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시도하러 마포 대교를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신부 P는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마포 대교에서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자욱한 새벽안개 속으로 신부의 눈에 한 청년의 모습이 들어 왔다. 신부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청년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제 발랄하고 건강미 넘치는 젊은 여자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여자는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나오다가 좁은 도로에 진입하던 관광버스와 충돌했다. 충돌 당시 충격으로 관광버스 앞 유리는 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쓰러진 여자의 귀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얼굴 모습은 너무나 평온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 삶의 끝이었다.
P는 청년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으로 자살을 결심하셨군요.”
“아뇨, 그 여자는 생전 처음 본 여자입니다.”
“그런데 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지요?”
“나의 죽음을 진정 나의 삶의 결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에요.”
청년이 자살을 결심한 동기는 이러했다. 그 여자는 누구를 만나기 위한 혹은 어디를 가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자전거는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또 관광버스 운전사도 특정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으며, 운전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삶은 이렇듯 사소한 것에서부터 원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목적과 수단의 관계들로 꽉 차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목적은 또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생물학과 물리학의 지식으로는 단지 그녀가 죽은 원인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기에, 그러한 지식에 근거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언젠가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죽음이 과연 그 누구의 죽음일까?
삶의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비추어 죽음을 바라보는 경우, 죽음은 그러한 관계와는 무관한 것이다. 그 여자는 그렇게 뜻하지 않은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그 운전사는 그녀를 죽일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삶과 비교해 죽음은 우연적인 사건이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그녀의 죽음’은 그 여자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일 뿐, 그 여자의 삶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 죽음은 그녀의 삶의 결과가 아니다.
“순간 저는 깨달았죠, ‘죽음을 나의 삶의 결과로 만들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의 죽음은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의 죽음으로 만드는 것’을 삶의 최고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신부 P는 청년의 냉소적인 미소 앞에서 무기력해졌다. ‘삶의 가치’, ‘생명의 고귀함’과 같이 평소 그의 입에 붙어 다니던 말은 입속의 혀에 말려 버렸다. 그리고 그 청년은 P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P는 윗옷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녹음기를 꺼냈다. 자살하려고 한 사람과의 대화를 녹음한 것을 ‘자살 방지 위원회’에 보내곤 했다. 그 녹음테이프를 ‘자살 기록’이라 불렀다. 자살 기록들을 분석해 유사한 자살 사례를 막아 보겠다는 것이 P의 목적이었다. 신부 P는 녹음기에 기록된 청년과의 대화를 삭제했다. 그리고 녹음기를 강물에 던졌다.
P는 결심했다.
“더 이상 ‘삶의 가치’, ‘생명의 고귀함’과 같은 말로 자살하려는 사람을 설득하지 않으리라.”
P는 그런 말없이도 자살하려는 대부분 사람들의 자살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수사법을 청년으로부터 얻었기 때문이다.
[퀴즈] 그 수사법은 무엇인가? 그 수사법을 성경 구절처럼 써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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