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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문계 논술 수리 추리 문제의 성격: 주의 사항

착한왕 이상하 2013. 1. 10. 19:42

* 다음 자료를 저자 이상하의 허락 없이 변형하여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

 

고대 인문계 논술 수리 추리 문제에서는 ‘대소 관계’나 ‘빼기’가 중요

 

인문계 논술에서도 소위 ‘파이널 시즌’이 다가오면, 학원에서 수학 강사를 불러다 ‘인문계 학생을 위한 수리 논술 강좌’를 개설해 학생들을 유혹한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세 가지 맹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제시문 내용과 연계해 답안을 작성하는 요령을 학생들이 익히기 힘들다. 둘째, 인문계 논술에서 수리 추리 문제가 당락을 결정짓는 학교는 극소수이다. 실례로 고려대학교를 들 수 있다. 셋째, 고대 인문계 논술 수리 추리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수학 지식은 중 3 정도의 것을 요구한다.

 

고려대학교 인문계 논술 수리 추리 문제는 주로 증감의 관계를 묻기 때문에, 대소 관계의 이행성 조건과 같은 것을 따지거나, 아니면 두 항(term)을 비교해 답을 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어느 경우에나 문제 해결 과정이 제시문의 내용과 연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훈련 자료들은 입시에 매몰된 현 상황을 고려해 여기에 공개할 수 없다. 다만 2007년 논술 수리 추리 문제만 사례를 들어, 앞서 언급한 것이 중요한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 다음 수리 추리 문제의 제시문은 종종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표현되는 공리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제시문을 보면, ‘A가 B보다 사회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는 행위라면 A를 행해야 한다’는 고전적 공리주의의 원칙이 제시되어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다음 수리 추리 문제를 살펴보자.

 

<제시문 라>

고전적 공리주의를 소개한 내용으로 생략한다. 더욱이 그 내용은 마치 고전적 공리주의가 고통이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전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고전적 공리주의에 대한 올바른 서술 방식이 아니다. 고전적 공리주의가 이기주의에 대비되어 논쟁될 여지를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러한 서술 방식의 이타성을 전제하는 입장은 아니다. 이는 구글 등을 통해 고전적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act utilitarianism’을 검색해 조사해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

 

[논제] 정부가 제시문 (라)의 관점을 취할 경우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는가에 대하여 논술하시오.

 

선진국에서 개발되는 신약들은 장기간의 연구와 천문학적인 비용의 투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임상 실험의 마지막 단계는 비용의 효율적인 절감을 이유로 개발도상국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위약(僞藥)의 투여나 국제 협약의 무시 등 비도덕적인 행위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개발된 신약이 개발도상국에서 판매될 때에는 선진국 수준의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정작 개발도상국 국민들은 실제적인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의 무역 관련 지적 재산권 협정 제 31조는 국가 비상사태, 극도의 긴급 상황 또는 공공의 비상업적 사용을 전제로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특허 대상의 생산 및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이 규정에 기초하여 개발도상국 정부 또는 정부의 승인을 받은 제삼자(제약 회사)는 특허에 의해 보호되는 신약을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생산 판매할 수 있다. 그래서 개발도상국에서는 강제 실시권을 발동하고 복제 약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이때 개발도상국 정부는 자국에서 복제 약을 개발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 예상 가격을 알아보고 다국적 기업과 다시 가격 협상을 한 다음에 강제실시권의 발동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 다음은 어느 개발도상국에서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대처 상황을 가정해 본 것이다. 전염병은 두 도시 A와 B의 도심에서 동시에 발생하여 모든 방향으로 일정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A도시는 B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많고 인구밀도가 높다. 한 다국적 제약 회사에서 개발한 신약을 이용하면 이 전염병 환자의 80%가 치료된다. 하지만 신약의 값이 비싸기 때문에 그 개발도상국에서는 강제 실시권을 발동하여 치료율은 30%로 낮지만 가격이 싼 복제 약을 공급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A와 B도시 사람들의 신약과 복제 약 구매 가능성을 조사해서 다음의 결과를 얻었다. (2007년 고려대학교 수시)

 

<자료 1> 도시별 환자 집단의 구매력 현황

 

신약을 살 수 있는 환자

어느 약도 살 수 없는 환자

A도시

10%

10%

B도시

50%

0%

* 구매력이 있는 경우 신약을 산다.


그런데 다국적 제약 회사는, 복제 약의 가격을 높게 책정하면 신약의 가격을 낮추겠다는 조건으로 협상을 제안하면서 협상안 수용 시 예상되는 상황에 대하여 다음의 자료를 제시하였다.


