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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스타인의 정밀어와 한정어 3. 교육적 가치와 시민 교육

착한왕 이상하 2017. 10. 27. 03:41

한정어와 정밀어의 구분 방식이 갖는 교육적 가치와 맞물린 탄력적 소통 교육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탄력적 소통 교육은 이념보다는 문제의 공유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계층 및 계층 간 관계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한다. 다시 말해, 각 계층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탄력적 소통 교육에서는 일단 유보된다. 탄력적 소통 능력의 발휘가 그러한 도덕적 판단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계층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단순히 해당 계층 구성원들이 선한지 악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 평가는 어떤 계층을 보호 대상으로 삼을지, 약화 대상으로 삼을지, 강화 대상으로 삼을지에 대한 판단을 요구한다. 특정 계층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개인의 선보다는 공동체의 조화로운 유지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특정 계층을 사회적으로 평가하려면, 해당 계층뿐만 아니라 다른 계층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탄력적 소통은 계층 및 계층 간 관계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켜 문제를 공유하는 능력을 강화시키는 목적을 지향한다.

 

현재 교육 사회학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는 목적만 제시하는 이론들이 판치고 있다는 것이다. 실천적 학문인 교육학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 주는 효과적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회적 사안을 놓고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특정 목적만 제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수단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목적만 강조하는 것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마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또는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왜곡시켜 사회 진보를 가로막는다. 탄력적 소통 교육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서의 교육 모형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언급할 것이 있다.

 

탄력적 소통 교육 목적만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소통 교육이 시민 교육과 밀접히 맞물려 있어 시민 교육의 일부를 차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기능 방식은 시민들의 지적 수준에 의존적이다. 그 수준은 단순히 구성원들의 평균 지식과 정보의 양에 의해서만 평가되지 않는다. 그 평가에서 더욱 중요한 요소는 시민들의 비판적 사고 및 소통 능력이다. 그러한 능력 없이는 민주주의 사회 시민 각자에게 필요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눈의 개인적 확립이 어렵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 능력과 소통 능력 모두 계층들의 관계망에 근거한 사회 구조의 파악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사회적 구조를 파악하는 데 비판적 사고 능력보다는 소통 능력이 더욱 대화와 집단적 실천을 바탕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 탄력적 소통 교육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시민 교육의 소통 영역에 기여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물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마련된다면 말이다. 탄력적 소통 교육은 계층 및 계층 간 관계에 대한 이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탄력적 소통 교육 목적을 달성시키는 효과적 수단을 탄력적 소통 교육 방법이라고 할 때, 탄력적 소통 교육 방법이 만족해야 할 조건들은 무엇인가? 또 그 교육 방법의 모형들로 어떤 것을 구상해 볼 수 있는가?

 

탄력적 소통 교육 방법이 만족해야 할 조건들: 생략

 

이제 탄력적 소통 교육의 간략한 두 모형을 살펴보자. 그 두 모형은 번스타인의 정밀어와 한정어 구분 방식에 기대고 있다. 정밀어와 한정어 구분 방식에 기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통 교육 모형은 여러 가지인데, 여기서 살펴볼 모형을 ‘GK-B 탄력적 소통 교육 모형이라고 하자. GK-B 탄력적 소통 교육 모형은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첫 번째는 주어진 외부 상황 맥락에 대한 평가 및 해석을 배제하는 경우이며, 두 번째는 그러한 평가 및 해석을 포함하는 경우이다. 다음 <GK-B 1>은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GK-B 탄력적 소통 교육 모형을 도식화시킨 것이다.

