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가상의 정치적 실험 5

착한왕 이상하 2014. 5. 9. 17:48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된 이후의 향촌은 농업 기반의 생산 공동체의 모습을 띨 수 없다. 직업의 다양화에 따른 사회의 계층 분화로 인해, 향촌의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마저 추정하기 힘들다. 향촌의 규모 문제는 논외로 하자. 왜냐하면 이 장은 이 땅의 다수이면서도 의견의 표출 통로가 가로 막힌 무종교인 계층의 딜레마가 민주주의를 논할 때 중요한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 거쳐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조합들이 구성되는 방식에만 국한해 가상의 역사 속의 향촌의 특성들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향촌의 기능 단위인 조합들이 구성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방식은 각 개인이 속한 직업이나 직종별로 조합을 구성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부분 나라들의 노동조합에서 이러한 구성 방식을 찾아 볼 수 있다. 두 번째 방식은 조합들이 정치 영역을 제외한 경제, 교육, 노동, 여가 및 유흥 등 사회의 각 영역별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합 구성 방식을 찾아 볼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영역들의 순기능 및 영역들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사회 설계의 핵심인데, 그러한 사회 설계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별도의 정치가들로 구성된 정치 집단의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조합 구성 방식에서 정치 영역이 빠진 것에 주목하자.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조합 구성 방식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조합 구성 방식을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뒤섞는 방식이다.

 

세 가지 조합 방식을 고려할 때,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는 경우의 정치적 실험 중 하나로서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사회 전체의 설계의 관점에서 조합 구성 방식을 다룰 때,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조합 구성 방식이 중요하다. 따라서 첫 번째 방식만으로 조합이 구성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럴듯하지 않다. 반면에 일상생활에서 개인의 권리 주장은 첫 번째 조합 구성 방식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이를 감안한다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조합 구성 방식을 혼용한 세 번째 방식이 채택되었을 것이다.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에서 정치 영역은 만인에게 열려 있다. 이 때문에, 다음과 같은 향촌 내부의 또 다른 특징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각 향촌에는 별도의 정치 영역을 구성하는 조합은 없다. 그러한 조합을 인정하는 것은 별도의 정치가 계층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가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정치 영역은 향촌 구성원들의 공론장으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각종 제도들이 향촌별로 마련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제도들로 고대 그리스 직접 민주제에서 썼던 방식, 즉 무선적으로 선출된 시민들이 일정 기간 동안 향촌의 의회나 법정 업무를 맡는 방식, 혹은 조합별로 선출된 사람들이 특정 기간 동안 향촌의 의회나 법정 업무를 맡는 방식을 들 수 있다.

 

위 특징은 향촌 내부에 국한 된 것이다. 향촌들의 조화로운 관계망을 형성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향촌들의 수가 많을수록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제와 같은 방식을 향촌들의 관계망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집단 규모가 클수록 구성원 간, 조직 간 정보의 원활한 교류가 가능해야 한다. 그러한 정보의 원활한 교류를 통해 직접 민주제는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보의 원활한 교류를 가능하도록 해 주는 기술이 조선 후기에는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제를 향촌들의 관계망에 적용하기란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때 향촌들의 관계망과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 잠정적 특징 중 하나는 다음이다.

 

의회나 법정과 관련된 지속적인 방식의 제도는 향촌들의 관계망에 대해서 아예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문제 해결을 위한 한시적 조직이 구성된다.

 

위와 같은 특징의 제도는 유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뿌리가 다른 여러 집단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 경우 어느 정도 효율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이 땅은 문화적으로는 오랜 기간 하나의 공동체로 유지되어 왔다. 이 점을 향촌 기반의 공동체제라는 정치적 실험에 반영한다면, 그 실험을 주도한 이들이 위 특징의 제도를 받아 들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 힘들다. 이때 다음의 특징을 고려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향촌들의 관계망을 다루는 제도는 문제의 심각성 정도에 따라 한시적으로 존속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존속하는 방식이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을 것이다.

