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비판적 사고

캐럴의 거북이와 MP(Modus Ponens) 1. 악어, 거북이, 아킬레스

착한왕 이상하 2015. 5. 3. 21:58

각종 적성 시험이 난무하면서 미국의 비판적 사고가 대학의 교양 과목으로 채택되었다. 이러한 세태 속에 소위 전건 긍정 형식 MP(modus ponens)’ 등의 논증 및 추론 형식이 마치 논증의 내용적 타당성을 결정해 주는 규범적 기준처럼 알고 사용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MP가 타당한 형식으로 굳어지는 데에는 약 1000여년이 걸렸다. 학생들은 MP를 추론 규칙으로 성립하게 해주는 경계 조건들을 모른 채 MP를 사용하고 있다. 시제, 가능성 및 필연성, 당위성 등 양상을 고려하는 경우, MP 형식을 만족하면서도 내용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논증들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더욱이 ‘MP를 추론 규칙으로 사용한다는 것‘MP 사용에 규범적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글에서는 다음은 뺀다.

 

MP의 역사

내용적으로 타당한 논증과 형식적으로 타당한 논증의 구분

MP가 성립하는 언어 체계의 경계 조건들

MP 형식을 만족하지만 내용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논증들

 

 

 

 

캐럴의 거북이와 MP

- 일상적 합리성과 형식적 합리성의 관계 -

 

 

1.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저자로 잘 알려진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의 본명은 찰스 도그슨(C. Dodgson)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수학자이자 사진가인 캐럴을 유명하게 만든 소설이다. 그 소설에는 논리학에 대한 캐럴의 관심사가 반영되어 있다. 다음 삼단 논법을 살펴보자.

 

<영리한 악어>

영리한 모든 동물은 사람이다.

모든 악어는 영리한 동물이다.

모든 악어는 사람이다.

 

일부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어낼 목적이 아니라면, <영리한 악어> 논증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두 전제를 정말로 참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리한 악어> 논증은 내용적으로 타당하다. , 두 전제를 받아들이면, 결론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는 내용적으로 타당하거나 그럴듯하지만 현실 세계에 비추어 터무니없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특정 이야기는 내용적으로 타당하면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논증, 즉 건전한 논증(sound argument)과 그렇지 않은 논증을 구분하는 사고 훈련으로 재구성 가능하다.

 

논증 <영리한 악어>를 보면, ‘악어’, ‘영리한 동물’, ‘사람이라는 세 가지 범주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범주 개념을 변수 X, Y, Z로 대체하면 바바라(barbara)’로 불리는 다음의 범주 삼단 논법 형식을 얻게 된다.

 

<바바라>

모든 YZ이다.

모든 XY이다.

모든 XZ이다.

 

X, Y, Z의 외연들, X, Y, Z 각각에 대응하는 대상들의 집합들이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두 전제를 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두 전제를 ‘YZ의 부분 집합’, ‘XY의 부분 집합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부분 집합의 관계는 이행성 조건을 만족하므로, XZ의 부분 집합이 된다. 따라서 결론 ‘XZ이다는 참이다. 여기서 던져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물음 두 개가 있다.

 

<바라라> 형식에 대한 집합론적 해석은 누구나 파악할 수 있는 것인데, 왜 그러한 형식은 서양에서만 구체적으로 다루어져 논리학의 바탕이 되었을까?

 

<영리한 악어><바바라> 형식의 관계는 무엇인가? 내용 의존적인 일상적 논증의 타당성과 형식적 타당성의 관계는 무엇인가? 일상적 합리성(ordinary rationality)과 형식적 합리성(formal rationality)의 관계는 무엇인가?

 

첫 번째 물음은 논리적 주어(logical subject)와 사실(fact)의 엄격한 구분을 함축한 명제(proposition)’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는 곳에서 간략하게 다룰 것이다. 그러한 이유를 받아들이면, 논증 및 추론 형식을 다루는 논리학이 명제 개념을 전제할 이유도 없어진다. 둘째 물음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답은 다음이다.

