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가상의 정치적 실험 4

착한왕 이상하 2014. 3. 12. 22:21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는 조선 후기 야담집에서 엿볼 수 있는 이상 세계에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 소규모의 공동 생산 체제를 기반으로 한 계급 없는 상태의 사회가 그러한 이상 세계에 비추어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는 공산주의와 반국가주의의 영향을 받은 조합 공동체주의(syndicalism)’의 기능 단위가 향촌이 되는 정치 체제를 뜻한다. 물론 이때 향촌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가상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공동체를 뜻한다. 따라서 향촌이 그러한 가상의 역사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추측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변화하는 모습의 향촌은 조선 후기 야담집에 담긴 이상 세계의 공동체와는 다를 것이다. 이를 살펴보기 전에, 조합 공동체주의를 먼저 다루자.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조합 공동체주의는 정치를 통해 사회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신념이 지배한 시대의 산물이다. 그 신념은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까지 서양 문명의 시대정신(Zeitgeist)’처럼 기능했다. 다양한 정치 체제들이 실험 무대에 올랐고, 각 정치 체제는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다른 정치론의 개념을 차용해 수정을 거듭해 왔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각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가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다른 정치론의 중요 개념들을 수용하면서 진화해 왔고, 또 진화 중에 있다. 민주주의와 대립 관계를 맺는 것으로 여겨진 정치론이 그러한 진화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실례로 소외 개념이 현대 민주주의를 논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정착하는 데에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계열의 이론가들의 기여가 있었다. 현대 민주주의에 그 흔적을 남겼으면서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생소한 정치론은 바로 조합 공동체주의이다.

 

조합 공동체주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스페인 및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생한 노동자 운동에 기원을 둔 정치론이다. ‘조합 공동체로 번역된 ‘syndicalism’의 어원은 노동조합을 뜻하는 프랑스 단어 syndicat이다. 계층이 계급으로 인식되는 사회 상태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내세울 수 없다. 그러한 사회 상태의 계층들은 문제 해결 과정에서 거래 관계를 맺는 가운데 그 우선순위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부와 하부의 위계질서 구조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회 상태에서 노동과 생산이 자본에 종속되는 경우, 노동자 계층은 자본가 계층의 하부 계급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하부 계급에서 벗어나려면 계급 간 갈등 관계를 인식해야 한다. 그러한 갈등 관계는 노동자 계층을 자본에 종속시킨 사회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일차적 책임은 그러한 구조를 고착화하려는 자본가들에게 돌아간다.

 

조합 공동체주의에 대한 지금까지의 정리를 받아들인다면, 조합 공동체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정치론임이 분명해 진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 계층의 혁명과 같은 것에 의해서만 노동과 자본의 갈등을 발생시킨 계급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관점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혁명적 조합 공동체주의(revolutionary syndicalism)’는 조합 공동체주의에 미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러나 조합 공동체주의를 마르크스주의의 한 분파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조합 공동체주의는 국가 권력 기관으로서의 정부 형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국가 권력 기관으로서의 정부 형태를 인정한다는 것은 다음을 뜻한다.

 

정부가 반드시 직업 정치가들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직업 정치가들로 정부가 구성되는 경우, 정부 권력은 국가 권력을 대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외부 세력에 대항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이 필요하다. 국가의 존속은 사회 내 그 어떤 공동체의 존속보다 우선한다. 국가 권력을 대리하는 정부를 인정하는 것은 별도의 직업군으로서의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간접 민주제이든 공산주의든, 두 정치론 모두 국가 권력 기관으로서의 정부 형태를 인정한다.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두 정치론 모두 국가 권력을 대리하는 정부 없이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관점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간접 민주제를 투표 수단을 통해 정당 간 경쟁을 인정하는 정치론으로 규정하는 경우, 공산주의는 공산 체제에 근거해 사회를 조율하는 단일 정당만을 인정하는 정치론으로 규정 가능하다. 이러한 정치론들과 달리, 반국가주의(anarchism)는 국가 권력을 대리하는 방식의 정부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국가주의는 조합 공동체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정치론이다. 왜냐하면 조합 공동체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반국가주의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를 분명히 하게 위해 다음 물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살펴보자.

