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과학, 기술, 사회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의 제도화(업데이트 필요한 것)

착한왕 이상하 2017. 1. 3. 22:20

 

* 다음은 <상황윤리: 현실세계 속의 공학담론(2007)>에서 부록으로 사용한 것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다음 글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책 145-149쪽을 보는 것이 좋다. 이 글은 2007년에 작성된 것이지만, 글 내용은 여전히 지금의 과학 기술 정책에 적용 가능하다. 물론 복잡한 지식의 범주 구분은 좀 더 세련되게 체계화되어야 한다. 그러한 체계화 작업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이론과 응용이라는 황당한 이분법에 사로잡혀, 가능성은 이론, 실용성은 응용이라고 떠들어 대는 자들이 여전히 과학 기술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그렇게 떠들어 대는 자들은 기술 기반의 현대적 학제 간 연구의 성격도 파악하고 있지 못할 뿐더러, 그저 소수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특정 인물을 무슨 자리에 앉히면 능사라 생각하고 있다.

다음 글을 확대시켜 한 권의 연구서로 만든다면, 이 땅의 현실에 비추어 경제성 연구 공간과 가능성 연구 공간의 '이중층 연결망(double layer network)'을 제안할 것이다. 상호제한이 상대적으로 강조되는 경제성 연구 공간, 상호작용이 상대적으로 강조되는 연구 공간, 그리고 두 연구 공간의 상호침투 관계에 근거한 연결망 구성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결망에서 이론과 응용이라는 케케묵은 이분법은 침투할 구석이 없다. 울산 지역에는 OLED 공장들이 구축되느라 바쁘다. 그런데 소형 및 대형 OLED 판넬 생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OLED를 VR과 결합시키는 과정은 기업들만이 주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한 결합에는 아직 '기능 단위화' 불가능하는 여러 가능성 연구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구를 그저 이론적 연구로, 그리고 완성된 이론적 연구를 응용하는 것이 경제적 실효성을 거둔다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의 일종이다. 그러한 넌센스는 연구 공간의 연결망들이 그저 유명인, 특정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소수 자문위원회를 매개로 구축 가능하다는 아마츄어적 습관이 배어 있다. 이러한 언급만으로도, 가능성 연구 공간과 경제성 연구 공간의 연결 관계를 '상호침투 관계'로 명명한 의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의도를 구체화한 연구서를 쓰지는 않는다. 써 보았자 50-100부 팔기도 힘든 상황 아닌가? 또 각 도서관에서 자생적인 사고방식을 담은 연구서를 분별해 사주는 시스템도 없지 않은가? 일본과 한국의 결정적 차이는 모국어로 나온 자생적 연구서의 판매 부수다. 도서관이 주로 사들이든다고 해도, 그런 연구서가 일본에서는 1000부가 나간다면 한국에서는 50-100부가 나간다. 이 차이 하나로만 한국은 영원히 일본을 경제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앞지르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써 놓았던 것, 쓰고 있는 것 중 그나마 대중 친화(?)적인 것들 몇 개는 올해 출판은 시도해 볼 것이다. 이마저도 별 반응이 없다면, 공식적으로 글을 공개하는 것은 아예 집어치울 것이다. 따라서 가끔 단편적 글들을 올리는 이 블로그도 절필을 결심하게 되는 순간 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은 올해 안에 결정난다. 

 

 

A4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의 제도화

 

기술 기반의 여러 연구 행위는 현대적 학제 간 연구를 대표한다. 학제 간 연구는 이질적인 지식의 합성을 통해 목적을 달성해 나가는 문제 해결 과정이다. 따라서 이질적인 지식의 소유자들 사이에 원활한 발상의 교환은 학제 간 연구에 필수적이다. 과학과 기술이 결합하는 과정의 역사를 살펴보면, 연구 공간 내에서 의사소통을 촉진시키기 위한 여러 암묵적인 제도들이 전통으로 굳혀졌음을 알 수 있다. ‘티타임(tea time)’랩미팅(lab meeting)’ 등은 그러한 전통을 대표한다. 티타임과 랩미팅은 개인 간 혹은 집단 간 발상의 교환을 촉진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의 제도화로 여겨질 수 있다. 연구 과정에서 시시각각 문제들이 발생한다. ‘여유 공간은 그러한 문제들을 적절한 시점에 해당 집단 전체에 드러내 주는 동시에,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을 활성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를 뜻한다.

 

그러나 티타임, 랩미팅과 같은 전통적인 제도적 장치만으로 현대적 학제 간 연구를 촉진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질적인 다양한 지식의 배열과 합성이라는 문제가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 기술 정책의 핵심 대상이 된 시점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의 분과가 다양해진 19세기 중엽 이후 반세기 동안에도 학제 간 연구는 국가 정책의 핵심 사항은 아니었다. 상호 의견 교환을 촉진시키는 여유 공간의 제도화자체가 과학과 기술 정책의 중요한 주제임을 보게 될 것이다. 기술 기반 연구의 복잡성과 각 연구가 갖는 영역 특수성으로 인해 그러한 제도화는 전통 속에서 암묵적으로 굳어진 티타임의 제의와 같은 것에 머무를 수 없다. 또한 그러한 제도화는 상황과 무관한 행위 규범이나 조항과 같은 것에 국한될 수 없다. 다양한 연구가 갖는 성격을 진단하고, 이에 근거해 학제 간 연구를 가로막는 요인들을 분석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 연구 집단에 적합한 여유 공간을 산출해주는 방향성 정책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알기 위해 티타임과 랩미팅이 연구 전통으로 정착한 과정을 살펴보고, 과거와 달라진 현실을 진단해 보자.

 

 

A4.1 과거

 

현재 우리 삶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인공 환경은 과학과 기술의 결합 과정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과정을 가능하도록 만든 중요한 요인은 과학 기술 공동체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과학과 기술 공동체가 누린 사회적 권위는 종종 과학 기술의 자율성에 근거해 정당화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 중요한 것은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 결합을 가능하도록 해준 요인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한 요인들을 인식할 때 티타임과 랩미팅이라는 전통이 발상의 교류를 위한 여유 공간의 제도화로 볼 수 있는 이유도 분명해진다. 이를 보이려면, 과학과 기술의 결합으로 인해 생활세계가 다양해진 과정을 아주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든 현상의 근원이자 동질적 실체로 가정된 물질(matter)이라는 개념이 근대에 정착했지만, 그러한 개념만으로는 현상의 다양성과 질적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 물질 개념의 등장 이후에도 원소(element)라는 고대 전통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현상의 질적 차이에 대한 설명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근대의 창시자로 종종 묘사되는 데카르트 역시 삼원소(三元素), 즉 천체를 구성하는 원소, 지구상의 원소, 그리고 천체와 지구를 매개해주는 원소를 가정했다. 모든 질적 차이를 물질의 운동 변화로만 설명하겠다는 기계론의 득세 속에서도 전통적인 원소 개념들은 나름대로 변화된 해석 방식 속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기계론자인 데카르트가 삼원소를 가정한 동기는 단순했다. 그러한 가정 없이는 현상들의 질적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흙, 공기, 물과 불이라는 사원소(四元素) 개념은 17세기 화학 전통에서도 완전히 사장되지 않았다. 다만 원소의 질적 속성을 대표하는 활성을 입자의 운동으로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17세기 원소 개념은 과거 전통을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재해석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공기가 단일 원소가 아니라는 사실은 17세기에 실험적으로 밝혀졌고, 뒤이어 18세기 말에 물과 흙 또한 단일 원소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일련의 발견 과정으로 인해 기계론적 세계 이해 방식만으로는 화학적 반응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인식이 싹텄으며, 이에 따라 기계론적 세계 이해 방식도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도구의 발전으로 설명을 요구하는 새로운 실험 사실들이 축적되었고, 새로운 실험 사실들은 새로운 가설을 산출시켰다. 불 원소는 17세기에 이르러 무게 없는 입자, 즉 열소(熱素)로 간주되었다. 열소 개념에는 입자의 운동 변화만으로 반응을 설명하려는 동기가 깔려 있다. 열소 개념은 18세기와 19세기를 거쳐 열에너지 개념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자연 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해 주는 가설 발견의 동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효과적인 연소 기관의 개발과 같은 도구의 발전과 무관하게 평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학적 기관을 디자인할 때, 기존의 가설과 이론은 문제 해결을 위한 분석적 도구로 기능한다. 디자인의 수정 과정은 기존의 가설과 이론을 바꾸기도 한다. 열역학의 탄생 과정은 연소 기관의 개발과 같은 도구의 발전 역사와 맞물려 있다. 효과적인 연소 기관의 상업화는 생활세계의 구조를 바꾸었으며, 생활세계의 구조적 변화는 삶의 방식과 가치 체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은 다음과 같다.

