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가상의 정치적 실험 6

착한왕 이상하 2014. 6. 29. 21:53

 

한 지역에서 발생한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 다른 지역들과 연관성을 맺고 있다. 또한 경제, 교육, 문화, 정치 등 여러 영역들에 걸쳐 있다. 그러한 문제를 비국지적 문제(non-local problem)’라고 하자. 비국지적 문제의 해결 과정은 전문 지식의 거래 관계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경우에 대처하는 관리 및 행정 체제 역시 정치적 세력화 가능한 실질적 기득권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것이 우리가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두 번째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해 간략히 답하기 위해서는 비국지적 문제의 성격을 좀 더 구체화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를 그 발생적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어느 문제든 그것이 발생한 지역과 그것이 속한 사회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지역 및 사회 영역 간에 걸쳐 있는 연관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효과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제를 비국지적 문제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의 발생적 측면이 아니라 해결 과정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우에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비국지적 문제란 특정 지역 및 사회 영역만 고려해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뜻한다.

 

문제를 그 해결 과정에서 접근할 때, 비국지적 성격을 갖는 문제들은 다양한 전문 지식들의 거래 관계망에 근거해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은 현재를 지구화 시대로 규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국제 사회의 공조를 필요로 하는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세계 전체에 걸쳐 정치를 담당하는 초국가적 정부가 탄생할 것이라는 입장이 정당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현재를 지구화 시대로 규정하고 지구화를 긍정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이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그러한 입장은 특정 미래상을 전제하고 현실을 진단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제 관계에서 비국지적 성격을 갖는 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성격의 공간적 범위가 교통 및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확장되었을 뿐이다. 이는 정부 간, 비정부 간 국제기구들이 탄생한 18세기 말 및 19세기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분명해진다.

 

유럽 각국 정치가들과 외교 대사들로 구성된 정부 간 국제기구의 역사는 18세기 말에 결성된 국제 의회(International Congress)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유럽이라는 이념 아래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당시 상황의 많은 정치적 문제들은 비국지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또 교통 및 정보 통신 기술이 도약할 수 있는 기초적인 발판대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유럽 각국을 통과하는 강들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방법, 임금 정책 및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 한도를 정하는 것, 전신망을 기반으로 한 전신 요금제의 표준화 방법, 안전사고에 대처하는 국제적 협약을 마련하는 것 등과 같은 문제는 정치가나 외교관들의 의견 교환만으로는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다국적 관리 및 행정 영역에 속하는 그러한 비국지적 문제들 상당수는 전문 지식의 거래 관계망을 바탕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로 분류된다. 그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국제기구들로서 1856년 결성되어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다뉴브 위원회(Danube Commission), 1차 세계 대전 이후 결성된 국제 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1886년 각지의 발명가, 작가들의 지적 재산권 보호를 위해 결성된 국제적 조합 등을 들 수 있다.

 

이제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된 이후 이 땅에서 벌어졌을 여러 정치적 실험 중 하나인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유럽의 초기 국제기구에 대응시켜 생각해 보자. 여기서 고려할 사항 유비는 다음과 같다.

 

유럽 각국들 : 국가 간 국제기구 = 향촌들 : 향촌 간 협의회

 

위 사항 유비는 무조건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국가 간 국제기구는 적어도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를 지향하는 정치 체제에 바탕을 두고 있는 반면,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는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고 위 사항 유비를 평가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유대 의식의 원천이 있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향촌들로 구성된 거대 공동체를 이루는 데 효과적이다. 물론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 자체가 그러한 유대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이상에 대한 동조 의식은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통합하는 데 유사한 삶의 방식에 바탕을 둔 심리적 유대 의식보다 약하기 쉽다. 아마도 한 민족이라는 것이 그러한 심리적 유대 의식으로 기능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은 일제 강점기 시절 공동의 적을 두고 여러 집단들, 그것도 서로 상이한 정치적 이념들을 추구한 집단들이 민족주의 노선 아래 함께 연대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위 사항 유비는 다음 사항 유비를 함축할 때 그 신빙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유럽 : 유럽 각국들 = 한 민족 : 향촌들

 