 

사회 설계를 담당하고 계층 간 갈등을 중재하는 정치 영역 없이는 사회를 유지하기 힘들다. 정치 영역의 기능을 전담하는 별도의 정치가 계층이 필요할까?

 

국가 권력을 대리하는 정치가 집단 없이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 위 물음에 대해 긍정한다. 반국가주의는 위 물음에 대해 반드시 긍정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에 근거한 정치론이다. 사회 유지를 위해 정치라는 영역은 필수적이지만, 국가 권력을 대리할 직업 정치가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국가주의 옹호자들에게 국가라는 것은 단지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가공된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다. 사회의 실재성에 국가라는 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국가 권력을 대리할 정부라는 것도 필요 없다. 그러한 형태의 정부를 구성할 별도의 정치가 계층을 인정하는 한, 정치가 계층은 다른 계층과 수평적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계층의 상부에 위치하는 권력 계급이 될 수밖에 없다. 반국가주의에 따르면, 이 점은 정치가 집단의 기득권화를 제어하기 위해 투표를 수단으로 삼는 현대 간접 민주제 사회에서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민주주의 이상은 국가 권력을 대리할 정부 및 정부를 구성할 정치가 계층을 인정하는 한 실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현대 간접 민주제는 자체 모순적인 정치론이다. 이러한 반국가주의의 입장에 대한 반론은 만만치 않다. 그러한 반론 대부분은 국가 권력 없이는 사회는 무질서 상태에 빠지고, 결국 외부의 적에 의해 붕괴될 것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에 대한 반국가주의 옹호자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국가 권력이 사회 유지를 위해 반드시 전제될 필요는 없다. 자본과 노동의 이분법이 성립하지 않는 소규모 공동체들로 구성된 사회를 가정해 보자. 공동체들의 자발적 합의에 근거한 의사 결정만으로도 사회를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러한 의사 결정을 위한 기구나 합의체를 구성할 때, 별도의 정치가 집단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치의 주요 기능은 정책을 짜는 것이다. 이때 정치에서 요구되는 것은 정치 세력의 의사가 아니라 공동체들의 의사를 수용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것이다.

 

소규모 공동체들에 기반을 둔 반국가주의는 조합 공동체주의와 대동소이한 정치론이다. 조합 공동체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 그리고 정치라는 영역이 단지 사회의 공론장으로만 기능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에 주목하는 경우, 조합 공동체주의는 공산주의보다는 반국가주의에 가까운 정치론이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경우, 조합 공동체주의는 반국가적 조합 공동체주의(anarcho syndicalism)’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부분의 정치론은 정치를 통해 사회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신념이 지배한 시대에 시도된 정치적 실험들의 산물이다.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 각종 정치적 실험은 ()’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한 각종 실험은 이미 살펴보았듯이 18세기 이후 가시화된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관적 입장과 비관적 입장이 교차하는 과정의 연장선에 서 있다.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관적 입장에 따르면, 복지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것이다. 그러한 자유를 확대시키기 위해 개인 간 거래가 촉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의 시장 개입은 가급적 최소화되어야 한다.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비관적 입장에 따르면, 출신 및 능력에서 차이를 보이는 개인들의 거래만 확장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된다면 오히려 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어 사회의 극심한 불균형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복지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확대시킨다고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두 입장을 양극으로 놓고 현재 우리에게 친숙한 여러 정치론들을 평가해 볼 수 있다.

 

전통적 자유주의, 전통적 자유주의를 계승한 1970년 대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 자유 민주주의 등은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관적 입장에 가깝다. 반면에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은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비관적 입장에 가깝다. 사회 민주주의, 질서 자유주의, 복지 지향 자유주의 등은 그 관계에 대한 낙관적 입장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비관적 입장에 빠지지 않으려는 시도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전통적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 민주주의, 질서 자유주의, 복지 지향 자유주의 등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형성된 대부분의 정치론은 정치가 계층에 의한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전제하고 있다.

