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교육에서의 젠더 격차(Gender Gap)

착한왕 이상하 2017. 8. 18. 22:24

 

 

교육에서의 젠더 격차

 

젠더(gender)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보다는 사회 문화적 차이에 근거한 성 구분 방식이다. 트랜스젠더, 통념에 따른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정하는 젠더 혐오(gender dysphoria)를 둘러싼 논쟁은 젠더를 남녀에 국한시키는 이분법의 한계를 드러내 준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의 일반적 구분은 사회의 젠더 격차(gender gap)’ 현상을 분석하는 데 여전히 유용하다. 젠더 격차란 교육 및 경제의 측면에서 나타나는 여성과 남성의 불균형적 차이 혹은 격차를 뜻한다.

 

교육에서 젠더 격차의 변화는 전 지구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여 준다. 영국의 경우, 1988년까지는 여성들이 초등 과정에서 남성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중고등 및 대학 과정에서는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1988년 이후 역전된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전 과정에 걸쳐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올린다. 이러한 젠더 격차 역전현상은 OECD 다수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교육청 및 교육부 관련 기관을 뒤져 보았지만, ‘젠더 격차 역전 현상을 보여 주는 통계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나의 지난 교육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교육 문제를 학교 외부 요인들에 근거해 설명하려는 외재적 접근법(external approaches)’ 옹호자들은 젠더 격차 역전 현상을 설명하는 데 생물학, 사회화, 노동 시장, 양성 평등법, 남성성의 위기(crisis of masculinity) 등과 관련된 요인들을 강조한다. 생물학적 요인들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학교에서 남학생들의 저조한 참여는 여성들과는 다른 남성들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기인한다. 실례로 남학생들은 거친 놀이와 전쟁에 관한 책 읽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사회화와 무관하게 남성성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주장은 생물학적 증거를 결여하고 있다. 설령 남녀 사이의 타고난 생물학적 차이가 교육에서 유의미하더라도, 그러한 차이를 가지고 젠더 격차 역전 현상을 충분히 설명해 주는 연구는 없다. 사회화, 양성 평등에 중점을 둔 법의 제도화, 육체적 노동력에서 벗어난 노동 시장의 변화 등은 교육에서 젠더 격차 역전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그것들만 가지고 그 역전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사회가 남성 지배 구조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남성들은 개인 생활, 학교 및 직업 활동에서 더 많은 압력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남성성의 위기는 그렇게 변화한 사회를 상징하는 용어이다. 교육에서의 젠더 격차 역전 현상은 남성성의 위기라는 상징성을 강화시켜 줄 여지는 있으나, 남성성의 위기가 그러한 역전 현상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욱이 남성성의 위기는 과거 남성 지배 사회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교육에서의 젠더 역전 현상을 설명하는 데 교육 외부의 요인들을 고려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교육 문제를 학교 내부의 요인들을 가지고 설명하려는 내재적 접근법(internal approaches)’ 옹호자들은 젠더 역전 현상의 원인으로 학교 교육의 교수법, 학습법, 평가법, 여성화(feminization)를 거론한다. 여학생들은 일반적으로 남학생들보다 학교 활동 참여에 더 적극적이며 진지하다. 초중고 수업 활동과 성공적인 대학 및 직업 활동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여학생들이 더 잘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연구 보고서가 많다. 그런데 내재적 접근법에 국한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학교의 여성화 시각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수법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양육의 사회적 역할은 여성의 몫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이 점은 여선생들의 수가 남선생들의 수를 압도하는 초등 과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중고등 및 대학 과정에서는 여전히 남선생들의 수가 여선생들의 수를 압도하고 있다. 물론 여학생들이 여선생들과 쉽게 동화되어 진지한 수업 태도를 일찍 습득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의 습득 여부는 전적으로 선생들의 젠더보다는 역할에 좌우되는 것일 수 있다. 어쨌든 선생님들의 성비를 맞추려고 초등학교 남선생 비율을 늘려야 한다면, 고등 및 대학 과정에서 여선생 및 여교수 비율도 늘려 주어야 공평하다.

 

교육에서의 젠더 격차 역전 현상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설명에서 외적, 내적 요인들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학생들보다는 여학생들이 초중고 수업 활동과 성공적인 대학 및 직업 활동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 점이 젠더 격차 역전 현상을 보여 주는 지역들에서 발견되는 일반적 사실이라고 하자. 그 사실에 대한 학교 외적 원인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답하는 방식은 여러 개가 가능하지만, 그 중 하는 이렇다. 사회의 남성 지배력은 약화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남성 지배적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남성 교수들, 남성 CEO, 남성 정치가들이 여전히 여성들보다 많다. 또 취업 및 승진에서도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적어도 기회 균등의 측면에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은 여성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남성들보다 더 복합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초등학교 여학생도 학교에서 배운 것과 가정생활 사이의 모순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여학생들이 초중고 수업 활동과 성공적인 대학 및 직업 활동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더 잘 인식하게 된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이 옳다면, 교육에서 젠더 격차를 줄이는 지름길은 젠더 평등을 촉진시키는 제도와 교육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덧글.

교육청 등 국내 교육 기관 홈페이지를 뒤져 보아도 젠더 격차를 다룬 통계 자료가 없다. 또 교육 과정별로 학교 수업과 미래에 대한 남녀 학생들의 인식 차이를 조사한 통계 자료도 없다. 그러한 조사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한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위 글의 마지막 결론을 이 땅에까지 일반화시키기는 힘들다. 아무튼 그러한 자료의 부재는 국내 교육 정책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