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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스의 상징성

착한왕 이상하 2015. 6. 12. 19:45

 

 

메르스 확산 사태로 '코르스', 즉 '한국판 메르스'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른 나라와 달리 메르스 전파 속도가 너무나 빠르고, 확산 범위도 예상보다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1. 메르스 환자 1인당 전파력은 0.8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의 경우 최대 40명에 이른다.

2. 메르스 전염 가능 거리 및 시간은 확진 환자를 중심으로 반경 2m, 1시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점은 우리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환자 발생 범위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3. 메르스 감염자는 보통 38도 이상의 고열 증상을 나타낸다. 우리의 경우, 미열 의심 환자도 확진 환자로 판명되는 경우가 나왔다.

4. 메르스 환자 중 고위험군은 고령 환자들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경우, 30대 이하 확진 환자도 17%에 달하며 고령이 아님에도 고위험군 환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1~5만 보고 현재 이 땅에서 발생한 메르스의 광범위한 확산 원인은 혹시 기존 메르스의 변이나 한국인의 특이한 유전적 요인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WHO의 발표와 달리 이 땅의 변종 메르스, 즉 코러스는 분말 흡입이나 환자와의 직접적 접촉 없이도 공기 중 전파가 가능한 놈일 수도 있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렇게 결론내리기는 시기상조이다.

 

유전자 분석 결과, 코르스가 메르스의 변종이라는 실험적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인의 특이한 유전적 요인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그 근거가 애매모호한 것이다.

 

1~5를 좀 더 냉철하게 분석해 보면, 지금 코르스를 논할 단계는 아님을 알 수 있다. 2를 보자. 2는 모든 나라에 일방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2에는 병원 응급실당 환자 밀도나 환자 이동 방식에 대한 정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기가 걸려도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더욱이 영국, 미국, 중국의 메르스 사태와 달리 의심 환자 정보를 사전에 통보 받지도 못했다. 의사들은 무슨 병이 걸린지 모른 채 찾아온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환자 1인당 전파력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높게 나타난 것은 '새로운 설명을 요구하는 사실'로 간주될 수 없다. 만약 서울대학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더 발생했다면, 사태는 더 심각해 졌을지도 모른다(이에 대해서는 이승욱의 문화일보 컬럼 참조 http://media.daum.net/editorial/column/newsview?newsid=20150611140109335).

 

3, 4를 보자.  낙타에 기생하는 메르스는 오래 전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커, 사우디아리비아 지역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메르스에 대한 면역체계를 갖추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사우디아리비아의 의료 시설은 우리보다 떨어지는 곳이다. 젊은 환자는 메르스가 걸렸는지도 모르고 혼자 앓다고 지나쳤을 가능성도 우리보다 크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한다면, 3과 4를 가지고 변종 메르스, 즉 코르스를 논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코르스'는 '공항관리부터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보건당국의 현 방역체계의 허술함', '허술한 방역체계를 포섭하는 아마추어적 보건관리체계', '감기 증상의 환자부터 다리가 부러진 환자들의 도가니탕과 같은 응급실의 구조', '대형병원 위주의 치료 체계', '감염병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결여', 'WHO를 비롯한 국제 협력 기구의 일반 권고안을 우리나라 상황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관례' 등을 총칭하는 상징어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점은 이 땅에서 발생한 메르스가 변이를 일으켰다고 밝혀져도 변하지 않는다.

 

'코르스'의 상징성에 덧붙일 것이 하나 더 있다. '사회의 정치 영역을 문제의 공론장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세력을 정착시키는 장소쯤으로 치부하는 정치가 및 관료들의 그릇된 인식'이다. 당장 이번 메르스 사태는 이 땅에서 일어났지만 전 지구적 문제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 간 공조 체제, 국가 내 투명한 정보 공유가 선결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속칭 보수를 자처하는 현 정권은 문제를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문제만 더 키우고 말았다. 이 점에서 속칭 진보를 자처하는 박원순 시장의 '대 정부 비판 성명'은 적절한 시기에 잘 한 일이다. 하지만 그 성명에서 삼성 병원 의사 개인을 거론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한 거론은 전략적으로도 잘못된 것이다. 박 시장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러한 거론은 제 3자에게는 '특정 인물을 희생양 삼아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행위'로 비추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 시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려 들 것이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딱 하나다. 민주주의는 특정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그리고 개인의 비판적 시각과 무관하게 누구나 1표라는 원리로 돌아 간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박 시장을 자문하는 위치에 있었더라면, 삼성 병원 의사에 대한 언급은 성명서에서 빼라고 했을 것이다. 사실 현 정권 비판 내용도 손 볼 곳이 많았다.

 

정치가 집단들이 이 번 사태를 정치적 세력 유지나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면, 이 번 사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 즉 '코르스의 상징성을 제거시키는 것'의 사회적 실천은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보 진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진정 진보의 꿈을 조금이나마 실현시키고 싶다면, 좀 더 프로페셔널 해져라. 이 말의 의미는 시간이 난다면 한 번 구체화해 볼 의향이 있다.

 

* 코르스 상징성을 통해 얻어낸 문제들

1. 보건당국의 현 방역체계의 허술함

2. 허술한 방역체계를 포섭하는 아마추어적 보건관리체계

3. 감기 증상의 환자부터 다리가 부러진 환자들의 도가니탕과 같은 응급실의 구조

4. 대형병원 위주의 치료 체계

5. 감염병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결여

6. WHO를 비롯한 국제 협력 기구의 일반 권고안을 우리나라 상황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관례

7. 사회의 정치 영역을 문제의 공론장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세력을 정착시키는 장소쯤으로 치부하는 정치가 및 관료들의 그릇된 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