<자료 2> 도시별 환자 집단의 구매력 현황

 

 

신약을 살 수 있는 환자

어느 약도 살 수 없는 환자

A도시

20%

30%

B도시

70%

0%

* 구매력이 있는 경우 신약을 산다.

 

 

메가스터디를 비롯한 대형 학원이나 시중 학원은 대학의 예시 답안을 활용해 자료를 만든다. 사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매년 대교협에서 내놓는 ‘논술 가이드 자료’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러한 자료는 모범 답안으로는 너무나 불충분하다. 위 수리 추리 문제와 관련해 시중에 도는 예시 답안을 보자.

 

A, B 도시의 환자 수를 각각 a, b라고 하자. 위의 표를 이용해서 협상 전 각 도시의 예상 치료 환자 수를 구하면 A도시는 a×0.1×0.8+a×0.8×0.3=0.32a 명이고, B도시는 b×0.5×0.8+b×0.5×0.3=0.55b 이다. 그리고 협상 후 각 도시의 예상 치료 환자 수는 각각 a×0.2×0.8 + a×0.5×0.3 = 0.31a 와 b×0.7×0.8 + b×0.3×0.3 = 0.65b 임을 알 수 있다. 협상 과정을 통해 A도시의 경우 0.01a 만큼 줄어들고, B도시의 경우 0.1b 만큼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전체의 입장에서 정부는 최대의 이익, 즉 치료되는 환자 수가 많은 쪽을 택해야 하므로 다국적기업의 수익 내지는 전체 국가 차원에서의 지출은 고려하지 않고 협상 전/후 치료되는 환자 수 변화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치료되는 총 환자 수 변화 (.0.01a + 0.1b) 가 양수가 되어야 하므로 a < 10b 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A도시가 인구밀도가 높고 빈곤층이 많아 협상 후 치료되는 환자의 수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두 도시를 모두 고려해야 하므로 A도시의 환자수가 B도시의 환자수의 열 배에 이르지 않는다면 협상을 받아들일 것이다.

 

위 예시 답안은 두 가지 약점을 갖고 있다. 첫째, 위 예시 답안은 제시문의 공리주의 관점과 잘 연계되어 구성되어 있지 않다. 학생이 답안 작성에서 ‘공리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둘째, 수학적으로 푸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이러한 두 약점을 보완한 답안은 어떤 것일까? 다음 문제를 풀어 보자.

 

 

5. 다음 답안의 빈 칸을 채워 본다면?

 

• 누구나 질병으로 인한 (    )을 피하려고 한다. 따라서 두 도시만을 고려하는 경우, 제시문의 ‘사회 전체의 행복’은 두 도시의 질병 치료율에 해당한다. 해당 국가의 정부는 다국적 기업의 협상안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협상 (    ) 상황을 나타낸 <자료 1>은 다국적 기업의 협상안을 (    )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    )는 다국적 기업의 협상안을 수용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때 협상안을 (    )해야 하는 경우는 <자료 2>의 두 도시 전체 치료율이 <지료 1>의 전체 치료율보다 커야 한다. 따라서 먼저 각 자료의 (    ) 치료율을 구해야 한다.


A 도시의 환자수를 a, B 도시의 환자수를 b라고 할 때, <자료 1>의 두 도시 전체 치료 환자수는 ‘(A도시 치료율×a+B도시 치료율×b)/전체 환자수’이다. 따라서 <자료 1>의 두 도시 전체 치료 환자수는 ‘(32a/100+55b/100)/(a+b)’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료 2>의 두 도시 전체 치료 환자수를 구해 보면, ‘(                                         )’이다. 이때 정부가 다국적 기업의 협상안을 수용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32a/100+55b/100)/(a+b)<(                                     )이므로, a<10b

 

따라서 A 도시의 환자수가 B 도시 환자수의 열 배와 같거나 넘지 않는다면, 정부는 다국적 기업의 협상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 협상안을 받아들이는 경우, 다수가 빈민층인 A 도시의 치료율은 오리려 감소한다. 즉,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수가 A 도시에서는 오히려 증가한다. 이는 제시문의 관점이 갖고 있는 한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해당 국가의 정부가 빈민층을 고려한 정책을 펼칠 때 무조건 제시문의 관점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중에 도는 예시 답안과 위 답안을 비교해 보자.