 

다른 곳도 아닌 유럽에서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인 결합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을 답하는 데 빼먹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과학 기술 공동체의 결속력, 특히 외부 세력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결속력이다. 이때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후원하는 귀족들의 전통, 학회 구성, 교과서 채택을 통한 권위의 사회적 확산과 대물림, 과학 기술 공동체 형성의 문화적 뿌리 등이 담론의 표면으로 부상한다. 근대 과학의 형성 과정에 여러 문명의 이점들, 실례로 그리스의 기하학, 아랍의 광학, 천문학과 대수학, 인도의 수 체계, 중국의 종이, 화약과 나침반 등이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 공인된 후, ‘자율적인 과학 기술 공동체의 형성’, 다른 세력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과학 기슬 공동체의 형성은 오히려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인 결합을 위한 유럽적 특징으로 더욱 강조되게 되었다. 근대 과학의 형성이 유럽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는 반론에 대항하기 위해 자율적인 과학 기술 공동체의 형성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던 것이다.

 

과학의 발달 역사를 논할 때 혁명이라는 개념은 사실 과학에 기대어 중세를 암흑기로 규정하고 근대의 독자성’, 과거 전통과 단절된 근대적이라는 것을 확보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근대 과학이 형성된 과정은 문명 교류사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바람직하다는 사실이 인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일련의 학자들은 개념적 측면보다는 다른 측면에서 과학 혁명의 서구적 독자성’, 과학이 유럽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유럽의 법제도 및 학제의 고유한 특징을 강조했다. 그들은 동물학이나 식물학과 같은 개별 과학 분과들이 일찍이 유럽 대학의 학제에 도입된 사실에 주목했다. 그들은 유럽의 법제도 및 학제를 기준으로 중국에서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인 결합이 불가능했던 이유를 찾는다. 중국의 경우, 학제는 철저히 국가 관리 아래 있었고, 천문지리와 기술은 정책의 수단으로만 여겨져 과학과 기술의 결합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유럽의 법제도 및 학제를 기준으로 이슬람 문명에서 과학과 기술의 결합이 힘들었던 이유를 찾는다. 유럽의 12, 13세기 대학 학제가 이슬람의 단과 대학에 해당하는 마드라사(madrasa)’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마드라사는 근본적으로 종교 기관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법제도 및 학제의 고유한 특징을 강조하여 과학 혁명의 서구적 독자성을 정당화하려는 이들의 입장에 따르면, 마드라사에서 학생들은 선생의 권위에 대항할 수 없었고, 학생들의 배움은 전적으로 선생의 지식에 의존적이었다. 또한 개별 과학 분과들은 마드라사의 학제에서 빠져 있었다. 각각의 마드라사에 고유한 특징적인 교수법과 지식 체계가 있었고, 그러한 교수법과 지식 체계는 전적으로 선생으로부터 학생들에게 대물림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다른 세력에 저항할 수 있는 과학 기술 공동체의 자생적 형성이 이슬람 문명권에서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또한 근대 과학의 특징인 보편적 자연 법칙의 개념이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출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중세 대학과 비교해 방대한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던 이슬람 단과 대학들이 단지 유럽인들에게 지식을 전달해 주기 위한 기록의 저장 창고에 불과했단 말인가? 그 많은 이슬람 철학자들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별종들에 불과했단 말인가? , 그들은 당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종교적 권위에 종속되지 않은 유별난 인간들이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힘들다. 마드라사를 지배한 선생은 공식적으로 법학자였지만 폭넓은 의학 지식을 소유한 인물이기도 했다. 인체를 우주에 유비하는 사고방식이 대세였던 시절, 개별 과학 분과들은 의술을 배우기 위한 기초 과목과도 같았다. 마드라사의 선생들은 당시의 과학과 기술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개별 과학을 스승에게 사사한 학생에게 의술을 배울 자격을 주는 이슬람 전통은 중세 유럽의 대학 학제에도 반영되고 있다. 따라서 단과 대학별로 특화된 교수법 및 권위로 인해 과학 기술 공동체가 이슬람 문명권에서 형성될 수 없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또한 코페르니쿠스에 앞서 천체 구조의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합법칙성을 주장한 이들은 이슬람 학자들이었다.

 

역사적 과정의 어떤 결과와 원인의 관계는 논리적 필연성을 따짐으로써 정당화되는 성격을 갖지 않는다. 특정 원인이 특정 결과에 연결되는 데에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개입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을 침략하지 않았다고 해보자. 이때 스페인을 거점으로 한 이슬람 문명은 유럽 문명과 더욱 자연스럽게 융합할 수 있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또한 그러한 융합으로 인해 유럽이 더욱 일찍 세계무대의 중심축이 될 수도 있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이러한 가정 아래 다음과 같은 물음들을 던져볼 수 있다.

 

이슬람의 마드라사 학제는 기존의 전통에 따라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을까?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의 지배력이 일찍 쇠퇴했더라면, 중국인들이 유럽의 발전에 무관심한 채 그대로 그들의 관료적 정치 체제나 학제를 유지했었을까?

 

위와 같은 물음들에 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세력, 실례로 정치적 세력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는 과학 기술 공동체의 형성 과정을 논할 때, 그러한 공동체의 형성 유무를 가지고 다른 문명권을 평가할 수 없다. 과학과 기술 공동체의 형성은 단지 유럽 지역에서 발생한 특수한 역사적 계기로 인해 가능했다고 말해야 한다.

 

유럽에서 과학과 기술 공동체가 형성된 과정은 종교 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종교 개혁 이후, 유럽은 하나의 종교 아래 서로 경쟁하는 여러 지역들로 분할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지역의 군주와 귀족들의 세력 및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이성의 도움으로 자연의 법칙과 도덕의 원리에 관한 확실한 지식 체계를 세울 수 있다는 사상이 싹텄고, 과학적 가설의 발견과 각종 인공물의 개발은 지역 사이의 경쟁 대상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 기술자들은 군주나 영주의 후원을 필요로 했다.

 

갈릴레이의 종교 재판에서 알 수 있듯이, 갈릴레이 당시에도 자율적인 과학 기술 공동체라는 것은 없었다. 종교 개혁 이후 유럽 각 지역이 하나의 이념을 추구하면서도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귀족들을 후원을 받은 인물들이 과학과 기술을 주도했다. 이러한 까닭에, 그들에게 강하게 저항할 수 있는 집단은 없었다. 지역 간 경쟁을 바탕으로 한 과학과 기술의 결합이 일종의 귀족들의 게임에 속했다고 풍자할 수 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러한 게임은 19세기 중엽까지 지속될 수 있었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연구 성과와 사교 클럽 및 학회를 중심으로 한 연구 성과를 교차 비교해 보면, 후자의 경우가 전자의 경우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두 앞섰다. 이러한 상황은 기술을 기반으로 한 20세기 학제 간 연구에 해당하지 않는다.

