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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 조류학자에 따르면 ...

착한왕 이상하 2017. 3. 18. 19:56



어제 밤 11시 경 KBS 클래식 FM 방송 듣는데, 여성 아나운서가 말한 내용은 대충 이렇다.


우리는 솔개의 환골탈퇴 정신을 배워야 한다. 끊임 없이 스스로를 개혁해야 블라블라. 솔개는 조류 중 드물게 70년을 사는데, 40년을 살고 나면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부리는 너무 커져 어긋나고 발톱은 무디어지고 날개는 무거워지고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선 솔개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 스스로 바위에 부리를 쳐 깨트린다. 그렇게 부러진 부리에서 새로운 부리가 나온다. 새로운 부리로 낡은 발톱과 깃털을 뽑으면 새로운 발톱과 깃털이 나온다. 이렇게 하여 솔개는 30년을 더 살게 된다.


위 이야기는 유명한데, 나는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듣고 나니 뭔가 이상하다.


1. 솔개는 맹금류에 속한다. 맹금류에 속하는 독수리, 매 등은 솔개처럼 그렇게 오래 살 수 없다. 유전적으로 유사한 맹금류들 중 솔개만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는가?


2. 낡은 부리를 깨트리면 새로운 부리가 나온다고? 처음 듣는 얘기다.


3. 새의 발톱은 인간의 발톱과 달리 뼈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발톱이 빠지면 새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앵무새를 살 때 주의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발톱 유무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솔개에 관한 위 이야기는 속칭 '구라'였던 것이다. 'life span of black kite'로 구글링해 보니, 유라시아 지역 솔개의 최대 수명은 30년도 아닌 24년이란다.


우리나라 음악방송을 들어보면, 뭔가 '따뜻한 말(?)'로 청자의 감성을 자극하려는 경향이 크다. 또 그렇게 자극되는 것을 원하는 청자도 많다. 일정 수의 청자를 확보할 필요가 있는 방송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위와 같이 시중에 도는 솔개 이야기를 환골탈퇴 정신과 엮어 방송하는 것에 대해 꼬투리를 잡기는 힘들다.


그러나 어제 방송에서 아나운서가 강조하길,


조류학자들에 따르면, ...블라블라...


위 이야기가 조류학자들의 검증을 받은 것처럼 방송을 했던 것이다.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위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가공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검색도 해 보지 않고, '조류학자들에 따르면 ...'을 강조한 것이다.  이건 아니지 싶다. 방송 시나리오 구성 때 미리 인터넷 검색을 통해 솔개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았어야 한다. 그리고 위 솔개 이야기를 해 주고, 그 이야기가 허구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있음을 강조했더라면 좋왔을 텐데 말이다. 정치부터 방송까지 이 사회의 문제점 중 하는 각 영역 직업 활동에 필요한 '프로페셔널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