유럽 각국들이 우리 유럽이라는 이념으로 뭉쳤다고 할 때, ‘우리 유럽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유대 의식의 원천으로 볼 수 있다.한 민족은 향촌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유대 의식의 원천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한 유대 의식의 원천으로 묶일 수 있는 사람들의 반경은 적어도 우리라는 것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한에서는 특정 정치적 이념으로 묶일 수 있는 반경보다 크다. 여기서 우리 유럽’, ‘한 민족처럼 문화적이고 역사적 공동체로서의 우리와 특정 정치적 이념에 바탕을 둔 정치적 공동체관계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것들의 공통점으로는 그것들이 집단적 정체성 형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에 의해 묶일 수 있는 사람들의 반경은 오로지 반경 내부의 특징들로만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내부 그 자체만의 고유한 특징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반경 내부의 특징들도 알고 보면 다른 반경의 요인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굳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관련된 집단적 정체성은 우리가 아닌 것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상황에서 우리라는 것이 규정될 때, ‘우리라는 것은 문화적이고 역사적 공동체이자 동시에 정치적 공동체로 기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경우, ‘우리는 외세에 저항하는 힘의 원천으로 혹은 다른 것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곤 했다. ‘우리 유럽’, ‘한 민족처럼 문화적이고 역사적 공동체로서의 우리와 특정 정치적 이념에 바탕을 둔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우리의 관계는 전자가 후자를, 그리고 후자가 전자를 반드시 전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화적이고 역사적 공동체로서의 우리가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 쪼개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특정 정치적 이념 아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뭉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문화적이고 역사적 공동체로서의 우리정치적 공동체로서의 우리보다 반경 면에서 더 큰 경향을 나타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두 번째 사항 유비의 우리 유럽 : 유럽 각국들한 민족 : 향촌들은 이를 반영하고 있다.

 

첫 번째 사항 유비가 두 번째 사항 유비에 의해 뒷받침 될 때, 국가 간 국제기구와 향촌 간 협의회는 단순히 정치적 연합 체제로만 해석될 수 없다. 이는 그러한 국제기구와 협의회가 효과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문화적 유대 의식이 필요하며, 그러한 유대 의식은 정치적 합의만으로는 충분히 보장되지 않음을 암시한다. 앞서 살펴본 비국지적 문제들은 집단 간 정치적 합의뿐만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의 유대 의식마저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누적되면 될수록, 개인의 공감 능력(empathetic ability)’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계산의 수단이 되어버리는 경향도 커진다.

 

비국지적 문제는 전문 지식들의 거래 관계망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이 주도한 초기 국가 간 국제기구도 정치가들로만 구성되어서는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없었다. 유럽 각국들을 통과하는 강들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방법,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 한도를 정하는 것, 전신망을 기반으로 한 전신 요금제의 표준화 방법, 안전사고에 대처하는 국제적 협약을 마련하는 것 등의 비국지적 문제를 다루는 것은 정치가들의 지식 범위를 벗어나 있다. 이 때문에, 초기 정부 간 국제기구도 오늘날 유엔(UN)처럼 여러 전문 분야의 자문 기관이나 위원회를 갖고 있었다. 또한 다양한 비정부 간 기구들과 서로 제한하면서도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첫 번째 사항 유비의 유럽 각국들 : 국가 간 국제기구에 함축되어 있는 이 점은 향촌들 : 향촌 간 협의회에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 당시 유럽 각국들의 사회는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는 가정 아래 생각해 본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라는 정치적 실험은 그런 이상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촌 간 협의회는 정치 영역에만 국한될 수 없다는 점에서 초기 국가 간 국제기구와 유사성을 갖는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당시 유럽의 정치가들이 향촌 간 협의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지를 추측해 보자.

 

국가 간 국제기구가 형성될 무렵 유럽 정치가들은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에 바탕을 둔 이 땅을 당시 관점에서의 국가’, 지금 종종 근대적 국가(modern states)로 규정되는 국가 형태를 갖춘 사회로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당장 그런 공동체제에서 그들이 경험했던 조합 공동체제의 무국가적 성격을 발견할 것이다. 이때 무국가적 성격은 단지 그들이 생각하는 근대적 국가에 대비된 것일 뿐이다. 국가 개념의 탄생 및 변화 과정은 이 작업의 주제가 아닐뿐더러 별도의 구체적 작업을 요구하기 때문에 다루지 않는다. 다만 국가 개념에 대한 명백한 규정은 힘들다는 사실만 언급한다.

 

군주 정부 형태의 사회는 국가인가? 어떤 이들은 이 물음에 대해 그렇다고 답하고, 어떤 이들은 그렇다고 답하지 않는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간에, 각자의 국가에 대한 논의 맥락만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 그만이다. 개인적으로 별도의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부가 제도적 차원에서 구성된 사회에 대해서는 국가 개념을 박탈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때, 국가 개념의 기원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양 지성사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 ‘계층신분 계급과 동일시되던 시대의 국가는 전근대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그러한 시대에 국가 개념은 단지 통치권을 가진 군주나 계급에게만 삶에 스며들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신분제가 위협을 받으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국가사회가 혼용되어 사용될 정도로 서양에서는 일상적 개념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만 주목하자. 국가 개념의 그러한 일상적 측면만을 고려하는 경우, 당시 유럽 정치가들이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에 바탕을 둔 나라를 근대적 국가로 여기지 않았을 이유가 분명해진다.