 

근대 이후, 과학 기술은 귀족들에게 지역 민중의 계몽 수단이기도 했다.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인 결합으로 인해 사회는 계층적으로 분화되었고, 이에 부합하는 학제가 요청되었다. 과학과 기술의 결합 방식을 고려한 학제가 대학에 본격적으로 정착된 시기는 유럽에서도 19세기 중엽 이후로 보아야 한다. 이 때문에, 근대 이후 유럽 대학 학제의 고유성을 강조하여 과학과 기술의 결합이 마치 유럽에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는 식의 주장은 역사적 근거를 결여한 것이다. 과학 기술이 일반 교육에 침투하고, 지배층으로부터 민중을 해방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된 시기도 19세기 중엽 이후로 보아야 한다.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인 결합으로 인해 인공 환경이 복잡해지고 사회의 계층 분화가 촉진되면서, 과학 기술은 귀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점차 사회의 공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대학 안에서 귀족층과 교회 세력을 쫓아내려는 학자들의 움직임도 있었다. 19세기 초만 하더라도 대중 강연과 시연을 통해 연구비의 상당 부분을 마련해야만 했던 각종 연구소들은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 말에 이르러 각 대학에는 실험실, (lab)’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학제 간 연구가 실험실을 중심으로 대학에 정착하기 시작한 19세기 중엽 이후에도, 당시 과학 기술 정책은 오늘날 정책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19세기 대학의 학제와 연구 분위기는 지금보다는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로웠다. 실례로 독일이 19세기 중엽 이후 생물학과 화학을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그러한 자유로운 학제와 연구 분위기를 들 수 있다. 당시 정책은 쉽게 말해 돈을 줄 테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교수는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인물을 교수로 채용했고, 학생들과 함께 자유롭게 학제를 짜고 과목을 선택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일부 과학자는 19세기 연구 분위기를 동경하며, 지금의 잘못된 과학 기술 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과거 모델을 신비화하거나 우상화하는 착오를 범하기도 한다. 학제 간 연구를 둘러싼 현시점의 문제들은 과학 기술 지식이 공적 소유물이 된 이후에야 터져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시점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다른 상황적 맥락에서 기능한 정책 모델을 이상화시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과장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17세기에서 19세기 말에 이르는 과학과 기술의 결합 역사 속에는 학제 간 연구의 세 측면이 이미 드러나 있음을 지적해야 하겠다.

 

첫째, 학제 간 연구는 집단적 문제 해결 과정이다. 그러한 집단적 문제 해결 과정을 하나의 공간에 비유할 때, 학제 간 연구 공간에는 여러 분야의 지식들이 뒤섞이게 된다. 학제 간 연구 과정의 복잡성으로 인해 시시각각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은 사전에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양상을 갖는다. 초기 계획은 바로 혹은 한참 후에 수정되기도 한다. 또한 예상치 못한 문제의 발생은 문제 해결자가 새로운 지식의 소유자를 찾아 나서도록 움직이게 만든다.

 

학제 간 연구 공간은 항상 새로운 문제에 의해 대답되어야 할 부분을 갖고 있다. , 학제 간 연구 공간은 빈 틈 없는 공간처럼 여겨질 수 없다. 실례로 라부아지에(A.L. Lavoisier, 1743-1794)가 호흡을 연소 과정에 유추하여 산소가 이산화탄소로 바뀌는 과정을 원리로 일반화하려고 했을 때, 그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쳤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방출하는 식물들에게 그 원리를 적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라부아지에에게 탈출구란 물에서 산소의 존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뫼스니어(J.B. Meusnier, 1754-1793)와 연대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문제는 라부아지에로 하여금 새로운 협조자를 찾게 만들었다. 공동 연구의 결과, 그 둘은 캐번디시(H. Cavendish, 1731-1810)와 함께 물 자체도 단일 원소가 아닌 화학적 혼합물임을 밝힌 공로자들로 남게 된다. 뫼스니어와 연대하기 전,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공기 불덩어리처럼 여겼다. 이 때문에, 그는 산소를 불물질(matter of fire)’로 불렀다. 식물 연구를 통해 그는 대기뿐만 아니라 수분 중에도 불물질이 있다고 여겼다. 식물이 그러한 불물질을 호흡한 결과로 열을 발생시킨다는 그의 가설은 잘못된 것이다. 산소 없이는 연소는 불가능하지만, 산소 자체가 불물질과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식물 모두에 적용 가능한 원리를 찾겠다는 입장은 라부아지에로 하여금 불물질이라는 은유를 대체할 화학적 명명법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관심의 이동에는 그와 뫼스니어 사이의 교류가 결정적이었다.

 

둘째, 학제 간 연구 과정에서 서로 다른 지식의 합성이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은 단순히 분담되는 것이 아니다. 역할 변화가 수반되기도 한다.

 

학제 간 연구의 두 번째 측면에 대한 사례로 로버트 보일(R. Boyle)의 경우를 들어 보자. 그는 아일랜드 귀족 출신의 과학자였다. 보일은 캠브리지 대학의 초청을 거부하고 사비로 자신의 연구 집단을 꾸려갔다. 이때 그는 연구 정책가의 역할도 수행했다. 보일의 협조자 후크(R. Hooke)는 호흡 실험을 위한 펌프를 개선하기도 했다. 후크의 이러한 시도는 호흡 과정을 규명하기 위한 도구를 디자인한 것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그에게서 공학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실험에 적합한 도구를 개선하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배치하는 것은 보일의 몫이었다. 보일과 후크는 호흡 기제를 연소에 유비했다. 그들은 인체의 열이 질소라는 외부 물질에 기인한 것으로 여겼다. 그 물질은 프리스틀리(J. Priestly, 1733-1804), 쉘레(C.W. Scheele, 1742-1786)와 라부아지에에 이르러 산소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발견의 과정은 끊임없는 집단 간 발상의 교환에 근거한 것이다.

 

셋째, 학제 간 연구에서 요구되는 심적 태도는 탄력적 사고 혹은 다재다능함(versatility)’이다.

 

학제 간 연구에서 요구되는 다재다능함의 범주들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자기 분과의 아이디어를 새로운 관심사에 따라 다른 분과로 전이시키는 범주’, ‘다른 분과의 아이디어를 특정 관심사에 따라 자기 분과로 가져오는 범주’, ‘이질적 지식의 합성을 목적으로 한 능동적 상호 작용의 범주’, 그리고 이미 확증된 연구 방법론에 근거해 이질적 지식의 합성을 목적으로 한 수동적 상호 작용의 범주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범주들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분석하는 것은 과제로 남기자.

 

지금까지 살펴본 학제 간 연구의 세 측면은 이미 과거 연구 전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 기술 공동체가 귀족들의 보호 아래 형성되고 기능했던 까닭에, 학제 간 연구의 세 측면은 외부의 정책적 개입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다. 물론 19세기 중엽 이후 지배층에서 과학과 기술을 해방시키려는 운동이 이었지만, 그러한 해방이 이루어진 시기는 20세기 이후이다. 과학 기술 공동체는 지배층의 보호 아래 형성되었고 기능했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의 결합 역사는 이러한 유럽적 풍토를 고려한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러한 과거의 유럽적 풍토에서 과학 기술은 지금처럼 거시적 차원의 공공 정책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따라서 학제 간 연구에서 발상의 교환을 촉진시키는 티타임이나 랩미팅 등은 국가의 정책적 압력으로 인해 탄생한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티탐임이나 랩미팅은 연구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일종의 전통 문화로 여겨져야 한다. 이 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현재 거시적 차원에서 국가 정책 대상이 된 학제 간 연구가 과거 전통을 이어 받았더라도 티타임이나 랩미팅 등 제의화된 과거의 제도만으로는 촉진될 수 없음을 뜻한다.

