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K 비판적 사고/쓰레기 입시 논술, 면접, 수능언어

실전 논술 기초훈련 중 하나(이대, 한대)

착한왕 이상하 2015. 3. 2. 21:30

 

 

* 다음 논술 훈련 자료를 개발자 이상하의 허락 없이 변형하여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1~3]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현실적으로 실업자인 것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것은 없다. 사실 노동은 물질적 안정뿐 아니라 정신적 안정도 보장한다. 노동을 통해서 개인은 재정적 독립과 사회적 승인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개인 활동의 유용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그 결과 인격의 유용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그러한 사회적 승인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노동을 통해 개인은 사회 속에 위치하며, 그 사회 속에서 자유로운 개인, 자립적 개인,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개인으로 인정받는다. 이런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혼 여성들의 직업을 가지려는 성향, 퇴직한 사람들의 무위도식에서 벗어나려는 현상, 젊은이들의 첫 직장 구하기의 고통이 상징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또한 노동은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아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의 고통을 덜어준다.

   

1. 다음의 빈 칸을 채워 본다면?

 

(    )은 노동을 통해 재정적 독립과 (    )을 얻을 수 있다.

(    )을 통해 개인은 사회 속에서 (      )(      )이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또한 (                                                                                      )

노동: (            ) & (           ) 보장 -> (                                                 )

 

2. 위 글을 150자 내외로 요약하기 위해 노트를 해 본다면?

 

3. 위 글을 15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4~6]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9세기에는 남성과 여성의 노동이 점진적으로 분리되면서 그 경계가 뚜렷해졌다. 사업과 전문 분야가 확대되면서 남자들의 경우에는 직업이나 공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 존재 의의가 규정된 반면, 여자들은 그러한 세계에서 멀어져 어머니 역할과 가사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남성과 여성 세계의 이러한 분리는 종교적인 함의를 담고 있었다. 왜냐하면 장터는 위험하고 비도덕적인 공간이며, 이 영역에서 활동하는 남자들이 가정이라는 도덕적 세계와 부단히 접촉하지 않으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시장의 파괴적인 경향을 순화하는 역할을 가정에서 여자들이 담당한다는 것이다. 가정은 다정한 즐거움의 장소로서, 가정유지를 위해 필요한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느라 힘들고 고단한 남자들을 위한 안식처였다. 남성다움은 자기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했고, 여성다움은 얼마나 의존적이 될 수 있는가를 의미했다. 여자가 만일 직업을 가지게 되면 여성의 고상함은 파괴되어 버린다고 생각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밥벌이를 하는 남편과 가정적인 아내와 아이들이라는 중간 계급의 이상이 널리 확산되고, ‘주부'라는 새로운 범주가 도입되었다.

 

4. 다음의 빈 칸을 채워 본다면? 

 

5. 위 글의 내용을 노트하고, 노트를 바탕으로 위 글을 200자 내외로 요약해 본다면?

 

6. 위 글을 바탕으로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런던 거리를 묘사한 다음 그림을 자유롭게 해석하시오.

 

 

 

  이제 이화여대 논술 기출 문제를 풀어 보자.

 

[논제] 제시문 [][]의 요지를 밝히고 그것에 근거하여 제시문 []에 나타나는 모녀간의 갈등을 분석하시오. (이대 기출 문제)

 

[] 현실적으로 실업자인 것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것은 없다. 사실 노동은 물질적 안정뿐 아니라 정신적 안정도 보장한다. 노동을 통해서 개인은 재정적 독립과 사회적 승인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개인 활동의 유용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그 결과 인격의 유용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그러한 사회적 승인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노동을 통해 개인은 사회 속에 위치하며, 그 사회 속에서 자유로운 개인, 자립적 개인,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개인으로 인정받는다. 이런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혼 여성들의 직업을 가지려는 성향, 퇴직한 사람들의 무위도식에서 벗어나려는 현상, 젊은이들의 첫 직장 구하기의 고통이 상징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또한 노동은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아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의 고통을 덜어준다.

 

[] 19세기에는 남성과 여성의 노동이 점진적으로 분리되면서 그 경계가 뚜렷해졌다. 사업과 전문 분야가 확대되면서 남자들의 경우에는 직업이나 공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 존재 의의가 규정된 반면, 여자들은 그러한 세계에서 멀어져 어머니 역할과 가사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남성과 여성 세계의 이러한 분리는 종교적인 함의를 담고 있었다. 왜냐하면 장터는 위험하고 비도덕적인 공간이며, 이 영역에서 활동하는 남자들이 가정이라는 도덕적 세계와 부단히 접촉하지 않으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시장의 파괴적인 경향을 순화하는 역할을 가정에서 여자들이 담당한다는 것이다. 가정은 다정한 즐거움의 장소로서, 가정유지를 위해 필요한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느라 힘들고 고단한 남자들을 위한 안식처였다. 남성다움은 자기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했고, 여성다움은 얼마나 의존적이 될 수 있는가를 의미했다. 여자가 만일 직업을 가지게 되면 여성의 고상함은 파괴되어 버린다고 생각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밥벌이를 하는 남편과 가정적인 아내와 아이들이라는 중간 계급의 이상이 널리 확산되고, ‘주부'라는 새로운 범주가 도입되었다.

 

[] 연지는 꽤 이름 있는 교양지 기자였다. 연지는 그 일에 보람도 느끼고 꽤 열심히 뛰고 있어 서 인정도 받고 있는 모양이지만 경숙 여사는 그 직업이 연지를 선머슴같이 만드는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경숙 여사가 연지의 직업에 흡족했던 건 딱 한 번 있었고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연지가 대학을 졸업하고 시험 본 것이 그 잡지사였고, 여기자 공개 채용에 응모한 여대 졸업생은 자그마치 이백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 중 서류 심사에서 오십 명을 추려서 오십 명이 재차 필기시험과 면접을 치르고 나서 최종적으로 한 명을 뽑는 데 연지가 뽑혔다. 이백 대 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건 경숙 여사의 허영심에 대단한 만족감을 주었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랑하지 않곤 못 배길 대사건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백 대 일의 경쟁에 이긴 것을 삼 대 일의 대학 시험에 붙은 것만큼도 안 알아 줬고, 중매를 해 봐도 대학 졸업하고 고이 집에 들어앉아 있는 규수보다 여기자를 조금은 덜 쳐 주려는 낌새가 그녀를 놀라고 자존심 상하게 했다. 다달이 손에 쥐는 실소득도 이백 대 일의 경쟁을 뚫은 인재에 대한 대우로는 너무도 소홀한 것도 경숙 여사를 실망시켰다. 꼭 뭣에 교묘하게 기만당한 느낌이었다. 여자 직장이란 어차피 정거장 같은 거, 머물러 봐야 몇 년이나 더 머물라구. 엄마가 그만두란다고 그만둘 딸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 자위했었는데 약혼 날을 받아 놓고도 연지는 사표 낼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