 

향촌들의 관계망을 형성하고 주변 정세 변화에 적응하도록 유지하는 제도는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제에서 행해진 방식과 같은 것이 되기 어려운 이유를 논했었다. 그렇다고 그러한 제도가 문제의 심각성 정도에 따라 임기응변 방식으로 구성되는 방식도 고려 대상이 되기 힘들다. 더욱이 그러한 제도를 구체화하는 것은 별도의 작업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제도를 구체화하는 것은 한 사회를 둘러싼 주변 문제, 실례로 국방 및 외교 문제 등도 고려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특정 이념에 정신이 매몰되길 거부하는 무종교인의 관점에서 여기저기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서 이 땅의 현실을 진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도 한 사회를 둘러싼 그런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향촌들의 관계망을 다루는 제도가 지속적으로 존속하는 어떤 방식이 마련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만족하자.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집고 넘어 가야 할 두 가지 물음이 있다.

 

첫째, ‘향촌 기반의 공동체제가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은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정치적 세력화 가능한 기득권층 형성을 사전에 가로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일까?

 

둘째, 한 지역에서 발생한 심각한 문제는 다른 지역들과 연관성을 맺고 있기 때문에, 또한 경제, 교육, 문화, 정치 등 여러 영역들에 걸쳐 있기 때문에, 그 해결 과정은 전문적 지식의 거래 관계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경우에 대처하는 관리 및 행정 체제는 정치 세력화 가능한 계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를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 번째 물음에 답하려면, 이미 살펴본 기득권층의 분류 방식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 기득권층민중을 자신에 뜻에 따라 강제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행위하도록 재화 및 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계층으로 정의되었다. ‘형식적 기득권층그 신분이 계급으로 보장된 계층으로 정의되었다. 이때 절대적 의미의 기득권층이란 실질적 기득권층이 동시에 형식적 기득권층으로 보장받는 사회 집단을 뜻한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절대적 의미의 기득권층은 사회의 계층으로 자리잡을 수 없다. 그 실현 과정은 신분제의 붕괴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절대적 기득권층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형식적 기득권층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전제한다. 이로부터 실질적 기득권층의 부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실질적 기득권층이 일정 기간 동안 대물림되는 현상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러한 현상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실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를 구성할 잠재적 권리를 가진 정치가들은 종종 재계, 언론계 및 종교계와 결탁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실질적 기득권층의 힘이 강해질수록, 실질적 기득권층은 정치가 계층으로 자리잡을 시도를 하거나, 직간접적으로 정치 영역에 영향을 미치려고 할 것이다. 이를 실질적 기득권층의 정치적 세력화라고 하자. 물론 실질적 기득권층에 속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약자를 수단으로 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로부터 실질적 기득권층의 정치적 세력화 가능성이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물음과 관련된 제도는 단순히 실질적 기득권층의 정치적 세력화를 막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특정 계층이 정치적 세력화를 시도할 정도로 기득권화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정 계층이 실질적 기득권층으로 사회에 자리잡는 것을 넘어 정치적 세력화를 시도하려면, 그 시도를 위한 여러 물질적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한 물질적 조건들 모두를 여기서 다룰 수는 없다. 하지만 자본 및 언제든지 자본화 가능한 자원과 관련된 조건은 반드시 집고 넘어 가야 한다. 이 점은 자본과 토지의 확장 및 세습이 조선 후기 권세가 계층 형성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더욱 더 큰 설득력을 가진다. 이와 무관하게 자본 및 자본화 가능한 자원의 축적 및 대물림이 실질적 기득권층 형성의 물질적 기반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 점은 인류 역사의 사방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계층에 자본 및 자본화 가능한 자원이 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정치적 세력화 가능한 실질적 기득권층 형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제도의 핵심이라고 하자. 신분제가 조선 후기 권세가 계층을 생성시킨 이유 중 하나는 그들에게 향촌의 지배권이 넘어 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배권이 넘어 가도록 함으로써 중앙은 주변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 했고, 향촌의 지배자들은 권력과 재원을 대물림할 수 있었다. 특히 권세가들이 토지를 권력 확장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특정 계층에 자본 및 자본화 가능한 자원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 중 하나는 토지를 향촌 공동 재산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때 토지 및 거주 공간은 임대 형식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관리는 정치가들로 구성된 정부가 아니라 향촌별 조합 공동체의 의사 결정 기구의 몫이다. 