 

학제 간 연구를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간에 비유할 때, 성공적인 학제 간 연구는 발상의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한 여유 공간을 필요로 한다. 특히 티타임은 그러한 여유 공간이 제도화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전통 속에서 굳어진 티타임은 기술 기반의 현대적 학제 간 연구를 촉진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의 제도화는 거시적 차원의 현대적 과학 기술 정책을 논할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주제이다. 특히 과학과 기술의 오랜 결합 역사를 갖고 있지 않은 우리에게는 중요한 주제인 것이다.

 

 

A4.2 현재

 

외부 세력에 저항할 수 있는 과학 기술 공동체가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 결합을 위해 강조될 때, 그러한 공동체의 형성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가능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양 역사에 국한해 생각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공동체가 기능한 방식은 시대별로 다르다. 19세기 중엽 이후 유럽 각국에 통계청이 설치되고, 과학 기술 교육은 국가 차원의 거시적 정책 대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과학 기술이 본격적으로 국가 정책의 관리 대상이 된 시점은 20세기 이후로 보아야 한다. 19세기 말 유럽 각 대학에 실험실이 설치되고, 대학 중심의 연구는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었지만, 당시 연구 과정 자체는 여전히 과학 기술 공동체의 손아귀에 있었다.

 

누구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제도에 반영되면서, 과학 기술 지식 또한 지배층의 권력에서 벗어나 시민에게 열리게 되었다. 이때 시민지구촌의 만인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뜻하며, 그 집단은 법적 계약 관계에 근거한 집단, 즉 특정 국가의 구성원들이다. 따라서 과학 기술의 사회적 기능은 국가 간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을 받아들일 때, 과학 기술 지식과 연구 결과물이 국가의 공적 재산으로 간주된다는 것은 과학 기술 공동체에게 결코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그 이유를 보여주는 20세기 과학 기술 공동체의 세 가지 특징만 들겠다.

 

첫째, 과학기술 공동체에 부과되는 사회적 책임 증가를 들 수 있다. 연구비는 시민의 세금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과학 기술 연구의 결과는 국가의 공적 자산으로 간주된다. 연구 과정 및 결과에 대한 평가는 정책적 관리 대상에 속한다. 과학 기술 공동체의 직업적 자율권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더라도, 과학 기술 공동체의 실질적 재량권은 과거에 비해 감소했다.

 

둘째, 과학 기술 연구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책임이 과학 기술 공동체에 일방적으로 전가될 가능성은 과거보다 커졌다. 과학 기술 지식이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지식은 전문적이다. 소수 전문가 집단만이 과학 기술 지식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과학 기술의 연구 결과는 잠재적인 가능성만으로도 장밋빛 미래에 대한 비전(vision)을 일반 시민에게 심어줄 수도 있다. 결국 과학 기술의 전문적 지식은 전문가 집단의 제어 능력 범위를 벗어나 권력 집단의 선동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장밋빛 미래에 대한 비전이 실현하기 어려운 것으로 밝혀지거나, 대중의 만족 수준을 채워 줄 수 없는 것으로 판가름 나는 경우, 대중은 그 원인을 일방적으로 과학 기술 공동체에게 돌리기 쉽다. 전체 사회 속에서 과학 기술이 기능하는 방식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셋째, 과학 기술 지식이 해야 하는 것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구분하고 특정 목적의 타당성 평가를 위해 활용되는 경우, 과학자와 공학자가 설득해야 할 대상은 과거 19세기와 달리 정치적 권력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정 방향으로 과학 기술 정책을 유도하기 위해 시민을 설득 대상으로 삼을 때, 과학자와 공학자가 정치적 권력 집단의 목적과 관심에 반하는 행위를 해야만 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 심지어 정치적 권력 집단과 이념 투쟁을 불사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일수록 개인의 안위와 자식의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과학자와 공학자가 겪는 심적, 물질적 부담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공익을 우선으로 하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연구비 박탈 등 불이익일 수도 있다. 그가 뜻을 굽히지 않으려면, 연구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현재 과학 기술 공동체의 이러한 세 특징을 받아들인다면, 과학 기술과 다른 분야, 특히 정치와의 적절한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고려하고 그러한 관계를 실현하는 것은 시대적 과업으로 여겨져야 한다.

 

인문학자에게 글은 개인적 연구 및 사회적 비판의 도구이며, 동시에 그를 다른 집단과 연결시켜주는 수레바퀴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글의 기능은 과학자와 공학자들, 특히 기술 기반의 연구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글은 사회적 비판과 상대편에 대한 공격의 무기는 될 수 있어도 연구의 도구일 수는 없다. 또한 연구에 참여할 수 없는 이는 과학 기술 공동체에서 고립되기 쉽다. 더욱이 기술 기반의 현대적 과학 기술 연구는 예산 정책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정책 집단의 관심사에 반하는 행위를 하려는 개인의 결단은 그를 무리 속에서 따돌림 받는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정치적 권력에 과학 기술을 종속시키려는 정책은 과학 기술자 다수의 성향을 개인 중심적으로 만들 수 있다. , 그러한 정책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를 회피하는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 대세에 반해 개혁의 동기를 가진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동기를 발산하기에는 너무나도 과중한 결단이 그에게 요구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포기해야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값비싼 장비가 동원되는 기술 기반의 과학 기술 연구에서 해당 종사자들이 처할 수 있는 상황적 요인들을 무시한 담론은 실천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담론이 제아무리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들과 미사여구로 체계화되더라도, 현실의 물정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세상에 득이 될 수 없다. 불행히도 과학 기술을 둘러싼 대부분의 담론은 여기나 저기나 그러한 것들이다. 당신이 진보적 과학자나 공학자라면 이러한 세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여기서 진보적이라는 것이 특정 정치적 이념과 결부될 이유는 없다. 당신이 좀 더 나은 공동체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에 순응하지 않는 인물이라면, 당신은 진보적인 인물이다. 그러한 당신이 기술 기반의 현대적 학제 간 연구가 과학 기술을 만인이 아닌 특정 집단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과학 기술이 사회 설계를 위해 정치와 대등한 관계를 맺고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에 종속된 세태라면, 당신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학 기술 지식이 사회의 공적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할 무렵, 즉 과학 기술 지식이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마련되었을 무렵, 위에서 던져진 마지막 물음은 그 무렵 과학자와 공학자가 고민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러한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시대적 변화에 예민한 인물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가능한 빨리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운동, 급진적 운동(radical movement)’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러한 급진적 운동을 버날(J.D. Bernal)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좌파 과학자무리에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게 국한시키는 것은 특정 정치적 이념만이 과학 기술의 건전한 사회적 기능을 보장해 준다는 독단적 발상에 불과하다. 일부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주도하거나 참가한 급진적 운동은 정치적 수단에 의해 사회를 특정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 지배한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러한 신념이 속칭 좌파 세력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일부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주도하거나 참가한 급진적 운동은 사회주의적, 자유주의적 혹은 아나키스트적 양태로 분출되었다. 따라서 좌파적이라는 것이 20세기 초 급진적 운동과 관련된 과학 기술자 집단에 공통된 성격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러한 성격은 무엇인가? 두 가지만 언급한다.

