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비판적 사고

GK 신문기사 평가 툴(GKAET: GK Article Evaluative Tool)

착한왕 이상하 2016. 12. 28. 01:15

* 다음은 즉흥적으로 만들어 본 신문기사 평가 툴이다. 필요한 분은 유용하게 사용하시라.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나의 블로그나 이 글을 언급하시길 바란다.

 

       

GK 신문기사 평가 툴

 

신문기사를 보다보면, 제목이나 기사 내용에서 특정 핵심어를 주목하고 어 이건 아닌데혹은 그렇지라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구체화하기란 어렵다. 그렇게 구체화하는 것은 훈련을 필요로 한다. ‘GK 신문기사 평가 툴은 그러한 훈련에 도움을 줄 것이다. 어떤 평가 툴을 가급적 다수가 사용할 수 있으려면, 그것은 단순해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즉흥적으로 만들어 본 GK 신문기사 평가 툴은 다음 4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논증적 재구성

근거 틀

태도 및 관점 틀

종합 평가

 

(1) 논증적 재구성

기사를 논증 형태로 간략히 재구성한다. 이때 논증 구성의 어떤 규칙을 따를 필요는 없다. 더욱이 논증문과 설명문의 구분과 같은 것도 불필요하다. 다만 기사의 결론과 근거들을 구분한다는 점에서 논증 형태로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기사의 내용에 따라 결론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뉜다.

 

아직 다수가 공유할 지식으로서는 부족하나 문제 해결 및 삶의 방향성 설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논제

참 거짓 및 좋고 나쁨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는 주장이나 입장

독자에게 어떤 교훈을 주거나 독자의 심금을 울리려는 호소성 주장

특정 사건의 결말

논제만큼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논제의 성격을 보여 주는 제안

 

기사의 결론 분류는 많은 기사들을 가지고 평가 툴을 실험해 보아야 명확해지기 때문에, 위 분류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것이다. 논증적 재구성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결론이 기자의 것인지, 아니면 기사 내용의 특정 인물이나 집단의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기자는 기사 내용을 보도에 국한시키기 때문이다.

 

논증적 재구성에서 결론의 근거들이 진술들에 국한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결론이 논제나 제안인 경우, 근거들이 여러 논증 형태들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논제나 제안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논증 형태들에 의해 뒷받침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2) 근거 틀

논증적 재구성 단계가 끝나면, 기사에 대한 부분적인 평가 작업이 이루어진다. 우선 기사의 근거 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여기서 근거 틀이란 기사 내용에 반영된 지식, 정보, 인용 등을 일컫는다. 과학 기사인 경우, 근거 틀 구체화 작업은 해당 기사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관련 논문 등을 찾아보아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거 틀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기자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 등이 기사에 개입되어 있는지 확인하라.

 

특히 외신 보도 성격 기사의 경우, 기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기사에 섞기도 한다. 그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 등에 의해 기사가 설득력을 갖춘다는 점에서 좋아질 수도 있지만, 왜곡될 수도 있다. 그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가 사실은 잘못된 것일 수 있고, 또한 올바른 것일지라도 기사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3) 태도 및 관점 틀

기자가 갖추어야 할 일반 소양으로서 태도 및 관점 틀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태도 및 관점 틀 속에 기사 내용이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기사 내용에는 신문사나 기자 자신의 입장이 스며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는 경우가 반드시 기자 자신이 의도한 결과는 아니다. 무의식적으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자 자신의 태도나 관점이 완전히 배제된 기사가 그렇지 않는 기사보다 더 좋은 기사라고 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좋은 기사와 나쁜 기사를 구분하는 데 서술 및 보도의 중립성이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다. 상황 맥락을 고려해 좋은 기사와 나쁜 기사를 구분하는 방법론 개발 자체가 연구 주제일 수 있다.

    

 

(4) 종합 평가

논증적 재구성, 근거 틀, 태도 및 관점 틀 단계를 거치면서 종합 평가를 가능하도록 해 주는 맥락의 전체적 윤곽이 그려진다. 그러한 윤곽을 바탕으로 평가에서 고려할 체크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결론이 근거들에 기대는 정도는 얼마나 충분한가? 결론과 근거들이 건너뛴 방식이라면, 그 원인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있는가? 아니면 외신 등 다른 곳에 있는가?

근거 틀을 구성하는 지식, 정보, 인용 등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 것인가? 특히 기자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가 기사에 개입된 경우, 그러한 개입은 내용 전달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혹시 기사 작성에 불필요한 기자의 주관적 관점이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가?

혹시 기자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주의 입장을 기사에 은근슬쩍 반영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사에 기자의 태도나 관점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 그러한 개입의 허용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 상황 맥락적 기준들은 무엇인가?

 

GK 신문기사 평가 툴은 즉흥적으로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나치게 일반화하거나 절대시 할 수 없다. 실제 적용 과정을 통해 다듬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GK 신문기사 평가 틀을 아주 단순한 스포츠 기사에 적용해 보자. 해당 기사는 어제 조선일보의 것이다.

 

<슈마허 떼고.. '흙수저'로 승부한 아들>

http://sports.media.daum.net/sports/general/newsview?newsId=20161227030806713

 

논증적 재구성

F1의 영웅 슈마허 아들 믹이 그의 아들임을 숨기고 주니어 카트 챔피언십을 거쳐 F4에 입성했고, 그가 슈마허 아들임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이러한 외신 보도에 근거해 기자는 아들 믹이 흙수저로 승부한 것으로 결론내리고 있다. 이러한 결론에 대한 근거로 슈마허의 아들로 태어난 믹을 금수저에, 슈마허 아들임을 숨긴 믹을 흙수저에 유비시켰다.

