 스코티쉬 카페 분위기 속에 녹아들었고, 미해결 문제와 수학의 발견 과정을 서술한 <스코티쉬 북>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래 공학을 전공한 울람은 수학을 ‘발견의 도구’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2) 수동적 상호작용 유형의 사례로서 로스 알라모스 원폭 개발

로스 알라모스 원폭 개발은 정부 주도 아래 수행된 학제 간 연구를 대표한다. 과학자들의 자발적 관심사의 이동에 의해 형성된 연구는 아니었던 것이다. 전쟁과 정치가 맞물린 시대적 상황에 의해 원폭 개발이라는 목적이 생겼다. 원폭 개발을 위해 로스 알라모스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자들이 모였다. 핵분열의 연쇄 반응 과정을 계산하기 위해 물리학자, 수학자 그리고 공학 기술자들이 모였다. 울람과 함께 세포 자동화 이론(theory of celluar automata)을 창시한 폰노이만(J. von Neumann)은 2차 대전 중 여러 수학자를 미국으로 초청했다. 물론 울람도 포함되었다. 폰노이만과의 인연은 울람으로하여금 로스 알라모스 원폭 개발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로스 알라모스 원폭 개발이 정부 주도아래 이루어졌지만, 과학자들에게는 평상시보다 더 큰 자율권이 보장되었다. 로스 알라모스 계획이 철저한 정부의 계획아래 수행되었다고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 그 계획은 과학자 집단의 자율적인 의사소통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점은 학제 간 연구를 제도화하는 데 많은 점을 시사한다.

 

(3) 건너가기 유형의 사례로서 몬테 카를로 방법(Monte Carlo method)의 탄생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소 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는 원폭에 이어 최초 열핵 폭탄인 수소폭탄 개발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러나 원폭과 달리 수폭 개발에는 두 가지 어려운 난제가 있었다. 엄청난 양의 중수소핵과 핵분열 때 얻어지는 중성자 수 때문에 핵폭탄 폭팔로 중수소 연료가 점화될지, 점화된 후 연쇄 반응이 지속되어 핵융합으로 전이될지 계산하기 어려웠다. 기존의 미분 방정식과 통계학으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울람과 물리학자 페르미(E. Fermi)의 공동 작업에 의해 해결되는데,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울람에 의해 새로이 제공된 충격파(wave shock) 아이디어는 열핵 폭탄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4) 능동적 상호작용의 새로운 유형의 사례로서 컴퓨터의 역할

수폭 개발 과정에서 흥미로운 발견은 몬테 카를로 방법이다. 통계학에서 무작위 수(random numbers)를 사용하는 몬테 카를로 방법의 응용은 생물학에서 여론조사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몬테 카를로 방법의 사용 속에 숨어 있는 울람의 수학적 관점은 <스코티쉬 북> 탄생에서 기인한다. 수학은 과학 및 다른 학문의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방법론을 개발하는 학문이다. 수학의 이론은 그러한 방법론 개발에 필요한 도구에 관한 메타과학(meta science)이다. 울람의 이러한 관점은 수학과 컴퓨터의 결합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수폭 개발 이후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를 지배한 문제의식은 없었다. 그 대신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슈퍼 컴퓨터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컴퓨터는 정치적 이념이 사라진 로스 알라모스를 유지한 결정적 매체였다. 에니악(ENIAC) 개발 이후 대학의 컴퓨터는 무작위 수로 주어진 복잡한 입력을 다룰 수 없었다. 그러한 입력을 다룰 수 있는 곳이 로스 알라모스였다. 그러한 입력에 바탕을 둔 통계 처리가 로스 알라모스에서 이루어졌고, 컴퓨터는 울람을 그곳에 머물게 했다. 로스 알라모스의 연구자들은 소집단별로 새로운 관심사에 따라 작업을 진행했다. 그들의 다양한 관심사는 컴퓨터라는 공학 기술의 도구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 과정에서 울람은 스타인(P. Stein)과 함께 초기 비선형 방정식을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결합시킴으로써 현대 복잡계 이론의 토대를 닦았다. 초기 비선형 방정식은 50년대 울람, 페르미 그리고 파스타(J. Pasta)의 질량 평형점 찾기에 관한 공동 연구에 기인한다. 멀리는 19세기 중엽 부정적으로 결론난 삼체문제가 현대 복잡계 이론의 기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컴퓨터에 의해 무정부주의적으로 지탱되던 로스 알라모스는 복잡계 이론 연구의 중심지로 다시 부활했다.