 

소위 급진주의자(radicals)’로 자청한 과학 기술자 집단의 주목적은 과학 기술을 정치적 권력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19세기 중엽 이후 그들의 선조들이 세속화(secularization)’라는 명분 아래 민중을 해방시킬 목적으로 과학 기술을 강조했을 때, 선조들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여러 정치적 이념들과 결탁했다. 그러한 이념들 중 일부가 현실화된 이후, 선조들의 후예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공동 협력에 근거한 학제 간 연구는 발견과 발명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지만, 연구에 투자되는 공적 자본이 커진 만큼 연구는 정책적 관리 대상이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예산 분배 및 관리가 과학 기술 공동체를 권력에 굴복시키는 정치적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경제 성장을 위한 계획적 개발 정책은 과학 기술자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억압하고 그들을 권력의 입맛에 맞도록 길들이는 측면도 가졌다. 또 표면적으로 민주주의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군사 독재 형태의 정권이 지배한 곳도 있었다. 그 곳의 독재자는 스탈린 방식의 계획 경제 모델을 수정하여 도입했고, 사람들은 과학 기술을 그저 경제 발전의 수단 정도로만 여기게 되었다. 19세기 선조들이 과학 기술 지식을 민중에게 확대시키기 위해 투쟁했다면, 20세기 그들의 후손인 급진주의자들은 과학 기술이 정치적 권력에 귀속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민중이 시민, 국민 혹은 민족 중 무엇으로 규정되든, 급진적 과학 기술자 집단에게 민중이란 어떤 의미를 지녔었을까? 민중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일반적으로 회의적이었다. 버날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 모두는 어떻게 살지 생각하고 시도함으로써 좋은 삶을 찾아보려는 실험을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아주 소수만이 그러한 실험을 시행한다. 대부분은 집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전형화된 것을,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해놓은 것을 모방한다. 단지 지극히 일부 사람만이 이곳, 저곳에서 그러한 모방에서 일탈한다. 그들은 괴짜들이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나 자신 또한 그들 중 한 명으로 손꼽히게 되리라.”

 

위의 말은 마치 18세기 엘리트적 계몽주의자의 입에서나 나옴직한 것이다. 그러난 그 말을 반드시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앞서 20세기 과학 기술자 공동체의 세 특징을 언급했다. 그 특징 중 두 번째 것을 받아들인다면, 민중의 힘을 빌려 정치적 권력에서 과학 기술을 독립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권력 집단의 정책 실패와 부패로 인해 싹튼다. 그런데 그러한 인식이 민중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을 때, 그들 다수는 개혁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과학 기술의 사회적 기능과 연관시켜 평가하지 않는다. 과학 기술의 사회적 기능 자체가 공공 교육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된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또한 그러한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더라도, 과학 기술 공동체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학제가 제도화된 것은 아니다. 20세기 중엽에도 다른 분야의 관계를 고려하여 과학 기술의 사회적 기능 방식을 평가하는 방식은 학제에서 고려되지 않았다. 이러한 세태에서 급진적 과학 기술자 집단이 개혁을 위해 민중에게 큰 기대를 걸기는 힘들었다. 급진주의자로 자청한 다수는 민중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혁명을 외쳤으며, 좌파 과학자 진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위로부터의 혁명, 이것은 단순히 민중을 계몽 대상으로 여기는 엘리트적 혁명이 아니었다. 또한 과학 기술 공동체를 가치 체계 변동 역사에서 제외시킨 쿤(T. Kuhn)의 혁명 개념 속에 감추어진 보수성,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이라는 명목 아래 과학자들을 수동적 인물들로 묘사하는 보수성과는 더욱 거리가 먼 것이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과학 기술의 건전한 기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실천적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과학 기술이 정치적 권력의 확장 수단으로 전락할 때, 과학 기술 공동체의 행위 반경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급진주의자로 자처한 다수의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정치적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범세계적 과학 기술자 공동체 연맹 결성을 부르짖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괴짜들의 망상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는 범세계적 과학 기술자 공동체 연맹결성은 실현되었는가? 아니다. 급진주의자들의 다양한 정치적 이념들을 통합할 수 있는 상위 이념의 실현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실패자들인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다. 과학 기술을 정치적 선동의 수단으로 여기는 권력 집단도 선동을 위해서는 과학 기술 공동체의 협조가 필요하다. 여러 과학 기술 정책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정치 집단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지금은 적어도 장기적 연구와 단기적 연구의 구분, 경제적 실효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의 구분 등은 효과적인 과학 기술 정책의 기본이 되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20세기 과학 기술자 공동체의 세 특징 중 변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사람에게 마틴 루터 킹 이후의 미국 흑인 정책도 권력에 반하는 동기를 사전에 약화시키려는 교활한 술수로 비추어질 수 있다. 하지만 킹 이후의 흑인 정책을 논할 때 킹을 빼먹을 수 없듯이, 예산 정책에서 경제적 실효성 측면과 가능성 측면을 구분하는 방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실을 논할 때 급진주의자들의 기여를 빼먹을 수 없다. 이는 그들 중 누가 좌파 진영으로 분류되는가와 무관화게 성립하는 것이다.

 

예산 정책에서 경제성의 측면과 가능성의 측면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들린다. 우리의 관료들도 그렇게 외친다. 그러나 그 당연한 말은 구체적 문제와 맞물린 실천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 당연한 말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정치적 권력에 맞서 대항한 급진적 과학 기술자 집단의 역사가 없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러한 집단을 산출시키기 힘든 역사적 경로를 밟아 왔다. 그저 다른 곳의 논쟁을 빌려와 마치 이 땅의 시급한 문제인 양 떠들어 대는 자들은 과학이라는 것우리에게 과학이라는 것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이 땅의 뿌리 깊은 사대주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다. 이제 경제성 측면의 연구와 가능성 측면의 연구를 구분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지식의 활용 측면에서 분석할 때, 그러한 분석에 근거한 실제적 정책 짜기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알아보자.

 

 

A4.3 정책틀

 

학제 간 연구에서 다양한 지식의 합성을 위해서는 발상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의 제도화는 결코 여유 공간에 대한 명문화된 법 조항과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그러한 것은 기술 기반의 현대적 학제 간 연구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고려할 때 불가능한 것이다. 집단 간 혹은 집단 내부의 의견 교환을 가로막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제도적 장치들의 지속적인 개발만이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의 제도화의 실질적 자격을 가질 수 있다. 이 점은 지식 활용의 차원에서 학제 간 연구의 일반 정책틀을 접근할 때 잘 드러난다. 이를 위해 먼저 기술 기반의 현대적 과학 기술 연구에 동원되는 지식을 범주적으로 분류하자. 여기서 그러한 분류는 각 분과별 학문 자체의 성격이 아니라 사용 방식의 성격 차이에 근거한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컴퓨터라는 인공물을 통해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지식을 두 종류로 분류해 보자.

 

어느 날 갑자기 시디롬(CD-ROM)에 이상이 생겼다. 당신은 시디롬 내부에 대한 아무런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당신은 고객(client)의 입장에서 일정 대가를 치루고 특정 공급자(supplier)로부터 시디롬을 입수하여 매뉴얼에 따라 그것을 컴퓨터에 장착할 수 있다. 시디롬 자체에 담긴 지식은 여러 지식들이 합성된 복잡 지식(complex knowledge)’에 해당하지만, 그 지식은 당신이 굳이 알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당신에게 은폐된 것이다. 이렇게 은폐된 복잡 지식(screened complex knowledge)’은 고객과 공급자의 관계 속에서 고객에게 반드시 노출될 필요 없이 사용 가능한 것이다.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연구의 목적은 연구의 최종 결과물이 그러한 관계 속에서 기능 단위(module)’의 위치를 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그 기능 방식에 대한 구체적 지식 없이도 사용 가능한 단위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고객과 공급자의 관계는 하나의 문제 해결 공간 내에 들어가지 않는다. 고객에게 공급자가 제공하는 것은 고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역으로 공급자에게 고객을 확보하는 것은 공급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위 사례에서 고객과 공급자의 두 목적은 서로 다르다. 고객과 공급자의 관계가 하나의 연구 공간을 형성하는 경우, 둘은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며, 고객과 공급자의 역할은 서로 상대화된다. 이에 대한 하나의 실례를 살펴보자.