 

<도식적 사고방식(schematic thinking)>

<바바라> 형식을 규범적 기준으로 하여 <영리한 악어> 논증의 타당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영리한 악어><바바라> 형식을 만족하는 일상적 사례이다. 이렇게 타당한 형식을 규범적 기준으로 삼을 때, 일상 언어의 사용에서 나타나는 애매모호함도 제거해 나갈 수 있다. 합리성을 결론에 대한 적절한 근거 찾기, 근거를 가지고 적합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 내재적인 능력 및 성향들을 통칭하는 은유라고 할 때, <바라라> 형식 등을 구성하는 형식적 합리성은 <영리한 악어>등을 구성하는 일상적 합리성에 대한 규범적 기준이다.

 

<도식적 사고> 방식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어떤 논증 및 추론 형식을 숙지하고 그에 따라 내용 의존적인 일상적 논증을 구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형식이 논증 분석에 도움을 주는 것은 맞지만, 이로부터 <도식적 사고>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바바라>와 같은 형식들이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 발견 가능한 것들이라면, 즉 프레게(G. Frege)가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의 경험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관적인 것들이라면, 인간의 인지 체계는 그런 형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형식들이 사고의 법칙과 같은 것이라면, 그러한 형식들은 마음과 같은 것에 각인되어 있거나, 아니면 언어 체계의 내재적 원리와 같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문제는 왜 그러한 형식들을 발견하고 타당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이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도식적 사고방식>에 반하는 다음의 사고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비도식적 사고방식(non-schematic thinking)>

<바바라> 형식은 내용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영리한 악어>와 같은 일상적 논증들에서 추상화 과정을 거쳐 얻어진 것이다. 그러한 추상화 과정으로서 개념을 모임이나 집합으로 대체시키는 것’, ‘내용 구성에 내재한 인과 관계나 시제, 가능성, 필연성, 당위성 등의 양상을 제거시키거나 연산자(operator)들로 대체시키는 것’, ‘내용적 연결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접속사들을 논리적 연결사들(logical connectives)로 대체시키는 것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추상화 과정에서 제거하거나 대체시킬 내용적 요인들을 무엇으로 잡는가에 따라 특정 형식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경계가 설정된다. 이 때문에, 많은 논리 체계들이 있는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면, 형식적 합리성은 내용 의존적인 일상적 합리성에 대한 규범적 기준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그러한 합리성에 바탕을 둔 형식들이 일상적 논증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맞다. 하지만 형식적 합리성의 사례로 일상적 합리성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 합리성은 일상적 합리성으로부터 추상화 과정의 특정 조건들을 경유해 생성되는 것이며, 이에 대한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영리한 악어><바바라> 형식의 비교를 통해 <비도식적 사고방식>을 정당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피할 것이다. 대신에 캐럴의 거북이 논쟁을 가지고 <비도식적 사고방식>을 옹호할 것이다. 캐럴의 거북이 논쟁을 살펴보기 전에, <영리한 악어><바바라> 형식의 비교를 통해 <비도식적 사고방식>을 정당화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다.

 

<비도식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면, 그 어떤 논증 및 추론 형식도 그 형식을 만족하지만 내용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일상적 논증을 사례로 가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바바라> 형식을 만족하면서도 내용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일상적 논증의 사례를 찾기는 힘들다. <바바라> 형식을 만드는 데 개입된 조건들이 너무나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 형식은 단 세 개의 범주 개념들 S(악어), M(영리한 동물), P(사람)에 대응된 집합들 {S}, {M}, {P}에 근거한다. 더욱이 두 전제와 결론을 구성하는 세 개의 범주 개념들 중 하나는 두 전제 모두에 나타나야만 하는 중간항(middle term) M이어야 한다. <바바라> 형식은 M에 의한 SP의 내용적 연결 관계를 집합들 {S}, {M}, {P} 사이의 포함 관계로 대체시킨 것이다.

 

이제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대화로 구성된 캐럴의 거북이 논쟁을 살펴보자.

 

 

2.

아킬레스는 거북이에게 다음의 세 진술을 보여 준다.

 

(A) 길이, 면적, 무게 등에서 똑 같은 것으로 동일한 대상들은 서로 동일하다.

(B) 이 삼각형의 양변은 길이에서 똑 같은 것으로 동일한 두 대상들이다.

(Z) 이 삼각형의 양변은 서로 동일하다.

 

거북이는 AB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Z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AB를 받아들이면서도 Z를 받아들이지 않는 거북이의 이유는 무엇일까? AB를 받아들이면 내용적으로 Z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거북이는 아킬레스의 다음 진술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C1) AB가 참이면, Z도 참이어야 한다.

