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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모순적인 '백남기 씨 사망진단서': 권력의 앞잡이 서울대

착한왕 이상하 2016. 9. 29. 01:13



서울대를 '경성제국대의 후예다운 권력의 앞잡이'라고 하면, 노발대발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서울대가 이 땅에 기여한 것이 뭐가 있나? 서울대는 자생적 학풍의 전당으로 기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생적 학풍이 생성되는 분위기를 질식시키는 곳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별도의 논의를 요구하는데, 여기서 그런 논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대 안에도 다양한 부류의 교원들이 있다고 하나, 국외 이론에 기대어 기생하는 자들의 천국임은 분명하다. 서울대가 권력의 앞잡이라고 욕을 먹어도 서울대 교원들은 할 말이 없다. 적어도 이 번 백남기 씨의 진단서 발부 과정을 보면 말이다. '경성제국대의 후예', '권력의 앞잡이', 이런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서울대 앞에 붙는 것이 못마땅한 교원들이 있다면, 백남기 씨 사망 진단서에 대한 유감을 실은 공동 성명서 정도는 발표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병원은 서울대와 큰 관계가 없다고? 그렇다면 그 병원 명칭을 바꿔야 할 것이다.


다음은 김근수 카톨릭프레스 편집인의 페이스북에 공개된 '문제의 사망 진단서'이다.



거의 모든 국내 병원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양식인데, 사실 교통사고, 의료사고 등 복잡한 사안을 처리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은 양식이다. 이런 문제는 제쳐두자. (가)는 어떤 사람의 사망에 대한 직접적 원인, (나)는 그러한 원인에 이르게 된 과정이나 원인, 그리고 (다)는 사망을 이르게 한 최초 원인 이다. (라)에는 (다)를 발생시킨 사건 등이 들어가야 한다. (가)를 사망에 대한 직접적 원인, (나)를 궁극적 원인이라고 하자. 물론 이러한 구분은 의료 행위 관점 틀 속에 국한된 것이다.


(가)를 보면, 심폐 정지가 사망의 직접적 원인으로 규정되어 있다. (나)를 보면, 급성신부전증이 심폐정지를 일으킨 과정으로 규정되어 있다. (다)를 보면, 급성경막하출혈이 사망의 궁극적 혹은 최초 원인으로 규정되어 있다. 급성경막하출혈은 주로 머리에 심한 외상을 입었을 때 발생한다. 백남기 씨가 어떤 이유로 급성경막출혈을 입게 되었는지는 서울대 병원 측이 더 잘 알 것이다. 백남기 씨가 엠불란스에 실려 옮겨진 곳이 서울대 병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규정하려고 (라)를 공백으로 남겼다.


사망진단서는 왜 필요한가? 사망을 둘러싼 법적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전문가의 사망진단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교통사고로 급성경막하출혈이 발생한 경우, 의사는 '외인사'에 체크를 하고. 사고의 종류란에서 '운수(교통)'란에 체크를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의사는 당연히 '외인사'에 체크를 하고, 사고의 종류란에서 '기타'란에 체크했어야 한다. 그가 좀 더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데모 중 물대포를 맞아 생긴 충격으로 ...'와 같은 소견서를 붙일 것이다. 백남기 씨 서울대 입원 기록을 보면, 데모 중 물대포를 맞아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 있다. (관심있는 분은 기사들 뒤지다 보면 그 입원 기록 사진이 실린 것들이 있다.) 


A가 교툥사고로 의식을 잃었다. 엠불란스로 A는 특정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위한 기록을 한다. 만약 A가 사망하면, 입원 기록을 바탕으로 '외인성으로 인한 사망진단서'를 발부한다. A의 유가족은 그 사망진단서를 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정상적인 사망진단서의 경우 그렇다. 그런데 이번 사망진단서는 자체 모순적이다.


(i) 정상적인 사망진단서는 사고 등에 의한 최초 입원 기록과 내용적으로 일치한다. 이번 서울대 병원 사망진다서는 이러한 내용적 일치성을 띠고 있지 않다. 최초 입원 기록에는 '데모 중 물대포를 맞아 ... 입원하게 되었다'는 식의 문구가 적혀 있으나, 사망진단서에는 입원하게 된 원인이 명시되지 않았다. 누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입원했지만 그 원인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정상적인 의사는 병사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입원하도록 만든 원인이 명백히 외인성이라면,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알 수 없으나 ...' 등의 소견서를 쓰는 것이 정상이다.


(ii) 사망진단서 내용대로 백남기 씨의 사망 종류가 병사라고 해 보자. 이 경우, 서울대 병원의 의료행위 자격 자체를 문제삼을 수 있다. 사망 종류가 병사라면, 외인성 충격으로 인한 급성격막하출혈은 사망으로 이르게 한 과정의 결정적 원인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 출혈은 정상적 치료가 가능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사망했다면, 심폐질환을 이르게 한 급성신부전증을 일으킨 원인은 '급성격막하출혈'이 아니라 '다른 원인'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의사는 (다)에 그 '다른 원인'을 명시했어야 마땅하다.


(iii)  (ii)의 그 '다른 원인'은 현재 의학 수준으로는 치료 불가능한 것이야 한다. 만약 가능한 것이라면, 이번 사망진단서는 결국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을 죽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이는 서울대 병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의사는 (다)란에는 그저 최초 입원 당시의 병명을 적었을 뿐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이 사건을 병사로 규정하려면, (다)가 (나)의 결정적 원인은 아님을 밝히는 소견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소견서는 없다.


더욱 웃긴 것은 이렇다. 의료법에 따른 사망진단서 작성 원칙을 어겼음을 해당 의사 스스로 일부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망의 종류를 바꿀 수 없다고 한다. 명백한 오류가 있는 사망진단서는 의사 재량으로 언제든지 재발급 가능하다. (라)를 공백으로 남긴 해당 의사는 어쩌면 백남기 씨 입원 과정을 본인은 모른다고 발뺌하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입원 과정 기록은 최초 입원 당시 명백히 남아 있다. 또한 백님기 씨가 근거리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문제의 장면은 사방에 돌고 있다.


현재 서울대 병원 측에 대한 외부 압력설이 기사화되고 있다. 그 외부 압력 때문에 '엉터리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면, '권력의 앞잡이 경성제국대 후예'라는 수식어를 서울대에 붙여도 서울대 관계자들은 항변할 수 없다. 무엇이 두려운가? 지금 이 판국에 서울대 병원장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것인가? 서울대 교원들은 최소한 성명서라고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학생들은 뭐하는가? 대학을 큰 학문을 하는 곳으로 착각하고 있는 서울대 학생들이 많은데, 최소한 소학문을 위한 행동이라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아무튼 이런 물음들에 아무 반응이 없는 한, 서울대 앞에 '권력의 앞잡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서울대 측은 항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