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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아기 사슴을 배려한 남자

착한왕 이상하 2015. 10. 25. 18:16

 

 

오늘 아기 사슴을 구해준 남자에 관한 신문 기사이다.

 

자신 구해준 남성과 사랑에 빠진 아기사슴 ->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1025134705641

 

 

신문 기사 제목이 너마누 로맨틱하여, 기사를 읽기도 전에 어기 사슴과 자신을 구해준 남자 사이에 진한 혹은 감동의 우정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러나 실제 기사 내용은 다르다.

 

남자는 태어날 때 다리 부상으로 어미가 포기한 아기 사슴을 목격했다. 그러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 따른 선택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때, 사슴 고기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잡아 먹어야지. 혹은 어디다 팔아야지. 둘째, 데려다 키워볼까. 째, 다친 사슴이 늑대의 먹이가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안타까워도 그냥 내벼려 둘 수밖에 없다. 넷째, 그래도 생명인데 구해 주어야지. 기사의 남자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선택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를 선택 했다. 일단 아기 사슴을 데려 왔는데, 이놈을 키우기가 많많치 않다. 남자는 한밤중에도 1시간 간격으로 아기 사슴에게 우유를 먹였다고 한다.

 

사슴은 온순하고 쉽게 길들여진다고 한다. 아기 사슴이 지나치게 인간에게 동화되면 원래의 서식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남자는 아기 사슴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급적 아기 사슴을 멀리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기 사슴은 자신을 구해준 남자를 어미처럼 따랐다. 기사를 보면 , 남자는 우여곡절 끝에 아기 사슴을 원래의 부모 품으로 돌려 보낼 수 있었다. 

 

아기 사슴에 대한 남자의 배려는 '거리를 둔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거기를 둔 배려는 아기 사슴에 대한 동정심에 이끌린 배려를 넘어선 것이다. 남자가 아기 사슴에 대한 동정심에만 이끌려 아기사슴을 배려했다면, 아기 사슴에게 이름도 붙여주고 잘 때 안고 자고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기 사슴을 원래의 서식지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힘들게 된다. 거리를 둔 배려도 동성심을 필요로 하지만 동정심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거리를 둔 배려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분별력을 요구한다. 남자의 목적은 아기 사슴을 원래의 서식지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기 사슴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 등 분별력을 발휘한 것이다.

 

아기 사슴과 남자의 관계를 가족 관계에 직접 유비시키기는 힘들다. 하지만 부모들이 자식을 대할 때 조금은 '지켜보는 사랑'을 발휘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어느 정도 성장한 자식은 아기 사슴과 달리 주변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에 그치면 안 되는 것일까? 자신의 행복보다는 자식의 행복을 우선시한다면, 자식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 분별력을 발휘해 경우에 따라서는 자식을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사는 이런 물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