 

핵 시대에서 컴퓨터 시대로의 전환 과정은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첫째, 울람의 개인적 소신과 연구소의 역할이 중첩된 경우를 통해 학제 간 연구 정신의 좀 더 일반적 특성이 드러난다. 연속성, 창조성, 다양성이 그것이다.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와 수학에 대한 울람이 가진 관점의 지속은 핵 시대에서 컴퓨터 시대로의 전환에 필수적이었다. 그 전환 과정 속에서 몬테 카를로 방법이 창조되었으며, 로스 알라모스가 복잡계 이론 연구의 중심지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학제 간 연구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둘째, 그 과정은 학제 간 연구를 제도화하는 데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다.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 비엔나 학풍과 학제 간 연구의 제도화

용어 ‘학제 간 연구’가 일상어로 정착하기 전에도 학제 간 연구 정신은 과학의 발달 과정에 항상 내재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20세기 과학의 다양성은 ‘전통의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학제 간 연구 정신의 계승은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 비엔나 학풍 속에서 잘 드러난다. 2차 대전으로 단절된 그 학풍은 수십 명의 대가 과학자를 산출했다. 비엔나 학풍과 핵 시대에서 컴퓨터 시대로의 전환을 이끈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의 상호 비교는 학제 간 연구의 제도화에 필요한 여러 조건들을 암시한다. 꽤나 복잡한 비엔나 학풍을 ‘에너지 일원론 이아래 여러 분과가 거래 관계를 맺는 과정’에 근거해 다룬다.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다재다능함의 여러 유형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비엔나 학풍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1) 개체 발생론에서 물리학으로

현대 생리학의 창시자 중 한명이자 그 당시 낭만주의 의학(romantic medicine)의 비판자로서 뮬러(J. Mueller)를 들 수 있다. 뮬러의 학문 전개 과정은 개체 발생론에서 시작했다. 지각 경험(perceptual experience)과 신경계 사이의 관계가 뮬러의 주요 관심사 중에 하나였다. 뮬러는 신경절에 특수한 에너지를 부여했다. 이러한 가정은 정신 현상을 자연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현대 에너지 보존법칙의 발견자인 헬름홀츠는 뮬러의 제자였다. 전자기학의 초기 형태인 갈바니즘으로부터 헬름홀츠는 에너지 일원론의 이념을 받아들였다. 자연의 과정은 에너지가 여러 형태로 변환되는 과정이며, 전체 에너지는 변환 과정 속에서 보존된다. 마이어(R. Mayer)에 기원을 둔 이러한 사변적인 에너지 일원론의 이념을 수식적으로 규정한 인물이 헬름홀츠였다. 헬름홀츠는 에너지 일원론을 생리학, 음악, 생물학 등을 통합하는 원리로 사용하였다. 학문 분과의 통합 원리로서 에너지 일원론 이념을 사용하는 대륙의 풍토는 고전 전자기학의 맥스웰과의 갈등을 낳기도 했다. 헬름홀츠와 맥스웰 사이에 30년 논쟁이 이어졌다. 그 논쟁은 열역학(thermodynamics)과 열 운동학(kinematic theory of heat) 사이의 미묘한 차이에 관한 것이었으며, 대륙의 연구 풍토는 열 운동학에 동조한 볼츠만(L. Boltzmann)의 자살의 원인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2) 학제 간 연구의 창조물로서 정신 분석학

뮬러의 또 다른 제자들인 비르코우(R. Virchow), 보이스레이몬드(E. Bois-Reymond) 등은 오스트리아 의학 및 생리학의 학제 간 정신의 뿌리가 된다. 레이몬드의 직계 제자인 브뤽케는 프로이트의 5대 선생 중 한 명이었다.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의 본모습은 의학과 다양한 과학 분과 그리고 매조키즘의 기원인 소설가 자허매조흐(Sacher-Masoch) 사상을 합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개인이지만 그의 정신분석학은 학제 간 연구의 창조물인 셈이다. 뮬러의 영향력이 브뤽케를 통해 프로이트에게 전파된 사실은 정신 분석학의 형성에 있어서 에너지 보존법칙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정신 분석학의 또 다른 줄기는 진화론이다. 이러한 점에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을 단순한 심리학의 한 분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에너지 일원론이 논리적으로 실증주의와 마찰할 이유는 없다. 그 당시 입장에서 볼 때 새로운 에너지의 형태로서 정신 에너지의 가설은 정신 현상을 자연의 산물로 보겠다는 것이다. 정신 에너지 가설에 의해 정신병을 심리적 원인을 밝힘으로써 고칠 수 있다는 프로이트의 신념은 현대에 와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프로이트 당시 분위기에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을 분석하는 경우, 그의 정신 분석학을 그저 신비주의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3) 오스트리아 학풍의 붕괴와 에너지 일원론과 실증주의의 대립