 

첫째, 당시 유럽의 대부분 국가 기반의 사회는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의 이상을 전제하고 있었다. 따라서 직업 정치가들로 구성된 정부의 형태는 국가 기반의 사회에 대한 필요조건이 된다.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 향촌 기반의 조합공동체제 성격의 사회는 국가 기반의 사회로 간주되기 힘들다.

 

둘째, 직업 정치가들이 주축이 되는 정부의 권위는 법적으로 보장되며, 국민은 그러한 정부의 적법한 권력 행사에 의해 결정된 사항은 따라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렇게 결정된 사항은 국민들이 따라야만 하는 규범성을 갖는다. 정부가 국민 개인이나 국민들로 구성된 특정 집단에 부과한 의무 및 권한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법적 처벌 대상이 되며, 정부의 권력은 국가 내 그 어떤 조직의 규칙이이나 권한 사항보다 우선한다. 이는 향촌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으로 해당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우선하는 것은 그들이 속한 조합 등의 준수 사항 및 협의안이기 때문이다. 또한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의 정치 영역은 향촌 구성원들의 공론장으로만 기능하기 때문에, ‘정부로 불릴 수 있는 조합 공동체제의 시민 의회 법정 및 협의회는 국가 정부로 분류되기 힘들다.

 

셋째, 당시 유럽 국가 기반의 사회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형성 과정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그러한 시장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 정도를 놓고 자유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등의 입장 차이가 나타난다. 그러한 입장 차이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당시 유럽 국가들의 경제 체제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바탕을 둔 모든 국가는 자본이 경제 영역에 집중되는 것을 허용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 축적이 경제 영역의 주 기능이 되는 경우, 경제 영역에 별도의 자본가 계층이 구축되는 것은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자본가 계층이 실질적 기득권층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민주주의를 전제한 국가만이 현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 민주화의 제도적 측면 중 하나는 자본가 계층의 정치적 개입 및 세력화를 막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물론 정경유착(政經癒着)’ 현상을 실제 막을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를 방법론 측면에 국한해 접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든지 정치적 세력화 가능한 실질적 기득권층 형성을 사전에 가로 막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에서 실질적 기득권층으로 기능할 별도의 자본가 계층을 경제 영역에 허용하는 것은 공동체의 불균형을 초래할 요인으로 간주된다.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에서 경제의 주 기능은 자본 집중과 축적이 아니라 계층 및 영역들을 가로지르는 방식의 자본 이동 및 확산이다. 이 점은 토지 등을 향촌 공동 재산으로 정하거나 임금의 최대 상한선을 정하는 방식의 제도에 반영되어 있다.

 

초기 국제기구가 형성될 무렵 서양의 정치가나 지식인들은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를 시대에 뒤떨어진 것혹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단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는 가정 아래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 정치적 실험 중 하나로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를 설정한 맥락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그 가정은 이 땅에도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대비시켜 볼만한 것이 있었다는 더 큰 가정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이 때문에, 그러한 가정에 기댄 가상의 정치적 실험을 논하는 것은 현실 문제 진단에서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과거 역사와 관련된 논의는 오로지 사실에만 근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

 

과거의 창()’이라고 할 수 있는 기록 및 유물들을 바탕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창을 만드는 것은 어떤 관점이나 입장을 그러한 것들과 상호 제한적 관계로 결합시키는 것에서 출발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현될 수도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은 가상의 역사가 구성되어야, 그러한 관점이나 입장이 정당화될 수 있다. 이때 가상의 역사를 단순히 상상력의 산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과거의 창을 구성하는 것들의 배열 방식을 근거로 실현될 수도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살펴보는 정치적 실험도 그렇게 판단된 것이다.

 

더욱이 여기서 보이려고 한 것은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은 이 땅에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은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서도 세속화된 곳임을 보이려고 한 것이다. 그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현대적 특징들이 서양의 계몽주의와 같은 것을 전제하지 않고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논해야 한다. , 현대적인 것으로 불릴 수 있는 특징들은 다양한 경로를 거쳐 나탈 수 있으며,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정당화 가능함을 논해야 한다.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이 이 땅에도 있을 수 있었다는 가정 아래 가상의 역사를 구성해 보는 것은 그러한 논의에 해당한다.

 

이제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해 답해 보자. 당시 서양의 지식인들 중 그 누구도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시대에 뒤떨어진 것혹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정치가 계층으로 구성된 정부 형태에 기반을 둔 근대적 국가 사회만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 주장이 옳다면,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관적, 비관적 입장이 교차하는 과정 이후에 본격화된 서양의 다양한 정치적 실험들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한 정치적 실험들 모두가 국가 개념을 전제한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의 이상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번 지적했듯이,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은 현대 사회에서 완전히 소멸된 것도 아니다. 그 흔적은 현대 사회의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의 사방도처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받아들이면, 근대적 국가 개념에 근거해 모든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사회 계층 분화에 따른 정치적 권력 분배의 집단적 욕구가 실현되는 방식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 방식은 해당 집단이 처한 지리적, 시대적 여건에 의존적이다. 국가 기반의 사회에 국한해 그 사회 형성 과정을 논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여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사회들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더욱이 이론적으로 대립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적 민주주의, 민주적 사회주의 등 다양한 정치 체제를 띠게 된 경로는 묻혀 버리고 만다.

