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세속화와 근대화 2

착한왕 이상하 2014. 10. 31. 23:34

현대적인 것을 대표하는 특징들을 논할 때 세속화 과정은 빼먹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은 어디에나 해당하는 것이지만, 이 땅은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직접 대응시킬 수 있는 과정 없이도 세속화된 곳이다. 물론 지적으로 성숙한 무종교인을 그 어떤 이념에도 종속되기를 거부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경우, 그러한 무종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는 아직 없다. 이 땅도 이에 대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 땅은 어느 정도 세속화된 곳일까?’라는 물음이 여전히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것은 일단 뒤로 미루자. 여기서는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근거해 이 땅의 현실을 진단하는 것은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 이 땅이 세속화된 과정을 논하는 것은 별도의 작업을 요구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근대화라는 것을 빼먹을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이 땅의 근대화를 논할 때, 그 초점은 이 점에 맞추어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세속화와 근대화를 대등한 의미로 사용하는 근대화에 대한 규정 방식은 멀리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실례로 데카르트 등을 등장시키면서 개인의 자율성 개념이 자리잡는 과정을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설정하는 방식은 우리의 논의 맥락에서 제외될 필요가 있다. 근대화와 세속화를 혼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그러한 규정 방식, 즉 일부 철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이 선호하는 그러한 규정 방식은 역사를 유럽이라는 무대에 국한시킬 때 어느 정도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여기저기모두를 아우르는 세계사의 관점에서는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세속화된 곳이며, 현대적인 것을 대표하는 특징들도 그런 오랜 과정의 직접적 여파로 여기에 나타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대화의 출발점을 속칭 근대 자연 철학 및 과학의 형성기로 잡는 것은 역사를 유럽 무대로 국한시키는 맥락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것도 근대 자연 철학 및 과학이 계몽주의로 이어지고 확장된 것을 근대화와 세속화 과정을 지탱시킨 필연적 사건처럼 묘사하는 지성사에서 의미를 갖는다. 근대 자연 철학 및 과학이 계몽주의에 영향을 끼친 것은 맞지만, 이를 이것이 그것으로 이어졌다는 식의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러한 방식의 해석은 세속화를 기차에 유비하여 계몽주의를 마치 기차의 엔진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을 유행시켰다. 계몽주의가 세속화 과정을 논할 때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은 통용될 수 없다. 이 점은 지금까지의 논의에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명백할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사고방식은 계몽주의 물결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페인 및 포르투갈을 포함한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를 유럽사에서 잘라내어 버리는 결과를 나았다(*).

 

이베리아 반도의 자연사 등이 실제로는 근대 과학을 형성시키는 데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그래서 과학 혁명기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어받은 지적 유산을 은폐하기 위한 허구의 개념이라는 식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몽골의 침입에 의해 아랍 문명이 유럽에서 후퇴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남미, 인도, 아프리카 등 신세계(New World)’가 유럽에 열렸다는 사실은 분명히 유럽의 근대를 논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 간 거래의 활성화, 새로운 전염병 등에 의한 자연사의 인식 변화 등 신세계의 발견은 유럽을 새롭게 하기의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몽주의 등을 중심으로 한 일방적인 지성사는 유럽에만 시각을 국한해도 한계를 갖고 있다. 하물며 그러한 지성사를 기준으로 이 땅의 역사와 현실을 진단하는 것은 더욱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서도 세속화된 이 땅의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려면, 근대화와 세속화를 무차별적으로 혼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현대적인 것을 대표하는 특징들이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서도 이 땅에 나타난 방식을 근대화와 연관지어 설명하려 할 때, 여러 사회학자들에 의해 많이 논의된 다음의 역사적 성향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인종주의의 쇠퇴

 

이제 우리가 위 세 성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이 땅의 시각이 개입된 경우의 해석 방식을 살펴보자.

 

(*)  이베리아 반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방식은 르네상스 말기부터 이탈리아 및 영국을 중심으로 등장한다. 이 점은 스페인의 이탈리아 지배, 영국과 스페인의 당시 극도의 긴장 관계를 감안한다면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18세기를 거치면서 스페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영국뿐만 아니라 대륙 지식인들의 뇌리 속에 박혀 버렸다. 스페인과 적대적 관계를 맺었던 영국이나 네덜란드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독일의 칸트, 프랑스의 몽테스키외 및 프랑스 혁명을 이끈 인물들의 글에서 스페인을 경멸하는 문구를 찾아 볼 수 있다.

 

(**) 이 점은 문명 교류사적 관점의 과학사라는 다른 작업에서 분명해질 것이다. 여기서는 베이컨과 관련해 약간만 언급한다. 베이컨이 이탈리아 등의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이베리아 사람들이 발견한 신세계및 스페인의 예수회 교육등에 정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베이컨이 이베리아 사람들의 발견과 교육 제도 등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가지고 베이컨의 저술들이 이베리아의 지적 유산을 각색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과학과 민족주의를 결합시켜 대영 제국을 건설해 보려는 베이컨의 야심은 이베리아 지식인들의 세계관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 또한 자연사에 대한 그의 관심도 일부 이베리아 사람들의 발견에 자극받았다. 하지만 과학적 방법론 등에 대한 베이컨의 관점에 직접 대응하는 것은 이베리아 지식인들의 저술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프로투온도(M.M. Protuondo)가 암시했듯이, 베이컨의 작업들은 당시 여러 통로에서 유럽에 흘러 들어온 지적 유산들을 바탕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일명 과학 혁명기도 그러한 생성에 가깝다. 물론 돕스(B.J. Dobbs)의 지적대로 혁명이라는 은유는 눈에 크게 띄는 결과를 산출시킨 사건들의 연속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의 자연사의 복원 등이 근대 과학의 형성기를 뜻하는 과학 혁명기의 의미를 사소하다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다만 과학 혁명기의 지금까지의 의미가 너무나 편협했다는 사실만 보여줄 뿐이다. Protuondo, M.M.(2009), Secret Science, Spanish Cosmography and the New World, University of Chicago. Dobbs, B.J.(2000), “Newton as Final Cause and First Mover” in Osler, M.J.(Ed.), Rethinking the Scientific Revolution, Cambridge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