또한 재화 및 정보 소유의 측면에서 계층 간 격차가 일정 수준 이상 벌어지는 것을 막는 방법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 격차가 심화될수록 계층은 계급으로 인식될 여지가 커지며, 상위 계급으로 인식되는 계층은 정치적 세력화 가능한 실질적 기득권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계층 간 격차가 일정 수준 이상 벌어지는 것을 막는 방법으로 최저 임금뿐만 아니라 최대 임금의 상한선을 향촌 간, 향촌별, 조합별로 정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조합 공동체주의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정치적 세력화 가능한 기득권층 형성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언급된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질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제도적 방법이 개인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개인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민주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 다수는 민주주의앞에는 반드시 자유가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앞에 자유를 붙일 때, 이와 관련된 자유 개념은 실제 인간을 이상화한 합리적 개인관점에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두 대안 중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 방식의 자유의 확대가 복지를 수반한다는 입장, 즉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관적 입장과 연관성을 맺고 있다. 지금까지 논의를 따라온 사람에게 민주주의자유 민주주의에 국한시키는 사고방식은 편협할뿐더러, 민주주의 전개 과정의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서양의 민주주의 역시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천적 입장과 비관적 입장이 교차하는 과정의 연장선에 서 있으며, 수정을 거듭해 온 여러 정치 이론 중 하나일 뿐이다. ‘민주주의앞에 자유’, ‘복지 지향주의’, ‘사회등 여러 수식어가 붙게 될 정도로 민주주의는 여러 형태를 띠고 있다. 더욱이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을 동양적 자유 개념으로 규정하고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에 대한 씨앗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관적 입장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이 땅의 지식인들의 호응을 받기는 힘든 것임을 논했다. 그 논의에 따르면,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된 이후 벌어질 여러 정치적 실험 중에서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진영은 당연히 정치적 세력화 가능한 실질적 기득권층 형성을 가로 막는 방법에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러한 방법 중 하나로 토지를 향촌 공동 재산으로 규정하는 방식 등은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실현을 위해 충분히 고려될 만한 것이다.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를 논할 때, ‘정치적 세력화 가능한 실질적 기득권층 형성을 가로 막는 방법은 결코 상황과 무관하게 어떤 정치적 이론이 올바른가와 같은 물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땅에서 실현될 수도 있었던 가상의 역사에 비추어 추측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합리적 개인 관점에 바탕을 둔 선택의 자유와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으로서의 자유 개념이 서로 배타적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땅의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전자보다는 후자의 자유 개념에 더 주목하게 된다.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에 있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그것의 핵심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임을 논했다. 반면에 서양의 세속화 과정의 핵심은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이다. 그 두 핵심 과정은 기능의 측면에서는 유사하지만 내용의 측면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에, 그 두 과정의 결과들이 유사하더라도, 그런 결과들이 나오는 과정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게 되는 과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인식이 이 땅에서도 개인의 선택의 자유에 대한 여러 비판과 대안 개념의 탄생 과정을 거쳐 자리잡았다고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그렇게 단언하는 사람은 어떤 결과가 나온 다양한 역사적 경로의 가능성에 대해 둔감하다. 또한 인류사의 일부만 차지하는 서양 역사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하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은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으로서의 자유가 더 이상 소극적 의미에서 해석될 수 없게 되는 과정이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으로서의 자유는 개인에게 사회 영역 및 계층들을 가로질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향촌 기반의 공동체제라는 정치적 실험에 따르면, 그러한 권리를 가로 막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정치 세력화 가능한 실질적 기득권층의 형성이다. 특히 극심한 빈부 격차는 그러한 기득권층 형성에 대한 실질적 요인으로 간주된다. 물론 별도의 계층으로 분류 가능한 부유층이 있는 세상을 원하는 개인 X가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세상의 부유층은 X에게는 적소(適所)가 되겠지만 대다수에게는 아니다. 빈부 격차가 심한 사회 상태에서 다수가 각자 자신의 잠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에, 계층이 개인의 사회적 공간 이동을 가로 막는 장벽처럼 기능할 가능성도 커진다. 더욱이 그러한 사회 상태에서 자신의 잠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다수에게 부의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 경우, 개인들의 관심사가 획일화 되어 사회의 장기적 발달도 기대하기 힘들어 진다.

 

세상의 모든 그림을 허용할 수 있는 정치 이론은 없다.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는 정치적 세력화 가능한 기득권층이 있는 세상의 그림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한 조합 공동체제가 이 땅에서 논의될 수 있었다는 추측은 어느 정치론이 올바른가와 같은 별 실효성 없는 사변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 추측은 과거 이 땅이 처했던 상황에 대한 분석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