 

아마도 거북이는 AB에서 Z를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논리적으로 추론한다는 것어떤 추론 규칙에 따라 AB에서 Z를 유한 번의 단계적인 절차로 이끌어 내는 것을 뜻한다. C1을 인정한 거북이는 여전히 A, BC1에서 Z를 논리적으로 추론해 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자 아킬레스는 거북이에게 다음의 진술을 보여 준다.

 

(C2) A, B, C1이 참이면, Z도 참이어야 한다. , A, B가 참이고, AB가 참일 때 Z도 참이라면, Z도 참이다.

 

거북이는 어린아이도 C2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Z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러자 아킬레스는 거북이에게 다음 진술을 보여 준다.

 

(C3) A, B, C1, C2가 참이면, Z도 참이어야 한다.

 

거북이는 C3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Z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결국 AB에서 Z를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추론하려면, C1, C2, C3, C4, C5 등이 계속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북이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거북이의 사고방식>

(1) A

(2) B             

(3) A 그리고 B

(4) C1, A 그리고 B이면, Z

(5) C2, A 그리고 C1이면, Z

(6) C3, A 그리고 C2이면, Z

             ......

 

복합 논증 형태를 띤 <거북이의 사고방식>C1, C2, C3, ...., Cn 등이 계속 발생하는 무한 후퇴(infinite regress)’의 구성 방식이다. 그러한 무한 후퇴 때문에, AB에서 Z를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게 된다. <거북이 사고방식>20세기 초에 형성된 고전적 논리학, 1차 진술 논리 체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러운 것이다. 아킬레스가 그러한 고전적 논리학에 익숙한 인물이라고 하자. 그의 사고방식은 다음과 같다.

 

<아킬레스의 사고방식>

(1) A

(2) B             

(3) A 그리고 B

(4) A 그리고 B이면, Z

(5) Z

 

복합 논증 형태를 띤 <아킬레스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ZAB에서 논리적으로 추론된 결과이다. 그 추론 과정에서 아킬레스는 (3)(4)에 다음의 전건 긍정 형식 MP(modus ponens)를 적용하여 Z를 이끌어낸 것이다.

 

MP

pq가 참 거짓 판단 가능한 진술들이라고 할 때, 다음이 성립한다.

 

p

p이면, q

q

 

MP와 같은 형식을 추론 규칙(inference rule)’으로 간주할 때, 그러한 각 형식은 1차 진술 논리에서는 동어반복 형식(tautological form)’에 대응하지만, 이에 대한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점 역시 명제라는 개념을 전제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곳에서 간략하게 다룰 것이다.

 

아킬레스가 <거북이의 사고방식>을 수긍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추론 규칙의 외적 적용성>

거북아 잘 들어라. <거북이의 사고방식>에서 (5)C2MP의 사례에 불과하다. MPp‘A 그리고 B’, q‘Z’를 집어넣은 경우를 생각해 보거라. 그 경우를 너는 C2로 나타낸 거야. 너는 그 경우를 마치 Z를 이끌어 내는 데 필요한 근거 혹은 전제로 사용했단다. 그 바람에 역시 MP의 사례로 취급할 수 있는 C3, C4, C5 등이 계속 발생하게 되었단다. 그러나 MP는 논리적 추론 과정의 근거 혹은 전제와 같은 것이 아니란다. 그것은 그 과정의 근거 혹은 전제들에 외적으로 적용되는 추론 규칙이란다.

 

<추론 규칙의 외적 적용성>을 받아들이는 경우, <거북이의 사고방식>은 근거 혹은 전제와 추론 규칙을 혼동한 결과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다(Goldstein, L., Brennan, J., Deutsch, M., Lau, J.). 그러나 C2MP의 단순한 사례가 되려면, 전제부와 결론을 나누는 경계선 ‘-’논리적 함의(logical imply)’처럼 해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해석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MP를 성립하게 해주는 경계 조건들을 살펴볼 때 분명해질 것이다.

 

일단 <추론 규칙의 외적 적용성>을 받아들이면, 캐럴의 거북이는 논리학 바보로서 근거 혹은 전제와 추론 규칙의 사용 방식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더라도, 캐럴의 거북이 논쟁이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지 알기 위해, 먼저 몇 가지 집고 넘어 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3. 생략(내가 명제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 타당한 논증 및 추론 형식/ MP 성립의 경계 조건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