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잡세상 잡글

트윗 단상: 결정론

착한왕 이상하 2012. 10. 14. 01:24

* [트윗 단상]은 트윗에 올린 단상들을 간단히 정리하여 모아 놓은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글은 단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체적이지 않고, 이해에 필요한 많은 정보가 누락되어 있음을 밝혀둔다.

 

결정론

 

지난 번 볼츠만에 대한 트윗에서 결정론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결정론에 대해서도 조금 지껄여 본다. '지껄인다'다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결정론을 명확히 정확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결정론과 연관성을 갖는 개념들로 운명론, 인과적 닫힘 등의 개념 등이 있다. 이러한 개념들이 가급적 명확히 구분되도록 결정론을 정의하기 어려울 뿐더러, 여러 과학 이론 및 인과 관계의 분석에 따라 '결정론'이라는 표현에는 어떤 수식이 붙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결정론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라플라스이다. 라플라스하면 떠 오르는 것이 '라플라스의 악마'이다.

 

우주 전체의 한 상태를 알 수 있는 악마가 있다면, 그 악마는 우주의 과거나 미래의 모든 상태에 대해 알 수 있다. 이러한 라플라스의 악마를 과학자로 대체해 재해석한 인물은 K. 포퍼(The Open Universe, 1982)였다. 그런데 결정론에 대한 라플라스와 포퍼의 설명 방식은 인식론적이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예측 가능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결정론의 정의 방식에서 인식론적 색채를 제거하는 존재론적 정의 방식이 대두되었다.

 

B. 러셀("Determinism and Physics", 1936) 이후, 미국의 분석 철학에서는 가능 세계 의미론에 근거한 결정론의 엄밀한 정의 방식 찾기가 유행했다. 대표적으로 R. Montague("Deterministic Thories", 1974)의 작업을 들 수 있다. 그러한 작업에서 이끌어낸 라플라스적 결정론에 대한 가능 세계 의미론적 정의 방식의 기본 아이디어는 대충 다음과 같다.

 

(LD) 모든 가능 세계 w들의 집합을 W라고 할 때,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w는 라플라스적 의미에서 결정론적이다.
(*) 주어진 시간 t에 대해 w와 w'가 일치한다면, 그 둘은 임의의 시간에 대해서도 일치한다.

 

(LD)는 가능 세계 의미론에 근거해 라플라스의 악마 이야기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결정론에 대한 규정 방식이다. '라프라스적 의미에서 결정론적인 세계는 한 주어진 상태를 기준으로 서로 상이한 과거나 미래의 상태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직관'이 깔려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직관이 굳이 (LD) 방식의 가능 세계에 근거해야 하는지는 의문시된다. 이러한 의문은 가능 세계 의미론에서의 동일성 문제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정당화되기 때문에 여기서 논할 것은 못 된다.

 

아무튼 가능 세계의 주어진 혹은 초기 상태의 규정 방식,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핵식 방식에 따라 결정론의 정의 방식은 세분화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뉴턴적 결정론, 상대론적 결정론, 시간적 결정론, 역사적 결정론, 인과적 결정론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확하게는 '뉴턴 역학에 대한 결정론적 해석 방식'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

 

라플라스로 돌아가 그의 악마는 뉴턴 역학에 대한 결정론적 해석이 옳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결과다. 즉, 라플라스의 악마가 등장하는 부분은 몇몇 철학자의 주장과 달리 결정론에 대한 정의 방식이 아니다. '이러이러한 결정론에 대한 인식론적 기준'이라고 해야 옳다.

 

라플라스의 결정론은 우주 전체의 인과적 닫힘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의심은 18세기 말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생물 현상을 라플라스가 기대고 있는 물리학에만 의거해 설명하기 힘들다는 동기가 당시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모든 자연 현상은 사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로만 설명 가능할까? 결정론이 반드시 인과적 닫힘을 전제할까? 맥스웰에게서 이러한 질문을 찾아볼 수 있다.

 

결정론에 대한 연구는 많이 쌓여 있다. 결정론을 다룬 훌륭한 대중서나 입문서는 분석철학 진영의 가능세계론 등에 근거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준칙에 따른 책이 실제 과학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또한 결정론에 대한 더욱 직관적이고 풍부한 사고의 지평을 열어 줄 것이다.

 

우주에 대한 각 결정론적 해석에 대한 인식론적 기준으로서의 '악마'들을 만들라. 각 악마의 특징에 따라 각 결정론을 설명하라.

 

개인적으로 라플라스나 포퍼가 결정론과 예측 가능성을 혼돈하고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이 원한 것은 특정 과학 이론에 대한 결정론적 해석 방식이었지, 그 해석 방식을 넘어 추상화된 형식으로서의 결정론에 대한 정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