 

 

위 도식 <GK-B 1>에서 외부 상황 맥락은 그림, 이야기 등으로 주어진 것이다. 화살표가 병기되어 있지 않은 선분은 학생의 참여가 없는 부분이다. 반면에 화살표가 병기되어 있는 부분은 학생의 참여가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GK-B 1>은 특정 외부 상황 맥락 그리고 그 맥락을 한정어 표현 체계로 주어진 상태에서 그 체계를 정밀어 표현 체계로 변환하는 과업에 해당한다. 실례로 축구공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상황이 외부 맥락으로 주어졌다고 하자. 소통의 경제성을 갖는 한정어 사용은 그 외부 맥락에 한정적이다. 그 외부 맥락에 한정적 표현 체계를 정밀어 표현 체계로 변환시켜 그 맥락의 객관적 전달을 꾀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어진 외부 상황 맥락에 대한 평가나 해석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외부 상황 맥락에 대한 평가나 해석을 배제하는 경우의 <GK-B 1> 모형은 아동 교육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아이들은 또래 친구, 가족 등과 대화를 많이 한다. 이 때문에, 소통의 경제성을 갖는 한정어 사용 방식은 자연스럽게 문화적으로 체득된다. 하지만 정밀어 표현 방식은 별도의 훈련을 요구한다. 아이들은 정밀어 표편 체계에 근거해 외부 상황 맥락을 객관적으로 전달할 기회에 많이 노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어진 특정 한정어 표현 체계를 정밀로 표현 체계로 변환하는 훈련은 아이들에게 정보의 객관적 전달 능력을 키워 준다. 동시에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을 키워 준다. <GK-B 1> 모형은 아이들이 정확한 어휘 사용법을 익히고 어휘 양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준다. 어휘력은 아이들의 지적 발달에 필수적이다. 어휘를 정확성에서나 양적인 측면에서 어휘 양이 부족한 아이는 상위 교육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문화 자본의 측면에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노동자 계층의 아이들보다는 중산층 아이들이 다양한 학습 과정을 체험하는 사회를 가정해 보자. 그러한 사회에서 노동자 계층 아이들보다는 중산층 아이들이 더 많은 어휘를 정확하게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학습 과정은 정밀어 표현 방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기 때 배운 것을 정확히 기억하는 청소년이나 어른은 없다. 그럼에도 중산층 아이들이 상위 교육 과정에 진입했을 때 학업 성취도가 높은 이유는 단순하다. 객관적 평가를 지향하는 교재는 정밀어 표현 방식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어휘를 정확히 사용하는 아이들의 교재 이해력이 높기 때문에, 중산층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도 노동자 계층의 아이들보다 높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은 현대 교육 정책에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준다.

 

문화 자본력과 경제력 사이에 나타나는 간극을 해소하려 하는 경우, 유년기 교육부터 탄력적 소통 교육을 공공 정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교육 정책과 함께 복지 정책이 병행될 때, 문화 자본력과 경제력의 상관관계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GK-B 1>의 구체적 사례 제시 및 사례 분석 생략

 

다음 <GK-B 2>는 외부 상황 맥락에 대한 평가나 해석을 포함한 경우의 모형 중 가장 단순한 것이다.

 

 

<GK-B 2> 모형은 외부 상황 맥락에 대한 평가를 배제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 상황 맥락은 특정 사회적 문제나 사안 등을 함축한 신문 기사나 칼럼과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GK-B 2>에서 화살표가 병기된 곳만이 학생들의 참여가 있는 부분이다. 외부 상황 맥락에 주어진 평가나 해석은 계층별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스마트폰, SNS 등 정보 교환 기술이 급속히 발달했지만 취업 및 안정적 직장 생활이 어려워진 지금, 청년층의 연애 방식은 노년층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청년층의 남녀가 교제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말하는 방식은 노년층이 이해하기 힘든 문화적 차이를 발생시킨다. 문자 메시지로 절교 선언을 보내는 청년층 사람들의 행위는 헤어짐을 이별 여행’, ‘이별 만남등으로 낭만화시키는 데 길들여진 노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노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청년층의 표현들, 또 청년들이 이해하기 힘든 노년층의 표현들도 많다.

