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그램 거울
너는 자신의 완전한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 물론 두 개의 전신 거울을 사용해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해 보면 자신의 뒷모습 전체를 한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설령 이렇게 저렇게 하여 너의 뒷모습 전체를 보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뒤틀린 너의 육체로 인한 감각이 거울 관찰을 방해할 것이다. 그렇게 너의 뒷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너 자신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아니다.
이제 네 앞에 ‘홀로그램 거울’이 있다고 하자. 그 거울에 투사된 너의 모습은 너무나 입체적이어서 마치 또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만약 홀로그램 거울의 입체 영상이 오로지 너의 시선에만 좌우된다면, 너 자신의 뒷모습 전체를 볼 수는 없다. 그래서 홀로그램 거울을 좀 더 개선시키자. 네가 원하는 시선에 따라 홀로그램 거울의 입체 영상이 움직인다고 해 보자. 그 입체 영상을 180도 회전시키면 너의 뒷모습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볼 수 있다. 너는 그 뒷모습을 본 순간, 비뚤어진 허리를 보고 허리 교정을 위해 내일부터 요가 학원에 나가기로 결심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홀로그램 거울의 입체 영상을 이리저리 돌리며 다음과 같은 물음들을 스스로에게 던질지도 모른다.
• 나는 무엇인가? (너는 무엇인가?)
위 물음은 고대부터 중요했다고 철학자들은 말한다. 가까운 거리에서만 상을 드러내는 청동기 거울이 사용되던 시대의 사람들이 정말 위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까? 지금의 거울이 탄생한 500여 년 전 사람들이 위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까? 위 물음을 놓고 밤잠을 설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 물음의 의미가 당시 사람들과 현재 사람들에게 동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점은 자아의 문제를 서양 철학 고유의 것으로 정초시키고자 했던 철학자들의 대답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분명해 진다. 그들은 항상 ‘보편적인 무엇’과 연관시켜 위 물음에 대해 답해 왔다.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 ‘합리적 인간으로서의 나’ 등 말이다. 그리고 ‘나’의 개성을 애써 외면하지 않기 위해, 개인을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것’으로 규정하려는 철학자들도 있었다. 이들 철학자들의 무기는 ‘자아(self)’라는 개념이었으며, 그것은 그들의 사고방식의 맥락에 따라 단수 혹은 복수로 혼용 사용되어 왔다.
[물음 1] ‘나는 무엇인가’을 보편적인 인간 개념과 같은 것을 전제하지 않고 다루어 보려는 시도가 본격화된 시기는 언제인가?
[물음 2] 개인적으로 ‘셀카’를 찍어본 적이 없다. 이러한 나 같은 사람은 희귀종으로 분류될 정도로 ‘셀카’는 일상화되었다. ‘셀카’를 찍는 사람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르네상스 화가가 ‘나’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사이에서 나타는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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