 

• 첫째, 시중에 도는 예시 답안보다 위 답안이 원래 주어진 제시문의 관점, 즉 고전적 공리주의의 관점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예시 답안에 나온 ‘국가 차원에서 지출은 ...’이라는 부분을 빼먹은 상태에서도 위 답안이 제시문과 더 잘 연계된 것이다. 논술 강사들은 현행 논술이 ‘분석형 글쓰기’를 요구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쌍끌이 방식의 글쓰기’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쌍끌이 어선은 고기의 크기나 성장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치밀한 그물로 고기를 막 잡는 배를 뜻한다. 글쓰기를 그러한 쌍끌이 어선에 비유할 때, ‘국가 차원에서 지출은 ...’와 같은 조건을 답안에 집어넣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빼먹어도, 제시문의 내용과 연계되어 구성된 답이 훨씬 좋게 평가된다는 사실을 수험생들은 명심해야 한다.

 

• 둘째, 시중에 도는 예시 답안보다 ‘a<10b’이 나오는 과정이 수학적으로 훨씬 명료하다. 고려대 논술 수리 추리 문제를 해결할 때 항상 ‘대소 관계’나, 그 관계를 처리하기 위한 연산 기법인 ‘빼기’에 주의하여 가급적 쉽게, 그리고 절차를 줄여 증명 과정을 처리해야 한다. 이것은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적 증명 과정’을 맛본 학생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 셋째, 위 답안에서 시중에 도는 예시 답안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밑줄 친 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그 부분은 논제가 요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간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 사람이 만약 논술 강사라면, 원래 주어진 <제시문 라>에 함축된 공리주의에 대해 무지하다. 밑줄 친 부분은 논제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어진 제시문을 바탕으로 논제의 자료를 분석하는 경우, 이를 근거로 이끌어낼 수 있는 타당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만약 밑줄 친 부분이 필요 없도록 논제가 구성되었다면, <자료 2>에서 A 도시의 치료율도 증가해야 마땅했다. 원래 <제시문 라>를 보면, 사회 정의를 언급하면서 고전적 공리주의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공리주의가 갖는 문제점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에 비추어 논제의 두 자료를 비교해야 한다. 다국적 기업의 협상안을 수용하는 경우, 빈민층이 다수인 A 도시 환자수는 오히려 늘어난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밑줄 친 부분과 같은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타당하다. 특히 이러한 점은 서울대 구술 면접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상당수 구술 문제가 주어진 제시문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을 찾아보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넷째, 재작년부터 논술 제시문이 쉬워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제시문이 쉬울수록 글은 더 잘 써야 한다. 또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자기 생각을 써 보게 하거나, 살펴본 논제처럼 제시문과 자료를 비교하여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올해 논술을 준비하는 사람은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자료 해석이 등장하는 논제들을 살펴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제시문을 바탕으로 더 말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단서들을 자료 속에 숨겨 놓고 있다. 그러한 단서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고민하면서 써보는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고려대 때문에 인문계 학생도 수리 추리 영역을 별도로 준비해야 할까? 그 대학 현행 출제 경향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그러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준비를 위해 미리 서두르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한 준비는 시의적절할 때 하면 된다. 더욱이 2013년 논술 문제들과 올해 나올 대학 당국의 발표를 기다려 전략을 짜야 한다. 따라서 그러한 발표가 나온 후 준비를 해도 늦지 않다. 이 때문에, 수리 추리 훈련과 관련된 일련의 문제들, 주로 대소 관계나 변곡점 찾는 문제들은 뺀다. 그리고 여기에 그런 문제들을 올릴 수도 없다. 당장 학생들을 이용해 돈 벌이에 눈먼 자들의 ‘밥’이 되기 때문이다.

 

 

* 덧글

최근 고려대는 그 위상이 약해진다면서 긴급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하기야 논술 문제들을 보니, 내가 자식이 있다면 그 대학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도 그 학교 출신이지만, 문제들 수준이 난이도 높낮이를 떠나 너무나 조잡하다. 솔직히 고대를 포함한 대학들 논술 문제를 볼 때마다, 이런 식의 문제가 ‘구성력 평가’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라는 의심이 든다. 고대의 경우, 대학 당국의 예시 답안 발표도 성대 등에 비해 떨어진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대학의 평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해당 대학 운영진은 고려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때문에 인문계 논술 문제나 수리 논술 등을 다루지만, 그때마다 이 땅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통감한다. 콘텐츠 부재의 학제, 교육 정책가와 대학 당국의 무능력, 입시에 매몰되어 시험이 끝난 후 일주일 내내 등급을 말하는 학생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 미래는 불 보듯 명백한 것 아닌가? 이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접어든 학생이 아니라면 현행 논술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아무리 현실이 이 모양일지라도, 인재를 키워 보려는 노력은 이 땅의 어느 한 구석에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