개념의 변천사를 깊게 살펴본 이는 현재 교과서의 내용과 달리 과거 경험론과 관념론 둘 다 같은 실체적 이원론 뿌리에 근거하며 공존했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너지 일원론을 학문 분과의 통합 원리로 여겼던 오스트리아의 풍토 속에서, 실증주의와 자연주의가 공존했다. 에너지 일원론의 이념 자체가 실증주의와 모순 관계를 맺을 이유는 없었다. 이점은 마흐(E. Mach)에게서 엿볼 수 있다. 모든 이원론의 뿌리를 과학에서 제거하려고 했던 마흐에게 끼친 에너지 일원론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현재 마흐에 관한 대 다수의 연구 작업은 이점을 망각하고 있다. 마흐를 실증주의와 연관시킬 때 에너지 일원론을 빼고 생각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논리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의 아버지로서 마흐, 에너지 일원론은 실증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형이상학적 과잉 요소, 실증주의는 물리주의(physicalism)와만 양립 가능하다는 설들이 나온다. 마흐를 둘러싼 이러한 설들은 실제 정설이 아니다. 마흐만큼 복잡한 사상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에너지 일원론의 영향 아래 물리학이 아닌 생리학을 분과 통합의 기반으로 택했다. 물리학을 통합의 기반으로 택한 인물은 오히려 헬름홀츠였다. 마흐가 생리학을 통합 기반으로 택할 여지는 뮬러 이후 오스트리아 학풍에 잠재되어 있었다. 마흐는 생리학을 분과 통합의 기반으로 택함으로써 실증주의와 인상주의(impressionism) 사이에 갈등을 와해시키려고 했다. 마흐에게 물리학은 감각 현상을 통합 서술하는 학문이지 물질이라는 실체의 속성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 하지만 감각 현상은 어디까지나 생리적 작용이기 때문에, 에너지 일원론에 바탕을 둔 마흐의 사상은 실증주의와 자연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 논리 실증주의의 전신은 물리학자로서 철학과 교수가 된 슐릭(M. Schlick)이 조직한 ‘화요일 모임’이었다. 그 모임은 마흐 학회로 불리게 되었고, 후에 노이라트에 의해 비엔나 서클(Vienna circle)로 명명되었다. 쉴릭이 도덕론에서 물리주의를 반대했다는 사실은 비엔나 서클의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한다. 2차 대전 이후 비엔나 서클의 일부 관심사가 미국에 전해졌고, 논리 실증주의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는 2차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학풍이 붕괴되었음을 암시한다.

 

오스트리아 학풍의 과학자처럼 현대 과학자 다수가 다재다능하기는 힘들다. 과학의 다양성과 전문성으로 인해 한 명의 과학자에게서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다재다능함의 모든 유형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가 복잡계 연구소로 변화한 과정 및 오스트리아 학풍이 수많은 천재를 배출한 과정 사이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때 학제 간 연구의 제도화 및 활성화에 필요한 조건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1) 자율성(autonomy)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와 오스트리아 학풍을 관통하는 제도는 ‘매우 특이한 관료제’였다.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은 로스 알라모스 과학자들에게 오히려 최대한 자율권을 행사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정치적 이념에 대항하지 않는다면 과학자의 그 어떠한 의견도 존중되었다. 다민족,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오스트리아 사회에서의 관료제는 대학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었다. 교수 임용에서 분과의 정확한 경계조차 없었다. 비엔나 대학에서 마흐를 끌어올 때 ‘귀납과학의 역사와 이론(History and Theories for Inductive Science)’이라는 특수 학과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예는 오스트리아 학풍에서 자주 발견된다. 집단의 관심 이동은 자유로웠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과학자들의 결속력은 강했다.

 

(2) 지식의 공유(knowledge sharing)

로스 알라모스 과학자들은 서로의 지식을 공유했다. 50년 대 이후 지식의 공유는 컴퓨터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다. 그러나 과학자 사이의 지식의 공유는 여전히 직접적인 대화와 서신 교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울람의 경우, 수천 통의 편지가 이를 반영한다. 오스트리아 학풍의 경우, 사제 간 그리고 관심사에 따른 학자 간의 대화가 원활했다. 은폐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없는 분위기였다. 폴란드 르뵈브 수학 학파의 경우, 카페가 발견의 장소가 된 일이 많았다.

 

(3) 질적 관리(qualitative administration)

자율성과 지식의 공유는 질적 관리를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현대 사회에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점수 매기기 따위의 양적 관리는 거의 없었다. 토론을 통해 상대편의 진정한 실력이 드러났고, 새로운 제안과 발견이 다른 무엇보다도 존중되었다. 수 백편의 논문보다는 한 개의 중요한 발견이 과학자의 교수 및 연구원 임용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평가 방식은 임용 기관에 의해 결정되었다.

 

모든 면에서 양적으로 팽창한 현대 사회에서 자율성, 지식의 공유 그리고 질적 관리가 과거처럼 구성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세 조건이 양적 관리와 효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배제된다면, 학제 간 연구는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는 경우, 가끔은 특출한 인물은 나오겠지만 연속적인 발견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학풍은 서지 않는다. 진정한 학제 간 연구의 정신이야말로 새로운 발견과 합성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율성, 지식의 공유, 질적 관리로 대표되는 학제 간 연구의 제도화 조건과 양적 관리 및 효율성 사이의 ‘균형 잡기’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한 균형 잡기를 위해 우리 중 누군가는 과연 무엇이 진정한 학제 간 연구를 가로막고 있는지 고려해보아야 한다.

 

 

 

* 이런 일에 많은 시간을 낼 수 없는 처지라 여기서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