 

현대적인 것을 대표하는 특징들인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 혹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 ‘감정과 구분되는 추론 및 추상화 과정 등의 합리적 능력이 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촉진시켰다는 것’, ‘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 ‘나라 간 경계가 느슨해졌다는 것등이 나타나는 사회가 반드시 근대적 국가 개념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따라서 향촌 기반의 공동체제가 근대적 국가 목록표에서 빠진다고 하여, 이를 가지고 그 공동체를 시대에 뒤떨어진 것혹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다. 그 공동체가 민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여 시대에 뒤떨어진 퇴행(退行)적 사회라고도 할 수 없다. 근대 국가와 민족 개념이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땅을 둘러싼 지리적, 정치적 상황은 힘의 균형이 어느 정도 다극화되어 있어서 개인의 이동 경로가 더 복잡했던 유럽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의 사회는 근대적 국가의 일반 통념에 따를 때 국가 사회로 분류되기 힘든 측면을 갖고 있다. 이는 국가 개념을 기준으로는 다음 사항 유비가 성립하지 않음을 분명히 해준다.

 

유럽 각국들 : 국가 간 국제기구 = 향촌들 : 향촌 간 협의회

 

위 사항 유비는 앞서 언급했듯이 비국지적 문제들이 정치 영역의 합의 사항만으로는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따라서 초기 국가 간 국제기구가 형성될 무렵 동서의 교류가 원활했더라면, 비국지적 문제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새로운 시대를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지구화를 강조하면서 기존 국가 개념의 사회에 대한 정당성을 논하는 것은 그러한 인식이 뒤늦게 형성되었음을 보여줄 뿐이다.

 

유럽의 초기 국가 간 국제기구가 단순히 정치가들의 협의회가 아니었듯이, 즉 정부 간 국제기구의 성격만 가진 것이 아니었듯이, 향촌 간 협의회도 정치 영역과 행정 및 관리 영역의 공조 관계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공조 관계없이는 다양한 전문 지식들의 거래 관계망에 의존하는 비국지적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국가의 경우, 비국제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집단과 행정 및 관리를 담당하는 관료 집단의 결탁을 우선적으로 막아야 한다. 특히 후자의 집단이 전자의 집단에 종속되는 상황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행정 및 관리 영역은 특정 정치가 세력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만 구성될 여지가 커지며, 이로 인해 다양한 전문 지식들의 거래 관계망은 형성되기 힘들어진다. 결국 그러한 관계망의 부재로 인해 누적된 비국지적 문제들은 사회적 간접 자본의 소모와 더불어 혼란의 불씨가 되고 만다.

 

근대적 국가 형태의 사회에서 행정 및 관리 영역이 특정 정치가 집단 세력에 종속되지 않게 하는 것은 비국지적 문제 해결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향촌 기반의 공동체제 사회에서는 행정 및 관리 영역이 언제든지 정치적 세력화 가능한 실질적 기득권층으로 형성되는 것을 사전에 가로 막아야 한다. 그 공동체제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행정 및 관리 영역을 담당하는 구성원들에게 일체의 정치적 결정권을 주지 않는 동시에 부()가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역할은 비국지적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정책 개발 및 제안에 머물러야 하며, 정치적 결정권은 향촌 구성원들의 공론장으로 기능하는 시민 의회나 법정에 귀속된다. 비국지적 문제들을 다루는 행정 및 관리 영역의 인적 자원은 어떻게 길러지며 구성되어야 하는가? 이 물음을 다루는 데 필요한 나의 지식은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는 가정 아래 벌어질 수도 있었던 가상의 정치적 실험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자.

 

지적으로 성숙한 무종교인은 단순히 종교적 교리의 진위 여부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 어떤 이념에도 정신이 매몰되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정치적 이론이나 이념을 부정하지 않는다. ‘역사라는 여과기에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혹은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판명난 것이 아닌 모든 것은 고려 대상이 된다. 따라서 다양한 정치적 실험 중에서 굳이 현재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것,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실험을 다룬 것은 지적으로 성숙한 무종교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역사를 구성해 보는 것은 현실 문제에 도움을 준다. 사회 문제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사회적 촉진자(social facilitator)’가 되고 싶은 무종교인은 그 이유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작업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할 내용이다. 그 마지막 부분으로 이행하기 전에 지금까지의 논의가 다른 곳도 아닌 이 땅의 무종교인에게 시사하는 바를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