 

근거 틀

기사의 주 근거 틀은 특정 외신 보도이다. 외신 보도의 내용에는 하자가 없다고 하자. 기사 작성에서 기자가 사용한 정보는 금수저와 흙수저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다. 부와 명예 혹은 권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금수저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은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보다 자신들의 능력을 더 쉽게 발휘할 수 있다. 또 더 많은 기회를 갖고 있다. 그런데 슈마허는 독일 사람이다. 과연 슈마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금수저에 비유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금수저에 대비된 것이 흙수저다. 흙수저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쉽게 발휘할 수 없다. 능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교육 단계에서부터 불리하기 때문이다. 믹이 슈마허의 아들임을 숨기고 성공한 사례를 가지고, 그를 흙수저로 부를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태도 및 관점 틀

기자는 슈마허의 아들임을 숨기고 성공한 믹을 높게 평가한다. 자신의 평가를 극대화하려고, 또 기사를 눈에 띄게 하려고 제목에 흙수저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기자의 결론은 호소성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자는 지나치게 자신의 기사를 눈에 띠게 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점은 기자의 다른 기사들을 검토해 보아야 알 수 있다. 또 한편 기사에는 금수저로 태어난 믹도 아버지가 슈마허임을 숨기고 성공했는데, 현 우리 사회의 흙수저들은 실패를 무조건 세상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는 기자의 관점이 개입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기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독자는 기사에서 그런 관점을 엿볼 여지가 있다.

 

종합 평가

관점 틀 분석에서 보았듯이, 기사의 결론은 호소성의 주장에 가깝다. 그 주장이 기대고 있는 외신 보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자. 이때 그 주장의 주 근거는 슈마허의 아들로 태어난 믹을 금수저에, 슈마허 아들임을 숨긴 믹을 흙수저에 유비시킨 것이다. 슈마허 아들로 태어난 것을 금수저에 유비시킨 것도 적정한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현 사회의 통념에 비추어 그러한 의심은 접자. 과연 믹이 슈마허 아들임을 숨긴 것을 가지고 믹을 흙수저로 부를 수 있는가? 그렇게 부를 수 없다. 믹은 슈마허 덕에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소형 카트를 몰기 시작했다. 더욱이 믹이 슈마허 아들임을 숨긴 것도 그 자신의 의도인지도 의심스럽다. 당신이 여러 번 F1 챔피언을 지닌 슈마허라고 해 보자. 유명세로 집안이 시끄러울 수도 있다. 믹이 슈마허 아들임을 숨긴 것은 어쩌면 아버지 슈마허의 의도일 수도 있다. 유명하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믹을 흙수저에 비유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기사 제목에 반드시 수저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제목은 차라리 금수저를 숨기고 승부한 아들이 되었어야 했다. ‘금수저를 숨긴 것으로부터 그 누구도 흙수저로 승부함이라는 것을 이끌어낼 수 없다. 따라서 해당 기사의 구성 방식은 좋게 평가될 수 없다.

 

해당 기사의 구성 방식이 좋게 평가될 수 없는 이유로 기자가 흙수저에 대한 사회의 일반적 통념을 잘못 사용한 점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 기사 제목을 지나치게 눈에 띠게 하려 하다가 정작 기사 내용에 충실하지 못한 기자의 글쓰기 태도를 들 수 있다. 그런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해당 기사의 조잡한 구성 방식은 나오기 힘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독자는 우리 사회의 흙수저들은 실패를 무조건 세상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는 관점마저도 기사에서 엿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해당 기사를 본 순간 화를 내는 것이다. 정말 발악해서 노력해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현 사회 구조에 대한 원망이 흙수저의 사회적 통념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과거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신문기사를 가지고 찬반 토론을 하는 수업은 학교뿐만 아니라 각종 학원에서도 자주 있었다. 그런데 그 수업 내용을 보면, 그저 기사를 놓고 찬성을 위한 찬성, 반대를 위한 반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찬반 토론이 이러한 식이라면, 그런 토론은 문제를 고착화시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들만 길러낼 것이다. 글쓰기 및 토론 관련 대학 교양 과정 수업도 마찬가지다. 특정 책 일부를 가지고 토론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 글을 써보도록 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수업 방식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수업 방식으로 실제 학생들의 사고 능력과 구성 능력을 가파르게 상승시킬 수는 없다. 신문방송학, 언론학 등 교양 수업은 지금 시범을 보인 신문기사 평가 툴과 같은 것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실질적 득이 돌아갈 수 있는데, 그러한 툴을 적용해 봄으로써 학생들은 면접 등에 필요한 기술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얼핏 직관적으로 떠오른 것을 구체화시키고 자신의 시각 속에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 및 토론 수업은 책, , 펜만 있다고 여기는 습관에서 교수들은 탈피해야 한다. 분야의 성격에 따라 만들어 볼 수 있는 평가 틀들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러한 실험적 툴 개발도 하지 않으면서 대학에 각종 교수법 관련 기관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개인적으로 학문 분야별 각종 글쓰기 및 토론 평가 툴들을 만들어 실험해 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문제는 내가 스스로 강의 자리를 구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원하는 대학이 있다면 해 줄 의향은 있다. 적정 강의료라면 말이다.

 

어떤 구체적 평가 틀을 적용해 보지 않고서도 많은 기자들을 기레기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한 원인은 전적으로 신문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저 신문고시로 기자를 선별하니, 어떻게 좋은 기자가 나올 수 있겠는가? 기자 자격에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이유도 나는 모르겠다. 기사 작성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고 활용하는 방법은 수습기자 과정에서도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신문사 역시 그러한 과정에 필요한 실제적 방법론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살펴본 조선일보 신문기사를 분석해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