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비판적 사고

문화, 생존 환경, 신체 구조와 표현법(실험판)

착한왕 이상하 2016. 12. 15. 22:32

3.3. 표현

3.3.1. 문화, 생존 환경, 신체 구조와 표현법

3.3.2. 표현법과 절차, 표현법과 형식화 (이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 생략)

3.3.3. 보기들 (생략)

 

 

문화, 생존 환경, 신체 구조와 표현법

 

이 작업에서 표현이란 기호들의 조합’, ‘직관적 표상들의 조합혹은 기호와 표상들의 조합을 뜻합니다. 그러한 조합은 특정 대상을 나타내거나, 참 거짓의 판단 대상이 됩니다. 그러한 조합을 만들어 내는 사용법 속에서 기호들은 의미를 갖는 것이며, 특정 직관적 표상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기도 합니다. 먼저 다음 두 표현을 비교해 봅시다.

 

  

(i)(ii)는 각각 1, 2, 3을 나타낸다고 합시다. 이러한 약속 아래 원, , 점 등의 직관적 표상들은 원래의 의미에 더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i)의 경우, 1하나라는 전체로, 23 각각은 그 전체에서 분화한 것으로 표현됩니다. (ii)의 경우, 1은 하나의 대상으로 구성된 모임으로, 2와 각각은 두 개와 세 개의 대상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표현됩니다.

 

셈 활동 및 양을 나타내려면, 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i)(ii)의 비교를 통해 수를 나타내는 표현법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i)에는 세계란 하나라는 전체에서 분화했다는 세계 이해 방식이, 그리고 (ii)에는 세계란 개별적인 대상들의 모임이라는 세계 이해 방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면, 수를 나타내는 표현법은 문화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심지어 생존 환경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두 세계를 가정합시다.

 

W1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다. W2는 수중 세계인데, 그곳에는 우리처럼 수학을 할 수 있는 수중 인간들이 살고 있다. 수중 인간은 앞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신체는 온도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주변 온도 변화는 수중 인간들의 생존 및 거래 관계에서 가장 결정적 요인이다.

 

이런 질문을 던져 봅시다.

 

수중 인간들의 덧셈 방식은 우리와 동일할까?

 

위 물음에 대해 무조건 긍정할 수 없습니다. 수중 인간들의 덧셈 기호를 라고 할 때, 그들의 ‘11’2, ‘22’2, ‘35’4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세계에서 ‘1+1=2’, ‘2+2=4’, ‘3+5=8’ 등의 덧셈은 주로 물건을 세거나 팔고 살 때 적용됩니다. 이러한 덧셈이 적용되는 현상은 하나를 더할 때마다 일률적으로 하나씩 증가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덧셈 방식이 우리 세계에서도 모든 현상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온도를 예로 들어 봅시다.

 

1도의 물을 다른 1도의 물과 섞으면, 부피는 늘어나도 온도는 1도로 그대로 유지됩니다. 2도의 물을 다른 2도의 물과 섞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3도와 5도의 물을 동일한 부피로 섞는 경우, 4도가 되겠죠. 주변 온도에 민감한 수중 인간은 이러한 방식의 변화를 나타내는 덧셈 방식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중 인간의 덧셈을 우리의 덧셈 방식으로 변환시킬 수 있지만, 수중 인간의 덧셈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역으로 우리의 덧셈을 수중 인간의 덧셈 방식으로 변환시킬 수 있지만, 우리의 덧셈은 수중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바다에서 진화한 수중 생명체라면, 집합도 대상들의 모임 관점에서 발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은 움직이는 공간 및 대상과 대상 사이의 틈이 비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육상 환경에서 더욱 자연스러운 것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바다는 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래서 경험하는 대상들도 서로 단절된 것들이 아니라 물로 채워진 전체의 일부들로 여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수중 생명체의 집합론에는 개체처럼 취급되는 원소 개념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원소 대신에 일부 혹은 부분들이 전체로서의 집합을 구성하는 성분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기하학도 다른 방식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의 저항으로 직선으로 움직이는 것은 수중 생명체에게는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수중 생명체는 원활한 움직임을 위한 최소 단위의 곡률을 가정하고 그러한 곡률들을 이은 것을 선분으로 규정할 런지도 모릅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죠.

 

  

수중 생명체에게 유클리드 기하학은 신기하게 보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중 생명체도 유클리드 기하학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도 수중과는 다른 환경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친숙한 우리가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나왔을 때 반응했던 것처럼, 수중 생명체들도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 공간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표현될 요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로부터 그 환경 공간 자체가 유클리드적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환경 요인 및 요인들을 해석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를 둘러싼 환경 공간에는 컵 속의 물 소용돌이, 아지랭이 등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현상도 많습니다.

 

표현법은 심지어 신체 구조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손의 구조가 침팬지의 앞발과 동일하다고 해 봅시다. 이 경우,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기 힘듭니다. 침팬지의 앞발은 여전히 네 발로 걷는 데 적응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침팬지에게는 원을 그려볼 일도 별로 없습니다.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기 힘들거나 그려볼 일이 적다면, 원을 머리 근처에 떠올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원형의 대상에서 원 모양만 분리해 떠올리는 것도 어떤 필요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필요성이 갖추어져 있어도 작도법의 도움 없이는 기하학은 발달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만약 기하학이 발달했다고 가정하는 경우, 대상들에서 형태를 분리해 머리 근처에서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능력이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뛰어나겠죠. 그것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이렇게 가정하는 경우, 형태들의 변형 과정에서 구조적 유사성을 따질 수 있는 위상 기하학이 작도법과 함께 발달한 유클리드 기하학보다 먼저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직관적 표상, 기호들의 조합에 근거한 표현법은 일반적으로 문화, 생존 환경, 신체적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수학적 표현법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아직까지 집합의 표현법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리고 그 표현법들이 어떻게 하나의 이론 체계를 형성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만으로도, 수학적 표현들에 사용된 기호들이 절차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 그러한 절차들을 규정하는 방식의 공리 개념이 형식 체계의 공리 개념과는 다르다는 사실, 그리고 형식 공리 체계 건설에 필요한 형식화가 표현법들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