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잡세상 잡글

어떻게 할까?

착한왕 이상하 2017. 9. 24. 02:16




어떻게 할까?

나미씨 노래가사에 나오는 사랑싸움과 관련된 일이면 이 나이에 정말 황홀한 질문이겠다. 현실은 다른 법! 오전에 조금은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더 이상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냥 벌어 놓은 돈으로 아껴 쓰고 오디오질이나 하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주식투자는 한다. 물론 꼬라박을 수도 있지만, 죽기 전에 1푼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내 철칙이다. 투자가 잘 되면 자연사할 것이고, 안 되면 자살할 것이고 ... 아무튼 그때까지 출판 유무와 무관하게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면 그만이다. 입시와 관련된 것은 사람 미치게 만들어 더 이상 건드릴 수 없다. 진정한 교육에 관심을 가진 학부모는 없고 ...


그나마 즐거웠던 추억 중 하나는 영국 UK 파운데이션 과정 학생들을 페이스타임을 통해 가이드해줬던 일이다. 그때 가이드 해준 학생 부모가 전화를 한 것이다. 이유인즉슨, 학생이 UK 파운데이션 과정을 좋은 성적으로 마치고 소위 영국 명문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는데, 제출한 에세이와 포토폴리오에 문제가 생겨 징계를 받아 1년 꿇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한테 항의 전화하는 걸로 착각하고 나온 대답이 "그건 저하고 상관 없는 일인데요." 그런데 다시 자기 자식을 좀 봐달라고 사정을 하더라.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UK 파운데이션 과정 학생 몇을 가이드해줬을 때, 이 학생들이 가장 애를 먹는 것이 에세이 작성이다. 미국 명문 사립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도 마찬가지다. 텍스트 분석 및 구성 훈련 과정은 미국도 별 볼일 없다. 나의 원칙 중 하나는 '대필불가'이다. 사실 영작이 안 되는 사람이라 영어 에세이 대필은 나에게 불가능한 것이다. 내가 그 정도로 영어를 잘 한다면, 나도 진작 영어로 책을 썼겠지. 어차피 영어권에서 알려지면 무조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개한민국 족속 아닌가.


전공별 에세이 주제가 나오면, 관련 수업자료 받아 내가 공부하고 가이드라인 만들어 보내고, 학생이 그걸 가지고 영어로 에세이를 써 보내면, 내가 다시 검토해 보완 사항 및 문제점 등을 페이스타임을 통해 알려주고 ... 이런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야만 학생의 능력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모두 좋은 성적을 받아 원했던 이상의 영국 대학에 들어갔다. 한 명의 학생과 그 부모 외에는 서로 얼굴도 모른다. 이런 일로 만날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때 인연을 맺었던 학생 부모가 전화를 한 것이다. 서로 아는 사이인 교육학과 학생만 지금도 가끔 에세이 주제가 까다로운 경우에 국한해 가이드해준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전문 분야 에세이 쓰기를 엄격하게 가이드해 스스로 구성하고 작성 완료시키는 과정에는 에너지 투입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밤새 가며 나 스스로 책 한권 분량을 읽어야 한다.


이 사건의 주인공 학생은 UK 파운데이션 과정을 훌륭(?)하게 마치고 소위 개한민국 부모들이 부러워하는 영국 명문대에 입학했는데, 왜 징계를 받아 1년 꿇게 된 것일까?


전화로 부모 말을 들어보니, 박사급 연구진이 논문 가이드를 해준다는 곳들이 있더라. 그런 곳을 통해 전공자와 접촉했고, 그 전공자가 지난 학년 에세이들을 가이드해주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가이드가 아니고 대필이었고, 학생은 멍청하게도 내용 검토 없이 그 에세이들을 제출한 것이었다. 그래서 부모에게 요구해 학생이 메일로 보내준 해당 과목들 수업자료들과 '문제의 에세이들'을 조금 전에 검토를 끝냈다.


검토한 후 느낌이 정말 아스트랄하다. 보니까, 인터넷에 도는 논문들 짜집기 한 것이었다. 통계를 다룬 부분은 아마도 (누군지 모르는) 대필자가 자신의 논문에서 사용한 것? 진짜 어이 없는 것은 그 에세이들 내용이 해당 대학 교수들이 내준 주제, 요구사항과 전혀 다르다는 것. A라는 주제에 C라는 요구사항인데, 제출한 에세이는 B라는 주제에 D라는 요구 사항. 더욱이 에세이 문장 몇 개만 긁어 체크해 보면 다른 논문 표절이다. 교수들이 학부 과정 학생들에게 에세이를 요구할 때 수업 참여 성실도, 구성 능력, 뭐 이런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 결코 전문 논문을 리뷰하려는 것이 아니다. 표절의 경우, 제대로 걸리면 바로 퇴학이다. 학비가 너무나 비싼 곳이라 그런가, 그나마 1년 다시 굻는 것으로 넘어가 준 것이다.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에게 에세이 쓰기가 필요한 이유는 다음 나의 글을 참조하라.


<에세이를 요구하는 교육적 이유> http://blog.daum.net/goodking/718

(영국 대학 학부 과정에서 요구하는 에세이는 위 링크한 글의 내용과 달리 논문 형식을 존중하는 에세이 형태임을 밝혀 둔다.)


내일 부모가 급한지 직접 찾아 오겠단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답은 거절이다. (혹시 모른다. 다시 전화해 백지위임장을 건너겠다면, 마음이 바뀔지도 ...)



* 과거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 강의를 했을 때 일이다. 당시 고등학교 선생의 리포트였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이다. 헐, 당시 꽤 유명(?)했던 과학과 철학 사이트에 올렸던 나의 글이었다. 진짜 한국 대학생들 조심해라. 이 글 보고 찔리는 대학생들 분명히 꽤 있을 것이다. 김상곤은 누구나 학비 부담 없이 쉽게 대학갈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단다. 그런데 선결 조건이 있다. 졸업율 50% 이하여야 한다는 것. 일반적으로 등록금이 비쌀수록 '입학=졸업'이 성립한다. 특히 개한민국이 그렇다. 이런 분위기에 길들여진 학생들, 등록금 없애거나 대폭 줄이는 대신 졸업율 50%로 한다면 동의하겠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길. 아무튼 영국 대학들 등록금 정말 비싸다. 생활비도 비싸고 ... 그마나 우리보다는 엄격하다. 이 글이 이에 대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