 

주어진 외부 상황 맥락에 대한 평가나 해석은 오로지 한정어만 사용해 표현될 수 없다. 평가나 해석은 항상 다른 계층의 의견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정어를 배제하지 않는 표현 체계 A’, ‘한정어를 배제하지 않는 표현 체계 B’는 주어진 문제나 사안 등에 대해 각 계층 사람들의 일상적 표현 방식에 근거한다. 그러한 표현 방식은 당연히 한정어 사용을 부분적으로 포함하게 마련이다. A가 청년층, B가 노인층이라면, 한정어를 배제하지 않는 각 표현 체계는 청년층 혹은 노년층의 일상적 표현 방식, 선입관, 계층 고유의 용어들을 포함한다. 이 때문에, B 계층 사람이 한정어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 표현 체계 A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역시 A계층 사람이 한정어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 표현 체계 B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따라서 두 계층의 상호 이해 및 평가 방식에 대한 객관적 비교 검토도 힘들다.

 

정밀어 표현 체계 A’는 한정어를 배제하지 않는 표현 체계 A, 그리고 정밀어 표현 체계 B’는 한정어를 배제하지 않는 표현 체계 B를 나타낸다. 외부 상황 맥락의 객관적 전달 기능을 갖는 정밀어 표현 방식 덕에, 전 단계에서 애매모호한 것들이 정밀어 표현 체계에서는 구체화된다. 또한 외부 상황 맥락에 함축된 인과 관계나 구조 등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정밀어 표현 체계로 변환된 각 계층의 평가나 해석 방식은 적어도 언어적 측면에서 계층 간 상호 이해를 촉진시켜 줄 수 있으며, 어느 정도 객관적 비교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정밀어 표현 방식이 소통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한 결론은 착각일 뿐이다. 객관적 비교 검토 과정에서 한정어를 배제하지 않는 표현 체계를 정밀어 표현 체계로 변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때, 실제 비교 검토는 두 종류의 표현 체계들을 상호 비교 검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통 자체가 정밀어 사용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좀 더 구체적 이유 생략

<GK-B 2>의 구체적 사례 제시 및 사례 분석 생략

결론 생략

 

 

* 덧글

이 글의 탄력적 소통 교육법모형들의 공적, 상업적 사용을 금한다. 다만 어린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사적으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진정으로 자식 교육에 관심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GK-B 1> 모형을 실천할 수 있다.

 

(i) 먼저 간단한 이야기나 상황을 담은 그림책 혹은 그림책 일부를 고른다.

(ii) 그 이야기나 상황을 한정어 표현 방식으로 바꾼다.

(iii) 그렇게 바꾼 것을 가지고 아이와 대화하며, 대명사 등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따져본다.

(iv) 그림책을 보여 주고, 아이가 (iii)에 근거해 정밀어 표현 방식으로 이야기나 상황을 말하거나 써 보도록 한다. 아이가 말로 하는 경우는 녹음을 하는 것이 좋다.

(v) 이이가 말한 것을 녹음기로 들려주거나, 아이가 쓴 것을 가지고 함께 토론한다.

 

(i)-(v)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모는 한정어나 정밀어 개념을 아이에게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 전자에서 후자로의 변환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i)-(v)를 주기적으로 해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어휘력과 이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이 학원의 어설픈 선행 학습보다 아이의 지적 발달에 효과적이다. 자기 자식을 똑똑한 인물로 키우고 싶은 보모는 당장 시행해 보시라.

 

* ‘시민 교육은 친숙한 용어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시민 교육 목적을 달성시키는 데 효과적인 수단은 많이 연구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 교육은 이념 교육으로 변질된다면 민주주의 사회에 필요한 능력을 개인들에게 제공할 수 없다. 현 개한민국은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저 해외 석학(?) 누구누구의 이름을 대며 시민 교육의 목적만 외치는 꾼들이 판치고 있는 개한민국 말이다. 그 석학이라는 자들 책과 논문을 봐도 내 개인적으로는 뜬 구름 잡는 얘기일 뿐이더라. 개한민국은 언제 '한국'이 될래?