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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솔로지의 개척자들: 마구누스 히르쉬펠트 2.4-5 표상법, 성 정체성의 가변성

착한왕 이상하 2017. 6. 15. 04:34

(4) 중간 영역의 표상법

성적 취향, 성 정체성과 관련해 누구를 남성 혹은 여성으로 확인할 때, 남성과 여성의 의미는 여러 차원을 갖는다. 생식 가능성 차원, 성적 대상 선호 차원, 성적 역할 차원, 사회적 역할 차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지만 개인의 성적 취향과 정체성을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상적으로 가정된 남성과 여성의 사이를 일종의 선분으로 취급하는 접근법의 한계를 드러내 준다. 그렇게 취급하는 접근법은 이상적으로 가정된 남성과 여성의 사이로서 성적 취향이나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히르쉬펠트의 입장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남성과 여성의 의미를 구성하는 여러 차원을 고려하여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취향을 다루려면, 적어도 두 개의 차원이 필요하다. 그 하나는 생식 가능성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성 행위에서 짝짓기 대상 선호와 관련된 성적 대상 선호 차원이다.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연령별, 체형별에 따른 요소는 성적 대상 선호 차원에서 제외시키자. 생식 가능성 차원을 X축으로, 성적 대상 선호 차원을 Y축으로 잡는 경우, 다음의 공간 표상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위 도표를 성적 취향 공간이라고 부르자. X축은 생식 가능성 차원으로, Y축은 성적 대상 선호 차원으로 규정되었으므로, A는 수컷이 섹스에서 암컷을 선호하는 분포 영역을, 그리고 B는 암컷이 수컷을 선호하는 분포 영역을 나타낸다. AB는 이성애 취향을 나타내는 분포 영역들인 것이다. 성적 취향의 측면에서 다수는 AB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것이 생물학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소수를 배제하지 않는다. AB의 중간 영역으로서 CD 각각은 암컷과 암컷 사이의 동성애 취향을, 수컷과 수컷 사이의 동성애 취향을 나타내는 영역들이다. AD의 경계 부분을 차지하는 영역, BC의 경계 부분을 차지하는 영역은 양성애 취향을 나타낸다.

 

누구나 성적 취향 공간 중 한 곳에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다. 이성애 취향을 나타내는 AB 이외의 영역들에 위치한 개인들은 성적 취향에서 상대적 소수를 대표하게 된다. 이러한 다수 대 소수의 구분은 시대별,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고대 그리스의 남색 문화를 고려하는 경우, AD 경계 부분에 위치하는 개인들의 수는 지금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또한 AB에 위치하는 것도 분포적 의미를 가질 뿐이다. 따라서 성적 취향 공간의 네 모서리 a, b, c, d에 위치하는 개인은 없다. 더욱이 a, b, c, d의 명확한 정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a, b가 이상적인 남성과 여성을 상징한다고 할 때, 이상적인 남성과 여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그런 이상적 남성 혹은 여성이 있다면, 그런 남성 혹은 여성은 섹스에서 몇 명울 선호할까? 그런 남성 혹은 여성에게 번식이 섹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이러한 물음을 던지면 던질수록 이상적 남성과 여성을 명확히 규정하려는 동기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상적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ab는 단지 생식 가능성과 성적 대상 선호 차원을 고려해 얻어진 AB 분포 영역들에서 추상화된 것에 불과하다. 그 분포 영역의 특징들은 ab의 명확한 규정 방식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ab를 이상적인 것으로 가정할 수 있도록 해 줄 뿐이다. cd 역시 CD 분포 공간에서 추상화된 것에 불과하다.

 

성적 취향 공간을 분석해 보면, 각 개인은 ab를 기준으로 특정 분포 영역에 위치한다. 동성애 취향을 나타내는 CDAB 사이에 위치하며, A, B, C, D는 각각 서로 단절된 독립된 영역들이 아니다. 그 분포 영역들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연속체로서의 성적 취향 공간을 형성하고, 각 개인은 그러한 공간 중 한 점을 차지할 뿐이다. 성적 취향의 측면에서 그렇게 개인을 위치시키는 것은 전통적 남녀 이분법 틀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살펴본 성적 취향 공간은 누구나 이상적으로 가정된 남성과 여성 사이에 위치한다는 히르쉬펠트의 입장을 대변하는 표상법이다.

