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잡세상 잡글

먹는 글자

착한왕 이상하 2015. 2. 14. 22:18

 

 

먹는 글자

 

동네에 신기한 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청색 개구리가 울 때마다 등에 노란 글자들이 나타났다. 그 개구리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 소문을 들은 재상도 그 개구리를 보려고 가마를 타고 행차했다.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야 ... . 개구리 등에 새겨진 글자는 도대체 어느 나라 글자일까?”

 

재상은 동네에서 현명하기로 소문난 거사를 불렀다. 거사의 말에 따르면, 개구리는 글자 나라에서 왔다고 한다. 글자 나라에는 종이가 없다고 한다. 종이가 없으니 책도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글자 떡이라는 것을 먹는다고 한다. 글자 떡을 먹으면 떡 속에 담긴 지식이 사람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재상에게는 골칫거리 외아들 영특이 있었다. 열을 가르쳐도 하나만 기억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이 왜 문제인지도 모르는 아들이었다. 이런 아들을 글자 나라에 보내 딴 사람으로 바꾸고 싶었다.

 

거사, 아들을 글자 나라로 보내고 싶소.”

 

글자 나라에 들어가려면 먼저 그 나라의 글자를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 글자를 배울 수 있겠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는 개구리를 먹는 것입니다. 그 개구리에는 치명적인 독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개구리를 먹는 사람은 십중팔구 죽게 됩니다. 만약 그 사람이 살게 되면 글자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개구리에게 금화 한 가마니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개구리가 글자 나라로 안내해 준다고 합니다. 글자 나라에 황금 한 가마니를 바치면 글자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못난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목숨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개구리를 먹일 수는 없었다. 금화 한 가마니면 재산의 절반이다. 하지만 지금 상태의 영특은 재산을 관리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재상은 금화 한 가마니를 글자 나라에 바치기로 마음을 정했다.

 

재상은 금화를 모아 개구리에게 보여 주었다. 금화를 본 개구리는 마치 자기를 따라 오라는 듯 방향을 틀어 느릿느릿 뛰기 시작했다. 영특은 노새에 올라탔다. 몸종 칠득은 금화 한 가미를 또 다른 노새 등에 실었다. 영특은 노새를 타고, 칠득은 노새를 끌고 개구리를 뒤따라갔다.

 

개구리가 가는 방향은 북쪽인지, 남쪽인지 알 수 없었다. 영특과 칠득은 그저 개구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갔지만, 도대체 글자 나라의 경계커녕 작은 마을조차 나타날 기색이 없었다. 개구리를 쫓아 헤매던 둘은 피로감에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개구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환하게 비치는 빛 때문에 손으로 눈을 가려야만 했다. 둘은 빛이 나오는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글자 나라의 왕국이 나타났다.

 

글자 나라에 발을 들이는 순간, 마치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 웬 사람이 나타나 노란 떡을 영특과 칠득에게 주고 금화 한 가마니를 실은 노새를 끌고 갔다. 둘은 노란 떡을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글자 나라의 말이 입으로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칠득은 영특이 탄 노새를 이끌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칠득아, 내가 여기서 뭘 얻어 가야 아버님이 좋아하실까?”

 

재산이 많으니 저처럼 결혼할 상대를 구하기 어렵지 않고, 또 먹고 살기 위해 별도의 일을 하실 필요도 없으십니다. 물려받을 재산을 축내지 않고 잘 관리해 불릴 능력만 갖추신다면, 아버님은 당장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으실 겁니다.”

 

그래, 그런 능력을 얻으려면 어떤 것을 알아야 할까?”

 

작게는 장사하는 법, 크게는 경세(經世)를 알아야 하겠죠.”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많은 가게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행정, 관리, 장사와 관련된 모든 글자 떡을 판다는 가게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영특과 칠득은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 떡들을 샀다.

 

주인아저씨, 어떤 떡부터 먹어야 할까요?”

 

순서는 상관없어요, 다 먹으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겁니다.”

 

영특은 가게에서 산 떡들을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웠다. 가게 주인아저씨 말대로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당장 나라의 살림을 맡는 대신이 되어도 아무 문제없이 잘 해나갈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리, 이제 원하는 걸 얻었으니 며칠 쉬시고 집으로 돌아가십시다.”