 

현대 개인용 컴퓨터 개발은 다국적 연구 결과에 빚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튜링(A. Turing)ACE(Automatic Computing Engine) 계획이었다. 모든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 곧 만능 튜링기계의 일종인 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이 ACE 계획의 목적이었다. 튜링은 그러한 인공물 디자인의 가능성에 대한 비전(vision)을 제시했다. 그가 ACE 계획을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개인용 컴퓨터의 출현은 여러 연구 집단의 공조와 경쟁 과정의 결과이며, 튜링의 ACE 계획은 튜링이 직접 가담한 영국 NPL(National Physical Laboratory)가 주도했다. 최초의 쓸 만한 연구 결과물은 50년대에 나왔다. 여기에는 디지털 회로의 기반이 된 펄스(pulse) 작동 방식의 기술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연구 초기 단계에 기억 소자로 채택된 것은 수은 탱크였다. 이러한 식의 기억 소자가 불러온 난제들은 NPL 집단이 전기적 펄스 방식의 지식 소유자를 연구 공간에 불러오도록 만들었다. 펄스 방식의 지식 소유자가 NPL 연구 공간에 속하는 순간, 그는 다른 지식의 소유자들에게는 공급자가 되지만, 또한 그들의 지식에 기대야만 하는 고객이기도 하다. 아직 그의 기술은 대상들의 관계가 대상들 각각의 속성을 제어할 정도로 기능적으로 단위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러한 까닭에, 그는 그의 기술을 기능적으로 단위화하기 위해 다른 지식의 소유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NPL 사례는 경제적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연구 공간, 특히 고객과 공급자의 상대적 역할 변환을 수반하는 문제 해결 공간에서 복잡 지식의 활용이 중요한 학제 간 협동을 보여준다. 1930년대에만 하더라도 만능 튜링 기계의 물리적 구현에 대한 희망은 그리 크지 않았다. 2차 세계 대전과 더불어 미사일 궤도 등 수치해석과 관련된 계산 기계의 필요성과 암호학의 발달은 그 희망에 불을 붙였다. 튜링이 ACE 계획을 NPL에 제출한 45년에는 50년대와 달리 만능 튜링 기계의 구현에 필요한 여러 지식들의 모습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 시기에는 계획 완수에 필요한 기능 단위들을 산출하기 위한 이질적 지식의 합성이 요구되며, 연구 참여자들의 관계는 고객과 공급자의 상대적 역할 변환 속에서 서로를 제어하는 방식이 아니라 끊임없는 상호 작용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연구 공간도 서로 간의 제한 속에서 특정 분야의 지식을 연구 목적에 합당하도록 엄격하게 조율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사용되는 지식도 능동적인 상호 작용에 의한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를 노린 노출된 복잡 지식(unscreened complex knowledge)’의 성격을 띠게 된다. 지식의 합성을 위해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나의 지식이 접근 가능하도록 나의 분야를 개방하는 경우, 나의 전문적인 지식은 노출된 복잡 지식으로 분류된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연구 목적도 세부 항목으로 분류되고 구체화된다. 그리고 점차 나의 지식이 다른 분야에 노출될 필요성은 줄어든다.

 

타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되, 나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의 행위 반경에 속한다.’ 이 준칙이 은폐된 복잡 지식의 성격을 드러내 준다면, 노출된 복잡지식의 성격에 해당하는 준칙은 다르다. ‘너와 나의 지식을 합성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지식을 교환하라.’ 서로를 제한하되 각자의 분과가 유지되는 수동적 상호 작용이 은폐된 복잡지식의 활용에 효과적이라면, 노출된 복잡 지식의 활용에서 요구되는 상호 작용은 더욱 능동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두 종류의 복잡 지식의 활용은 학제 간 연구 공간에서 중첩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만 귀속된 학제 간 연구라는 실제로는 것은 없다. 하지만 두 종류의 복잡 지식을 구분하는 것은 연구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개념적 장치로 기능한다.

 

기술 기반의 학제 간 연구에서 은폐된 복잡지식의 활용이 두드러지는 경우는 기능 단위별 연결망을 통해 구체적 결과물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경우이다. 노출된 복잡지식의 활용이 두드러지는 경우는 가능성에 근거한 연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은폐된 복잡 지식의 활용이 중요한 연구 공간 그리고 노출된 복잡지식의 활용이 중요한 연구 공간을 서로 연결하는 것은 연구 과정에서 경제성의 측면과 가능성의 측면을 연결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적 학제 간 연구에 대한 전체적인 정책 방향, 즉 정책틀은 그러한 연결을 원활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다양한 연구 형태를 일률적으로 묶어주는 공통된 상위의 형태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연구 행위 자체를 일률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정책틀이란 없다.

 

 

<도식 1>

 

학제 간 연구의 거시적 차원에 해당하는 정책틀의 목적은 다양한 개별 연구들을 일일이 조율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식 1>에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은폐된 복잡 지식의 활용이 두드러진 경제성 측면의 연구 공간 그리고 노출된 복잡지식의 활용이 두드러진 가능성 측면의 연구 공간의 원활한 연결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각 연구 공간 내부에 국한된 구체적 정책은 해당 개별 연구의 성격에 맞추어 짜져야 한다. 따라서 그러한 내부 정책은 거시적 차원의 학제 간 연구 정책틀에 비교해 당사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에 더욱 의존적이어야 한다. 티타임 및 랩미팅을 포함해 의견 교환을 위한 각종 여유 공간의 제도화는 일반적으로 각 연구 공간 내부에 설치되는 것이지, 다양한 연구 공간들의 제도적 연결망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인 결합을 위한 학제 간 연구의 거시적 정책틀은 가능성 연구 공간에서 얻어진 것들, 심지어 실패한 사례에 사용된 인공물까지 포함한 것들 중에서 효용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들을 선별하여 경제성 연구 공간으로 침투시키고, 또 경제성 연구 공간에서 얻어진 것들의 사회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 연구를 촉진시켜야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연구 공간들의 연결망과 관련된 거시적 차원의 정책틀과 구체적 연구 공간 내부와 관련된 국소적 차원의 정책들 사이에 나타나는 비대칭성(asymmetry)이다. 국소적 차원의 정책 실패가 거시적 차원의 학제 간 연구 정책틀에 미치는 영향에 비해, 거시적 차원의 부적절한 정책틀이 국소적 차원의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다. 과학 기술 지식이 공적 재산으로 인식되면서 과학 기술 공동체의 사회적 책임은 더 커졌고, 기술 기반의 학제 간 연구에 소모되는 자본의 확대로 인해 연구 과정 자체가 정책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시적 차원의 정책틀에 의해 다양한 연구들의 연결 구조가 결정되고,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판단과 행위는 그러한 구조에 의해 제한을 받게 된다. 잘못된 정책틀은 각 연구의 특성에 적합한 집단 간 상호 작용을 가로막음으로써 의사소통의 여유 공간을 좁혀 버린다. 은폐된 복잡 지식의 활용이 중요한 연구에서 집단 간 상호 제한이라는 수동적 상호 작용은 잘못된 정책틀로 인해 너무 방만해지거나, 명령 체계의 위계질서 속에 종속되어 그 효력을 상실할 수 있다. 노출된 복잡 지식의 활용이 중요한 연구에서 새로운 지식의 합성에 요구되는 능동적 상호 작용은 잘못된 정책틀로 인해 완전히 가로막힐 수도 있다.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의 제도화는 국소적으로는 각 해당 연구의 성격에 맞게 짜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 해당 연구 집단들의 재량권이 요구된다. 반면에 그러한 제도화는 거시적으로는 경제성을 지향하는 연구 공간과 가능성을 지향하는 연구 공간 사이의 효과적 연결망을 설정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구 공간 내의 구체적 연구들에 합당한 소통의 여유 공간들이 자연스럽게 생성될 수 있다. 그래서 거시적 차원에서 정책틀이 잘못 설정된다면, 이것은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이 제도화될 기회 자체를 가로막는 것이다.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의 제도화는 연구 공간들의 연결망과 연구 공간 내의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요인들을 고려하여 각각의 연구 성격에 맞는 의사소통 장치의 생성을 촉진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그러한 목적을 충족하는 정책틀이야말로 이 글의 시작부에서 언급된 방향성 정책인 것이다.

