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 정부 합동 분양소?
이 번 끔찍한 재난은 정부의 무능력뿐만 아니라 시민을 안중에도 없는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오늘 신문 기사에 나온 다음 사진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출처: 노컷뉴스>
신문 기사 내용보다 사진의 문구가 더 어이 없었다. 간접 혹은 대의 민주제에서 정부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국민의 권력을 대리하는 권력기구이다. 하지만 실상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간접 민주제는 '별도의 정치가들 계층에 의한 정치'를 표방하는 정치 체제 중 하나일 뿐이다. 정치가들도 사익을 무시할 수 없는 개인들이기 때문에, '정부의 권위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정치 세력의 기득권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 대한 끊임 없는 시민의 감시와 저항은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민주주의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정부는 사람들을 특정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위하도록 해 주는 힘을 갖고 있다. 시민은 '우리 정부는 항상 시민을 위한다'는 '여론몰이'의 가면 뒤의 정부의 실제 모습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의 발표가 어디까지 진심인지를 놓고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민주주의 이념을 그대로 실천하는 정부는 지구상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어느 정도 분별력을 갖춘 개인들로 구성된 경우라면, '세월호 사고 정부 합동 분양소'와 같은 문구는 절대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만약 그러한 사용이 정부의 합법적인 권위 아래 허용되는 것이라면, '정부가 주도하고 재원을 충당한 일'에 대해서는 '정부 ...일'과 같은 명칭이 붙어도 된다. 정부가 계획한 고속도로에 대해서는 '정부 몇 호 고속도로"와 같은 명칭이 붙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계획은 정부 구성원들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것이고, 그 계획에 필요한 재원은 시민들이 낸 세금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정부 몇 호 고속도로'와 같은 명칭은 지구상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주도하고 재원을 댔다고, 세월호 참사로 숨진 고인들을 기리기 위한 분양소에 '세월호 사고 정부 합동분양소'라는 명칭이 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재원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세금에서 나온 것이다. 또 합동 분양소는 시민들이 고인들의 넋을 기릴 목적으로 설치된 장소이다. 분별력 있는 정부라면, '... 시민 합동 분양소'라는 문구를 사용했을 것이다.
물론 특정 행정 조직이 정부와 무관하게 '세월호 사고 정부 합동 분양소'라는 문구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 상황은 더욱 나쁘다. 행정 조직조차 정부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긴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 정부 합동 분양소!
도대체 어떻게 이따위 문구가 끔찍한 참사로 숨진 고인들을 기리기 위한 분양소에 떡 하니 붙을 수 있단 말인가? 합동 분양소에 그러한 문구를 붙이는 정부는 시민을 안중에도 없는 집단이다. 시민을 안중에도 없는 집단은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도 도외시한다. 그런 집단에게는 세력 확장 및 유지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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