 

칠득의 이 말을 들은 영특은 버럭 화를 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재상의 아들이었지만 똑똑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놀림받았던 생각을 하면 치가 떨렸다. 영특은 뒤에서 자신을 놀렸던 자들에게 완전히 뒤바뀐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칠득아 여비로 가져온 금화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단다. 글자 떡 가격도 싸고 하니, 온갖 종류의 글자 떡을 살 수 있는 대로 다 사서 먹으리라. 고향 사람들에게 보여 주리라, 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 .”

 

칠득은 글자 나라가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농민은 농사 떡을 먹고 농사만 짓고 살고, 상인은 장사하는 방법을 담은 떡을 먹고 장사만 하고 살고, 관료는 행정 떡을 먹고 관리만 하고 산다. 누가 어떤 떡을 먹어야 하는지는 왕이 결정한다고 한다. 칠득은 글자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영특은 눈에 보이는 가게마다 들려 떡의 용도를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떡들을 사 먹었다. 떡을 먹을 때마다 세상이 달리 보였고, 배가 꽉 차니 세상을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향으로 되돌아가면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변모해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노자 돈이 떨어질 무렵, 영특은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가 생기면 너무나 많은 것이 한꺼번에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중 무엇이 맞는지 알 수 없어 생기는 혼란으로 인해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고 했다. 칠득은 이러한 영특을 두고 혼자 고향으로 돌아 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 가 보았자, 그에게 돌아올 것은 재상의 성난 고함 소리밖에 없을 것이다.

 

칠득은 횡설수설하는 영특을 데리고 궁궐 바깥에 꿇어 앉아 왕을 알현하기를 청했다. 영특이 황금 한 가마니를 바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왕은 그들과 마주했다.

 

주인 나리를 낳게 할 방도는 없는지요?”

 

중화제를 마시면 된다. 그런데 중화제를 마신 사람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느니라. 아무튼 영특이 중화제를 마시면 제 정신을 찾게 되겠지.”

 

대화를 듣고 있던 영특이 소리쳤다.

 

중화제를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난 후 장사하는 방법을 담은 떡만 먹겠습니다. 다른 종류의 빵은 절대 입에 대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온갖 종류의 글자 떡을 사먹느라 더 이상 떡을 살 돈이 없지 않느냐?”

 

고향으로 돌아가 황금 한 가마니를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 그것은 불가능하도다. 여기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는 쉽지만, 여기로 다시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등에 글자가 새겨지는 개구리의 안내를 받아야지만 여기로 올 수 있지. 문제는 그런 개구리가 네 고향에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야.”

 

왕의 말을 들은 영특은 하늘이 노래져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를 본 왕이 말을 이어 나갔다.

 

무엇보다 목숨이 중요하니, 그냥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어떠하냐? 중화제를 마시고 한잠 푹 자고 일어나 먹고 싶은 글자 떡을 먹으렴. 대신 단 한 종류의 떡만 말이지.”

 

영특은 생각했다.

 

여기에서는 똑똑한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고향에 돌아가 똑똑한 사람으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그것은 고향 사람들과 아버지에 대한 복수인 것이다.”

 

영특은 왕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다시 횡설수설했다.

 

왕이시여, 주인 나리가 중화제를 마시지 않으면 반드시 죽게 되나이까?”

 

십중팔구 그럴 거야. 제아무리 글자 떡을 먹고 지식을 쌓는다고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란다.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 어떤 지식을 사용해 줄지를 즉각 알려주는 큰 지식이란 없는 법! 그런 큰 지식을 담은 글자 떡은 없단다.”

 

어떤 사람이 중화제를 마시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지요?”

 

중화제를 마시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지. 사실 그런 사람은 중화제를 마시게 될 상황에 처하지 않겠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된 칠득은 점점 미쳐 가는 영특을 데리고 궁궐 바깥으로 나왔다. 영특에게는 여전히 세상이 다르게 보였고, 머릿속에서는 이 지식 저 지식이 미친 말처럼 날 뛰었다. 어떤 말을 타야할지 모르는 기수처럼 영특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헤매다 입에 거품을 물고 죽었다.

 

칠득은 죽은 영특의 시체를 가마니에 덮어 노새로 하여금 끌고 가게 하였다. 어느새 글자 나라를 벗어나 고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영특의 시체에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영특의 시체를 본 순간, 칠득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울 때마다 등에 글자가 새겨지는 개구리가 영특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 개구리는 고향으로 가는 방향과는 다른 길로 뛰어 갔다. 칠득은 속으로 말했다.

 

아하, 그런 거였구나.”

 

 

******

 

이어지는 얘기는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