 

조합 공동체주의는 앞서 살펴본 직접 민주제와 함께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정치론들이다. 최근 들어 직접 민주제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 정당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이다. 1905년에서 1917년 사이 조합 공동체주의가 많은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당시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 등을 표방한 정치 세력과 정당들은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강조했지만,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실익은 없었다. 급기야 노동자 계층의 자율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당을 비롯한 기존 정당과 결별해야 한다는 입장이 나타났다. 정당 정치 세력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조합 공동체주의 노선에 따른 최초의 노동조합이 프랑스에서 결성되었다. 그러한 노동조합의 형성과 확산에 영향을 준 인물들은 사유 재산과 국가에 반하는 정치론을 펼친 반국가주의 옹호론자들이었다.

 

그러나 조합 공동체주의를 지지한 모든 노동자들이 다양한 사회 영역의 계층에 속한 사람들의 공론장으로서의 정치란 별도의 정치가 집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정신을 충분히 숙지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노동자들에게 시급한 것은 자본에 종속된 노동자 계급의 해방이었다. 따라서 조합 공동체주의를 지지한 노동자들과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한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한 것은 전략적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의 연대는 볼셰비키 혁명이 발생할 때까지는 비교적 순탄하게 이어졌다. 그들의 연대는 혁명 이후 공산당 독재 체제가 굳어지면서 금이 가버렸다. 그리고 제 2차 세계 대전을 거쳐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립 구도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국가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한 대립 구도가 굳어지는 과정에서 조합 공동체주의는 역사의 화석과 같은 존재로 남게 된다. 그렇다고 조합 공동체주의의 여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에 의한 태업, 파업, 데모 등도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는 데에는 조합 공동체주의의 기여가 있었다. 또한 전 세계 차원에서 경제적 위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조합 공동체 형태의 기업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는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고 그 실현 과정 이후에 벌어졌을 가상의 정치적 실험 중 하나로 제안된 것이다. 더욱이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관점에서 제안된 것이다.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에도 있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그것은 기능의 측면에서 서양의 세속화 과정과 유사하지만 내용의 측면에서는 다르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은 그것의 핵심이다. 따라서 그 과정 이후에 벌어졌을 가상의 어떤 정치적 실험에 조합 공동체제와 같은 용어가 붙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는 힘들다. 다만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과 실천 방안을 고려할 때, 후대에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라고 불릴만한 정치적 실험을 가정해 볼 수 있다.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조합들의 연계망에 근거한 향촌들로 구성된 거대 공동체제를 뜻한다. 거대 공동체제의 구성단위는 향촌들이고, 소규모 공동체인 향촌의 구성단위는 조합들이다. 이러한 향촌 공동체제에서 향촌의 특성은 기존의 향촌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조합들의 연계망으로 이루어진 향촌에 대해 그럴듯한 상상을 해보려면, 기존 향촌의 특징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향촌(鄕村)’은 행정 구역상의 군현을 뜻하는 과 촌락이나 마을을 뜻하는 이 합성된 용어이다. 행정 구역의 단위로서 향촌은 조선 초기에는 지방 사대부 세력을 중심으로 한 자치 성격을 갖고 있었다. 17세기 이후 중앙은 향촌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지방 사족들을 명문화한다. 그러한 명문화를 통해 중앙은 향촌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고, 특정 사족들만 향촌에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향촌의 촌락은 양반들이 거주하는 반촌과 평민들이 거주하는 민촌으로 구분되어 갔으며, 소작농으로 생계를 꾸려간 민촌은 지배층의 핍박 속에서도 자생적 생산 공동체의 특성을 유지해 나갔다.

 

위 향촌의 변화 모습을 고려하면,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어 가는 가상의 과정의 실천적 측면에 대해 자연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그 측면의 외적 양상은 위에서 살펴본 향촌의 지배 구조가 붕괴되는 것이며, 내적 양상은 사람들이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에 대한 잠재된 두려움을 인식하고 극복하는 것이다. 향촌의 지배 구조가 붕괴되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향촌을 대체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생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는 힘들다. 이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야담집 등에 나오는 이상적 공동체는 계급 없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생산 공동체이다. 그러한 이상적 공동체는 기존 향촌에서 중앙의 통제 대상인 개념이 사라지고 개념이 극대화된 경우의 공동체에 해당한다. ‘이 사라진다는 것은 주변을 통제하는 중앙의 붕괴를 뜻한다. ‘이 사라지면, ‘의 반촌과 민촌의 구분도 없어진다. , 계급 없이 자율적으로 기능하는 생산 공동체로서의 향촌은 민촌개념이 지역 전체로 확대된 것이다.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에 대한 두려움이 공동체에 표면화될 때, ‘민촌의 유지를 위해 정치가 계층의 사회적 조율이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반문은 그러한 표면화에 대한 증표와 같다. 야담집 등의 이상 세계에 반영된 소국과민(小國寡民)에 대한 염원은 그 반문에 대한 하나의 극단적 반응으로 간주될 여지가 있다.

