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가상의 정치적 실험 3

착한왕 이상하 2014. 2. 4. 00:18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현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현실에 수긍할 수 없는 판단 기준은 제 각기 다를 수 있다. 어쨌든 각자 원하는 세상의 그림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한 세상의 그림은 현실을 구체적 문제들로 규정하고 문제들을 해결해 보려는 고민에서 나올 때만 구체적 이론으로 체계화될 수 있다. 그러한 세상의 그림들 대다수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현실에 대비된 과거 혹은 미래, 아니면 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사회를 이상 세계로 묘사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러한 이상 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를 갖는다. 그러한 이상 세계에서 특정 시대의 민중이 두려워했던 것, 그리고 원했던 세상의 그림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의 역사인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은 이미 논했듯이 신유학에 함축된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이 흔들리는 시점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그 시점인 조선 후기에 나타난 이상 세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거나 아예 흐르지 않고 모든 사람이 생로병사에서 벗어난 장소는 동양의 이상 세계를 다룬 문헌에서 자주 등장한다. 조선 후기 야담집 <청구야담(靑邱野談)>, <동야휘집(東野彙輯)> 등에도 그러한 장소와 유사한 곳이 등장한다. 참담한 전쟁을 연이어 거친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장소가 이상 세계로 묘사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조화로운 완벽한 공동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장소가 등장하는 야담집이 당시 고통스러운 민중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면, <박씨전>이나 <임장군전> 등의 구연소설(口演小說)은 민중을 대상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려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여러 구연소설에서 조선 후기 보수적인 사대부 계층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중화 사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한 소설은 중국적인 것을 계승한 동방예의지국 조선이 중국에 맞선 민족을 오랑캐로 규정하고 심히 꾸짖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 세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야담집과 <박씨전>, <임장군전> 등의 구연소설 모두 당시 현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도, 그 둘의 성격은 다르다. 전자가 피지배 계층인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을 반영한다면, 후자는 기존의 위계질서가 안정화되기를 바라는 지배자 계층의 염원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야담집에 등장하는 이상 세계의 공동체는 노자(老子)소국과민(小國寡民)’ 개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한 공동체를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군주는 백성으로 하여금 문명과 자본을 멀리하도록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소국과민개념은 기회의 균등뿐만 아니라 분배의 균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와 비교되곤 한다. 공산주의를 자유 민주주의와 대립 관계를 맺는 것으로 간주하더라도, 두 정치 이념 모두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를 전제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정치가들로 구성된 정부의 형태와 역할에서만 주된 차이를 보일 뿐이다. 그런데 소국과민개념을 좀 더 깊게 파헤쳐 보면, 공동체의 규모가 작아야 하는 이유로 공동체의 자율적 운영이 거론된다. 그러한 공동체에서 군주다운 군주는 그 존재가 드러나지 말아야 한다. 군주는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군주는 모든 백성이 자족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제거하면서도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 존재이다. 동양 사상에서 군주정치 혹은 통치 방식을 뜻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소국과민정치가들이 없이 자율적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별도의 정치가 계층에 의해 구성되는 정부를 부정하는 반국가주의(anarchism)나 조합 공동체주의(syndicalism)를 논할 때 노자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 야담집에 등장하는 이상 세계를 살펴보면, 반국가주의나 조합 공동체주의로 해석 가능한 소국과민의 개념이 나타나 있다. 이상 세계의 공동체에는 신분뿐만 아니라 별도의 정치가 계층도 없다. 향촌 마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어른에 대한 존중과 같은 것이 강조되더라도, 계층이 계급으로 해석될 여지는 없다. 또한 이상 세계의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문명의 이점을 멀리해야 한다. 이는 조선 후기 야담집에 등장하는 이상 세계의 자연 귀속성을 보여 준다. 이때 자연은 계급 구조의 위계질서를 인위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를 갖는다. , 그러한 위계질서를 인위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에 대비된 것을 자연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문명의 이기가 그러한 위계질서를 생성하고 고착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임을 보여 주는 논증이 필요하다. 그런 논증이 야담집의 이야기 속에 어떤 방식으로 숨어 있는지, 그리고 그 문제점을 지적해 보는 것은 논외로 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나타난 이상 세계의 유형은 다양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실례로 허균(許筠)의 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은 자연의 귀속성이라는 성격을 보이지 않는 이상 세계의 공간이다. 율도국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혁명마저 용인하는 사람의 뜻이 실현되는 공간이다. 물론 율도국이 조선이 아닌 다른 곳이기 때문에, <홍길동전>의 혁명은 혁명을 꿈꾸면서도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허균의 양면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런데 관직에 몸을 담았던 허균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그가 조선 땅의 현실이 뒤바뀌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은 반역죄로 몰려 천지의 괴물로 낙인찍힌 것도 모자라 육신이 잘려 나간 그의 최후를 감안 한다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허균이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를 꿈꾸었다는 증거는 없다. 적어도 정치라는 사회 영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사회를 꿈꾼 것은 사실이다. 그의 문헌을 내용적으로 종합해 보면, 신분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으로 평가한 현실을 바꾸어 보려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의 그림이 실현된 공간을 한번 쯤 꿈꾸어 보게 마련이다. 그러한 공간이 실현된 곳으로 율도국을 해석하는 경우, 율도국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혁명마저 용인하는 사람의 뜻이 실현되는 공간을 상징한다. 그러한 뜻에 따른 결정은 현실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경우에서 비타협적 결정에 해당한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러한 비타협적 결정은 다시 세상을 버리는 결정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결정으로 나뉜다.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세상을 등지는 허생의 마지막 결단이 세상을 버리는 결정에 해당한다면,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의 행적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결정을 보여 준다. 허균이 구체적으로 생각한 정치론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처했던 상황을 고려할 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없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신분에 가로 막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세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백성을 무서워하고 백성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그의 입장을 감안한다면, 민중의 관심사를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정치 체제의 구축이 그가 생각한 궁극적인 정치론일 수 있다. 이를 받아들이면, 허균은 지배자 관점의 실학자들보다는 피지배자 관점의 실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면, 조선 후기의 야담집, 구연소설 및 몇몇 학자들의 문집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작품 모두에는 당시 현실을 수긍하지 않는 관점이 깔려 있다. 사대부라는 정치가 계층의 권력 행사 방식에 정당한 권위를 부여 하지 않는 그 관점은 당시 권력 구조의 고착화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다. 다만 그러한 반감과 두려움을 가진 인물의 성품이나 계층에 따라 작품들의 성격도 달라진다. 조선 후기의 야담집에 담긴 이상 세계가 엄격한 위계질서를 가진 권력 구조를 인위적인 것으로 보고 그러한 구조에서 해방된 사회를 묘사한다면, 구연소설 다수는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기존의 가치 체계가 왜곡 없이 실현되길 바라는 지배 계층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피지배 관점의 실학자들이나 이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들은 사대부 계층의 특권을 부정하고 신분제를 직분제로 대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위 결론을 받아들인다면, 이 땅의 조선 후기에는 기존 권력 구조의 고착화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이 각계 계층에 걸쳐 확산되고 있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게 된다. 또한 다양한 정치론들이 구체화되지는 못했어도, 그런 정치론을 산출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된 상황을 가정하는 경우,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론이 이 땅에서 구체화될 수도 있었다는 추측은 그럴듯하다. 이제 그러한 정치론을 진행되는 방식, 그리고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가 유교의 가치 체계와 무관하게 인식되게 되는 가상의 세속화 과정에 대해 짧게 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