 

거시적 차원의 학제 간 연구 정책틀은 예산 편성에서 심사 방법 및 결과물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항목들의 유기적 관계로 구성되기 때문에, 각 항목에 초점을 맞춘 고려 속에는 다른 항목들과의 관계 설정 방식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예산에 초점에 맞추어진 학제 간 연구의 정책틀을 짜는 경우, 학제 간 연구에서 집단 간 혹은 집단 내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촉진시킬 수 있는 여유 공간의 생성을 가로막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간략한 대답으로 무분별’, ‘편향’, ‘단선적 연결이라는 세 가지 요인만 언급한다.

 

(1) 무분별

학제 간 연구 정책틀에서 예산 정책은 각 연구 및 여러 연구들의 연결망을 고려하여 책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연구들의 배열은 말만 학제 간 연구 정신을 지향할 뿐 실제로는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여유 공간의 창출을 가로막는다. 그러한 여유 공간 없이는 학제 간 연구에 필요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어떤 연구가 주로 노출된 복잡 지식의 활용에 근거한 가능성의 연구 공간에 속한다면, 연구비 책정에 필요한 평가는 결과물의 양적 평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연구 결과의 등재 여부보다는 연구 과정을 세밀히 기록한 결과 보고서 등이 평가에서 더욱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 가능성 측면의 연구는 예측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실패한 연구에서도 추후에 경제적 효용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 얻어지기도 한다. 새로운 연구에 동원된 많은 실험 장비들은 일단은 그 연구에 봉사하지만, 그 장비들은 그 연구의 성패와 무관하게 효용 가치를 갖는 인공물로 진화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가능성을 지향하는 연구의 결과물이 양적인 것에만 종속되어 평가되거나, 권위있는 잡지의 등재 여부로만 평가된다면, 가능성만 보고 새로운 연구를 시도할 대범한 과학자나 공학자의 수는 줄어든다. 설령 과학자나 공학자가 가능성만 보고 새로운 연구를 시도할지라도, 일정에 맞추어진 결과물의 요구로 인해 연구 참여자들의 상호 작용은 어려워진다.

 

은폐된 복잡 지식의 활용이 중요한 경제성 측면의 연구 공간 내에서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집단 사이의 적절한 상호 제한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지식 활용의 측면에서 각 집단의 재량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기능 단위별로 필요한 지식들을 연결해 경제적 실효성을 갖는 결과물을 산출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예산 정책에서 평가 기준은 결과 보고서뿐만 아니라 특허를 비롯한 공적 신뢰성을 갖는 것에 근거해야 한다.

 

노출된 복잡 지식의 활용이 중요한 가능성 측면의 연구 공간에서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은 여러 집단의 발상의 교환 및 거래를 촉진하도록 제도화되어야 한다. 반면에 경제성 측면의 연구 공간에서 그러한 여유 공간은 특정 지식을 공유한 동일 집단 내부에 우선적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경제성 측면의 연구 공간에서 집단 간 발상의 거래는 각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소통에 근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때 그러한 인물들의 관계는 고객과 공급자의 상대적 역할 교환에 근거하게 된다. 티타임의 경우를 살펴보자. 가능성 측면의 연구에서 티타임을 위한 물리적 공간은 여러 이질적인 지식의 소유자들이 시시각각 발생하는 문제를 놓고 발상을 교환할 수 있는 곳에 설치되는 것이 좋다. 반면에 경제성 측면의 연구에서 티타임을 위한 물리적 공간은 동일 지식을 공유한 집단 내부에 설치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한 집단은 여러 이질적인 지식의 합성보다는 동일 지식에 근거해 특정 기능 단위를 산출할 목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능성과 경제성 측면의 구분에 따른 연구 공간의 성격 구분은 티타임을 위한 물리적 공간의 배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 19세기 과학과 기술의 결합에 공헌한 여러 선구자들은 그들 각자 연구 성격에 비추어 연구를 위한 공간 구조뿐만 아니라 티타임을 위한 물리적 공간의 배치 문제에도 고민했었다.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을 제도화할 때 피해야 하는 첫 번째 요인은 연구의 성격 구분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정책을 짜는 것과 관련된 무분별 요인이다. 불행히도 우리의 과학 기술 정책에는 그러한 무분별 요인이 산재해 있다. 이에 대한 하나의 실례만을 들어 보자. 연구팀의 조직구성도는 팀의 의사 결정 구조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연구의 성격과 상관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 때문에, 연구팀의 조직구성도 자체가 연구 수행 능력의 평가 항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 의해 마련된 연구 계획서 초안에 분업화 방식의 수직상하 명령 체계의 조직구성도가 미리 마련되어 있다. 연구팀장은 주어진 조직구성도에 연구자들의 이름만 기록하면 된다. 여기에는 연구 성격에 따른 조직구성도의 적합성 여부 자체가 예산 책정의 평가 항목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와중에 예산 관리 책임자가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이것은 동기의 선함을 앞세워 자신의 무능력을 은폐하는 짓에 불과하다.

    

 

(2) 편향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인 결합을 촉진하는 정책은 경제성을 지향하는 연구 공간과 가능성을 지향하는 연구 공간의 유기적 연결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연구비 책정에서 둘 사이의 적절한 분배가 요구된다. 그러한 분배는 여러 상황적 요인들에 제한받기 마련이지만, 한쪽으로 연구비가 몰리는 것은 좋지 않다. 가능성을 지향하는 연구 공간을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연구비의 적절한 분배는 또한 재원의 원천이 어디인가에도 의존적이다.