 

민촌은 집단적 치원에서 생산 공동체의 전통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중앙이 부여한 제도는 민촌 구성원들에게 집단 외적 요인으로 여겨졌을 수 있다. 그렇게 여기는 것에는 그러한 요인들을 제거해도 공동체가 조화롭게 유지될 수 있다는 관점이 깔려 있다. 이때 각종 제도란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결론도 성립 가능하다. ‘인위적인 것으로서 그러한 수단이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저해한다고 간주하는 경우, ‘인위적인 것에 대비된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자발적 감정에 기인한 협력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협력이 가능하려면, 자본과 노동을 이분화하거나 계층을 계급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모든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인위적인 것자연적인 것의 대비 속에서 지나칠 정도의 지연 회귀성이 반영된 조선 후기 야담집의 이상 세계의 모습에는 물욕(物慾)이 인간 본성을 헤쳐 자발적 협동을 가로 막는다는 관점이 깔려 있다. 그러한 관점은 생산 방식이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관점과도 비교해 볼만 하다.

 

조선 후기 야담집의 이상 세계가 지나치게 자연 회귀성을 띠게 만든 또 다른 원인으로 당시 민촌의 생산 구조가 여전히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지배층의 수탈을 배제한 경우 민촌의 자급자족이 가능했다면, 계급 구조의 위계질서를 만들어낸 일체의 요인들을 제거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들이 그러한 요인들을 인위적인 것의 범주 속에서 파악할 때, 자발적 협동에 근거한 생산 공동체를 자연적인 것의 범주 속에 집어넣어 이상적인 공동체로 간주할 여지도 커진다.

 

그러나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고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에 바탕을 둔 가상의 정치적 실험에 대해 추측해 보는 경우, 자연 회귀성의 성격이 강한 이상 세계의 동경이 그러한 가상의 정치적 실험에서 환영받았을 리 만무하다. 이에 대한 이유로 다음을 들 수 있다.

 

첫째, 이미 살펴보았듯이 유교의 변통 가능성을 인식한 인물들은 신분제의 불필요성을 인식한 사람들이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의 핵심인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서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을 탈색시켜도 그 관점의 근간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이때 그 관점과 우열 구분의 관점의 내용적 분리가 용이해 지며, 그 두 관점을 결합한 것을 사회에 투영시켜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을 이끌어낼 수 없게 된다. 신분제의 불필요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졌다면, 그들은 피지배자 관점의 실학자들에 속할 가능성이 큼을 논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농작 방법뿐만 아니라 기술력을 향상시켜야 농업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생각을 이어 받은 사람들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고 가정하면, 자연 회귀성이 강한 이상 세계의 공동체 개념이 가상의 정치적 실험에서 주목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개념이 자본에 종속된 생산 구조에 대한 그들의 비판을 자극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이분하는 관점 속에서 기술 문명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그들이 수용하기 힘든 것이다.

 

둘째,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향촌의 생산 기반도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은 우리와 다른 것을 무조건 배척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땅에 필요하다고 판단된 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직업군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며, 농업 위주의 생산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면, 공동 협력의 미덕만 지나치게 강조되는 이상 세계의 공동체 개념이 가상의 정치적 실험에서 주목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한 공동체 개념은 농업 기반의 민촌이 갖고 있던 자생적 특성을 미화시킬 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고 그 이후에 벌어졌을 가상의 정치적 실험, 그것도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관점에서 정치적 실험에 대해 추측해 보는 경우, 향촌을 농업 기반의 생산 구조를 갖는 공동체로 간주할 수 없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된 이후의 향촌의 모습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의 특징들을 이끌어 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