 

 

(5) 성 정체성의 가변성

어느 누구를 동성애자로 부를 때, 그의 성적 취향보다는 성 정체성을 거론하는 것이다. 동성애 성적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사회적 금기 등으로 인해 억지로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점은 살펴본 성적 취향 공간을 무조건 성 정체성 공간과 동일시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렇게 동일시하려면, 개인의 성적 취향이 적어도 그 자신 삶의 필수적 부분으로 자리잡은 경우이어야 한다. , 자신을 무엇으로 확인할 때, 무엇이 자신의 성적 취향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경우이어야 한다. 그러한 경우에 국한할 때, 살펴본 2차원 성적 취향 공간을 성 정체성 공간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여러 한계가 드러난다. 당장 이성복장애자나 트랜스젠더를 2차원 성 정체성 공간에 위치시킬 수 없다. 이성복장애자나 트랜스젠더를 성 정체성 공간에 위치시키려면, 섹스에서 성적 역할 차원과 사회적 역할 차원을 살펴본 2차원 공간에 부가시켜야 한다. 생식 가능성 차원, 성적 대상 선호 차원, 성적 역할 차원, 사회적 역할 차원으로 구성되는 성 정체성 공간을 분석해 보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남긴다. 그러한 분석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 성 정체성을 전통적 남녀 이분법 틀 속에서 다루기 힘들다는 것이다.

 

히르쉬펠트에게 개인의 성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단지 분포적 의미를 가질 뿐이다. 남성 혹은 여성으로 자처하는 개인들 사이에서도 성적 취향과 성 정체성은 편차를 나타낸다. 동성애자, 이성복장애자, 트랜스젠더들 사이에서도 성적 취향과 성 정체성은 편차를 나타낸다. 이를 인정할 떼, 개인의 일생은 성 정체성이라는 연속체 공간 속에서 이동하는 것에 유비된다. 이러한 유비에서 개인의 성 정체성은 가변적이어서 변화 과정을 겪게 되며, 그 변화 과정은 생식 가능성 차원의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 종속되지 않는다. 물론 성 정체성 공간에서 다수의 이동 범위는 생식적 가능성 차원의 요인들 및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남성과 여성의 분포 영역에 한정되지만, 이로부터 그 영역을 벗어나는 개인들을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비정상으로 규정할 수 없다. 이러한 히르쉬펠트의 관점에 따르면, 누구나 자신만의 성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히르쉬펠트 이 전에도 성소수자에 대한 연구는 있었다. 실례로 크라프트-에빙(R. Kraft-Ebing)1886년 연구서 <성적 정신질환(Psychopathia Sexualis)>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크라프트-에빙을 비롯한 당시 대다수 연구자들은 전통적 남녀 이분법 구도 틀에 기대어 성소수자들을 '비정상 범주'에 속한 것으로 취급했다. 크라프트-에빙은 성소수자들이 특별한 생리적, 정신적 질환을 겪지 않음을 인정했음에도 말이다.

 

기타 다른 인물들에 대한 언급 생략

 

히르쉬펠트는 그 누구보다 그러한 이분법 구도 틀을 붕괴시키려 한 섹솔로지의 개척자이며, 그의 연구 방법은 생물학과 심리학에 기대고 있다.

 

성적 취향과 성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들은 전통적 남녀 이분법 구도 틀 속에서는 충분히 다룰 수 없다.

 

히르쉬펠트의 위 입장은 현대 섹솔로지의 핵심 논제 중 하나로 정착했다. 그를 현대 섹솔로지 형성에 기여한 중요 인물로 명시하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3.

과학을 통한 정의라는 히르쉬펠트의 모토를 해석한 이 부분은 생략. (모토를 과학 중심의 사회 문제 해결로 단순히 해석하는 것은 잘못인데, 이 점은 이 글을 생각하면서 읽은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드러날 것임/ 섹솔로지의 개척자로 이어질 인물은 M. Stope라는 고식물학자인데, 이 여성을 정리한 것을 올릴 것인지는 추후 결정)

 

 

참고 문헌

이상하(2016), 생물학적 성 결정, 비매품 <에세이 2006>.

http://blog.daum.net/goodking/797

Bauer, H.(2012), “Sexology Backward: Hirschfeld, Kinsey and the Reshaping of Sex Research in the 1950s” in Bauer, H. & Cook, M.(Eds.), Queer 1950s: Rethinking Sexuality in the Postwar Years, Springer.

Bauer, J.E.(1998), “Der Tod Adams: Geschichtsphilosophische Thesen zur Sexualemanzipation im WeMagus Hirschfeld” in Herzer, M.(Ed.), 100 Jahre Schwulenbewegung, Rosa Winkel Verlag.

Bauer, J.E.(1999), “Ueber Hirschfeld Anspruch: Eine Klarstellung”, Mitteilungen der Magnus-Hirschfeld-Gesellschaft 29/30.

Bauer, J.E.(2003), “Magnus Hirschfeld’s Doctrine of Sexual Intermediaries and the Transgender Politics of (No-)Identity”, Conference Past and Present of Radical Sexual Politics, Amsterdam.

Charlotte, W.(1986), Magnus Hirschfeld: A Portrait of a Pioneer in Sexology, Quatet Books.

Freud, S.(1905), Drei Abhandlungen zur Sexualtheorie.

Hirschfeld, M.(1896), Sappho und Sokrates.

Hirschfeld, M.(1914), Homosexualitaet des Mannes und des Weibes.

Laqueur, T.(1992), Making Sex, Body and Gender from the Greeks to Freud, Harvard University.

Steakley, J.D.(1985), The Homosexual Emancipation Movement in Germany, 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