 

재원의 원천이 기업인 경우, 기업은 가능성만 보고 연구에 자금을 투여할 수 없다.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기업은 기능 단위별 지식 및 기능 단위들을 연결할 수 있는 기반을 어느 정도 확보한 연구에 투자하게 마련이다. 기업의 재원이 경제성을 지향한 연구 공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면, 정부와 대학은 가능성을 지향한 연구에도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이것은 한쪽으로 편향된 예산 정책을 피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이다. 가능성 측면의 연구 공간과 경제성 측면의 연구 공간의 효과적인 연결을 위해 정부, 대학과 기업의 역할 분담이 중요해진다. 모든 자원이 경제성 연구에 치우치는 것은 장기적 시각에서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

 

연구 예산이 한쪽에만 집중되는 것, 즉 예산 정책에서의 편향은 기술 기반의 현대적 학제 간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편향은 우리의 현실 속 곳곳에 산재해 있다. 산업자원부의 지원 아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일명 로봇 가수 에버투(EveR-2)’가 대중에게 선을 보인 적이 있다. 첫 시연에서 고장이 난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업 홍보 차원에서 로봇 가수가 개발되었다면, 더욱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 기관이 과학 기술을 흥행사업의 홍보물처럼 여기고 있다는 데 있다. 현 로봇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로봇 가수의 개발은 경제성의 측면뿐만 아니라 가능성의 측면에서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로봇 기술에 대한 대중을 이목을 끄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물론 특정 기술에 대한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한 홍보 전략은 과학 기술 정책에서 도외시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책다운 과학 기술 정책의 제도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특정 기술에 대한 홍보는 권력 집단의 세력 유지 및 확장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기업체도 아닌 정부가 가능성을 지향하는 연구를 도외시한다면,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인 결합은 불가능해진다. 연구진들도 먹고 살기 위해 새로운 시도보다는 일명 권력 집단의 흥행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택할 수밖에 없고, 결국 단기간 내에 확실한 결과물을 보여 달라는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세태가 지속된다면, 가능성 측면의 연구 공간과 경제성 측면의 연구 공간을 연결하려는 정책틀은 나올 수 없다. 이 경우, 발견과 발명에 필요한 과학 기술자 공동체 내의 상호 작용은 불가능하다.

    

 

(3) 단선적 연결

학제 간 연구를 촉진하고 각 해당 연구에 합당한 의사소통 장치인 여유 공간을 창출하려고 할 때, 예산 정책에서 피해야 할 세 번째 요인은 가능성 측면의 연구와 경제성 측면의 연구의 단선적 연결방식이다. A라는 가능성 측면의 연구가 구체화되어 경제성 측면의 연구 B로 연결될 때, 그 연결은 단순한 논리적 필연성의 관계와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개인용 컴퓨터의 출현은 여러 가능성 측면의 사전 연구들 없이는 불가능했다. 또 그 중 어떤 것들은 초기에는 컴퓨터 개발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다. 튜링의 ACE 계획이 물리적 도구로 구현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전기적 펄스 작동 방식은 원래는 다른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다양한 원인에 기인한 질병 연구 및 제약 개발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과학을 빙자해 불로장생이라는 상징물을 대중에게 확산시키고, 과학 기술을 그들의 흥행사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악습에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했다.

 

과학 기술 공동체의 의견을 무시한 채 과학과 기술을 결합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결합은 특정 영역에서는 단기적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결국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 결합을 가로막는다. 아직까지 경제성 측면의 연구와 직접 연결될 수 없는 가능성 측면의 연구를 그 근거가 애매모호한 미래의 경제적 효과로 치장한 후, 5년 혹은 10년 계획을 세운 다음 그 연구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식의 정책은 단선적 연결방식을 대표한다. 과학 기술 정책이 그러한 단선적 연결 방식에 근거하는 경우, 어떻게 되는가? 장기 연구 개발 과정의 초기 단계를 차지하는 가능성 측면의 연구 공간에서조차 연구자들의 자유로운 이동은 힘들어진다. 결국 가능성 측면의 연구는 실질적 경제적 효용 가치를 지닌 연구 형태로 진화하기 힘들어지고, 연구에 책정된 거대 예산은 허공 속에 사라지게 된다.

 

제약 개발의 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그것은 환자 맞춤형 제약이라는 것이 당장 경제적 실효성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질병의 원인 규명과 관련된 가능성이 매혹적일지라도, 가능성 측면의 연구가 계획적 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경제성 측면의 연구와 단선적으로 연결될 수는 없다. 그 두 연구가 서로 관계를 맺는 과정은 각 연구의 고유성을 유지한 채 다발적으로 발달하는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가능성 측면의 연구 공간 속에서 중요해 보이지 않던 것이 나중에 경제성 측면의 연구 공간으로 전이될 수도 있고, 경제성 측면의 연구에서 부분적인 성공은 가능성 측면의 연구 공간의 구조뿐만 아니라 연구 목적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환자 맞춤형 제약의 계획적 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가능성 측면의 연구와 경제성 측면의 연구를 억지로 연결시킨 방식이 불러온 실패 사례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경제적 이윤 창출에 목적을 둔 개발 계획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사상의학(四象醫學)과 유전학을 결합시켜 환자 맞춤형 제약을 개발하여 경제적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수천억짜리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상의학의 체질 분류라는 것은 문화적 해석과 맞물려 있으며, 또 그 분류에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하게 마련이다. 설령 사상의학의 의술이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상의학 자체가 유전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동양 의술이든 서양 의술이든, 의술의 치료 효과에 대한 과학적 원인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의술이 과학화되어야 학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거나 사회적 권위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문화적 해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상의학의 체질 분류법이 강한 예측성을 목적으로 한 현대적 유전학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사상의학의 의술이 가진 치료 효과 및 그 유전적 기반을 밝히는 연구에 투자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상의학의 과학화라는 명목 아래 사상의학의 체질 분류를 유전학적으로 연구하여 체질별 환자 맞춤형 제약을 개발함으로써 경제적 효용을 극대화 시키겠다는 계획에 투자하는 것은 반대한다. 그러한 계획은 사상의학의 체질 분류법이 갖는 문화적 요인을 고려할 때 과학화의 범주에 속할 수 없다. 그러한 계획은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상의학의 과학화에 기반을 둔 환자 맞춤형 제약 개발 계획안과 같은 것을 만든 인물들은 누군가? 그런 계획안이 정부의 과학 기술 정책에서 고려 대상이 될 정도라면, 과연 이 나라에 과학 기술 정책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8세기 중엽 이후 서양이 발전한 것은 과학의 발달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인 결합에 기인한 것이었다. 과학만으로는 경제적 부의 확장을 가져올 수 없다. 기술만으로는 그러한 확장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역시 과학 없는 기술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현재의 과학 기술 정책을 보면, 그것은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인 결합을 도모하는 정책이 아니라 권력 집단의 흥행 사업을 위해 과학과 기술을 남용한 것에 불과하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연구의 복잡성과 각 연구의 영역 특수성을 인정할 때,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여유 공간의 제도화는 전통 속에서 암묵적으로 굳어진 티타임 문화와 같은 것에 국한될 수 없다. 또한 그 제도화는 일률적으로 명시화된 조항과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다양한 연구의 성격 규명에 근거해 연구들을 분류하고, 학제 간 연구를 가로막는 요인들을 분석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 연구 집단에 필요한 의사소통 장치인 여유 공간을 산출해 주는 방향성 정책의 틀을 짜볼 수 있다. 그러한 방향성 정책틀을 짜는 데 있어 무분별’, ‘편향그리고 단선적 연결과 관련된 요인들은 제거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요인들이 예산 정책 등에 산재해 있을 때, 학제 간 연구 정신은 촉진될 수 없다. 또한 집단 내부 혹은 집단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한 여유 공간의 제도화는 불가능해진다.

 

과학 기술 예산 정책에서의 무분별 요인은 예산을 한쪽으로 집중시키는 편향을 낳고, 편향 요인은 가능성 측면의 연구 공간과 경제성 측면의 연구 공간의 단선적 연결 방식을 확대시킨다. 그 결과, 학제 간 연구의 참다운 거시적 정책틀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대한 주원인으로 현 경제 규모에 걸맞게 적응하지 못한 정치 및 사회 구조, 그리고 과학 기술 정책에 합당한 인적 자원을 길러내지 못하는 교육 현실 등을 들 수 있다. 그러한 주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